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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Don Quijote -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Bawoo 2015. 11. 9. 23:55

돈 키호테

 

참조하십시오.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1605), 초판 표지

 

라 만차의 돈 키호테》(Don Quijote de La Mancha, [doŋkiˈxoteð̞elaˈmantʃa])는 스페인의 작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지은 소설이며 제목은 등장하는 주인공의 이름이다. 스페인 최초의 근대 소설이며 당대 유럽최초로도 평가된다.

1605년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재치있는 이달고 라 만차의 돈 키호테》)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는데 여기서 이달고는 귀족을 의미한다. 소설은 발표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는 길가에서 책을 들고 울고 웃는 사람을 보고 "저 자는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한 일화가 전해진다.[1] 이러한 성공에 힘입어 속편은 1615년 Segunda parte del ingenioso cavallero Don Quixote de la Mancha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다. 스페인 황금기의 대표적인 문학일 뿐 아니라 문학사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작품으로 꼽힌다.

 

등장인물

《돈 키호테》의 한 장면 (1848년)

주연

돈 키호테

책을 많이 읽어 잘난척을 잘한다. 사색을 많이 한 끝에 이 세상의 문제가 기사도의 결여에 있다고 판단하여 자신이 직접 방랑기사로 나서 원정을 나간다. 풍차를 "모닝스타를 든 거인"으로 오해하여 공격하기도 하는 등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인다.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

산초 판사(Sancho Panza)

착하고 충성스러운 돈 키호테의 하인(원래는 농부이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질주할 때 소리질러 말리는 모습으로 보아 자신의 주인보다 현실적이다.

둘시네아 델 토보소(Dulcinea del Toboso)

델 토보소 마을에 사는 농부의 딸. 돈키호테가 마음속에 두고 있는 애인으로 돈키호테는 둘시네아를 악당들에게 잡혀간 공주로 인식한다. 돈키호테는 그녀를 '엘 또보소의 둘시네아'라고 칭한다. 본명은 알론사 로렌소. 둘시네아는 돈 키호테의 감정을 전혀 모르고 있다.

전편 조연들

페로 페레스 신부

돈 키호테의 친구로서 돈 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쓴다.

이발사 니콜라스

역시 돈 키호테의 친구로서 페로 페레스 신부와 함께 돈 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쓴다.

후편 조연들

삼손 카르라스코

돈 키호테가 살던 마을의 학사로서 페로 페레스 신부와 이발사 니콜라스와 함께 돈 키호테를 정신 이상에서 구하려고 애쓴다.

공작과 공작 부인

사라고사로 가던 돈 키호테와 산초 판사가 도중에 유숙한 성의 주인으로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장난을 벌인다.

기타 인물

  • 바실리오:키테리아의 연인. 계략으로 키테리아와 결혼.
  • 키테리아:바실리오의 연인. 바실리오의 계략으로 바실리오와 결혼.
  • 후안나 판사:산초 판사의 부인.
  • 산치카:산초 판사의 딸.
  • 여관 주인: 여관주인이 돈키호테를 정식기사로 임명함
  • 농부들: 돈키호테를 이상하게 생각함, 돈키호테를 때리기도 함

줄거리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Alonso Quijano)[3] 는 시골에 있는 신사(이달고)이다. 그는 기사에 대한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 점차 상상 속에 빠져들게 되며 그가 편력 기사임을 깨닫게 된다. 그는 스스로를 "돈 키호테 데 라 만차"라 칭하며, 그의 하인(원래는 농부) 산초 판사와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기사로서 마땅히 기사도를 발휘해야 할 연인은 둘시네아 델 토보소인데 사실은 이웃에 있는 농부의 딸로 이름은 알론사 로렌소이다. 이후 그는 스페인을 돌아다니며 많은 모험을 만난다. 특히 전편에서는 위에서 열거한 마을의 신부, 이발사, 여러 귀인들과 청년, 처녀들과 함께 머무는 주막에서 유명한 모험을 펼치며, 후편에서는 바로셀로나까지 갔다가 기사로 분장한 마을의 학사에게 패하여 돌아와 사망할 때까지 전편보다 많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모험을 펼친다.

번역

  • 범우사에서 사르비아 문고시리즈를 출판할 때 완역되어 출판되었다.
  • 시공사에서 돈키호테 출간 400주년을 맞아 박철의 번역으로 완역본을 출간하였다.
  • 열린책들에서 2014년 완역본으로 출간하였다.

예술

돈키호테 소설 작품을 가지고 뮤지컬.발레등을 연출한다.[4]

각주

  1. 이동 정보상, 《유럽에서 꼭 가봐야 할 여행지 100》, 상상출판, 2011, p.191, ISBN 978-89-94799-08-7
  2. 이동 다수의 설문 조사에서 언제나 상위에 위치했다. 가장 최근의 조사는 노르웨이 북 클럽에서 2002년 행해진 것이다.“The top 100 books of all time”.  “Don Quixote gets authors' votes”. 
  3. 이동 그의 본명에 대해서는 알론소 키하다 등의 다른 이름도 나온다. 하지만 큰 지장은 없다.
  4. 이동 정다훈 기자 (2013년 8월 30일). “2원기·피로회복에 안성맞춤 발레 ‘돈키호테’”. 엔터미디어. 

함께 보기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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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물의 묘사와 발전 과정, 이야기의 역동성, 심리 변화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근대 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장편 풍자소설이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을 통해 중세의 기사도와 기사도 문학을 풍자하고 있다.

악을 소탕하기 위한 ‘자칭 기사’ 돈 키호테의 모험

라만차의 시골 구석에 사는 50세 남짓의 한 향사(鄕士)는 기사도 이야기를 너무 많이 읽은 나머지 정신이 이상해진다. 그의 광기는 이 소설의 본질과 관련이 있는 두 가지 사실로 요약해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황당 무계한 이야기에 씌어 있는 것을 역사적 사실과 혼동하는 점, 그리고 17세기 초에 횡행한 중세 기사도의 이념을 소생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신념을 실행하기 위해 낡아 빠진 갑옷과 투구를 몸에 두르고 스스로를 기사 돈 키호테라 부르며, 시골 처녀를 둘치네아 공주라 생각하고, 근처에 사는 농부 산초 판사를 종자(從者)로 하여(이는 제7장부터 시작된다) 앙상한 말을 타고 길을 떠난다.

제정신과 광기가 뒤섞인 이 기사는 기사도와 상관이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지극히 분별력이 있으나, 기사도와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망상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었다. 곧, 그는 숙소를 성으로, 풍차를 거인으로, 죄수들을 폭정의 희생자로 보면서 사사건건 ‘악’을 발견하고는 자신이 그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수많은 모험에 도전했다가 태반이 좌절된 뒤 마을 친구인 성직자와 이발사들의 책략으로 감옥에 갇히자 자신이 마법에 걸렸다고 믿으면서 마을로 끌려 돌아온다.

‘후편’의 편력에서는 돈 키호테와 그의 시종에 대한 공작 부부의 우롱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그때 전개되는 몇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압권인 것은 산초 판사가 바라타리아 섬의 영주로 취임하는 장면이다. 그 밖에도 ‘사자의 모험’과 ‘몬테시노스 동굴의 모험’, ‘마법선(魔法船)의 모험’ 등과 같은 뛰어난 장면들이 잇달아 나오는데, 마지막에 ‘은빛 달의 기사’와의 결투에 패배해 기사로서의 편력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하여 고향으로 돌아간 돈 키호테는 병상에 누운 채 꿈에서 깨어나 선량한 알론소 키하노로 돌아가 죽었다.

세르반테스는 이 작품 곳곳에서 『돈 키호테』는 그 무렵 독자들에게 널리 읽히고 있던 기사도 이야기를 타도하기 위해 쓴 것이라고 창작의 목적을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 곧, 패러디를 통한 낡은 시대 소설에 대한 부정이었다. 진정한 소설이 다른 소설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이렇게 하여 『돈 키호테』는 ‘기사도 이야기의 타도’라는 당초의 목적을 넘어 ‘책(기사도 이야기)이 현실(17세기 초의 에스파냐)에서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라는 주제, 곧 책과 현실의 관계라는 문제의식으로 발전시키면서 근대 문학의 문을 활짝 열었다. 이 주제는 지금까지도 문학 전체가 가지고 있는 커다란 테마이기도 하다.각주[1]

에스파냐의 흥망성쇠를 반영

“저 사람은 돈 키호테야”라고 누가 말할 경우, 그 말 속에는 대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한 채 저돌적이고 맹목적으로 돌진하는 약간 정신이 나간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돈 키호테는 그런 남자이지만, 작가 세르반테스와 그 시대를 염두에 두고 보면 이 작품에 나오는 광기 속에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친 에스파냐의 흥망 성쇠가 장대하게 반영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시대의 에스파냐에서 “성직자나 병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은 가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었는데, 이는 가톨릭에 의한 세계 제패라는 야망에 사로잡혀 있던 그 무렵 에스파냐의 상황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콜럼버스가 발견한 신대륙을 따라 세계로 진출한 에스파냐는 펠리페 2세의 치세에 이르러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그러나 이런 영광도 오래가지 못하고 1588년에 ‘무적 함대’가 괴멸되자 에스파냐는 급격하게 기울어 간다. 이러한 조국의 운명과 함께하며 실의에 빠져 있던 50대 중반의 세르반테스가 세비야의 왕실 감옥 속에서 에스파냐와 자신의 영웅 시대를 씁쓸한 미소로 돌아보며 쓰기 시작한 것이 『돈 키호테』였던 것이다.

“이 철(鐵)의 시대에 황금 시대를 되살리기 위해 하늘의 뜻으로 태어났다”고 하는 사명감에 불타 앙상한 말에 올라탄 비쩍 마른 초로의 기사 돈 키호테는 기사도 이야기에 나오는 슈퍼맨들에 대한 풍자인 동시에 화려했던 지난날의 에스파냐와 자기 자신에 대한 애정이 담긴 풍자이기도 했다. 수많은 좌절을 되풀이한 끝에 돈 키호테는 고향으로 돌아간 뒤 꿈에서 깨어나 이윽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그때 가톨릭에 의한 세계 정복의 꿈을 상실한 에스파냐도 이미 세계사의 화려한 무대 위에서 모습을 감추어 버렸던 것이다.

작품 속의 명문장

“아아 질투여! 한없는 악의 근원이자 덕을 갉아먹는 벌레여! 어떠한 악도 조금은 기쁨을 주게 마련이지만 질투가 주는 것은 불쾌함과 원한, 노여움뿐이다.” - 『라만차의 현명한 기사 돈 키호테의 제2부』 제8장
“전쟁에서 받은 상처는 명예를 주는 것이지, 명예를 앗아가는 것이 아니다.” - 『라만차의 현명한 기사 돈 키호테의 제2부』의 서문
“운명은 항상 성공의 요소를 담고 있다.” - 『돈 키호테』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웠으며,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별을 잡으려 했다.” - 『돈 키호테』

돈 키호테가 죽으면서 한 말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Saavedra)
에스파냐의 소설가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Miguel de Cervantes Saavedra, 1547~1616)는 1547년 마드리드 근교의 대학 마을인 알칼라데에나레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는데, 각지를 전전하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정규 교육은 거의 받지 못했지만, 1569년에 인문학자 로페스 데 오요스가 편집한 펠리페 2세의 왕비 추모 시문집에 세르반테스의 시가 세 편 뽑혔을 만큼 어느 정도의 교양은 갖추고 있었다.

1570년에 이탈리아로 건너가 군대에 들어갔다가 이듬해 역사적으로 유명한 레판토 전투에서 영웅적인 활약을 했으나, 그때 화승총에 맞은 왼쪽 팔은 그의 말을 빌리자면 “오른손의 명예를 높이기 위해” 평생 쓰지 못하게 되었다.

전쟁에서의 공로가 인정되어 왕의 동생이자 제독이었던 돈 후안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귀국하던 중 터키 해적선의 습격을 받고 포로가 되어 그 뒤 5년 동안 알제리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그동안 시도한 네 번의 탈출이 모두 실패로 끝나 사형당할 위기에 처했으나, 항상 동료들을 감싸는 그 호탕함에 적들도 감동해 목숨을 부지했다. 33세 때 겨우 풀려나 11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이것으로 세르반테스의 평생에서 영웅적인 시기는 끝이 난다.

그때까지의 공적을 무시당하고, 원하던 관직도 받지 못한 세르반테스는 문필로 출세하리라 마음먹고 희곡을 썼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1584년 18세 연하의 카탈리나 살라사르 이 팔라시오스라와 결혼했다. 그녀의 지참금으로 생활이 한때 나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1585년에 아버지의 죽음으로 가족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책임감 때문에 펜을 버리고 에스파냐 ‘무적 함대’의 식량 징발 담당, 세금 수금원 등으로 일하면서 안달루시아의 들판을 돌아다녔다.

그 사이에 주교의 영토에서 지나치게 징발을 하는 바람에 교회에서 파문당하기도 하고, 공금을 맡겨 두었던 은행가가 자취를 감추는 바람에 투옥되는 고생도 했다. 이는 세르반테스의 평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시기였는데, 이런 괴로움 속에서 『돈 키호테』가 태어났던 것이다.각주[2]

1605년 58세에 발표한 『돈 키호테』는 출판과 동시에 대단한 평판을 얻어 각지에서 중판이 거듭되었으나, 판권을 싸게 팔아넘겼던 세르반테스의 생활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1616년에 죽을 때까지 그는 의욕적으로 창작 활동을 계속해, 12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모범소설집』(1613), 『라만차의 현명한 기사 돈 키호테의 제2부』(1615), 그리고 사후 출판된 『페르실레스와 시히스문다의 사역 : 북방의 이야기』(1616) 등과 같은 대표작이 모두 말년에 집중적으로 집필되었다.각주[3]

[출처]

절대지식 세계문학- 돈 키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 [El ingenioso hidalgo Don Quixote de la Manc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