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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투르게네프 - 첫사랑

Bawoo 2015. 11. 17.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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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나는 열여섯 살이었다. 그 일은 1833년 여름에 일어났다.(중략) 나는 사랑에 빠진 한 남자가 되었다. 내 고통은 바로 그날부터 시작되었다."

소년 블라지미르의 옆집에 스물한 살 먹은 매혹적인 여인 지나이다가 이사를 온다. 블라지미르는 난생 처음 강렬한 사랑을 느낀다. 적극적인 기질을 지닌 지나이다는 주변의 뭇 남성들을 휘어잡는 대가 센 여인이다. 블라지미르는 지나이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하지만 결국 그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녀에게 애인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블라지미르는 복수를 위해 칼을 차고 연적을 기다린다.

그날 밤 나타난 연적은 뜻밖에도 블라지미르의 아버지였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블라지미르는 서서히 첫사랑의 열병에서 벗어난다.

어찌 보면 유치한 이 이야기는 러시아의 문호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의 소설 '첫사랑' 줄거리다. 줄거리만 놓고 봐서는 이 소설이 왜 명작의 반열에 올랐는지 와 닿지 않는다. 소설 '첫사랑'이 명작으로 남은 건 줄거리가 아닌 탁월한 묘사 때문이다.

투르게네프는 첫사랑에 빠진 10대 소년의 낭만적인 심리를 정밀하게 묘사해낸다. 그 묘사는 너무나 뛰어나서 줄거리의 통속성을 뛰어넘고도 남는다.

"그녀 앞에 서면 나는 뜨거운 불에 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를 불태우며 녹여버리는 그 불이 도대체 어떤 불인지는 알 필요가 없었다. 나로서는 불타며 녹아버리는 것 자체가 말할 수 없이 달콤한 행복이었기 때문이다." 열여섯 살짜리 19세기 소년에게 사랑에 대한 사전 지식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이야 인터넷이나 드라마를 통해, 혹은 흘러다니는 정보를 통해 어린 나이에도 사랑에 관한 많은 것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지만 당시는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이 소년에게 찾아온 변화는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사건이었다. 소설은 그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마치 아침 노을이 물들었을 때 종루 주위를 나는 제비떼처럼, 공상은 언제나 같은 환상의 주위를 빠르게 맴돌면서 장난치는 것이었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슬픔에 젖기도 하고, 어떤 때는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투르게네프는 러시아 작가들 중 가장 먼저 서구 문화와 근대사상을 익힌 인물이었다. 모스크바대학과 페테르부르크대학에서 어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그는 독일로 건너가 서구 문물을 접했고, 다시 러시아로 돌아와 내무성 관리로 일하다 전업작가로 변신한다. 투르게네프는 러시아는 물론 서유럽에서도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자신의 중편소설 '첫사랑'에 대해 "소설이라기보다는 내 자신의 과거"라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고백처럼 그에게는 이루지 못한 첫사랑의 아픔이 실제로 있었다. 내무부에 재직할 무렵 투르게네프는 프랑스 오페라 가수 폴리나 비아르도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는 결혼한 여인이었고, 그녀의 남편 루이는 투르게네프의 친구이기도 했다

투르게네프는 비아르도를 쟁취하려고 하지는 않았지만 평생 그녀를 향한 사랑을 접지도 않았다. 다른 여인을 사랑하지도,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첫사랑이 그의 전 인생을 지배했던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소망했던 것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실현되었는가. 벌써 내 인생에 황혼의 그림자가 밀려오기 시작하는 지금, 한바탕 휘몰아치고 지나간 봄날 아침의 뇌우(雷雨)에 대한 추억보다 더 신선하고 더 소중한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매일경제- 허연기자]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Turgenev by Repin.jpg
이반 투르게네프의 초상화 (1874년 제작)
출생 1818년 10월 28일(1818-10-28)
러시아 제국 러시아 제국 오룔
사망 1883년 9월 3일 (64세)
프랑스 파리
직업 소설가
장르 사실주의
주요 작품 아버지와 아들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Ivan Sergeyevich Turgenev, 러시아어: Ива́н Серге́евич Турге́нев, 1818년 11월 9일(율리우스력: 10월 28일) ~ 1883년 9월 3일(율리우스력: 8월 22일))는 러시아 소설가이다.

그는 러시아 중부 오룔 시의 부유한 귀족 가문에서 1818년 10월 28일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육군 대령으로 퇴직하고 스파스코예 마을로 이주함에 따라서 투르게네프는 유년 시절의 대부분을 이 시골 마을에서 보냈다. 그 후 모스크바 대학 문학부와 페테르부르크 대학 철학부,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러시아 고전 작가들 가운데 가장 서구적인 작가로 알려져 있다. 인생의 많은 세월을 서유럽에서 보냈고 서구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했으며, 사상적 기반도 서구주의적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는 러시아의 대자연과 시골 풍경이 섬세하고 수려한 필치로 묘사되고 있으며, 동시에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과 휴머니즘이 조화롭게 반영되어 있다.

그는 1852년에 25편의 중단편 모음집으로 출간된 《사냥꾼의 수기》로 주목받는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 후 당시의 시대상과 인간상을 섬세한 서정적 필치로 심층 묘사하여 그에게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연대기 작가’라는 별칭을 얻게 해준 장편소설들 《루딘》(1856년), 《귀족의 둥지》(1859년), 《아버지와 아들》(1862년), 《연기》(1869년), 《처녀지》(1877년) 등이 출판되었다. 그는 1883년 8월 22일 러시아가 아닌 프랑스에서 사망했으며, 그의 유해는 러시아로 옮겨져 그 해 9월 27일에 페테르부르크에 안장되었다.


일생

방탕과 도박으로 타락한 아버지와 수많은 농노를 거느린 전제 군주적 성격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836년 페테르부르크 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838년 베를린 대학에 유학하여 스탄케비치·바쿠닌 등 진보적 러시아 지식인과 사귀며, 헤겔 철학·역사·고전어를 연구하였다. 1841년 서유럽 자유 사상의 동경자가 되어 귀국하였다. 그 후 '서구파'에 출입하며 문학 활동을 시작하고, 벨린스키·게르첸 등을 사귀었다.

1843년 내무성에 근무하면서 처녀작인 서사시 〈파라샤〉를 발표하였다. 계속하여 희곡과 중편 소설을 썼으며, 1847년 잡지 《동시대인》에 단편 스케치 〈호리와 카리누치〉를 발표하여 독자적인 지위를 획득하였다. 1852년 당시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농노 제도를 공격한 소설 《사냥꾼의 일기》를 발표하여 정부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사냥꾼의 일기에서는 농노제를 지적한 소설 '비류크'도 담겨 있다. 그 후 고골리에 대한 추도문이 말썽을 일으켜 당국으로부터 추방 명령을 받고 감금당하였으나, 그것으로 인하여 그의 위치는 더욱 굳어지게 되었다. 그는 계속하여 《루딘》, 《귀족의 집》, 《전날 밤》, 《첫사랑》을 발표하여 환영을 받았으나, 1862년 발표한 《아버지와 아들》은 구·신세대 모두에게 비난을 받았다. 그 후 장편 소설 《연기》와 1876년 대표작 《처녀지》를 발표하였으며, 《사랑의 개가》, 《산문시》, 《죽음 뒤에 오는 것》 등을 계속 발표하여, 러시아뿐만 아니라 서유럽까지 열렬한 반향을 일으켰다.

그는 생애의 대부분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프랑스에 있을 때에는 플로베르·졸라·모파상 등 프랑스 작가들과 친교를 맺었다. 그는 러시아에서 가장 서구적 색채가 짙은 작가로서, 1840-1870년대의 모든 사회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특히, 서정미에 넘친 아름답고 맑은 문체, 아름다운 자연 묘사, 정확한 작품 구성, 줄거리와 인물 배치상의 균형, 높은 양식과 교양은 널리 알려져 있다.

만년에는 명상적인 사색을 계속하다가, 1883년 파리 교외에서 일생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