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문 관련 ♣/주요 학자, 저서

시몬 아돌핀 베유 (Simone Adolphine Weil)

Bawoo 2015. 2. 3. 22:55

 

시몬 베유

 

 

시몬 아돌핀 베유 (Simone Adolphine Weil, 1909년 2월 3일 - 1943년 8월 24일)는 프랑스의 철학자이다.

시몬은 1909년 의사인 아버지 베르나르 베유(Berhard Weil)와 가찔리엔(현재의 폴란드의 한 지역) 출신의 어머니 살로메 라인헤르쯔(Salomea Reinherz)사이에서 파리의 불바르 드 스트라스부르(Boulevard de Strasbourg)에서 태어나다.

 

양친은 유대인으로서 모계쪽으로는 거의 유대인 전통에서 벗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9년 리세(Lycée) 페넬롱에 입학, 1924년 리세 빅토르 뒤류에 전학하여 철학자 르네 르 센느 밑에서 공부한 후 다음해 유명한 리세 제4 앙리 에서 가명 알랭으로 잘 알려진 철학자 에밀 샤르티에(Emile Chartier)의 지도를 받으며 에콜 노르말의 입학을 위한 준비반에 들어간다.

 

1927년에 에콜 노르말 입학 시험에 떨어지지만, 다음 해에 합격하여 알랭의 격려와 지도를 통해 데카르트, 플라톤, 칸트철학을 이해하는 데에 열중하다.

1930년 에콜 노르말을 졸업한 후, 다음 해에 철학으로 아그레가씨옹을 땀으로써 리세의 선생 자격을 취득한다. 이 시기에 시몬은 사회주의 및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갖기 시작하며 여러 번에 걸쳐 농장에서 농부들 틈에 섞여 일을 하면서 노동의 뜻을 몸소 느끼고 배운다.

1931년 노동조합 연합회의(CGT)에 참석함과 동시에 계급투쟁에 관한 수필을 써 잡지 L'Effort에 발표하며 얼마안가 이 잡지에서 노동조합을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1933년에는 심지어 소련에서 추방된 트로츠키를 파리에 있는 그녀의 부모집에 묵게하였으며, 트로츠키와 소련과 노동자계급을 주제로 열띤 논쟁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34년 12월 시몬은 알스통 전자회사에 취직하여 다시 노동자로 일을 하지만 허약한 건강상태 때문에 1월에 한 달간 휴식을 취한 후 다시 4월 까지 철강공장에서 일을 한다.

이와 같은 끈질긴 노동 체험은 1936년까지 계속된다.

 

1937년 4월 시몬은 이탈리아밀라노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벽화를 본 후, 앗시시의 산타 마리아 성당의 조토가 그린 프레스코에서 신적 영감을 받는다. 여기서 지금까지의 자신의 삶에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되며, 1938년 두 번째로 이탈리아 여행을 하면서 이를 다시 체험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나치즘의 역사적 배경을 일리아스에 서술된 폭력을 예로 삼아 1939년에서 1940년까지 장편의 수필 "L'Iliade ou le poème de la force"을 쓴다. 독일의 프라하 무력 점령 소식을 듣고 그녀가 고수하던 범평화주의에 작은 회의를 갖는다.

 

1940년 시몬은 고대 인도철학에 깊은 관심을 갖고 바가바드기타우파니샤드를 열심히 읽는다. 6월 독일군이 파리에 입성하자 베유 가족은 툴루즈를 거쳐 마르세유로 피난길에 나선다. 피난의 와중에도 시몬은 자신의 내면 적 성찰을 후에 유명하게 되는 수첩(Cahiers)에 꼬박 꼬박 기록한다. 시몬이 이 시기에 마니교, 그노시스의 원전과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그리스도교의 본질과 발전에 대해 깊이 연구한다

 

철학사상

전체주의적 비극을 조장하는 사회구조 혹은 체계를 새롭게 변형시키는 작업의 작은 실마리 [자유와 사회적 억압의 원인들에 대한 성찰] "가장 인간적인 문명은 육체노동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문명"이라고 이야기 했던 적이 있다. 바로 이 점이 한 가지 단서가 된다. 사회의 분업화와 체계화의 핵심에는 항상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이분법이 도사리고 있고, 육체노동에 비해 정신노동을 중시하는 가치 평가가 내재되어 있다. 체계는 최고의 상급자가 가장 정신적인 노동에, 그리고 최하의 계층은 가장 육체적 노동에 중시하는 구조로 작동한다.

 

베유는 바로 이 구조를 붕괴 시켜야 한다고 한다. 단순한 결과지만 어떤 상급자라도 모두 유사한 육체적 노동에 종사하게 되면, 그 사회의 체계는 결코 비대해 질 수 없다. 따라서 베유가 제안했던 인간적인 문명이 실현된다면, 인간 개체 한명 한 명을 작은 수단들로 간주해 온 국가 같은 거대 체계들은 더 이상 발을 붙일 수가 없을 것이다.

 

시몬 베유의 저서로는 몇몇 잡지에 기고한 글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후에 출판된 이른바 카이에르(Cahiers)가 있다.

  • Cahiers I, Paris 1970
  • Cahiers II, Paris 1972
  • Cahiers III, Paris 1974
  • " 자유와 사회적 억압의 원인들에 대한 성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