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 미술Renaissance Art : 인간과 자연의 탐구
1. 시대적 상황
화약의 발명, 도시의 융성, 인쇄술의 발명, 지리상의 발견, 봉건 시대의 종언, 자유사상과 종교개혁의 시작, 근대과학의 기원등을 포함하는 극적인 변화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로마 교황청은 1096-1270년에 걸친 십자군 전쟁으로 세력은 막강해졌으나 재정적으로 궁핍해지게 되자 이탈리아 여러 도시들에게 후원을 청하게 되고 그 결과 기독교의 세력권에서 벗어난 도시가 발달하게 되었다. 도시의 발달은 상공업 ·무역·금융업의 실력자들이 새로운 권력층으로 부상하였고, 중세의 종교적 권위와 질서는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도시의 발달로 인하여 학교를 중심으로 시인·철학자들이 중심이 되어 고대문헌연구, 특히 그리스·로마문화속의 자연·인간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생겨나게 되었다. 기독교에 의해 잠식된 미술은 이제 다시 '경외의 대상'이 되어 고대를 모범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배후의 후원층으로 새로운 귀족층이 세속적 영예과시와 권력유지를 위하여 예술을 이용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신중심에서 인간중심으로 사고하게 되며 예술 전반에 걸친 인간에 대한 탐구가 이루어진다.
2. 전개과정
초기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부활, 인본주의, 자연의 재발견, 개인의 창조성 등을 특징으로 하는 르네상스의 정신은 미술을 과학의 차원으로 간주하여 자연을 탐구, 발견하는 기록이 되었다.
미술을 가시적인 세계에 대한 관찰에 바탕을 두고 원근법을 수학적 원칙에 따라 실행하게 된 것이다. 자연을 모사하려는 미술가들에게 과학은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세밀한 관찰을 의미했다. 미술가들은 그 구조를 이해함으로써 세계를 재현하고자 했다.
지오토Gitto, 마사치오Masaccio,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Piero della Francesca,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 도나텔로Donatello, 부르넬리스키Fillippo Brunelleschi
전성기 르네상스
르네상스 인문주의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으로 규정하고 무한한 발전가능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하여 모든 지식을 포용,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개인의 능력을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 중세의 봉건 체제 아래에서 억눌려 있던 개인의 힘과 지성은 크게 발전하였다. 또한 피렌체의 메디치가는 예술활동에 후원을 아끼지않아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이 발전하기 위한 토대를 제공하였다.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Buonarroti Michelangelo, 브라만테Donato Bramante, 알베르티 Leone Alberti
북유럽의 르네상스
르네상스 정신에 근거하여 지역적 특성과 함께 사실성과 디테일에 대한 커다란 관심, 표현이 풍부한 환상, 그리고 일상적 장면들을 주로 표현하였다.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urer, 피터 브뤼겔Piter Bruegel
바로크 미술Baroque Art : 양식의 혁명 1600-1750
1. 시대상황
17세기 유럽은 권력지향적 분위기속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국에 무력을 행사하며 물자를 강탈하였다. 북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의 발견과 식민지화, 세계해양일주는 이러한 당대의 유럽인의 권력욕구를 반영한 결과이다. 이러한 권력욕구는 유럽에 막대한 부를 가져왔으며 미술과 건축은 이러한 부의 증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당대의 미술가는 더 이상 자신들을 수공업자로 여기지않고 스스로를 높은 의식의 소유자로 묘사하거나 멋지게 각색하여 자신을 표현하였다. 또한 교회나 군주가 주문하는 작품이외에도 자유시장이 형성되어 풍경화와 정물화 그리고 장르화를 중심으로 매매되기 시작하였다.
2. 특징
바로크미술은 르네상스 미술의 단정하고 우아한 고전양식과 대립하는 미술개념으로 17세기 유럽의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외향적이고 격동적인 경향을 일컫는다. 16세기 르네상스의 조화와 균형, 완결성에 대하여 양감, 광채, 역동성을 중점적으로 표현하였으며 운동감과 연극적인 효과를 내었다. 회화에서는 대각선 구도와 원근법, 격렬한 명암대비, 단축법등을 특징으로 하며 건축에서는 거대한 양식, 곡선의 활용, 자유롭고 유연한 접합부분등이 부각되어 동적인 자세와 다양한 의습의 표현이 두드러진다.
루벤스Pieter Paul Rubens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
베르니니 Bernini Gianlorenzo 카라밧지오 Caravaggio, 벨라스케스Velasquez,
푸생Nicolas Poussin
로코코 미술Rococo Art : 소유와 욕망
바로크 미술 양식에 이어 1700년경 프랑스에서 등장하여 18세기말 복고풍에 밀려 후퇴할 때까지 유럽에 나타난 장식적인 미술양식으로, 휘어지고 구부러진 정교한 장식을 선호한다는 점에서는 바로크와 공통되나, 우아한 여성적인 조형요소는 바로크에 비해 여성적이고 감각적이다.
와토Watteau, 부셰Francois Boucher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 전통과 혁신의 시대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정부의 수립등 정치, 사회의 혼란과 뒤이어 기계혁명을 이루어낸 산업혁명은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을 갖게되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나폴레옹치하 그리스, 로마미술의 우아함과 찬란함을 모범으로 삼은 신고전주의 경향이나, 바로크,로코코양식의 대를 이어 상상적인 주제의 표현을 근대양식으로 발전시킨 낭만주의 경향은 서로 공존하게 되었다.
또한 증기선, 철도, 공장 등은 풍부한 상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였지만 동시에 이 기계로 인하여 많은 산업노동자들은 저임금을 받으며 빈민가에 모이게 하였다. 근대 산업의 발흥勃興은 실로 많은 신앙, 관습, 조직을 파기하였고, 새로운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게 되었다. 새로운 사상과 새로운 생활방식은 미술가들에게 사실적인 일상적 표현을 하게 만든 사회적배경이 되었다.
이 시기는 짧은 기간안에 다양한 양식이 펼쳐짐으로서 과거와는 다른 현상을 띠고 있다. 고대, 비잔틴, 중세, 르네상스, 바로크등은 100여년 혹은 1,000여년에 걸쳐 한 개념으로 대변되었지만 19세기에 들어와서는 고전주의, 낭만주의, 사실주의 등 여러 양식이 한 세기 안에 공존하게 되었다.
신고전주의 미술Neo-Classcisme
고대 그리스의 예술양식을 모범으로 삼는 예술경향을 말한다. 알카이즘의 소박하고 생경한 표현이나 바로크의 격하고 다이나믹한 화려함에 비해 기술적 완성도, 합리적 질서에 바탕한 통일성, 안정된 구축성, 조화가 이루어진 정밀한 표현, 부분과 전체와의 명확한 관계, 절대적, 영원적인 것에의 지향을 추구하였다.
특히 드로잉은 신고전주의 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색채는 형태에 종속되었다. 신고전주의의 구도는 고전적인 부동성을 연상시키는데, 그 구조는 복잡하고 율동적이기 보다는 단순하고 수평적인 질서를 띠고있다.
다비드Jacques Louis David, 앵그르Jean-Auguste Dominique Ingres
낭만주의 미술Romanticism Art
18세기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유럽전역에 걸쳐 일어난 예술 및 철학상의 경향으로 개성을 존중하고 자아의 해방을 주장하며 상상과 무한한 것을 동경하는 주관적, 감정적 태도가 그 특징이다. 신고전주의의 딱딱하고 엄격한 양식에서 탈피하여 동적인 구도와 강렬한 색채, 이국적인 소재로 인간의 개성과 감정을 감각적이고 역동적으로 표현하였다
들라크루와Ferdinand Victor Eugene Delacroix, 제리코Th odore Gericault
사실주의Realism
단순히 자연을 정확하게 묘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 그대로의 일상 생활을 주제로 삼는 것을 뜻한다. 사실주의는 문학과 더불어 19세기 중엽에 프랑스 예술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사실주의의 주창자들은 아카데미의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인위성을 거부하고 예술작품이 대중들에게 감동을 주기위해서는 동시대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따라서 기존의 역사,신화등의 전통적인 주제를 탈피하여 소외되었던 일반시민들의 모습과 가치관 등 당대의 삶과 사회적 변모를 재현하는 작업을 하였다. 그들은 미술이 단순히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나 작가 내면의 감성만을 표현하는 수단이 아니라, 사회를 대변하는 도구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쿠르베Gustave Courbet, 도미에Honor Daumier
전통과의 단절 : 19C말-20C초
서양미술에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였다.
인류의 진보와 과학기술에 대한 신념은 유럽의 근대사회를 규정짓는 이념체계로 18세기 후반의 계몽주의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철학적 기반아래 진보사관, 합리주의, 개인중심의 사고방식을 중심으로하는 근대주의, 즉 모더니즘은 이후 오랫동안 서양의 근대사회를 지배하는 가치관이 되었다. 이 시기에 들어오면서 유럽에서는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시사하는 여러가지 변화들 남녀평등사상, 개인과 사회의 새로운 관계설정, 기존의 사회체제의 붕괴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문학, 철학, 과학등 여러분야에서의 선구적인 발전이 있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스테판 말라르메St phane Mallarm , 뒤르켐Emile Durkheim, 아놀드 쉔버그Arnold Schoenberg와 같은 선구자들은 기존체제와 권위에 반발하였고, 전통문화와 과학예술이 더이상 새로운 시대를 대체할 수 없음을 예견하면서, 새시대에 부응하는 미지의 영역을 개척하고자했다. 이러한 시도는 모더니즘의 시원始原이 되었다.
예술분야에서도 근대사회나 문화를 특징짓는 다양한 활동과 창조적인 사고가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기존의 아카데미적인 미술경향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사고를 한데에는 철학적 배경외에도 미술시장의 변화와 사진의 발달이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하였다. 작품을 구입하던 고정적 수요층인 정부와 교회, 혹은 귀족으로부터 화상과 개인소장가라는 근대적 개념의 미술제도권이 형성된 것이다. 또한 사진의 대량생산으로 일반인들에게는 그림보다 사진이 더 사실적으로 인식되었고 기존의 사실적인 회화는 설자리를 잃었다.
이제 화가들은 더욱 창조력을 발휘하여 사진의 영역 너머에 있는 진리를 표현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것은 화가들을 점점 더 시각적 사실로부터 멀어지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인상주의Impressionisme
1. 시대적 상황
인상주의는 산업화되고 도시화되던 당시의 사회속에서 태어났다. 질이 좋은 튜브물감과 종이를 포함한 간편한 미술도구는 야외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었고 또한 발달된 교통수단은 이제까지 어느 화가들보다 쉽게 여러 고장을 여행하고 다양한 풍경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인상주의 미술가들의 눈에 비친 차장밖의 움직이는 풍경은 계속 변화되는 감각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다. 카메라의 발달은 지금까지의 정지된 시각, 화가의 인식을 변화시켜 동작의 경과를 그림에 포착하거나 일순간적인 장면을 묘사하게 하였다.
2. 특징
파리의 근대화된 모습과 근교의 풍경을 그리는 인상파 화가들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달라지는 광선을 기록하려 하였다. 아틀리에를 벗어나 표현대상이 되는 장소, 빛이 대상을 변화시키는 장소를 직접 찾아나섰다. 인상파 화가들은 야외, 정원의 카페, 철도역, 술집 등 그림의 대상이 흐르는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사랑하였다. 이제 과거의 밝고 어두움의 대조에 의한 입체효과나 팔레트에서 정확하게 섞여 만들어진 색채는, 작은 붓터치로 쌓아올린 순수한 색채와 자유로운 회화적 표현으로 대체되어, 감상자는 무엇보다 생생한 화면을 볼 수 있었다.
모네Claude Monet, 마네Edouard Manet, 피사로Lucien Pissaro, 시슬리Alfred Sisley, 르느와르Auguste Renoir
신인상주의Neo-Impressionism
인상파의 이론을 과학적으로 발전시키고, 인상주의의 경험적 사실주의에 반발하여 고전주의적 정신의 부활을 시도한 신인상주의는 그림이란 신중하게 고려되고 계획될 수 있으며 과학적으로 계산된 효과가 예견되고 지향될 수 있다는 사고를 도입하였다.
인상파 화가들은 자연광을 그리려 했지만 자연의 빛은 감산 혼합이고, 그림에 있어서 색의 혼합은 섞을수록 탁해지는 가산혼합이 된다. 그 결과 인상파 화가들의 색은 순도가 떨어져서 원하는 밝은 색을 얻을 수 없었고, 이러한 인상파의 결점을 보완한 과학적 인상주의가 나오는데 이를 색채분석에 의한 점묘주의라고 한다. 점묘주의는 캔버스에 색을 칠할 때 순색만을 사용하여 이를 일체 팔레트에 뒤섞지 않고 작은점으로 찍어나간다. 이 경우 색의 순도는 유지하면서 감상자의 망막에서 중간색이 형성되므로 더욱 강렬하고 밝은 색채효과를 거두게 된다.
쇠라Georges Seurat, 시냑Paul Signac
후기 인상주의Post-Impressionism
1. 전개상황
후기 인상주의는 단순한 점묘주의로서의 신인상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전개되어, 보다 견고한 화면구성을 추구하였던 경향과 표현내용을 중요시하였다. 이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인상주의로부터 거리를 두고, 변화를 일으키는 속성을 가진 변함없는 자연의 진실을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구성주의를 지향하며, 작가의 강한 개성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였다. 쇠라가 과학적 분석과 주관적 회화구조를 통해 인상주의의 순간적 인상을 견고하게 만들었다면, 세잔은 자연을 통해 회화적 질서와 구성을 화면위에 재창조함으로써 동일한 결과를 얻었다. 세잔은 자연의 생생한 외형에서 느끼는 감각과 주관적인 이해를 통한 자연의 본질적 구조를 표현하여 20세기 추상미술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였다.
쇠라나 세잔느가 자연세계를 주관적 화음과 질서로 통일하여 독립된 새로운 리얼리티를 추구였다면 고갱과 고흐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표현하였다. 산업사회 이면에 감춰진 모순으로 인한 불안의식 및 정신적 가치에 대한 향수는 보이는 세계보다는 관념적, 환상과 동경의 세계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났다.
고흐Vincent van Go, 고갱Paul Gauguin, 로트렉Hendri de Toulouse Lautrec
상징주의Symbolism
1. 시대적 상황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파리의 예술가들 사이에 중요한 예술동향으로 등장한 것이 상징주의 문학과 미술로서 이러한 예술동향은 물질적 세계와 정신적 세계의 구조적 갈등에서 탄생하였다. 르네상스 이후 서구문화의 근간이 된 실용적, 과학적 또는 합리적 사고가 결여하고 있는 정신적, 종교적 가치에 대한 상실감에서 나온 하나의 태도로서 19세기 후반의 과학에 대한 맹신과 실증주의, 세속적 물질주의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던 상징주의자들의 뿌리는 그 이전의 기존 제도권에 반발하고 인간 본연으로 돌아가고자 한 낭만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2. 특징
중산층 관습에 얽매여 철저히 억눌려왔던 감정과 욕망의 표현, 감각, 꿈, 신화의 시각적 표현이 일상의 사소한 모습보다 우월하고 고차원적인 리얼리티로 간주하여 인상주의에서 보여지던 일상적인 주제는 신화와 몽상의 세계로 바뀌어 인간의 조건과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미술을 부활시켜 내면의 감정과 감각을 시각화하려하였다.
상징주의 미술의 목적은 물질세계와 정신세계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으로 인간의 내면을 강조하고 비합리성을 추구함으로써 일상적인 이미지의 왜곡과 비사실적인 우화세계 및 주제를 기묘하게 병치시켰다.
모로Gustave Moreau, 퓌비 드 샤반느, 르동Odilon Redon
아르누보 Art Nouveau
유럽의 전통적 예술에 반발하는 당시 미술계의 풍조를 배경으로 중세적인 수공예 정신의 복귀를 선언했던 모리스의 미술과 공예운동, 빅토리아 시대의 인습에 반항하고 초기 르네상스의 우아함과 색채를 재생하려했던 라파엘전파등이 그 기원이라 할 수 있다.
19세기 후반에 유행처럼 번졌던 아카데믹하고 절충주의적인 '역사주의'에 대한 반발로 나타난 아르누보 운동은 과거의 전통양식들을 모방하거나 변형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하나의 새로운 양식을 창출하고자 했다. 그리스·로마 ·고딕양식에서 구하던 것을 자연에서 모티브를 빌려 새로운 표현을 시도하였으며, 또한 넓은 의미로는 상징주의의 한 양상으로 보아 평면적 형태와 다이나믹한 표면의 선을 통하여 감각적 반응을 불러일으켜 감정을 환기시켰다.
덩굴이나 담쟁이등의 식물의 형태, 당초, 화염 형태등의 특이한 장식성과 유기적 움직임이 있는 모티브를 즐겨 사용하였다. 이후 그래픽 디자인, 공예, 건축 등에서 활발히 보급되었다.
클림트Gustav Klimt, 비어즐리Aubrey Beardsley
나비파 Les Nabis
나비파는 고갱의 영향을 크게받은 젊은 화가들의 그룹을 지칭하는 말이다. 나비파는 상징주의 문예운동의 영향을 받아 신비적·상징적 경향을 가지게 되었으며 표현상의 특색으로는 반사실주의적·장식적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은 자신들의 미술이 과거의 종교의 기능을 대신한다는 의미에서 나비Le Nabis라고 명명했는데 이 말은 히브리어로 예언자라는 의미이다. 나비파의 멤버는 부유한 중산층 출신들로서 고갱의 순수색채에서도 영향을 받았지만 광범위한 관심사와 절충주의적 태도를 가진 지성파 화가들이었다.
나비파의 이론가인 드니는 "회화란 자연의 재현이 아니고 이차원의 평면이다" 라고 강조하며, 각기 독자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판화, 조각, 삽화, 무대장치, 의상 등에까지 미치는 폭넓은 활동은 20세기 미술의 한 출발점이 되었다.
보나르Pierre Bonnard, 뷔야르Edouard Vuillard, 발로통F lix Vallotton
근대 조각의 거장들
19세기 회화가 주제와 양식에서 전통에 대한 반란을 거듭하며 탈바꿈을 하는 동안 조각은 고전주의 양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영웅들의 이상적 모습의 형상화를 통해 이전의 전통을 답습하고 있었던것이다.
19세기 조각사에서 가장 빛나는 작가는 로댕이었다.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주제로 엄청난 작업량을 보여준 로댕은 뛰어난 상상력과 폭넓은 주제로 작업하여 문학적, 상징적 주제를 사실주의적 인체의 표정과 동작을 통한 극적이고 감정에 충만한 인물로 표현하였고,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상징주의, 표현주의 영역을 두루 거치고 있다. 또한 광선에 녹아드는 듯한 표면효과와 음영의 대비는 인상파 경향과도 유사하다. 이러한 조형성의 강조는 새로운 조각의 방향을 제시하여 후대의 조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로댕은 전통을 파괴한 혁신적인 작가라기보다는 전통을 종합하면서 혁신을 이룬, 20세기 현대조각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동적인 조각보다는 정적인 조각을 선호한 마이욜은 표면의 터치를 배제하여 광선이 표면에 고르게 퍼지는 효과를 창출하였다. 거의 대부분이 여인상들인 마이욜의 조각은 인체조각의 풍요로움과 따뜻함, 고상함과 당당함을 창출하였다.
로댕Francois Auguste Rene Rodin, 마이욜Aristide Maillol
야수파 Fauvisme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혁신적인 회화운동으로 강렬한 주관과 감동을 원색적인 색채, 대담한 변형, 자유롭고 거친 터치 등으로 표현한 자연발생적인 그룹으로서 야수파란 그들의 색채와 터치가 야수와 같이 너무나 격렬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색채만의 효과로 이루어진 공간구성, 두드러짐도 명암도 없는 평평한 색조, 어둡고 두터운 윤곽선에 의한 형태의 단순화, 강렬한 보색대비의 색감 사용등을 특징으로 하였다. 색채에 대한 이들의 정열은 자연적 재현으로부터 색채를 독립시킨 것이었다.
마티스Henri Matisse, 드렝Andr Derain, 블라멩크Maurice de Vlaminck
표현주의expression!!!ism
1. 전개과정
20세기에 가까워오면서 독일에서는 작품의 주제나 내용이상으로 조형양식과 미술가의 창조력을 중요시하는 미술이론이 활발하게 발표되기 시작하였다. 내부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인 표현주의는 근대이전의 독일미술의 하나의 특징이었다. 전통적으로 독일의 미술가들은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이 조형적 규범이나 비례, 해부학 등의 이론적 연구보다는 내적 감정의 표현을 더 중요시하였다. 독일 낭만주의에 뿌리를 두고 정신적 갈망을 구원하던 독일 낭만주의 화가들은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연에서 초월적 신비를 찾았다. 규칙과 권위를 거부하고 합리주의에 반발하여 지적인 것보다는 느낌과, 충동, 그리고 열정을 중요시하였으며 이러한 감성을 창조로 이끄는 예술가의 상 역시 전형적인 낭만주의 개념으로서 표현주의 화가로 연결되었다.
다리파Die Brucke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들과 독일의 다리파 화가들은 원시주의에 매력을 느꼈다는 점과 화면에서 강렬하고 주관적인 색채사용과 자유로운 구성에서 공통점을 가졌다. 그러나 야수파 화가들이 자연에서 미적 즐거움을 찾은데 반해 다리파 화가들은 물질적이고 타락한 세계에서 느끼는 인간의 억압과 비명을 보다 적극적인 형태왜곡과 감정에 충만한 색채로 그렸다. 이들은 사회에 대한 뚜렷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고, 미술가들의 활동을 통해 사회를 개혁하고 긍정적 재생을 이루어 새로운 유토피아의 도래를 추구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독일 표현주의 미술에서 나타나는 불안정함, 긴장, 반항적인 성격은 독일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다리파는 주로 도시나 거리, 누드, 또는 풍경 속의 누드, 카바레, 화가의 스튜디오, 창녀와 고객등의 주제를 다루면서 20세기의 군중사회를 비판적으로 표현하였다.
키르히너Ernst Ludwig Kirchner, 뭉크Edvard Munch, 헥켈Erich Heckel, 슈미트-로틀로프Karl Schmidt-Rottluff, 코코슈카Oskar Kokoshka
청기사파Der Blaue Reiter
남부 독일에서 일어난 감성적이고 범자연적인 표현주의 미술의 한 분파로 다리파와 같이 독일 낭만주의에 근거하거나 집단적 이미지를 내세우지 않고 여러 나라들의 미술가들이 모인 움직임으로 프랑스 미술에 대해 열린 태도를 보였다. 칸딘스키가 "예술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것에 대하여"를 쓴 것을 비롯하여 청기사 그룹의 미술가들은 더욱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들은 인류의 긍정적인 재생을 꿈꾸며 예술을 통해 정신적인 실체를 표현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묵시록적인 비전을 표현하여 앞으로 도래될 새로운 정신적인 세계를 제시하여 새로운 세계에 대비시키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마르크Franz Marc
입체파Cubisme
서구 미술사에서 르네상스 시기에 미술과 건축에 원근법이 도입된 것이 일대 혁명이라면, 입체파는 이 원근법을 화면에서 제거함으로써 형식상의 최대의 변화를 가져왔다. 입체파 미술가들은 완전히 평면적인 화면을 실현하지는 못했으나 원근법에 의한 환영적인 공간을 거부하면서 "회화적으로 실재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입체파 미술가들이 대상의 세부적 묘사를 포기하면서 표현하려 한 것은 대상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대상의 본질은 자연을 원통, 원구, 원뿔로 분류한 세잔의 이론을 토대로 화면에서 원근법적 환영을 제거함으로서 도달하고자 하였다. 세잔은 원근법의 기본전제로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다시점으로 표현하므로써 형태를 왜곡하였는데 입체파 화가들은 이러한 화면을 더욱 발전시켰다.
또한 당시 제국주의자들과 상인, 여행객들을 통해서 유입된 많은 비유럽권 지역의 민예품들을 통해 원시미술의 반자연주의와 추상화된 형태는 반고전주의 미학을 추구하던 젊은 미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급격하게 발전한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세잔느풍의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종합적 입체주의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분석적 입체주의는 대상의 모방이나 환영적 공간의 재현과는 상관없는 회화적인 언어를 표현하여 선적인 Grid로 대상은 해체되었다.
후기에는 분석에 의해 획득된 추상적 구조와 실제의 형태를 결합하여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는데 종합적 입체주의는 하나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그 속에 분석적 입체주의를 절충시킨 것이며 여기서 기존의 작은 분석적인 면들은 사라지고 보다 큰 기하학적 형태를 구축하게 된 것이다.
콜라주collage와 파피에 콜레papier coll
콜라주기법은 회화가 재현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그 스스로가 독자적인 오브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과, 물질이 다른 대상의 표현을 위한 재료일 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가 작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현하였다. 이러한 기법은 미래주의자들이나 구축주의자들에 의해 여러재료로 구축된 조각, 다다미술가들에 의한 일상의 쓰레기들이 결합된 콜라주와 아쌍블라쥬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사물자체가 작품으로 제시되는 오브제 미술로까지 확대되었다. 여러 재료를 함께 결합시키는 조형방식은 깍거나 주조하는 전통적 조각방식외에 구축이나 조합이라는 새로운 조각방식을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미술에서 재료의 해방과 회화의 사물개념 획득에 그 의의가 있다.
피카소Pablo Picasso, 브라크George Braque, 후안 그리Juan Gris, 레제Fernand L ger, 피카비아Francis Picabia
미래주의 Futurisme
1. 시대상황
미래파는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문화운동으로 현대적 삶의 역동성을 표현하고자 했던 예술운동이다. 이 운동은 시인 필립포 마리네티가 먼저 주창하였고, 마리네티는 기존의 낡은 예술을 모두 부정하고 기계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다이내믹한 미를 창조할 것을 역설하였다. "굉음을 내며 질주하는 자동차는 사모트라케 승리의 여신상보다 아름답다'는 그의 말은 기계의 미와 역동성에 대한 찬미로서, 과거 전통을 부정하고 현대문명의 기술적 진보에 열광하는 미래주의의 진보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잘 보여주고 있다. 미래주의자들은 움직임을 화면위에 표현하기 위해 전통적 사실적 재현방식을 벗어나 입체파의 회화기법을 수용, 다중적 시점과 평면성을 표현하였으나 입체파와는 다른 운동감, 속도, 역동성을 추구하였다는 점이 근본적인 목표에서 다르다.
2. 특징
양식적으로 미래주의는 형상의 분해라는 입체파의 이론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현대적이고 역동적인 모든것을 추구한다. 미래주의는 미술을 일상생활에 통합시키고, 그것에 진정한 현대적 의미를 부여하려는 과감한 시도로 미래주의의 커다란 공적은 기계가 지닌 차가운 역동적인 아름다움을 조형 예술의 주제로까지 높였다는 것과, 스피드감이나 운동을 표현하기 위해 회화에 시간의 요소들을 도입하려고 시도한데 있다.
보치오니Umberto Boccioni, 자코모 발라Giacomo Balla, 카를로 카라Carlo Carra, 지노 세베리니
드 스틸De Stijl
1917년 네덜란드의 리이덴에서 시작된 미술운동.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모여 새로운 시각양식을 창조하고자 하였던 일종의 협동미술이었다. 그들의 양식이야말로 그 시대의 미술과 문화에 가장 적절하다는 의미에서 드 스틸로 명명되었다. 이들은 당시의 역사적 중요성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으며 전쟁 이후의 사회적 격변과 혼란 가운데서 그룹시대가 낡은 시대에서 새로운 시대로의 전환점에 서 있다고 생각하였다.
화가였던 몬드리안이 주축으로 개인의 한계를 초월한 일반적 원리를 표현할 수 있는 형태의 궁극적인 순수성을 찾으려 하였다.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에 영향을 받아 일반적인 대상이나 인물에서 완전히 벗어난 가장 순수한 조형요소인 선, 면, 삼원색, 삼비색(검은색, 흰색, 회색)만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대정신인 화음과 평형상태를 표현하려는 것이었다. 드 스틸 그룹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각적 화면과 주위환경을 창조하려고 하였으며 건축, 회화, 실내장식, 디자인, 가구 등에 공동 양식을 적용하여 미술이 미적 가치를 추구할 뿐만 아니라 실생활과 연관되기를 바랬던 "미술과 공예운동", "드 스틸"등은 바우하우스로 연결된다.
몬드리안Piet Mondrian
구성주의
오늘날의 구성주의는 기하학적 요소로 구성된 추상조각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폭넓게 쓰이기도 하지만, 원래 이 명칭은 1921년 러시아의 전위적 미술가들 사이에서 일어난 운동이었다.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전통적인 회화를 거부하고, 대량생산을 위한 실용적 디자인을 추구하고자 했다. 전통적 회화의 환영을 거부하고, 실제의 공간을 작품에 도입하고, 붓과 물감대신 실제 물체를 사용하여 입체적 구축물을 제작하는 실험을 하였다. 그후 대중의 삶을 위한 실용품 생산을 목표로 생산주의를 지향하게 되는데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러시아 구성주의자들은 분열되었다. 실용주의 노선을 지향하는 작가들과 개인적 예술을 옹호하는 작가들간에 대립이 생기고, 마침내 실용주의자들이 권력을 장악하여 나움 가보, 안트완 펩스너, 엘 리시츠키등은 서구로 망명하여 러시아 구성주의의 영향을 전파하였다.
엘 리시츠키El Lissiitzky, 알렉산더 로드첸코Alexander Mikhailovich Rodchenko
나움 가보 Naum GABO, 안트완 펩스너 Antoine Pevsner
다다Dada
1, 시대적 상황
근대화의 물결속에서 과학의 급격한 발전을 이룬 20세기 초에는 기술과학에 대한 맹신과 더불어 실증적, 논리적, 이성적, 합리적 태도가 팽배하게 되었고, 산업화와 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자본가와 노동자 양 계급간의 대립도 심화되고 있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 다윈의 진화론 등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를 바탕으로 하여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을 중시하는 태도가 팽배한 상황아래 1914년 발발한 세계1차대전은 인간의 이성과 합리주의가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이끈다는 기대를 허물어뜨렸고 세계는 허무주의의 정신과, 무질서, 무정부주의가 지배하게 되었다.
2. 특징
전쟁의 참상은 과거 전통의 합리주의를 사기행위로 판단하면서, 기성세대들의 태도와 인습에 도전하기 위하여 반예술적 부정과 파괴를 예술의 표현수단으로 채택하였다. 1918년 7월 다다선언에서 트리스탄 짜라는 "다다의 시작은 예술의 시작이 아니라 혐오의 시작이다"라고 하였고, "모든 미학적, 윤리적 가치들을 무효화하고, 다다가 전하는 가르침까지도 포함한 모든 교훈들을 믿지말라"고 주장하였다.
1. 1차세계대전이라는 시대적 참상속에 유럽과 미국 양 대륙에서 일어난 동시다발적 국제 운동
2. 기존가치와 전통적 위엄을 거부하는 지적 무정부주의를 지향
3. 각종 예술쟝르간의 경계를 넘어 시, 회화, 음악, 연극, 영화 등 모든 예술의 총합을 이룬 총체예술
다다운동은 어떤 특정한 스타일을 지닌 양식을 지닌 예술운동이라기 보다는, 전쟁의 페허속에서 새로운 예술윤리를 세우려는 하나의 정신적, 도덕적 혁명으로 전통적 고정관념으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킬 수 있는 또 하나의 질서-비이성적이고 부조리한 성격을 지닌 질서를 발견하고자 했던 창조적 회의주의에서 나온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마르셀 뒤샹Marcel Duchamp, 장 아르프Jean Arp, 막스 에른스트Max Ernst, 만 레이Man Ray
초현실주의Surr alisme
1차 세계 대전은 유럽인들에게 커다란 마음의 상처를 주며 사람들은 이러한 현실에 반反한 다른 세상을 탐구하는 계기를 맞게된다. 기성세대의 윤리, 종교, 정치, 사회등 광범위한 가치관에 일대전환을 꾀하여 자유로운 정신을 구가하고자 했던 정신적 경향이었다.
초현실주의가 기성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점과 성性에 대한 개방적인 접근방식을 취했다는점, 반反기독교적 사고, 기발한 조형적 개념을 표현하였다는 점등은 다다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는 기성의 가치인 이성이 파괴된 후에 스스로 일어나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려는 야심적 태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초현실주의는 근본적으로 경험의 경계를 넘어서려고 애썼으며 현실을 본능적이고 잠재적인 꿈의 경험과 융합시켜서 논리적이며 실재하는 현실, 그 자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확장시켜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현실에 도달하려 했다. 프로이드Freud의 리비도Libido, 혼돈된 꿈의 상태, 에로티시즘등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것도 우리가 살고 있는 기존의 현실세계에 초현실적인 세계를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려는 열망에서였다. 초현실주의자들은 인간에게는 여성뿐만 아니라 野性도 있으며 선善 뿐만 아니라 악惡도 있다는 것, 눈을 뜨고 지내는 현실뿐만 아니라 자신도 알 수 없는 곳을 배회하는 꿈의 세계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 등, 인간내면의 속성을 직시하였다.
미로Joan Mir , 달리Salvador Dali, 아르프Jean Arp, 에른스트Max Ernst
현대 미술 : 다양성의 시대
이만년 이상 지속되어온 미술의 전통은 20세기에 들어서 그림 내부의 질서와 형식을 중시하는 새로운 원리에 의하여 그 근본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현대 미술이 그 내부의 질서로 눈을 돌리자 새로운 미술 양식이 봇물 터지듯 나오기 시작하였다.
더이상 회화는 자연을 그대로 묘사하는데 중점을 두던 것을 그만두고 형태와 색채를 새로운 각도에서 재해석하고 연구하였던것이다. 더욱 뚜렷해진 개성과 주관은 복잡하고 다양한 양식으로 전개되는 현대미술로 나타난다. 특히, 추상 미술의 등장은 새로운 표현의 세계를 열었다.
추상 표현주의Abstract expression!!!ism
1. 시대적 상황
미국화단이 세계미술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 1940년대부터였다. 20세기 전반의 마티스, 피카소, 칸딘스키의 추상미술이 순수한 색채와 선의 구성을 통한 형식의 문제에 탐구하고 있을 때 미국미술은 아직도 사실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1930년대 겪었던 경제공황이나 사회적 불만은 지역주의나 사회적 사실주의와 같은 미술경향을 낳게 하면서 화가와 미술은 사회와 밀접하게 관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은 유럽과 미국의 화단을 크게 바꾸어 놓아 전쟁을 피해 앙드레 브르통, 페르낭 레제, 피에르 몬드리안, 살바도르 달리, 한스 호프만 등의 유럽화가들이 미국으로 정착하였던 것이다. 가장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적인 유럽화가들의 미국거주는 미국화단에 큰 자극이 되었다. 매우 어려운 시기였던 경제공황과 전쟁을 겪으면서 자란 뉴욕의 젊은화가들은 합리적이고 논리를 근거로 한 입체주의, 기하학적 추상보다는 자신의 사고와 감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확인할 수 있는 미술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초현실주의의 자유연상의 색효과, 독일표현주의의 두터운 물감의 물질성, 동양의 서예적 획을 도입하여 앞서간 경향의 종합 이상의 과격한 개혁을 시도하였다.
2. 특징
추상 표현주의는 회화에 있어서 무의식성을 강조한 초현실주의의 자동 기술법에서 강한 암시를 받았다. 실제로 추상표현주의는 이 점에서 추상적이면서도 전통적인 추상과 동일하지 않다. 전통적인 추상은 구상 회화의 경우처럼 인간, 사물, 풍경등을 표현 대상으로 삼지 않지만 삼각형이나 원 따위, 선이나 면에 의해 생성되는 형상을 갖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것은 현대 회화의 한 특성으로 화면은 원근감을 잃고 평면화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그라운드와 전경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추상표현주의는 구상적이거나 추상적이거나 간에 지시성과 방향성을 거부한다. 추상표현주의는 1951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미국 추상회화·조각전'을 계기로 주도적인 미술운동을 전개했다. 그리하여 1951년과 1961년 사이에 이 운동은 미국 전역과 세계 각국으로 파급되었다. 그러나 1960년을 정점으로 쇠퇴기를 맞이하게 된다. 추상표현주의는 라인하트, 뉴먼, 로드코, 머더웰등은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일어난 색면파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폴록Jackson Pollock, 드 쿠닝Willem De Kooning, 이브 클라인Yves Klein, 마크 로드코Mark Rothko, 바넷 뉴먼Barnett Newman
[출처] 진상용의 서양화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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