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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의 비극, 이창동의 영광 희비 엇갈리는 오독의 역사

Bawoo 2015. 1. 31. 11:28

조선 예종 때의 명장 남이는 여진족을 물리친 뒤 기개 넘치는 시를 짓는다. 그를 시기했던 간신 유자광이 시의 한 구절 ‘남아가 스무 살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부르겠는가(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에서 ‘평(平)’자를 ‘득(得)’자로 고쳐 ‘남아가 스무 살에 나라를 얻지 못하면(男兒二十未得國)’이란 내용으로 임금께 모함하여 죽게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태종의 외손으로 잘나가던 남이는 한 글자의 악의적 오독(誤讀)에 의해 역적이 되고 만다.

 오독이 신세를 망친 경우는 오래 전 소동파의 시 ‘부용성(芙蓉城)’에서 보인다. ‘삼생을 왕래하며 부질없이 수련을 하였거니, 결국 『황정경』을 오독한 탓이네(往來三生空煉形, 竟坐誤讀黃庭經)’가 그것이다. 『황정경』은 신선이 되는 비결을 담은 도교 경전이다. 이 책을 오독하면 천상에서 지상으로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조선의 허난설헌과 정철의 글에서도 보인다. 가령 『관동별곡(關東別曲)』을 보면 ‘그대를 내 모르랴, 상계(上界)의 진선(眞仙)이라. 『황정경』 한 글자를 어찌 잘못 읽었기에, 인간에 내려와서 우리를 따르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오독이 좋은 결과를 낳은 경우도 적지 않다.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밀양’의 이창동 감독은 언젠가 사석에서 도시 밀양(密陽)의 ‘은밀한 햇빛(Secret Sunshine)’이라는 의미에 매혹돼 작품을 구상하게 됐노라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오독이다. 밀양은 고대에 ‘밀불’이란 지역으로 ‘추화(推火)’로 불리기도 하였으니 ‘밀’은 ‘밀다’는 뜻이지 ‘은밀하다’와는 상관이 없다. 밀양 역시 밀불의 이두식(吏讀式) 표기인 것이다. 이러한 오독에도 이 감독은 성공적인 창작을 수행했다.

 충남 서해의 끄트머리에 격렬비열도(格列飛列島)라는 작은 섬들이 있다. 중국과 가까워 날씨 좋은 날이면 산둥 반도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는 섬들이다. 이 섬들을 두고 박정대 시인은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엔 아직도 음악 같은 눈이 내리지’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너를 껴안고 잠든 밤이 있었지. 창밖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려 그 하얀 돛배를 타고 밤의 아주 먼 곳으로 나아가면서 내 청춘의 격렬비열도에 닿곤 했지….’ 격렬비열도의 본뜻은 ‘줄지어 날아갈 듯 떠있는 섬들’ 정도이겠으나 시인은 우정 이를 거부하고 ‘격렬(格列)’을 ‘격렬(激烈)’로 읽고 싶어 한다. 문학평론가 해럴드 블룸의 이른바 ‘창조적 오독’의 사례들이다.

 지난 25호에 인용했던 스페인 시인 마차도의 유명한 시구 “여행자들이여! 길은 없다. 걷기가 길을 만든다”에 대해 독자 한 분이 색다른 견해를 제시했다. 영화 ‘카운슬러’에서 악의 수렁에 빠진 변호사를 두고 인용된 예를 들면서, 이 시구를 스스로 만든 나쁜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는 무서운(?) 의미로 읽었다. 마차도 시의 전체 문맥이나 스페인 문학에서의 일반적 해설과 배치되는, 극단적으로 상이한 시 소비 방식이지만 종횡자는 영화에서의 그러한 인용 역시 마차도 시에 대한 창조적 오독 혹은 다양한 해석의 한 예로 받아들이고 싶다.

* 중앙일보-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