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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 2030의 씁쓸한 기억들 … 쓸모없는 점은 없다

Bawoo 2015. 1. 23. 12:58

이른 아침,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얼마 전 취재차 만난 한 여대생 얘기다. 이 친구의 꿈은 큐레이터(전시기획자)다. 근데 전공은 교육학인 데다 외국 한 번 나가본 적이 없단다. 이 친구는 “작품보다 바코드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몇 년 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기자를 꿈꾸는 ‘청년 백수’ 시절. 나는 작은 기관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직원들의 업무 비용을 처리하는 게 일이었다. 영수증을 가위로 자르고, 풀로 붙이고. ‘나는 기자가 될 사람인데. 민주주의를 논하고 권력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야 할 사람인데’.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며 몇 천원의 계산 오류를 찾는 데 열정을 쏟았다.

 여대생과 얘기를 나누기 위해 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카페엔 반가운 그림이 걸려 있었다. 신인상파 조르주 쇠라의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였다. 수많은 점을 찍어 그린 점묘화다. 유럽 여행 때 가로 2m, 세로 3m의 진품을 마주한 적이 있다. 이 그림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점들로 이뤄져 있다. 빨간색 옆에 파란색 그 옆에 초록색, 다시 노란색. 쇠라는 2년 동안이나 이 그림에 매달렸단다. 당시엔 빠른 붓놀림으로 몇 시간 만에 작품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인상파 작가들이 수두룩했다는데.

 ‘이게 뭐야’. 그림을 처음 본 내 평가는 그랬다. 가까이에서 보면 말 그대로 ‘그림인 듯 그림 아닌 그림 같은 너’였다. “몇 걸음 뒤로 물러나세요.” 미술사를 전공한 지식 가이드가 조언했다. 그 순간, 그 생뚱맞은 색들이 혼합돼 아름다운 색감이 눈에 들어왔다. 쇠라 그림의 진가를 발견하는 순간이었다.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 순간 글씨가 떠오르는 ‘매직 아이’ 같았다.

 옷장만 한 크기의 그림 한 폭도 서너 걸음 떨어져서 봐야 보인다면 내 인생을 바라보는 데도 몇 년의 거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내 인생의 오점’이라고 여겼던 인턴 시절의 단순 계산 업무 경험은 몇 년 뒤 경제부 기자로서 각종 자료를 보는 데 도움이 됐다.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도 스탠퍼드대 졸업식 축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면서 점을 이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지금 잇는 점들이 미래의 어떤 시점에서 서로 연결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대학에서 정규 과목을 그만두고 엉뚱하게 서체 과목에 등록한 스티브 잡스는 그로부터 10년 후 아름다운 글자체를 가진 최초의 컴퓨터인 맥 컴퓨터를 만들었다.

 내가 만난 여대생에게도 언젠가 환상적인 ‘매직아이의 순간’이 펼쳐질 거라 믿는다. 인생엔 어느 순간도 마땅히 지워버려야 할 쓸모없는 점은 없다.

* 중앙일보-김혜미 JTBC 사회부 기자

 

<참고>

                           2년 걸려 빛의 망점 화폭에 담아32년의 생애… 미학적 이념 표상

 

조르주 쇠라 - ‘그랑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조르주 쇠라(Georges Pierre Seurat·1859∼1891)는 신인상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다. 셔브뢸의 색채학과 헬름홀츠의 광학이론을 연구해 들라크루아 작품의 색채 대비와 보색 관계를 해명한 글을 발표했다. 이 과학적 이론을 토대로 그린 ‘아스니에르에서의 물놀이’라는 작품을 1884년 앙데팡당전에 출품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시작했다. 1년 뒤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주는 ‘그랑드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사진)라는 작품을 제작해 32년이라는 짧은 생애였지만 그 어떤 생애보다 밝게 빛나는 예술작품을 남겼다.

 작품은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강의 북쪽에 있는 그랑드자트 섬으로 주말이면 파리 시민이 자주 산책을 하거나 소풍을 나온 풍경을 그린 것이다. 300호(207×308㎝) 사이즈의 작품을 팔레트에 물감을 섞지 않고 점묘로만 표현했다. 그늘진 곳과 양지가 구분되고, 멀리 강과 길가가 만나는 한곳의 소실점을 기준으로 정확한 구도와 비례를 통해 인물이 배치됐다.

 두 색채를 병치하거나 살짝 겹쳐 놓고 이것을 좀 떨어져서 보면 제3의 색채로 보인다는 색채 이론과 빛의 3원색이 섞이면 흰색이 된다는 광학이론을 받아들여 순수한 빛을 표현했다. 화면의 색조를 과학적으로 미세한 점으로 분할시키고, 색채도 순수한 원색으로 분할했다.

쇠라는 이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2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수한 빛의 망점을 화폭에 옮겼고, 이를 위해 60여 점의 색채 습작을 남겼다. 결국, 쇠라가 처음으로 생각했던 이 과학적 이론은 미술사조를 나타내는 신인상주의의 분할주의라는 미학적 이념의 표상으로 승격됐다. 

 <최재훈 UNESCO A.poRT 책임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