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文學) 마당 ♣/- 장편 소설

Animal Farm - George Orwell

Bawoo 2015. 11. 14. 00:21

George Orwell

동물농장-Animal Farm

[영어원문]

Animal Farm, by George Or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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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의 깃발. 말 발굽과 뿔을 소련의 낫과 망치와 유사하게 배치하였다.

 

동물농장》(動物農場, Animal Farm)은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1945년에 출판한 풍자 소설이다. 표면적인 내용은 한 농장에 살던 동물들이 주인을 쫓아내고 직접 농장을 운영하지만, 결국은 부패하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작품 설명

《동물농장》에는 소련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과 풍자가 들어있다. 그래서 반공주의 소설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재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은 실제로 이오시프 스탈린이 집권하던 소련에서 생긴 사건에 기반한다. 조지 오웰은 한동안 영국 독립 노동당(ILP)의 당원이기도 했던 좌파였지만 스탈린에 대해서 비판적이었고 스페인 내전에 참가한 이후로는 소련 중심의 공산주의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었다. 오웰이 우크라이나어판 서문에 쓴 '지난 10년 동안 나는 사회주의 운동의 재건을 위해서는 소비에트 신화를 파괴하는 일이 근본적으로 필요하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라는 문장에서 그의 집필의도를 알 수 있다. 그는 소련의 성립부터 소련이 가진 결함을 간파하였고 결국 소련의 붕괴에 의해 그의 시선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조지 오웰은 이 작품에서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을 메이저 영감에, 스탈린은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Napoleon)에, 그의 반대자 트로츠키를 경쟁자 돼지인 스노볼(Snowball)에 비유했다. 스탈린의 비밀 경찰은 , 옛 소련 공산당의 당원은 돼지로 비꼬았다. 또한, 쫓겨난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농장주 존스(Jones)로, 스탈린을 광신적으로 따르는 우매한 민중, 종교는 까마귀에 비유했다. 그러나 굳이 '동물 농장'의 상징을 러시아 혁명과 소련으로만 한정할 필요는 없다. 나폴레옹을 아돌프 히틀러, 스노볼을 에른스트 룀, 스퀼러를 요제프 괴벨스로 보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어느 시대, 어느 정치에서도 그러한 인물들은 존재할 것이고, 그것은 근원적인 비극이면서 동시에 '동물 농장'이 가지는 현재적 의미이다.

 

오웰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 영국의 친소적 분위기 때문에 이 소설의 출간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서문에 쓴 바 있다(이 서문은 후에 발견된 것으로 원 작품집에는 없다). 오웰의 책들을 출간해주던 골란츠 출판사는 소련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추종하였으므로 당연히 거절하였고 조나단 케이프사는 영국 관리의 전화를 받고 출판을 철회했다. 페이버 앤드 페이버 출판사와 미국 출판사 한 곳 역시 명료하지 않은 이유로 거절하여 결국 섹커 앤드 와버그 출판사에 의해 간신히 출간되었다.

 

동물 농장은 오웰의 작품 중 유일하게 유머가 가득한 작품으로 봐도 좋은데 이것은 그의 부인 아일린 오쇼네시의 영향이라고 한다. 오웰은 그녀와 이런저런 의견을 교환하면서 동물 농장을 썼고 그 결과로 드물게 대중친화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 오쇼네시 사후에 지어낸 1984는 동물 농장에 비해 훨씬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 차 있다.

대한민국에는 미군정의 의뢰로 1948년 김길준(金吉俊)에 의해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줄거리

장원 농장(매너 농장)에서 평소에 소홀한 대우를 받고 있던 가축들이 반란을 일으키라는 수퇘지 메이저 영감의 호소에 힘입어 반란을 일으킨다. 농장주 존스와 관리인들을 내쫓고 동물들 스스로가 농장을 경영한다. 농장의 이름도 <동물 농장>으로 바꾼다. 비교적 지능이 발달한 돼지인 나폴레옹, 스노볼, 그리고 스퀼러의 지도와 계획 아래 모든 동물들은 평등한 동물 공화국 건설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돼지들의 주도하에 일요회의도 열고 문맹 퇴치의 학습시간도 갖게 되어 말과 오리새끼에 이르기까지 주인 의식을 갖고 농장의 운영에 참여하게 되어 그야말로 평등의 이념에 입각한 이상적 사회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풍차 건설을 계기로 동물들 사이의 권력 투쟁이 노출된다. 이상주의자 스노볼은 나폴레옹에 의해 축출된다. 나폴레옹은 간교한 스퀼러를 대변자로 내세워 동물들을 설득도 하고 조작도 하며 개 9마리를 앞장 세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함으로써 완전한 독재 체제를 세운다. 농장 운영의 방침도 바뀌어 중의를 모으던 일요회의도 폐지되고 모든 일은 나폴레옹과 그의 측근들이 임의로 결정하게 된다. 나폴레옹은 원래 스노볼의 계획이었던 풍차의 건설을 빙자해서 동물들의 자유를 허물어뜨리고 존스가 다시 쳐들어온다는 위험, 스노볼에 대한 반동 낙인, 동물들의 내적 불만을 외적인 공포 분위기로 제압한다. 돼지들은 불평하거나 항의하는 동물을 첩자로 몰아 숙청하기도 하고 옛날처럼 작업량을 늘이고 식량 배급을 줄이기로 한다.

 

반면에 나폴레옹을 둘러싼 지배계급은 존스 시대의 인간보다 더 사치스러운 생활 속에서 호의호식한다. 그들은 존스 부부가 살던 집으로 이사해서 술을 마시고 침대에서 자며 옷을 걸쳐입고 자신들의 자녀들을 위한 교실을 짓고 심지어는 자신들의 적인 인간들과 상거래를 트고 돈을 만지기 시작한다. <동물 농장>은 인간 사회의 악폐라고 주정하던 그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결국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던 혁명은 완전히 실패하고 정책마다 위협과 명분만이 동원될 뿐이었다. 7계명도 수정되고 우직할 정도로 성실하게 일만 하던 복서는 인간의 도살장에 팔렸고 마침내 그들은 두 다리로 서서 채찍을 들고 동물들을 감시한다.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던 구호는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더욱 좋다"는 구호로 둔갑을 했고,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가 '모든 동물들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들은 더욱 평등하다'로 바뀐 것이다.

외양간 전투

동물 농장 주위에는 핀치필드 농장과 폭스우드 농장이 있었는데, 존스는 두 농장에게 힘을 빌려 동물 농장을 침입했다. 스노볼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한 책을 읽고 작전이 떠올렸는데, 제1차 공격은 36마리의 비둘기가 인간들 머리 위에 똥을 싸 정신을 잃을 때 제2차 공격을 시작했는데, 울타리에서 숨어있던 거위떼가 몰려와 인간들의 종아리를 물어뜯었다. 또 인간들이 도망치려다 말과 암소, 돼지들이 몰려와서 마당 입구를 막아 버렸다. 어쩔 수 없이 인간들은 총을 쏴 스노볼의 등 쪽에 살짝 스쳐 가서 스노볼이 등에 부상을 입었고, 스노볼 옆에 있던 양이 죽고 말았다. 하지만 인간은 크게 져 도망갔다. 특히 복서는 아주 열심히 싸웠고 스노볼은 전투를 이길 수 있는 작전을 세웠으니 1등 동물 훈장을 수여했고, 죽은 양에게는 2등 동물 훈장을 추서했다.

풍차 전투

풍차 전투는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에 나오는 동물들과 인간들의 2차에 걸친 전투 중 두번째로, 풍차의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있었던 독소 전쟁을 의미한다. 여기서 나오는 핀치필드 농장은 나치 독일, 농장주인 프레드릭은 아돌프 히틀러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은 동물농장에 있는 목재를 팔기 위해서 윔퍼 씨를 통해 프레드릭과 필킹턴(영국, 미국을 상징)과 협상하고 있었다. 프레드릭이 동물농장의 목재에 더 관심을 보였지만, 제 가격을 지불하려 하지 않았고 동물농장의 동물들 사이에서는 프레드릭이 동물농장을 습격해 풍차를 파괴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책의 묘사에 따르면, "동물들은 필킹턴을 인간이란 이유로 신용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프레드릭보다는 좋아했다. 여름이 다 가고 풍차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자, 반역자들의 공격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더욱 무성하게 나돌기 시작했다. 향간의 소문에 따르면 프레드릭은 총으로 무장한 20명의 남자들을 거느리고 올 계획이며 치안판사들이나 경찰을 이미 매수해 놓았기 때문에, 만일 그가 동물농장의 토지문서를 손 안에 넣기만 하면 치안판사나 경찰도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등이 있다. 한편 가을이 되자 풍차(풍차 건설은 소련의 5개년 경제 개발 계획을 상징하며, 특히 풍차는 계획의 상징이었던 드네프르 댐을 상징함)건설이 완료되었다. 이 풍차의 이름은 나폴레옹 풍차라고 명명되었고, 한편 이틀 뒤 나폴레옹은 프레드릭에게 목재를 팔았다고 하였다. 표면적으로는 필킹턴과 우호관계를 맺는 듯 보이게 하면서도 실제로는 프레드릭과 비밀리에 협정을 맺었던 것이다(독소불가침조약을 의미). 이 일로 폭스우드 농장과 그 농장주인 필킹턴과의 관계는 단절되었고 나폴레옹은 모욕적인 메시지를 필킹턴에게 전달했으며 비둘기에게 핀치필드 농장에 가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표어 역시 프레드릭 타도에서 필킹턴 타도로 바꾸었으며 프레드릭이 공격할 것이라는 소문은 거짓이라고 했다. 하지만 프레드릭이 준 5파운드짜리 지폐는 위조지폐였고(윔퍼 씨가 그 사실을 알렸다) 나폴레옹은 프레드릭에게 '끓는 물에 집어넣는' 사형 선고를 내렸다. 한편 농장으로 통하는 요소마다 보초가 세워졌고 비둘기 네마리가 필킹턴과 다시 우호관계를 맺고 싶다는 나폴레옹의 메시지를 가지고 폭스우드 농장으로 파견되었다.

위조지폐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습격이 있었다. 동물들이 아침식사를 하고 있을때 파수꾼들이 아서 프레드릭과 그의 일꾼들이 다섯개의 빗장이 걸린 문을 통과해 들어오고 있다고 알렸다. 동물들은 나가서 싸웠지만 적은 프레드릭을 비롯한 15명의 남자였고 그중 절반 가량이 총을 가지고 있었는데 작중의 묘사에 따르면 50야드 정도 되는 거리에서부터 발포했다고 했다. 나폴레옹과 복서가 독려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패배했고 금방 풍차를 포함한 목장의 거의 전체(건물을 제외한)이 점령되었다. 나폴레옹은 폭스우드 농장의 도움을 기대하였지만 필킹턴은 '깨소금 맛이다'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한편 프레드릭은 폭탄으로 풍차를 날려버렸다(나폴레옹이 새로 지은 풍차는 벽이 두꺼워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당나귀 벤자민은 인간들이 풍차 밑에 구멍을 뚫는 것을 보고 폭파시켜버리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동물들은 용기를 뒤찾았고 결국에는 인간들을 쫓아냈다.

동물들의 피해는 암소 한 마리, 양 세 마리, 거위 두 마리가 죽었고 나폴레옹을 비롯한 거의 모두가 부상을 입었다. 인간들 또한 피해를 입었는데 한 명은 복서의 발굽에 얻어맞아 머리가 깨지고 한 명은 암소 뿔에 배를 받혔으며 다른 한 명은 제시와 블루벨에게 바지가 찢겼다. 물론, 가장 심한 피해는 폭약으로 인한 풍차의 파괴였다. 바람 때문에 무너진 옛 풍차와는 달리, 돌이 수백야드 밖으로 날아가 다시 그 돌을 이용할 수도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나폴레옹은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일곱발의 예포를 쏘았고 풍차 훈장을 제정하여 스스로에게 수여하였으며 동물에게는 사과 하나, 새에게는 2온스의 옥수수, 개에게는 세 개의 비스킷을 승리에 대한 선물로 지급했다.

등장인물

돼지들

  • 메이저 영감 : 존스 씨가 동물 농장의 주인으로 있을 때의 대장. 카를 마르크스를 상징하며 블라디미르 레닌도 부분적으로 상징한다.
  • 나폴레옹 : 버크셔 종돼지. 스노볼을 쫓아내고 독재자가 되었다. 이오시프 스탈린을 상징. 첫 프랑스어 번역에서는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이 가진 상징성 때문에 '세자르(시저)'로 번역되었다.
  • 스노볼 : 나폴레옹이 독재자가 되기 전 동물농장에서 나폴레옹과 함께 공동 대장을 맡았다. 스탈린에 의해 쫓겨난 레프 트로츠키와 그의 휘하에 있던 혁명가들을 상징한다.
  • 스퀼러 : 나폴레옹의 영원한 충복. 동물 농장의 동물들이 나폴레옹에게 충성하도록 애를 쓴다. 뱌체슬라프 몰로토프 혹은 프라우다를 상징한다.
  • 미니무스 : 나폴레옹을 기리는 를 지어 퍼뜨린다. 막심 고리키 혹은 블라디미르 마야콥스키를 상징한다.
  • 핑크아이 : 나폴레옹의 음식에 독이 들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먼저 먹어본다. 검사원을 상징한다.
  • 새끼 돼지들 : 나폴레옹의 새끼들로 동물 농장의 다음 지배자가 될 세대이다. 소련 공산당의 일당독재 혹은 권력세습을 상징한다.
  • 혁명 돼지들 : 나폴레옹의 독재에 반기를 들려다 반역자로 몰려 개들에게 살해당한다. 트로츠키파로 몰려 숙청당한 일군의 공산당원들을 상징한다.

동물들

  • 복서 : 소박하고 부지런하기만 한 로, 나폴레옹에게 충성을 다하다가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참을성 많고 강인하지만 지배층의 뜻에 휘둘린다. 러시아 혁명 이후에 공산혁명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프롤레타리아 계급을 풍자했으며, 마지막에 복서가 팔려나가는 장면은 나폴레옹을 비롯한 혁명을 이끈 지도층이 민중을 배신했다는 은유이다.
  • 클로버 : 복서의 동료로 돼지들을 의심하지만 자꾸 일곱 계명을 까먹곤 하여 자책한다. 교육을 어느 정도 받았지만 무기력한 중산층을 상징한다.
  • 몰리 : 흰색의 말이다. 동물 농장의 규칙을 어기고, 각설탕에 눈이 멀어 몰래 옆 농장에서 일을 한다. 러시아 혁명으로 축출된 부르주아를 상징한다.
  • 벤저민 : 혁명에 대해 신랄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당나귀이다. 다른 동물들보다 지적이지만 혁명에 대해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는다. 소련 내에 존재하던 유대인들, 현실도피하던 지식인들 혹은 조지 오웰 자신을 상징한다는 시각이 있다. 복서가 팔려나갈 때, 동물들 중 처음으로 그가 도살업자에게 팔려나간다는 것을 알아챘다.
  • 뮤리엘 : 글을 천천히 읽을 줄 아는 늙은 염소이다. 덕분에 신문 조각을 가지고 와 동물들에게 읽어 준다. 소설의 마지막에 뮤리엘이 죽는 것은 남아있던 지식인층의 소멸을 상징한다고 보기도 한다.
  • 닭들 : 집산주의에 따른 사유재산 금지와 재산 국유화에 저항하던 쿨라크(부농 계층, 러시아어 발음으로는 꿀락)를 상징한다. 나폴레옹이 달걀을 몰수하기로 결정하자, 달걀을 마구 부수며 저항하였다. 그러자, 나폴레옹은 닭들에게 식량을 주지 않기로 하여 결국 9마리가 굶어 죽었다.
  • 9마리의 개 : 태어나자마자 나폴레옹에 의해 격리 교육된 개들. 성장하여 나폴레옹의 호위대가 된다. 나폴레옹이 스노우볼을 처음 내쫓을 때 등장해 이후 줄곧 나폴레옹의 친위대로써 겁을 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스탈린 시대의 비밀경찰이었던 내무인민위원회를 상징한다.
  • 모세 : 러시아 정교회를 상징하는 까마귀로, 존스 씨의 스파이다. 혁명 이후에 존스 씨와 함께 동물 농장을 떠났다가 풍차 전투 이후에 돌아온다. 모세가 러시아 정교회 수도사인 라스푸틴을 상징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 양들 : 우둔하며 스탈린을 광신적으로 따르는 우매한 민중을 상징한다.
  • 들쥐들 : 소련 북쪽의 원주민들을 상징할 가능성이 있다.또는 중앙아시아인이나 캅카스주민들도 상징한다.
  • 고양이들 :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던 민중들을 상징한다. 농장 일에 잘 참여하지 않는다.

인간들

  • 존스 씨: 그는 원래 성실하고 부지런한 농장주였지만 큰 소송에 패하면서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농장에서 동물들에 의해 쫓겨난 뒤, 프레드릭과 필킹턴의 도움을 받아 농장을 탈환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알콜 중독자가 되어 수용소에서 사망하였다. 러시아 제국니콜라이 2세를 상징한다.
  • 프레드릭 : 프레드릭은 아돌프 히틀러, 그의 농장 핀치필드나치 독일을 상징한다.
  • 필킹턴 : 필킹턴은 미국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영국윈스턴 처칠 수상을 상징하며 그의 농장 폭스우드자본주의 국가를 상징한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카드 게임은 테헤란 회담을 상징하는 것이다. 나폴레옹과 동시에 "스페이드 에이스"를 뽑은 것은 냉전을 뜻하며 오웰이 돼지와 인간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표현한 것은 소련과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이 보인 행태가 다를 바 없었다는 말이었다.
  • 윔퍼 : 나폴레옹이 인간 세상에 동물 농장을 알리기 위해 고용했다. 1930년대 당시 소련 체제의 진실을 보지 못한 채 소련을 찬양한 서구 지식인들(장폴 사르트르, 버나드 쇼 등) 혹은 체제와 관계없이 소련과 거래하는 중립국들을 상징한다.

중요한 상징적 요소[편집]

  • 술에 너무 취해 닭장의 작은 구멍을 닫는 것을 잊고 갈짓자 걸음으로 마당에 걸어가면서 손에 달린 등불이 크게 흔들림 : 제정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집권 당시 러시아 사회가 혼란스럽고 무능한 정치상황을 상징한다.
  • 동물들의 합창소리에 깨서 존즈 씨가 농장에 여우가 침입했다고 단정하고 총을 쏨 : 1905년 러시아에서 왕궁 경비대가 민중의 평화 시위에 발포한 사건인 피의 일요일 사건을 상징 할수도 있다.
  • 존스 씨를 실의에 빠지게 한 "큰 소송" : 러일 전쟁을 상징한다. 이 소송이 있었다는 사실이 첫 장면에서 언급된 것도 그것을 암시한다.
  • 동물들의 반란 : 러시아 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니콜라이 2세를 추방한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을 상징한다.
  • 영국의 짐승들 : 인터내셔널가를 상징한다.
  • 동물주의 : 사회주의를 상징한다. 돼지들이 메이저의 가르침을 사상체계로 발전시켰다.
  • 동물 공화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국가명이 지정된 것을 의미한다.
  • 녹색 식탁보에 흰색으로 발굽과 뿔을 X자로 그려넣음 :소설에서 의미하는것은 녹색은 드넓은 농장을 상징하고 발굽과 뿔은 농장 동물들의 합침을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며 녹색 식탁보가 빨간 기를 의미하고<혁명을 의미> 발굽과 뿔이 낫과 망치<노동자의 단결을 의미>를 의미한다. 즉, 구소련의 깃발이기도 하다.
  • 외양간 전투 : 러시아 혁명 얼마 후 서구 세력의 사주를 받아 일어난 러시아 내전(1917년-1922년)을 상징한다.
  • 풍차 건설 : 스탈린의 5개년 경제개발 계획을 상징한다.
  • 풍차 : 드네프르댐을 의미한다. 실제로 드네프르댐은 스탈린의 5개년 경제개발을 상징했다.
  • 나폴레옹의 강제 달걀 수집 : 스탈린의 집산주의를 상징한다.
    • 암탉의 반란 : 집산주의에 의한 재산 및 토지 국유화에 저항한 쿨라크들을 상징한다.
  • 나폴레옹 & 프레드릭 연합 :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과 히틀러-스탈린 연합을 상징한다.
    • 풍차 전투 : 불가침조약이 맺어지고 나서 얼마 안 가 발발한 독소 전쟁을 상징한다.
    • 풍차 파괴 : 드네프르 댐의 폭파를 의미한다. 히틀러를 상징하는 세력이 풍차를 파괴하였다고 서술된 소설과는 달리, 실제 역사에서는 스탈린이 폭파를 명령하였다.
  • 스퀼러의 역사 조작 : 소련이 이후 모든 역사적 사실을 러시아 혁명과 공산당에 맞추어나간 것을 상징한다.
  • 메이저 영감의 유골 전시 : 레닌의 시체를 방부 처리해 붉은 광장에 안치한 것을 상징한다.
  • 스노볼의 풍차 계획 : 스탈린은 트로츠키가 세운 5개년 경제 계획을 훔쳤으며, 그것이 트로츠키의 계획임을 말하는 일은 금지되었다. 풍차 건립 계획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 일은 나중에 영국 기술자가 소련에서 기술을 전수해준 것을 상징한다.
  • 나폴레옹은 언제나 옳다 : 복서의 모토인 이 말은 베니토 무솔리니가 실제로 “무솔리니는 언제나 옳다”라는 식으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오웰이 그것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 나폴레옹의 “영국의 짐승들” 금지 : 1943년에 스탈린은 인터내셔널가를 금지시키고 대신 소련 국가를 부르게 했다. 1799년에 나폴레옹라 마르세예즈를 금지시킨 것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 “동물 농장” 명칭을 “메이너 농장”으로 바꾼 것 : 붉은 군대(Red Army)의 정식 명칭은 “노동자 농민의 붉은 군대”에서 “소비에트 군대”(Soviet Army)로 교체되었다.
  • 혁명 이념 : 나폴레옹이 수확을, 스노우볼이 다른 농장의 혁명 봉기를 추구한 것은 스탈린의 “일국 사회주의”(러시아 내 혁명이 우선이라는 혁명 이론)와 트로츠키의 “영구혁명”을 상징한다.
  •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 : 레닌의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4월 테제)"라는 구호를 상징한다.

관련 작품

'동물농장'은 이후 출간되는 수많은 동물 관련 작품들에 영향을 끼쳤는데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John Halas & Joy Batchelor, Animal Farm (1954년)
  • 핑크 플로이드, Animals (1977년)
  • Joesph Stephenson, Animal Farm (1999년)
  • 아드만 스튜디오, 《치킨 런》 (2000년)

바깥 고리

 

 
조지 오웰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ur Blair, 1903년 6월 25일 ~ 1950년 1월 21일)는 인도에서 태어난 영국 작가이자 언론인으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이라는 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에릭 블레어는 20세기 영어권의 가장 중요한 소설가, 비평가, 정치평론가 중 한 명이며 영미권에서 널리 존경받고 있다. 그는 만년의 두 소설 《동물 농장》과 《1984년》으로 특히 유명해졌다. 반공주의자로 잘못 알려져있으나 아나키스트 계열의 사회주의자중 한명이다. 1950년에 오랫동안 앓아 온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학창시절[편집]

에릭 블레어는 1903년 6월 25일에 당시 영국령이던 인도벵갈에서 태어났다. 에릭의 아버지인 리처드 블레어(Richard Walmesley Blair)는 식민국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었고, 어머니 이다 블레어(Ida Mabel Blair)는 에릭이 두 살이 되던 해 그와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다. 에릭은 아버지가 3개월간 영국에 돌아왔던 1907년까지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에릭에게는 마조리라는 이름의 누나와 에이브릴이라는 이름의 여동생이 있었다. 그는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자신의 가족에 대해 묘사하기를 '상류 중산층의 하급 계층'(lower-upper-middle class)이라고 표현하곤 했다.

6살 때 에릭은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헨리온템즈의 유치원에 보내졌다. 헨리온템즈 유치원은 누나가 다니던 유치원이었다. 그는 그 시절에 대해 회고한 적이 없으나 그는 선생님들이 좋게 본 학생이었으며 2년 뒤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에 추천되었다. 서섹스에 위치한 세인트 시프리언즈 스쿨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좋은 예비학교 중 하나였다. 에릭은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반액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결국 그는 이곳을 마치고 웰링턴과 이튼스쿨의 입학 허가를 받았다.

 

웰링턴에서 1년을 마치고 에릭은 이튼스쿨로 옮겨갔다. 그는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왕립 장학생이었다. 훗날 오웰은 상당한 자율을 허용했던 이튼스쿨 시절을 '그런대로' 행복했다고 회고했지만, 입학 후 공부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신경 쓸 수가 없게 되었다. 이튼에서의 그의 학업에 대한 평가는 바보 같은 학생이었다는 것과 훌륭한 학생이었다는 것이 공존하고 있다. 자신들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몇몇 교사를 에릭은 노골적으로 싫어했다. 오웰은 훗날 에세이 '기쁨은 그 정도로 컸다(Such, Such Were the Joys)' 에서 이튼의 교육에 대해 '(아는 척 할 줄 아는) 신용 사기를 향한 과감한 준비'만을 시켰다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결국 그가 이튼을 졸업할 무렵에는 167명중 138등을 할 만큼 성적이 신통치 못했다. 이 성적으로는 옥스퍼드에 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식민지 관료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릭은 이튼에서 훗날 자신의 지기들이 되는 친구들을 몇몇 사귀었다. 그중 싸이릴 코놀리는 잡지 '호라이즌'의 편집자가 되어 오웰의 유명한 에세이 대부분을 출간해주었다.

 

오웰은 어린 시절 계급차별을 느낀 경험이 있었으며 이튼에서는 그것을 더욱 체계적으로 인식했다. 그는 약하고 못생겼다는 것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으며 스스로를 실패한 인생으로 생각했다. 어려서 형성된 실패한 인생이라는 감각은 그가 평생 동안 가졌던 것이었다. 에릭을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그가 추남이었으나 맑고 푸른 눈을 가졌다고 회고한다.

이튼의 생활에 분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그가 제국주의와 영국의 식민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은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처럼 식민 관료의 길을 선택했다. 당시 이튼의 교육은 학생들을 식민 관료, 군인, 제국주의자로 만드는 것이었고, 아직 에릭은 그것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버마 시절[편집]

에릭은 옥스포드에 진학할 성적도 여유도 되지 않았으므로 버마에서 인도 제국 경찰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 총독부 시험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는 1922년 인도 제국 경찰 간부 후보로 합격하였다. 그는 당시 인도 제국 내의 한 주였던 버마(현 미얀마)를 부임지로 선택하였다. 당시 버마는 90명 정도의 영국인 경찰 간부가 13000명 정도의 현지인 경찰을 관리했고 그들이 1300만 명이나 되는 인구를 장악했다.

에릭은 미얀마에서 다른 영국인 간부들이 영국식 사교생활을 즐기던 것과는 달리 고독하게 지냈고 가끔 사창가를 찾았다. 그는 미얀마어를 쉽게 익혀 사용하였으며 훗날 미얀마를 배경으로 한 그의 글들에서 미얀마어의 표현들을 구사했다. 에릭이 가혹한 식민통치자는 아니었으나 불교 승려들과 매춘부들에 대해 경멸하는 태도를 취했고 이는 훗날 제국주의자임을 거부했던 글에서도 확인이 가능할 정도로 체화되어 있었다.

 

그는 5년간이나 식민 관리 생활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에 대한 깊은 자기혐오에 빠지게 되었다. 1927년 휴가차 영국으로 돌아온 그는 바로 사표를 제출하였다. 아버지가 35년간 근무하여 가족이 '중류 생활자'로 지내게 해준, 그리고 자신에게 5년간 영국 신사로 지낼 수 있도록 했던 신분을 차버린 것이다. 가족의 반대가 당연하였으며 그는 글로서 먹고살겠다고 선언하며 집을 나와 런던의 빈민가인 노팅힐에서 자취를 시작하였다.

 

오웰의 두 번째 저서인 '버마 시절'은 이 시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비극적인 로맨스가 제국주의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주인공 플로리는 식민 경찰로 있던 오웰의 페르소나로 읽히며 그는 어떻게 자신이 제국주의를 혐오하게 되었는가를 실감나게 묘사한다. 그는 버마에서 보낸 시간들의 이미지가 너무도 강해서 그것을 어딘가에 쏟아붓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편집]

1928년에 그는 이모가 살던 파리로 이주하였다. 그는 프리랜서로 글을 쓰며 살 생각을 하고 건너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그는 몇몇 잡지에 기고할 수 있었지만 종종 접시닦이로 하루 13~17시간 동안 일해야 했다.

1929년에 돈도 없고 병이 들어 그는 영국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버마의 나날'을 쓰기도 했지만 그는 수시로 나가서 밑바닥 생활을 하곤 했다. 가정교사 일을 잠깐 했고 집에서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에 열중했다. 그는 그 와중에 잡지 《뉴 아델피》의 정규 기고자가 되었다. 《뉴 아델피》는 대중적 사회주의를 불러일으킨 주요 잡지 중 하나였으며 1935년까지의 오웰의 글 대부분이 발표되었다.

 

1931년 그는 다시 밑바닥 생활을 하였다. 런던의 빈민가에서 홈리스 생활을 하고, 켄트로 가서 줍기 노동을 하루에 열 시간씩 3주간 한 뒤 다시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는 돌아와서 호손즈 학교의 교장 자리를 얻어 1933년까지 근무한다. 그는 이 시기에 엘리노어 자크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오웰은 1933년에 그의 첫 번째 저서인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출간한다. 오웰은 여기서 처음으로 조지 오웰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그가 작가로서 실패할 경우를 대비하고 가족들이 놀라지 않도록 선택한 것이다. 그는 서포크오웰 강을 좋아했고, 또 조지는 너무나 평범한 이름이었기에 그렇게 정했다. 그러나 한동안 기고문에는 계속 에릭 블레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는 그의 접시닦이 생활, 구빈원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묘사되어있다. 첫 번째 저서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모순들을 묘사함에 있어 매우 신랄한 필치를 구사하고 있다. 밑바닥 생활을 묘사하는 것 뿐 아니라 그 와중에 런던의 속어와 욕설을 정리해둔다거나 구빈원 시스템의 모순을 치밀하게 폭로하는 등 다층적이면서도 종합적인 글쓰기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웰다운 위트가 곳곳에 넘친다. 잭 런던의 《밑바닥 사람들》(1903)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있다.

엽란을 날려라[편집]

1933년 말에 《버마의 나날》을 탈고하였으나 미국에서는 1934년 10월에, 영국에서는 35년 5월에 겨우 출간되었다. 명예훼손 위험이 있어서 출간 자체가 어려웠고 출간 이후에도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에 비해 호의적이지 못한 평가와 판매고를 올렸다. 오웰은 탈고 직후 폐렴에 걸려 교사 생활을 그만두었고 바로 세 번째 저서인 《목사의 딸》을 쓰기 시작했다.

 

1934년 10월부터 오웰은 고서점에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는 《서점의 회상》, 《책값 대 담뱃값》, 《좋으면서 나쁜 책》(문제가 있지만 그럭저럭 읽을 만한 책) 등의 에세이에서 책에 대한 애정을 밝혀놓은 바 있다. 이 시기에 오웰은 시 창작에도 주목하여 《아델피》에 발표하곤 했는데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1935년 3월에 출간된 《목사의 딸》은 교구 목사관이나 여학교의 일상에 대해 사회학적인 분석에 가까운 묘사가 담겨있다. 출간당시 감상적인 중류계급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훗날 스스로 '어리석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쓴 창작품'이라고 혹평했지만 상업적으로는 괜찮았다.

 

1935년에 오웰은 '엽란을 날려라'를 쓴다. 이전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험이 많이 반영된 소설로 주로 고서점 시기의 경험과 엘리노어와의 사랑이 그것이다. 영국 중류계급의 위선에 대한 혐오감을 표출한 것으로 '목사의 딸'처럼 모호한 결말을 가지고 있는 소설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편집]

1936년 초에 오웰은 좌파출판사인 빅토르 골란츠의 의뢰로 영국 북부의 공업지대 실업자에 대한 책을 의뢰받았고 그 결과물은 1937년에 《위건 부두로 가는 길》로 출간되었다. 1부는 과도한 공업화로 피폐해진 랭커셔와 요크셔의 생활실태와 가계조사 등으로 이루어져있고 2부는 자신이 어떻게 사회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가, 사회주의를 위해서는 왜 사회주의를 공격하지 않으면 안 되는가에 맞추어 서술되어있다. 이 책은 좌파성격의 사회과학서적들을 출판하던 《좌파 북클럽》(영어: Left Book Club)을 위해 쓰여진 책이었지만 골란츠는 사회주의에 대한 비판이 포함된 것을 우려하여 그것을 해명하는 서문을 포함하여 출판하였다.

 

《좌파 북클럽》은 문고본에 가까운 가격으로 가입자들에게 책을 공급하는 회원제 단체이자, 영국의 좌파 출판사로 당시 영미권 사회주의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력을 주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북부의 석탄이 북부 사람들을 어떻게 착취하여 남부에 부를 가져다주는지, 그리고 왜 민중들에게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 지지를 받고 있는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얼마나 교조적인 태도로 즉, 마르크스주의를 아무런 비판없이 맹신하는 태도로 민중들과 동료들을 비판하고 있는지를 서술하며 마르크스주의자들의 맹목적인 소련 숭배를 비판한다. 이 책은 오웰이 사회주의자로서의 의식을 표출한 첫 번째 본격적인 저서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은 노동운동보다는 공산당에 매몰되는 친소경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 보수파들은 나치공산주의의 확산을 막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하고 있었다. 특히 좌파 지식인들은 오웰이 나치스탈린도 모두 전체주의라고 평가하는 것을 소련의 중앙유럽 '진출'과 나치의 '침략'을 혼동한다고 비판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웰의 현실 인식이 관념적이지 않고 정확했다는 것 뿐 아니라 이후 스페인 내전에의 참가로 이어지는 오웰의 행동에서 볼 수 있는 민중중심적인 아나키즘이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웰은 탁월한 현실 인식 능력을 가진 반권력의 작가였다.

 

또 오웰은 '배운' 사회주의자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의 연대, 수용자들에 대한 수용 등의 말을 씀으로서, 아니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동지'라는 말 따위를 억지로 사용하는 사회주의자들의 문화가 피착취 계층이자 잠재적 사회주의자들인 중산층의 마음을 떠나가게 했다며 사회주의자들이 종종 사회주의의 적이 되곤 한다고 비판한다. 또 영국의 뿌리깊은 계급문제를 넘어서는 것은 쉽지 않으며 서로 다른 계급(먹고살만한 노동계급과 가난한 지주계급 등)이 공존할 수 있도록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즉 오웰은 본질적이지 않은 차이때문에 주적에 대항하는 연대가 깨져서는 안된다는 점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오웰의 자서전이라고 할만한 부분을 담고 있으며 여기서 오웰은 자신이 어떻게 제국 경찰에서 피압제자들의 친구가 되어보기로 시도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태생적 계급을 어떻게 넘을 수 없었는지 고백한다. 이는 그의 첫 번째 르뽀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을 쓴 동기이기도 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그는 위건의 탄광노동자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 결국 계급 차이 따위는 극복하고 전면적인 반 파시즘 연대로 가야한다는 것을 주장했고 이 책의 원고를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아 이를 실천하기 위해 스페인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 결과물이 또 하나의 걸작 르뽀 《카탈로니아 찬가》이니, 오웰이 쓴 세 편의 르뽀는 모든 억압에 반대한다는 그의 사상적 궤적을 순차적으로 꿰어준다.

 

오웰은 영국 북부를 방문한 후 런던 근교에 집을 얻어 시골생활을 시작했다. 시골생활을 하면서 한산한 식료품 가게를 운영했는데 그것은 이득이 되지 않았지만 오웰에게 평화를 주었다.

1936년에 오웰은 하숙집 주인의 소개로 만난 아일랜드계 여인 아일린 오쇼네시와 결혼한다. 아일린은 영문학을 전공하고 교사, 사회복지사를 거쳐 교육심리학을 다시 전공하고 있던 인텔리였다. 그녀는 오웰의 사상적 동반자로서 스페인 내전에 오웰과 함께 동행한다.

《카탈로니아 찬가》와 에스파냐 내전[편집]

1936년 겨울 오웰은 스페인 내전에서 공화파를 지지하기 위해 참전했다. 그는 독립노동자당을 통해 스페인으로 들어갔으며 곧 마르크스주의 통일노동당(POUM) 민병대에 지원했다. 당시 카탈루냐 지방은 공화파에 의해 장악되어 있었으며 노동자의 나라 같은 분위기가 있었다. 영국 북부의 참혹상을 보고 온 오웰은 여기서 인간에 대한 희망을 발견한다. 하지만 의용군의 조직은 형편없었으며 총알이 제대로 나가지도 않는 소총 하나만 들고 아라곤 전선에 배치받았다. 하지만 장교에서 사병까지 누구나 똑같은 대우를 받았으며, 계급으로 차별을 받지 않았다. 넉 달 이상 전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다. 전투다운 전투를 하지 못한 채 추위와 굶주림에 더 많은 사람이 죽어가던 전쟁이었다.

 

오웰은 전선에서 돌아와 마드리드의 국제여단에 참여하려고 신청했다. 국제적인 연대를 받는 곳에서 공화파의 승리를 위해 더 기여해보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바르셀로나에 혁명적 기운은 사라지고 다시 계급이 형성되는 듯한 분위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화파는 각종 노선의 차이로 인한 대립이 강해지고 있었으며 POUM이 점거중인 전화국을 탈취하기 위해 같은 편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이 총격을 가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오웰은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던 국제여단으로의 참여를 포기하고 다시 POUM 소속으로 전투를 시작했다. 누구나 평등했던 부대 내에 다시 계급이 생겨 오웰은 소위가 되었다. 그러나 전투 참여 10일 만에 그는 머리를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었다. 훗날 오웰은 '총알에 맞는 것이 총알에 맞지 않는 것보다 행운이었던 상황'이라고 회고했다. 1mm만 왼쪽에 맞았더라면 즉사할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오웰은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그는 공산당으로부터 트로츠키파로 의심을 받고 있었다. 이미 아내 아일린 또한 가택수색을 당한 상태였고 두 부부는 간신히 야간열차를 타고 스페인을 빠져나왔다.

 

오웰은 스페인 국경을 빠져나오자마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영국에 보냈지만 몇몇 곳에서 거부당했다. 런던에 돌아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카탈로니아 찬가》를 쓰기 위해 골란츠에게 연락했을 때도 골란츠는 출간을 거부했다. 오웰이 코민테른에 무조건적인 동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탈로니아 찬가》는 전쟁의 어리석음과 스페인 인민들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르포문학의 걸작이다. 오웰은 스페인 내전 당시의 정치상활에 대한 분석까지 실어서 스페인 내전을 미시적이면서 거시적인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을 내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오웰이 죽을 때까지 초판이 다 팔리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무시당했다. 골란츠가 출간하지 않고 마케팅능력에서 한계가 있는 작은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기 때문이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탈진한 오웰 부부는 1938년모로코로 요양을 간다. 그곳에서 쉬면서 중산층 외판원의 삶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지만 그곳에도 마음 둘 곳이 없다는 내용을 담은 소설 《숨쉬러 올라오기》를 쓴다. 1939년 골란츠에 의해 출간된 이 책은 꽤 호평을 받았다. 그는 여기서 산업화로 인해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집요하게 묘사한다. 오웰에게 문명화 혹은 철학없는 개발/발전은 곧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을 뜻하며 이 정서는 그의 묵시록적 소설 1984로 이어진다.

《동물 농장》과 제2차 세계대전[편집]

2차 대전 기간 동안 오웰은 농사를 지으면서 에세이집 《고래 뱃속에서》를 탈고한다. 전쟁중이라 사상의 자유가 통제되었기 때문에, 많은 잡지들이 정간되어 오웰은 영화평을 쓰는 일로 근근이 생활을 유지했다. 오웰은 채플린의 영화들을 특히 좋아했다.

 

1941년에 발간된 에세이 《사자와 일각수》는 오웰이 중산층에 대한 비판을 중지하고 애국심을 고취하기 위해 쓴 것이다. 파시즘에 대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영국적인 고상함(그것이 위선이든 아니든 간에)을 되찾아야 한다고 주장한 이 책은 전쟁기간 동안 많이 팔려나갔다. 오웰은 영국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하던 끝에 1941년부터 BBC에서 대 인도 선전방송의 원고 쓰는 일을 했다. 그러나 전시 검열과 영국의 제국주의적 태도는 오웰로 하여금 그 일을 오래 할 수 없게 만들었다.

 

1943년 말부터 그는 좌파 잡지 《트리뷴》에서 문학편집자로 일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오웰은 자유롭게 글을 쓸 기회를 얻어 1947년까지 정기 컬럼 〈나 좋을 대로〉를 집필한다. 오웰은 목공실을 만들고, 동물을 키우고, 아이를 입양하는 등 평화로운 생활을 가지게 되었다. 이 시기에 오웰은 《동물 농장》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아내 아일린이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어 《동물 농장》은 이전까지의 오웰 작품들과는 다르게 해학적인 면이 많아졌다.

 

1944년 2월에 탈고된 '동물 농장'은 소련스탈린에 대한 신랄한 비유로 가득차 있어 한동안 출간되지 못했으며 그 와중에 런던 공습에 의해 원고가 불타버릴 뻔 하기도 하였다. 《동물 농장》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반공주의로 읽혀 미국에 의해 광범위하게 번역되었다.

최초의 외국어 번역은 한국어 번역이었으며 이것은 2차 대전 이후 가장 첨예하게 냉전이 벌어진 지역이 한반도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종종 동화로 분류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반공주의자 이미지가 강하게 부각되어서 종종 조지 오웰이 자본주의 진영 쪽 인물이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이때 그는 아나키즘에 매료되어 있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오웰은 《옵서버》의 특파원으로 파리와 쾰른으로 다녀왔다. 그리고 1945년 3월에 삶의 동반자였던 오소네시가 사망했다. 전쟁이 끝나감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계속 언론을 탄압하자 오웰은 '자유방어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한다. 전쟁이 벌어졌던 시기 내내 오웰은 참여적 지식인으로 살아왔고 《동물 농장》이외의 글은 대부분 잡지에 기고된 현실적 논평이거나 에세이였다.

1984년[편집]

 
조지 오웰의 무덤.

오쇼네시 사망 후 마음 둘 곳을 찾지 못했던 오웰은 세명에게 청혼을 해보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그 중에는 소냐 브라우넬도 있었으며 그녀는 이후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연애를 했지만 오래가진 못한다. 《동물 농장》으로 유명 작가가 된 오웰은 런던이 싫어져 1946년에 스코틀랜드 주라 섬으로 이주했다. 여동생 에이브릴의 도움으로 양자 리처드를 자연 속에서 키우면서 《1984년》을 집필하기 시작해 1947년 말에 탈고했지만 폐결핵으로 한동안 요양해야 했다. 폐결핵의 악화는 그의 심신을 탈진시켰고, 정맥류성 궤양을 앓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 윈스턴의 처지로 대변되어 나타난다. '만약 병이 그렇게 심하지만 않았다면 이 소설도 그다지 어둡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듯이 그의 저서 가운데 가장 위트가 없는 책이 되었다. 소냐 브라우넬의 힘차고 밝은 이미지는 《1984년》의 줄리아로 표현되었다. 1948년 11월에 최종 탈고한 오웰은 1948의 48을 뒤집어 1984년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삶의 소박한 것들을 사랑해왔던 오웰은 그것이 박탈된 근미래를 묘사하여 전체주의가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충격적인 이미지로 묘사하였다. 《1984년》은 출간 즉시 고전이 되었으며 지금도 그러하다.

메를로퐁티와 어긋난 소냐는 걸작을 내놓은 오웰에게 돌아왔다. 그녀는 오웰을 돌봤지만 오웰은 다시 폐결핵으로 입원했고 병상에서 소냐 브라우넬과 1949년 10월에 결혼한다. 그는 요양을 하며 다시금 작품활동을 하길 바랐지만 두 달 뒤에 숨을 거두었다.

오웰의 리스트(Orwell's list)[편집]

오웰이 병상에 있을 때, 영국의 매카시즘에 동조하여 오웰 리스트를 작성해 '백주의 암흑'의 작가 아서 케스틀러의 처제였던 정보조사원 셀리아 커원에게 38명의 친소주의자 명단을 전달했다. 영국 정부는 오웰이 죽고 53년 뒤인 2003년 이 명단을 공개했다.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 중 일부는 소련 KGB에 포섭된 친소파로 밝혀졌다. 1933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 경제학자 노먼 에인절 은 카를 '도덕적 허무주의'라고 비난했다. 미국 역사학자 리처드 파이프스 는 카의 소련 옹호는 유태인 학살 옹호와 같다고 평가했다.

저서[편집]

단행본[편집]

오웰의 저서명은 박홍규 교수의 기준을 따랐다.

  • 1933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르포 : 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
    • 신창용 역, (1933/2003/2008), 삼우반
    • 김성태 역, '파리 런던 방랑기'(1933/1992), 서당
    • 권자인 역, '하얀 구름 외길'(1933/1990), 행림각
  • 1934 《버마의 나날》: Burmese Days
    • 박경서 역, '버마 시절'(1934/2010), 열린책들
    • 박경서 역, '제국은 없다'(1934/2002), 서지원
  • 1935 《목사의 딸》: A Clergyman's Daughter
  • 1936 《엽란을 날려라》: Keep the Aspidistra Flying
  • 1937 《위건 부두로 가는 길》르포 : The Road to Wigan Pier
    • 이한중 역, (2009), 한겨레출판
  • 1938 《카탈로니아 찬가》르포: Homage to Catalonia
  • 1939 《숨쉬러 올라오기》: Coming Up for Air
    • 이한중 역, 숨쉬러 나가다(2011), 한겨레출판
  • 1940 《고래 뱃속에서》에세이 : Inside the Whale
    • 하윤숙 역,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2013), 이론과실천 : 이 책에 고래 뱃속에서의 세 에세이인 찰스 디킨스/소년 주간지/고래 뱃속에서가 모두 수록
  • 1941 《사자와 일각수》에세이 : The Lion and the Unicorn
  • 1945 《동물 농장》: Animal Farm
  • 1946 《비판적 에세이》에세이 : Critical Essays
    • 하윤숙 역,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2013), 이론과실천 : 이 책에 절반가량이 발췌 수록
  • 1947 《영국 사람들》에세이 : The English People
  • 1949 《1984년》: Nineteen Eighty-Four
    • 《카탈로니아 찬가》·《동물 농장》·《1984년》은 다양한 번역판본이 존재한다.

년도별 에세이[편집]

  • 그의 에세이를 선별한 단행본이 다수 번역되었다. 중복번역된 글도 좀 있지만 오웰의 중요한 에세이들은 대략 번역된 셈이다. 박경서, 이한중 역서는 역자들이 선정, 편집한 것이고 하윤숙 역서는 2008년에 편집된 All Art Is Propaganda: Critical Essays를 원서로 한다.
  • 박경서 역 '코끼리를 쏘다'(2003)
  • 이한중 역 '나는 왜 쓰는가'(2010)
  • 하윤숙 역, 모든 예술은 프로파간다다(2013)
  • 박경서 역 '영국식 살인의 쇠퇴'(2014)

연구서[편집]

  • Lewis, Peter. George Orwell, the road to 1984. 1981.
    • 문예중앙부 역, 조지 오웰: 1984년에의 길, 중앙일보사, 1984
    • 김기웅 역, 죠지 오웰: 동물농장이냐! 1984년이냐!, 중앙일보사, 1984
  • Crick, Bernard. George Orwell: A Life. Penguin. 1982. ISBN 0-14-005856-7
  • Azurmendi, Joxe. "George Orwell. 1984: Reality exists in the human mind", Jakin, 32: 87-103, 1984.
  • Shelden, Michael. Orwell: The Authorized Biography. HarperCollins. 1991. ISBN 0-06-016709-2
    • 김기애 역. 조지 오웰 : 감춰진 얼굴. 성훈출판사. 1991/1992 ISBN 89-85287-05-2
  • 박경서, George Orwell의 政治意識과 人間觀. 영남대학교 박사학위 논문. 1997. 국립중앙도서관
  • 박홍규. 조지 오웰-자유, 자연, 반권력의 정신. 이학사. 2003 ISBN 89-87350-57-6
  • 고세훈 『조지오웰』(2012)

같이 보기

* 출처 : 위키백과 - 조지 오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