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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뤼흐 스피노자

Bawoo 2015. 2. 22. 21:23

 

바뤼흐 스피노자

 
바뤼흐 스피노자

 

바뤼흐 스피노자(네덜란드어: Baruch Spinoza, 라틴어: Benedictus de Spinoza, 히브리어: ברוך שפינוזה‎, 포르투갈어: Bento de Espinoza, 1632년 11월 25일 - 1677년 2월 21일)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1]

 

 스피노자가 쓴 저작의 과학적 태도와 포괄성,철학사적 중요성은 스피노자 사후 오랜 세월동안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오늘날엔  18세기 계몽주의와 근대 성서 비판의 토대를 놓은 유럽 17세기 철학합리주의자 세 거두 가운데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다.[2] 대작 《에티카》에서는 데카르트의 정신-육체 이원론에 반대하였으며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철학자로 손꼽힌다. 헤겔은 모든 근대 철학자에 대해 "그대는 스피노자주의자거나 아예 철학자가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3]

 

스피노자는 네덜란드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생활해, 유대 문화에 대해 정통하였으나 비판적인 사상 때문에 유대인 랍비들은 스피노자를  조치하여, 23살 때에 유대 사회에서 추방되었다.[1][2] 또  모든 저작은 가톨릭 교회의 금서 목록에 올랐다.

 

스피노자는 안경알 깎는 일로 어렵게 생계를 유지했으며, 생전에 교수직을 비롯하여 보수나 명예를 거부하였고 가족의 유산은 누이에게 주었다. 스피노자의 도덕적 특성과 철학적 성취를 두고 20세기의 철학자 질 들뢰즈는 스피노자를 '철학의 왕자'라고 칭하기도 하였다.[4] 스피노자는 폐병으로 44살에 세상을 떠났는데, 사인은 안경을 깎을 때 나는 유리 먼지 때문에 결핵이나 규폐증이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스피노자는 하흐(헤이그), 스파위(Spui)거리에 있는 신교회(De Nieuwe Kerk)에 묻혔다.

 

생애

1632년 포르투갈에서 가톨릭 교회의 종교재판과 유대인 탄압을 피해 망명한 유대계 상인인 아버지 미겔 지 이스피노자와 어머니 아나 데보라 이스피노자 사이에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유대인의 전통에 따라 암스테르담의 유대인회의 출생 기록부에 바뤼흐 스피노자(Baruch Spinoza)라는 이름으로 올렸다. 하지만 이후에 스피노자 자신은 라틴어 이름 베네딕투스를 즐겨 썼다. 그의 친할머니는 로마 가톨릭 교회로부터 마녀로 몰려 화형을 당했다.[5] 스피노자는 5세 때에 유대인회 에츠 하임에 등록되어 탈무드 학교의 랍비 사울 레비 모르테이라 밑에서 유대 철학신학을 전수 받은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1654년 사망하자 21세의 스피노자는 아버지가 경영하던 수입 상품점을 물려받았다.

 

스피노자는 유대공동체인 시나고그에서 전통적인 유대식 교육을 받았고, 율법학자(랍비)가 될 것으로 촉망 받았으나, 라틴어를 배우고 그리스도교를 접하면서 유대교의(敎義)에 만족하지 않게 된다. 이후 아라비아와 르네상스, 데카르트 등의 사상(思想)의 영향을 받아 1651년경부터 독자적인 사상을 갖게 되고 유태교 비판과 신을 모독했다는 구실로 가혹한 탄압을 받고 추방되며 1660년경 다음과 같은 저주의 파문선고를 받는다.

 

"천사들의 결의와 성인의 판결에따라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영원히 추방한다.잠잘 때나 깨어있을 때나 저주 받으라.나갈 때도 들어올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주께서는 그를 용서 마옵시고 분노가 이 자를 향해 불타게 하소서! 어느누구도 그와 교제하지 말 것이며 그와 한지붕에서 살아서도 안 되며 그의 가까이에 가서도 안 되고 그가 쓴 책을 봐서도 안 된다"[6]

 

이를 계기로 그는 유대식 이름인 '바뤼흐'를 '베네딕트'로 바꾸게 된다.[7] 이후 스피노자는 운명에 굴하지 않고 더 치열하게 어떤 명예와 부,권위까지도 물리치면서 오로지 철학적 진리를 구현하는 길로 나선다.

 

1660년 라인스부르크에서 <지성 개선론>을 저술, <데카르트 철학의 여러 원리>를 출판하였다. 1663년 포르부르크에서 네덜란드 공화국의 정치적 지도자 얀 드 비트와 사귀었다.

1670년 <신학 정치론>을 익명으로 출판하였다가 비난을 받았다. 도처를 돌아다니며 살던 그는 그 해 헤이그로 정착하여, 1675년 필생의 저작인 <윤리학>을 완성하였으나, <신학 정치론>의 악평 때문에 생전에 출판하지 못하였다. 이 책은 기하학의 논증법을 응용하여 윤리학을 정리, 공리계(係) 등으로 체계지운 것이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안경 렌즈를 연마(硏磨)하는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당시 독일 최고의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았으나 자유로운 철학활동을 보장하지 않는 곳에서는 재직할 이유가 없다면서 이를 단호히 거부하는 등 철학자로서의 교훈이 되는 숱한 일화를 남겼다. 그는 처절한 고독과 빈곤 속에서 과로로 인한 폐병으로 <국가론>을 최후의 저서로 하여 44세를 일기로 일찍 숨을 거두었다.

 

그의 학설은 방법론에 있어서는 기하학적인 입장을 취하고, 세계관에 있어서는 무신론적 성향이 강한 일원론적 범신론자였다. 독일 관념론에 큰 영향을 끼쳤고, 계몽주의, 사회주의자들에게도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특히 레싱은 "스피노자 철학외는 진정한 철학이 없었다"고 할만큼 격찬했다. 반면 유신론자들에게는 "신을 모독한 저주받을 무신론자"로 비난도 받아야했다. 그 밖의 저서로 「지성 개선론」 「국가론」 등이 있다.

철학사상

스피노자는 일원론적 범신론을 주장한다. 실체를 유한과 무한으로 나누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반대했다. 세계내의 '모든 것이 하나'라는 것이 그의 철학적 입장이었다. 모든 것은 오로지 자연 안에서만 존재하며,

생성하는 모든 것도 오직 자연(신)의 무한한 본질적 법칙에 의해서 생긴다.[8]

코나투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Conatus, 힘)를 언급한다. 에피쿠로스의 용어로 보면,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는 살고자하는 욕구 내지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코나투스의 완전한 표출을 행복으로 보았으며, 따라서 코나투스를 발휘할 수 있는 정치체제가 최고라고 보았다.

코나투스(Conatus)는 역량(potentia, puissance)이 윤리학·인간학적 의미로 사용될 때, 가질 수 있는 의미로, 자아를 보존·발전·완성하려는 욕구 내지 노력으로 해석 될 수 있다.

자연

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자연, 신, 그리고 단 하나뿐인 실체는 같은 개념이다. 무한자는 '능산적 자연'(산출하는 자연)으로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궁극적인 힘이다. 이에 대비되는 유한자는 '소산적 자연'(산출된 자연)이다. 이 두 자연은 힘을 가진다.

영향

그의 사상은 루소·괴테·헤겔·피히테 등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9]

몽테스키외홉스와 스피노자의 사회물리학(social physics)의 영향을 받아 법의 연구를 가치판단으로부터 "순수화"시키고 체계적인 경험적 관찰에 기초시키려 시도한 점에서 법사회학적 관점에서도 주목되고 있다. [10]

명언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할지라도 나는 오늘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 너무나 유명한 그러나 숱한 오해를 자아내기도 하는 이 말을 과연 스피노자가 직접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그러나 독특한 스피노자의 철학에 비추어 볼 때 전혀 타당성이 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그에 의하면 우주와 세계,즉 시간과 공간이 하나이므로 시작과 종말이라는 것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니 순간적 지구 변화에 연연하지 않고 갈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서

  • 지성개선론》 (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 1661년지성개선론》(知性改善論, 라틴어: Tractatus de Intellectus Emendatione)는 네덜란드의 17세기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의 유고(遺稿)로 서간(書簡)을 별도로 친다면 스피노자가 방법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유일한 것인데, 극히 짧은데다가 미완성 작품이다. 《소고(小考)》와 《에티카》의 중간기인 1662년경에 쓰여졌다.
  • 구성면에서 말한다면, 먼저 서론적 부분이 있어서 학문의 목적에 관해 서술하고 있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학문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며, 행복 내지 '진정한 선(善)'이란 정신과 자연의 관계를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상태, 그리고 이것을 만인(萬人)과 나누어 갖는 것이 '최고의 선'이다. 따라서 그와 같은 선의 획득은 우리들의 인식 여하에 따르게 되는 것이며, 거기서 인간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선 지성의 힘을 음미하고 이것을 바르게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하므로 우선 최고의 인식 양식이 선정되고, 이어서 본제(本題)인 방법 문제로 들어간다는 절차가 취해지고 있다.

  •  

  • 스피노자의 방법은 관념을 기초로 하여 관념 자체의 명석(明晳) 판명(判明)과 정합(整合)을 징표(徵表)로 하여 관념을 전개한다고 하는 성질을 갖는다. 즉 방법이란 "반성적 인식 또는 관념의 관념이다." 이와 같은 방법에 있어서는 관념의 진리성(眞理性)이 관념 자체에 의해서 보증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거기서 스피노자는 다음에 허위의 관념, 허구(虛構)의 관념 등 진실이 아닌 관념의 특징을 들어서 이것들과 진실의 관념과의 구별을 논하고 있다. <지성개선론>은 본래, 당시 이미 상당히 구상이 진전되어 있던 <에티카>의 기하학적 질서 전체, 그리고 그 출발점이 되는 정의(定義)의 필연성을 기초로 잡기 위해서 쓰여진 것이었으므로 후에 연역적(演繹的) 체계에서의 정의의 의미와 규정 방법의 구체적 설명으로 진전되는 것이나, 개물(個物)과 전체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봉착하여 의론이 혼란해져서 미완성인 채로 중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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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하학적 방법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 (Renati Descartes principiorum philosophiae mori geometrico domonstrata), 1663년. 이 책은 스피노자가 생전 유일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한 책으로,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양진호 옮김, 책세상출판사, 2010, ISBN 89-7013-749-1)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음.
  • 《신학-정치 논고》 (Tractatus theologico-politicus), 1670년
암스테르담에서 익명으로 출판.
홉스리바이어던과 함께 네덜란드 정부로부터 1674년에 출판금지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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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틴어로 쓰인 이 책은 스피노자 사후 1677년 간행되었다. 에티카는 스피노자의 가장 유명한 작품이자 대작(magnum opus)으로 간주된다.

 

스피노자가 (眞)보다도 (善), 인간의 행복에 커다란 관심을 기울인 철학자라는 것은 자주 지적되는 일인데, 에티카도 제목('윤리학'이라는 뜻)이 가리키는 바와 같이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도덕을 해명하는 시도(試圖)이다. 그런데 인간은 어떤 본성을 가진 것으로서 현재 이 세계에 생활하는 존재이다. 따라서 목적하는 것은 인간 도덕의 해명이라고 하더라도, 이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해서 얻어지는가를 밝히기 위해서는, 세계의 성질과 인간의 본성이 밝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5부로 된 에티카는 그와 같은 문제의 고찰에서 시작된다.

 

 제1부는 '신에 대해서'라는 제목인데, 이것은 세계에 관한 형이상학적 고찰이다. 즉 스피노자가 신이라고 하는 것은 인격도 의지도 갖지 않고, 자기 본성의 내적 필연성에 따라서 작용하는 유일한 실체(實體)로 이것이 무한한 속성(屬性)을 통해서 변양(變樣), 발현(發現)한 것이 인간을 포함한 유한한 개물(個物)의 세계이다. 다시 말해 '신은 곧 자연'이다. 그래서 이와 같은 세계 속에 있는 인간의 도덕이라고는 하지만, 도덕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의 정신에 관한 것인 이상, 정신의 본성이 파악되어 있을 필요가 있다.

 

이 때문에 제1부는 인식의 문제를 취급하고, 인식을 여러 각도에서 분석하여 예컨대 감성지(感性知), 이성지(理性知), 직각지(直覺知)로 구별하고, 이들 중 마지막 것이 사물을 '영원한 상(相) 아래' 파악하는 데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스피노자는 도덕과 행복을 별개의 것으로 간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 정신의 고찰도 인식의 해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감정의 관찰에까지 전진하여(제3부), 감정의 취급법을 검토할(제4부) 필요가 있었다.

 

이와 같은 고찰을 통해서 행복이 '사랑'의 일종이라는 것, 사랑의 최고의 것은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점이 제시되어 인간 행복이라는 근본적인 질문은, 그의 철학의 정점을 이루는 최고의 선(善)인 '신(神)의 지적애(知的愛)' 사상을 가지고 해답할 수 있게(제5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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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논고》 (Tractatus politicus)-1675년에 시작하여 1677년에 초판발행

주석

  1. 이동: ANTHONY GOTTLIEB, [God Exists, Philosophically (review of "Spinoza: A Life" by Steven Nadler) http://www.nytimes.com/books/99/07/18/reviews/990718.18gottlit.html], The New York Times -- Books.
  2. 이동: [Play shows the price of Spinoza's ideas -- (David Ives' play "New Jerusalem: The Interrogation of Baruch de Spinoza at Talmud Torah Congregation.") http://www.boston.com/ae/theater_arts/articles/2008/01/14/play_shows_the_price_of_spinozas_ideas/?rss_id=Boston.com+--+Theater+and+arts+news], The Boston Globe, January 14, 2008.
  3. 이동 Hegel's History of Philosophy
  4. 이동 quoted in the translator's preface of Deleuze expressionism in Philosophy: Spinoza (1990).
  5. 이동 제임스 캐럴《예루살렘 광기》(동녘) P279
  6. 이동 강성률《2500년간의 고독과 자유》형설출판,2005,88쪽
  7. 이동 로저 스크러튼《스피노자》(궁리)P112
  8. 이동 스피노자는 범신론자로 분류되나 인격신을 인정하지 않은 이유로 파문,탄압받은 것에서 알 수있듯,철저한 무신론자라 할 수있다.
  9. 이동 루소는 근대주의와 탈근대주의적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데 이런 점에서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음이 명백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저작에 스피노자에 대한 언급은 드문 것으로 보아 독창성도 배제할 수없다.
  10. 이동 양건 (2000-02-28). 《법사회학》 (제2판판). 서울: 도서출판 아르케. 48쪽.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초판발행일자= (추천: |초판연도=) (도움말); 지원되지 않는 변수 무시됨: |꺾쇠표= (도움말)

참고 문헌

  • 철학과 굴뚝청소부 (이진경)
  • 자연과 자유 사이 (강영안)
  • 신학은 인간학이다 (정재현)
  • 스피노자 철학에서 개인과 공동체(그린비 / 알렉상드르 마트롱 / 김은주, 김문수)
  • 스피노자와 정치(에티엔 발리바르 / 진태원)
  • 헤겔 또는 스피노자(피에르 마슈레 / 진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