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조의 공신 후작 표 |
1 ~ 10위 |
|
11 ~ 20위 |
|
21 ~ 30위 |
괴성존후 주설(21 또는 22)[1] · 도창장후 주진(23) · 염차후(24) 원경(元頃)|원류(爰類) · 성경후 동설(25) · 유구제후 융사(26) · 고성장후 윤회(26) · 아릉경후 곽정(27) · 광엄장후 소구(28) · 하양장후 진연(29) · 요이후 공취 |
31 ~ 40위 |
평도후(32) 패가(沛嘉)|공사희(工師喜) · 무강장후 장불식(33) · 여려[2]애후 주조(34) · 대정후 대야(35) · 세제후|세제합후 여|부호해(36) · 해양제신후 요무여(37) · 척구의후 당려(40) |
41 ~ 50위 |
동무정후 곽몽(41) · 고원제후 병천(41) · 악성절후 정례(42) · 선곡제후 정의(43) · 위기장후 주정(44) · 창무정신후 선녕(45) · 강양제후 화무해(46) · 곡역헌후 진평(47) · 동모경후 유쇠(48) · 균장후 장평(48) · 복양강후 진서(49) · 의씨경후 진속 |
51 ~ 60위 |
기곡후 증하 · 언릉장후 주비(52) · 박양절후 주취(53) · 평정경후 제수(54)[3] · 경불후 염택적(55) · 십방숙후 옹치(57) · 백지정후 허온(許溫)|허앙(許盎) · 벽양유후 심이기(59) · 고경후 주가 |
61 ~ 70위 |
안평경후 악천추 · 유문성후 장량 · 남안장후 선호 · 평극의후 집(執)|임지 · 북평문후 장창 · 비여경후 채인(66) · 고량경후 역개(66) · 안구의후 장열(67) · 조양제후 화기원(69) · 팽간후 진동 |
71 ~ 80위 |
청간후(71) 공중(空中)[4]|실중 동(室中同) · 강간후|강어후 유승(留勝)|유힐(留肹) · 영릉이후 여신 · 축아효후 고읍(高邑)|고색(高色) · 자조단후 적|극주 · 당양애후 손적(77) · 영장후 위선(魏選)|위속(魏遬)(78) · 장절후 모택(79) · 기신광후 진창(80) |
81 ~ 90위 |
신양호후 여청(81) · 극양장후 두득신(81) · 고호후 진부걸(82) · 양하제후 기석(83) · 용경후 진서(84)[5] · 하상장후 냉이(冷耳)|영이(泠耳)(85) · 당읍안후 진영(86) · 영릉후 유택(88) · 광아의후 임오(89) · 척어후 계필 |
91 ~ 100위 |
순경후 온개 · 역간후[6] 정흑(92) · 고릉어후 왕주(92) · 무원정후 위거(93) · 오방장후 양무(94) · 번장후 강첨(95)[7] · 분양(장)후 근강(96) · 심택제후 조장야(趙將夜)|조장석(趙將夕)(98) · 송자혜후 허치(99) · 알지절후 풍해감(馮解敢)|풍해산(馮解散) |
101 ~ 110위 |
중수장후 여마동 · 두연장후 왕예(王翳)|왕저(王翥) · 적천장후 양희 · 열양장후 여승(呂勝)|여등(呂騰)(104) · 곡릉정후 풍계(105) · 감천장후 (왕)경(106) · 수창정후 조연(107) · 장수평후 두염(108) · 창어후 노경(盧卿)|여경(旅卿)(109) · 성양정후 해의 |
111 ~ 120위 |
평주공후 소섭도미 · 토군후 선의(112)[8] · 장경후 허천(許倩)|허채(許猜)(112) · 기장후 황극중(黃極中)|황극충(黃極忠)(113) · 공장후 노파사(盧罷師)|여파사(旅罷師)(114) · 개봉민후 도사(115) · 임원견후 척새(116) · 대경후 (추)팽조(116) · 화성효후 공손이(公孫耳)|공손석(公孫昔)(117) · 동양무후 장상여(118) · 양의정후 영상(119) · |
121 ~ 130위 |
|
131 ~ 137위 |
신양후 난열(欒說)|악열(樂說) · 기사강후 비혁(132) · 의릉후 오정(吳程)|오영(吳郢)(134) · 도안후 유양(135)[11] · 육량후 수무(137) |
열외 |
|
※ 번호가 없을 때에는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순서가 내려간다. 이름이나 시호, 봉작의 표기가 사기와 한서가 다를 때에는 (사기의 표기)|(한서의 표기)로 쓴다.
- 이동 ↑ 사기에서는 21위, 한서에서는 22위라 한다.
- 이동 ↑ 상제를 피휘해 융려라고도 한다.
- 이동 ↑ 공적은 고조 시절에 세웠지만, 고후 원년(기원전 187년)에 봉해졌다. 다만 고조의 공신 중에서 옹치·염택적·기통은 '공적이 평정후와 견줄 만하다'라고 했다.
- 이동 ↑ 사마정의 사기색은에 따르면 공중은 성으로 질중(窒中)이라고도 쓸 수 있으며 이름은 동(同)이나 누락됐다고 한다.
- 이동 ↑ 봉지를 사기에서는 용(龍), 한서에서는 용양(龍陽)이라고 한다.
- 이동 ↑ 한서를 따랐다. 사기에서는 봉읍을 마(磨)라 했으나, 사기색은에서는 이를 오류라고 했다.
- 이동 ↑ 한서에서는 봉지가 평(平)이고, 이름을 장첨사(張瞻師)라고 한다.
- 이동 ↑ 시호를 사기에서는 무(武), 한서에서는 식(式)이라 한다.
- 이동 ↑ 사기에서는 고지후 진조(陳錯), 한서에서는 고조후 진개(陳鍇)라고 한다.
- 이동 ↑ 사기에서는 진조(陳錯)라 한다.
- 이동 ↑ 원래는 항양.
|
*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