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石榴)
-조운(1900~56)
투박한 나의 얼굴
두툴한 나의 입술
알알이 붉은 뜻을
내가 어이 이르리까
보소라 임아 보소라
빠개 젖힌
이 가슴.
발레리는 ‘석류들’이라는 시에서 “그대 알맹이의 과잉에 못 이겨/반쯤 벌어진 단단한 석류들이여”라고 노래한다. 석류는 안이 가득 차면 단단한 것도 파열하는 것임을 깨우치게 한다. 우리의 천재 시조시인 조운은 석류를 보고 “빠개 젖힌 이 가슴”이라고 썼다. 벼락과 해일이 없어도 잘 익은 석류는 제 가슴을 빠개고 풀어헤친다. 그렇게 제 안에 숨은 홍옥들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보소라 임아 보소라.” 석류는 알알이 무르익은 붉은 보석들을 임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중앙일보 -장석주·시인>
석 류
발레리<1871~1945>
너무 많은 알맹이에 견디다 못해
반쯤 방싯 벌려진 단단한 석류여
스스로의 발견에 황홀해하는
고결한 이마를 나는 보는 듯하다!
오, 방싯 입 벌린 석류여
네가 격어 온 세월이
오만하게도 너희들로 하여금
애써 이룬 홍옥의 간막이를 삐걱거리게 해도
또한 껍질의 메마른 황금이
어떤 힘에 눌려
찢어져 빨간 보석의 과즙이 되어도
그대로, 그 빛나는 균열은
비밀의 얼개를 지닌
내가 지닌 영혼을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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