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는 책임감이 강하고 질서를 존중하는 동시에 솔직한 분이셨다. 그리고 몇몇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알아본 바에 따르면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아니 심지어 어린 아이일 때부터 그런 성품을 지니셨다고 한다. 기억에 의하면, 그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사람보다 명랑한 분이라고 할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침울한 분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마도 다른 사람보다는 좀더 조용한 분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집안을 다스리는 사람은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였다. 또한 매일같이 우리들, 나의 형제자매들과 나를 꾸짖고 타이르는 분도 어머니였다.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아버지가 배 한 척을 주문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그 일에 매우 심각하셨다. 특별히 미모사 나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으며, 20~30년은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것인 동시에 꼭 한 사람만 탈 수 있도록 작은 것이어야 한다는 단서도 다셨다. 어머니는 이 일을 놓고 몹시 화를 내셨다. 갑자기 이 양반이 어부가 되려나? 아니면 사냥꾼이 되려나? 어머니의 질책에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우리 집에서 채 1마일도 되지 않는 곳에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강은 우리집 부근에 이르러 수심이 깊고 흐름이 조용하였으며 건너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이 넓었다.
그 나룻배가 배달되던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기쁘다는 표시는 물론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듯이 그저 모자를 쓰시고는 우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음식물은 물론 어떤 종류의 짐도 갖고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난리법석을 피우실 줄 알았는데,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는 매우 창백한 표정으로 입술만 깨물고 계셨다. "떠나고 싶으면 떠나세요. 다시는 돌아올 생각도 말아요.“ 이것이 어머니가 하신 말씀의 전부였다.
아버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으셨다. 다만 부드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시고는 따라나오라는 손짓을 하실 뿐이었다. 나는 어머니가 화를 내실 것이 두려웠으나, 기꺼이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우리는 함께 강으로 갔다. 나는 대담하고 유쾌한 기분이 되어 이런 말까지 했을 정도였다. “아빠, 저도 아빠와 함께 배를 타고 가는 거지요?”
아버지는 그런 나를 내려다보시고는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손짓에 따라 집에 돌아가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등을 돌리자 어떻게 하시려나 살펴보기 위해 덤불 뒤에 몸을 숨겼다. 아버지께서는 배에 타시더니 노를 저어 가셨다. 마치 한 마리의 악어처럼 아버지가 타신 배의 그림자는 강을 가로질러 멀리, 그리고 조용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아버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말로 어디로 가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가서는 주변을 계속 떠도시기만 할 뿐이었다. 전에는 결코 있었던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에 친척들이, 이웃들이, 그리고 친구들이 와서는 이 문제를 상의했다.
어머니는 창피해서 얼굴을 들지 못했다. 말도 별로 하지 않으시고 침착하게 처신하셨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가 제 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아버지가 하나님이 성자에게 약속한 바를 실행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무언가 무시무시한 질병에 걸렸는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그것이 문둥병일지도 모른다는 의견도 있었다. 그런 질병에 걸려 가족을 위해 떠나긴 했지만 가능하면 가족과 아주 떨어지고 싶지는 않아서 저렇게 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강을 따라 여행하는 사람들이나 이쪽이든 저쪽이든 강둑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들의 보고에 의하면, 아버지께서는 밤이든 낮이든 결코 땅 위에 발을 내딛은 적이 없으시다는 것이었다. 그저 강물 위를 외롭게, 목적도 없이 부랑자처럼 떠도실 뿐이었다. 어머니와 친척들은 틀림없이 아버지가 배 안에 음식을 감추고 계신데 그것이 다 떨어지면 강에서 나오거나 어디론가 떠나버리실 거라는 의견을 같이했다. 떠나는 것이 적어도 다시 돌아오는 것보다 덜 체면이 깎이는 일이 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먹을 것이 다 떨어지면 아버지께서 후회하고 집으로 돌아오실지도 모른다는 의견을 내놓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얼마나 진실을 모르고 있었던가! 아버지는 은밀한 식량 공급원을 갖고 계셨는데, 그 공급원은 바로 나였다. 매일같이 나는 음식을 집에서 몰래 가져다가 아버지에게 갖다 드렸다. 아버지께서 떠나신 바로 그날 밤, 우리 모두는 강가에서 횃불을 피운 다음 아버지에게 애원을 하기도 하고 큰소리로 부르기도 하였다. 나는 너무도 마음이 아팠고, 무언가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음 날 나는 옥수수빵 한 덩어리와 바나나 한 송이, 정제되지 않은 각설탕 몇 덩이를 갖고 강가로 나갔다. 아주 오랫동안, 정말 오랫동안 아버지를 기다리느라고 안절부절 못했다. 이윽고 저 멀리 외롭게 홀로 떠 있는 배가 보였다. 배는 잔잔한 강 위를 미끄러지듯 떠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배 밑바닥에 앉아 계셨다. 아버지는 나를 보았지만 내 쪽으로 배를 저어 오지도 않으셨고 아무런 손짓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음식물을 아버지에게 보이고는 강둑에 있는 바위 어딘가 움푹 패인 곳에 놓아 두었다. 거기에 두면 동물들이나 비나 이슬의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똑같은 일을 매일같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되풀이했다. 놀랍게도 나는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고 계실 뿐만 아니라 내가 쉽게 훔칠 수 있는 곳에 음식물을 놓아두신다는 것도 알아차리게 되었다.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마음 속에서는 만감이 교차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외삼촌을 불러와서 농장 일과 그 밖의 사무적인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셨다. 어머니는 또한 학교 선생님을 집으로 모셔 우리들을 가르치게 하여 학교에 못가서 낭비한 시간을 벌충하도록 배려하셨다. 어느 날 어머니의 요청으로 신부님께서 사제복을 입으시고는 강가로 나가 아버지의 영혼을 사로잡고 있는 악령을 쫓아내려 하셨다. 신부님께서는 아버지에게 불경스러운 짓에 고집을 그만 피우라고 소리쳐 말씀하셨다. 어느 날엔가는 어머니께서 군인 두 명을 불러와 아버지에게 겁을 주기도 하셨다. 그러나 그 모든 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 아버지께서는 먼 곳에서 떠돌 뿐이셨고, 어떤 때는 너무 멀어 거의 보이지도 않으셨다. 누구에게도 대답하지 않으셨고 누구도 가까이 가보지 못했다. 몇몇 신문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으려는 시도를 했을 때 아버지는 강의 반대편 쪽으로 배를 저어간 다음 늪지에 숨어 버리셨다. 아버지는 그 늪지를 손바닥처럼 잘 알고 계셨지만, 다른 이는 그곳에 들어가면 곧 길을 잃기 마련이었다. 아버지만 아시는 은밀한 미로가 수마일이나 뻗어 있었고, 무성한 잎으로 덮여 있을 뿐만 아니라 사방이 갈대로 뒤덮여 있어서 아무도 아버지를 찾을 수 없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저기 강 위에 떠 계시다는 생각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익숙해져야 했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결코 그럴 수가 없었다. 나는 아버지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무엇을 원하지 않으시는지를 어느 정도 이해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아버지께서 그 많은 어려움을 어떻게 견뎌 내시는가였다. 밤낮 없이, 해가 뜨나 비가 오나, 덥거나 춥거나 상관없이, 낡은 모자를 머리에 쓰시고 옷도 변변히 걸치지 않으신 채 몇 주일이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아버지는 강 위를 떠 다니고 계셨다. 전혀 개의치 않고 낭비와 공허함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흘려 보내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땅 위든 풀 위든, 섬이든 육지든 결코 발을 딛지 않으셨다. 틀림없이 아버지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장소에 배를 매어놓고는 잠깐 동안 잠을 청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불을 지피지도 않으셨고 성냥불조차 켜지 않으셨다. 그렇다고 회중 전등을 갖고 계신 것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바위 어딘가 움푹 패인 곳에 내가 갖다 놓은 얼마 안되는 음식만으로 연명하셨다. 내가 보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의 음식이었다. 건강 상태는 어떠실까? 노 젓는 일 때문에 계속 힘을 쓰셔서 탈진하신 것은 아닐까? 해마다 닥치는 홍수는 어떻게 견디실까? 홍수가 닥치면 물이 불고 나뭇가지라든가 동물의 시체와 같은 온갖 위험한 물체들이 물살에 휩쓸려 내려오지 않는가. 그런 물체들과 아버지의 작은 배가 눈 깜짝할 사이에 충돌할 수도 있을 텐데.
아버지는 사람들과 전혀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셨다. 우리도 아버지에 관해서는 결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저 마음 속으로만 생각할 뿐이었다. 아니, 아버지를 마음 바깥으로 결코 밀어낼 수 없었다. 어쩌다 잠깐 아버지를 잊을 때도 있긴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다만 일시적인 평온 상태일 뿐이었다. 우리는 아버지가 겪고 계신 끔찍한 상황을 떠올리고는 그 일시적인 평온 상태에서 후다닥 깨어나곤 하였다.
누이가 결혼을 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는 결혼 잔치를 원치 않으셨다. 아마도 잔치는 즐거운 것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폭풍우가 치는 차가운 밤 포근한 침대에 누워 있을 때 아버지 생각이 나듯이 말이다. 저기 강 위에 홀로 무방비 상태로 떠돌면서 다만 손과 바가지 하나를 이용해 배에 고인 물을 퍼내고 계실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따금 사람들은 내가 점점 더 아버지를 닮아간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머리와 수염이 자랄 대로 자라 뒤엉켜 있을 것이고 손톱도 길게 자란 상태여서 아버지가 옛날의 아버지가 아니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여위고 병색이 짙은 아버지의 모습을,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와 햇볕에 그을린 피부 때문에 시커멓게 보일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보았다. 가끔 가다 아버지를 위해 옷을 몇 점 가져다 놓긴 했지만, 알몸이나 다름없을 아버지의 차림새도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전혀 마음을 쓰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아버지에게 애정을 느꼈고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무언가를 잘해서 사람들이 나를 칭찬하면 이렇게 말하곤 했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라고 가르쳐 주셨어요.”
그 말이 꼭 맞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무언가 진실이 들어 있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까 말했듯이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전혀 마음을 쓰시는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왜 우리 주변에 머물러 계신 것일까? 우리를 볼 수도 없고 우리의 눈에 띌 수도 없도록, 왜 강 위쪽으로 올라가시거나 강 아래쪽으로 내려가시지 않는 것일까? 아버지만이 그 답을 알고 계실 것이다.
누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누이는 아이의 할아버지인 아버지에게 그 아이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어느 화창한 날 우리 모두는 강둑으로 나갔다. 결혼식 때 입었던 하얀 예복을 차려 입은 누이가 아이를 높이 쳐들었다. 매형은 그들에게 내려쪼이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 양산을 들고 있었다. 우리는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아버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누이가 울음을 터뜨렸고, 이윽고 우리 모두는 서로의 팔에 안겨 울었다.
누이와 매형이 먼 곳으로 이사를 갔다. 형도 도시에서 생활하기 위해 떠났다. 늘 그렇듯이 세월은 모르는 사이에 빨리도 흘렀다. 어머니도 마침내 다른 곳으로 가셨다. 이제 노인이 된 어머니는 딸과 함께 살기 위해 떠나셨던 것이다. 나만 홀로 남게 되었다. 나는 결혼에 대해 꿈도 꿀 수 없었다. 홀로 쓸쓸하게 강 위를 방황하시던 아버지에게는 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왜 그렇게 하고 계신지 결코 말씀조차 하신 적이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어느 날 불퉁스럽고 고집스럽게 사람들에게 아버지께서 왜 그러시는지 아느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들이 나에게 한 말은 아버지께서 배를 만든 사람에게 그 이유를 말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아무도 무언가를 알거나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멍청한 이야기도 있었다. 비가 유난히도 심하게 오랫동안 내리던 때였다. 아버지가 노아처럼 현명한 분이셔서 새로운 대홍수를 예상하시고는 배를 만들게 했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사람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던 것이 희미하게 생각난다. 어쨌든 나는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놓고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제 나의 머리도 희끗희끗해지기 시작하였다.
나에게는 슬픈 일을 빼놓고는 말할 것이 없다.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으며, 무슨 큰 죄를 저질렀는가? 아버지는 항상 내 곁에 있었다. 그리고 저 강이, 항상 저 강이 그 사실을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일깨우고 있었다. 바로 저 강이 일깨워 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 역시 나이로 인해 고통을 받기 시작했다. 살아있는 것이 단지 정처없이 헤매는 건이나 다름없는 그런 나이에 들어섰던 것이다. 병마가 찾아오기도 하고 불안에 시달리기도 하였다. 류머티즘이 끊임없이 괴롭히기도 했다. 아버지는 어떠실까? 무엇 때문에, 왜 저러고 계신 것일까? 틀림없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으셨다. 어느 날 힘이 다 소진되시면 배가 전복되어도 어쩌지 못하실지도 모른다. 아니면 물살에 배가 하류 쪽으로 계속 떠내려가다 마침내 폭포 위에서 떨어져 물보라가 날리는 소용돌이 속에 처박히게 되어도 어쩌지 못하실 수도 있다. 그런 염려가 내 마음을 짓눌렀다. 아버지께선 저기 강 위에 떠 계시고, 나는 그 사실로 인해 영원히 마음의 평화를 빼앗기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알지 못하는 그 무엇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고, 나의 고통은 터진 상처가 되어 내 안에 자리잡고 있다. 사정이 다르다면 아마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이 잘못되었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잊자, 잊어! 내가 미쳐 버린 것은 아닌가? 안되지, 그런 말은 쓸 수 없지. 우리집에서는 그런 말이 한 번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오르내린 적이 없었다. 아무도 누구를 미쳤다고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모두가 다 미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강가로 가서 아버지의 눈에 좀더 쉽게 띌 수 있도록 손수건을 흔드는 것뿐이었다. 나는 조금도 자재력을 잃지 않고 있었다. 기다리고 기다렸다. 드디어 아득히 저 먼 곳에서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내셨고, 이윽고 배의 뒤편 쪽에 앉아 계신 희미한 아버지의 형상이 저쪽에 보였다. 몇 번이고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격식을 갖추고 선서를 한 다음 말하듯 정색을 하고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을 했던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이젠 충분히 오랫동안 그곳에 계셨어요. 이젠 늙으셨잖아요...... 돌아오세요. 더 이상 그러시지 않으셔도 돼요...... 돌아오세요. 제가 대신 할게요. 원하시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해요. 어느 때고 좋아요. 제가 대신 배를 탈게요. 아버지 대신 배를 타겠어요.”
이렇게 말하고 나자 나의 가슴은 더욱 단호하게 뛰었다.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노를 갖고 배를 교묘하게 조정하여 나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셨다. 아버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신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마음 속 깊이 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팔을 들어 나를 향해 흔드셨기 때문이다. 그 오래고 오랜 세월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흔드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머리털이 곤두 선 채 나는 달렸다. 미친 듯이 도망쳤던 것이다. 아버지께서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오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제 나는 용서를 빈다. 용서를, 용서를 해 주시기를 빌 뿐이다.
나는 죽을 듯한 공포 뒤에 느끼게 되는 무시무시한 오한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앓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아무도 아버지를 보거나 아버지에 대한 애야기를 듣지 못했다. 그렇게 일을 그르쳐 놓고서 나도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엉뚱한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침묵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몰골인 것이다. 이제 너무 늦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사막에, 내 인생의 들판 어딘가에 머물러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나마도 단축될까 두렵다. 그러나 죽음이 나에게 찾아오면 그에게 요구할 것이다. 나를 데려다 두 강둑 사이로 영원히 흐르는 강물 위의 자그마한 배에 태워달라고. 그러면 나는 강 아래쪽으로 흘러가다 강물에 빠져 강물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강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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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인의 인문학 심포지아]후앙 기마랑스 로사의 `제3의 강둑’ 그리고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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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와 `지배’, 무섭고도 무거운 이름 아버지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제3의 강둑’ 아버지의 기원, 보호와 지배의 대명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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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는 집을 떠나지 않는다. 강은 아버지의 집이며 삶의 터전이다. |
‘아버지’라는 존재의 기원은 어디일까? 생물학적 수컷이 생물학적 암컷과 교접하여 새끼를 낳았다고 해서 그를 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제도’다. 구석기 시대의 인류가 동굴 속에서 500만 년 동안 짝짓기를 통해 새끼를 만들어냈지만 아버지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그 동굴 속에는 아직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새끼를 만들고 보호하는 집단으로서의 수컷들은 존재했지만 한 새끼만을 직접적으로 맡아 책임지는 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출현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건축물인 ‘집’의 탄생과 그 맥을 같이한다. 움집에는 한 마리의 암컷과 한 마리의 수컷만 들어갈 수 있었다. 동굴은 집단적이었지만 움집은 개인적이었다. 움집에서 첫날밤을 보낸 암컷과 수컷은 비로소 여자가 되고 남자가 되었으며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었다. ‘제도’의 출발이었다. ‘남편’과 ‘아내’는 제도다. 집단적으로 성기(性器)를 공유하던 시대는 가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배우자의 성기를 배타적으로 독점하는 시대가 되었다.
움집 안에서 생산된 새끼는 생산자가 분명했다. 움집 안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동침했으므로 이제 그 새끼는 그들만의 소유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씨를 뿌린 자는 드디어 ‘아버지’가 되었다. 동굴 안에서의 ‘난교’는 어머니만 분명할 뿐 아버지는 명료하지 않았다. 아버지임을 증명하고싶은 모든 수컷들이 해야 하는 가장 무거운 임무는 본인의 집을 짓는 일이었다. 움집 안에 한 여자를 들이고 그녀와 잠자리를 해야 자기만의 새끼를 보장받을 수 있게 되었다.
어머니의 존재보다 500만 년이 뒤졌지만 아버지의 힘은 날로 강해져 1000배의 속도를 내달려 5000년만에 어머니를 앞질렀다. 한 여자의 손을 잡고 움집 안으로 들어가 가장(家長)이 된 남자는 불과 500만 년의 1000분의 1인 5000년만에 ‘가부장제(家父長制)’라는 또다른 제도를 만들어 집을 소유했으며 집의 주인으로서 여자를 소유하고 새끼를 소유했다
1만 년의 역사를 가진 ‘아버지’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의미와 무게가 실려 있을까? 아버지라는 말 속에는 ‘보호’와 ‘지배’라는 두 가지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보호는 씨를 뿌린 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책무 중 하나다. 늙고 병들어 쇠약해진 아버지는 자신이 보호한 새끼에 의해 보호받기 때문이다. 지배는 이러한 질서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과정에서 나온 산물로서 그 영역은 보호와 마찬가지로 새끼를 넘어 배우자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제도로서의 아버지는 보호자이면서 동시에 지배자였다.
아버지는 왜 집을 나갔을까?
‘어느 날 아버지가 배 한 척을 주문하셨다. 아버지는 그 일에 매우 진지하셨다. 특별히 미모사 나무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으며, 30년은 견딜 수 있도록 견고한 것인 동시에 꼭 한 사람만 탈 수 있도록 만든 것이어야 한다는 단서도 다셨다. 어머니는 이 일을 놓고 몹시 화를 내셨다. ‘갑자기 이 양반이 어부가 되려나, 아니면 사냥꾼이 되려나?’ 하는 어머니의 질책에 아버지는 아무 말씀도 없으셨다.’
‘나룻배가 배달되던 날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아버지는 기쁘다는 표시는 물론 어떤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항상 그렇듯이 그저 모자를 쓰시고는 우리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아버지는 음식물은 물론 어떤 종류의 짐도 갖고 가지 않으셨다. 어머니가 난리법석을 피우실 줄 알았는데, 가만히 계셨다. 어머니는 매우 창백한 표정으로 입술만 깨물고 계셨다.’
- 후앙 기마랑스 로사의 ‘제3의 강둑’ 중에서
소년의 아버지는 왜 집을 나가려 할까? 여행을 떠나거나 일하러 나가는 것이 아닌 이상 아버지는 집을 비우지 않는다. ‘집’이라는 공간은 부부가 되고 가족이 되는 사람들이 잠을 자고 생활을 하는 건축물이지만 아버지에게 집은 또다른 의미를 지닌 특별한 것이다. 집은 아버지를 아버지이게끔 만드는 정치적 도구이기도 하다. 아버지는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그의 지위를 보장받고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배의 공간이기도 하는 것이다. 집이 아닌 곳에서의 가장은 무의미한 단어에 지나지 않는다.
집처럼 한 자리에 고정되어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버지의 숙명이다. 그 집 안에 든 가족을 보호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버지로서의 사명인 것이다. 1만 년의 긴긴 세월 속에서 아버지와 집은 하나로 통일되어 아버지는 집이 되고 집은 아버지가 되었다. 집을 뜨고 집을 비운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마치 신발을 영원히 벗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나는 어머니가 화를 내실 것이 두려웠으나 기꺼이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 우리는 함께 강으로 갔다. 아버지는 그저 나를 내려다보시고는 잘 지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손짓으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 아버지의 손짓에 따라 집에 돌아가는 척하다가 아버지가 등을 돌리자 어떻게 하시려나 살펴보기 위해 덤불 뒤에 몸을 숨겼다. 아버지께서는 배에 타시더니 노를 저어 가셨다. 마치 한 마리의 악어처럼 아버지가 타신 배의 그림자는 강을 가로질러 멀리, 그리고 조용하게 미끄러져 나갔다.’
‘아버지께서는 뒤를 돌아보지 않으셨다. 그런데 아버지가 정말로 어디로 가신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강 한가운데로 노를 저어 가서는 주변을 계속 떠도시기만 할 뿐이었다. 모든 사람이 말문이 막힌 듯 놀랄 뿐이었다. 전에는 결코 있었던 적이 없는 일이,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집에 친척들이, 이웃들이 그리고 친구둘이 와서는 이 문제를 놓고 상의했다.’ - 후앙 기마랑스 로사의 ‘제3의 강둑’ 중에서
소년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 강으로 갔다. 그리고 배를 저어 뭍을 떠났다. 하지만 아버지는 강 건너로 가지도 않았고 강을 따라 올라가거나 내려가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그저 강을 따라 이리저리 맴돌기만 할 뿐이었다. 이 무슨 해괴한 짓이란 말인가? 뱃놀이를 위해 일을 벌일 정도로 얼빠진 아버지는 아니었으므로 이 행위에는 다른 의미가 있는 게 분명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이해될 수도 없어
소년의 아버지는 집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 강은 삶의 터전이다. 강은 집의 연장선에 있다. 강은 그의 집이며 일터다. 강으로 표현된 아버지의 거처는 작가 후앙 기마랑스 로사의 ‘브라질적’ 상징이며 레지오널리즘(Resionalism)의 일환이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난폭한 자연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든 가장들에게 강은 험난한 일터에 다름아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가 머물며 노를 젓는 그 강에는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이 있는 것이다. 다만 소설은 지금 강 위에 있던 모든 아버지들을 제거하고 한 소년의 아버지만을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된 이래 모든 것을 책임져왔다. 그 책임은 때로는 보호라는 이름 아래 폭력이 되기도 했지만 이 세상 아버지들은 그 길을 숙명처럼 걸어왔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었기에 아버지라는 직책과 그 직책을 맡은 아버지는 이해(理解)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 살을 섞은 아내조차도 모른다. 아내는 아내의 숙명을 알고 어머니는 어머니의 숙명을 알지만 아버지의 숙명은 절대 모른다. 그들은 ‘제3의 지대’에서 그저 관망할 뿐 아버지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강둑은 강둑일 뿐 강은 아니다. 아내도 아내일 뿐 남편이 아니고 자식도 자식일 뿐 아버지가 되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 제3의 지대에서 강을 보고 있으며 제3의 강둑에서 아버지를 대하고 있다. 제3의 강둑에서 아버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버지에게 있어 모두 ‘제3자’다. 그의 아내도 그의 자식도 모두 제3자요 타인에 불과하다. 강 위를 떠도는 아버지가 외로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지 되고싶지 않다면 소년처럼 도망쳐라
‘몇 번이고 아버지를 불렀다. 그리고는 그렇게도 아버지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격식을 갖추고 선서를 한 다음 말하듯 정색을 하고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었던 말을 했던 것이다. 있는 힘을 다하여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아버지, 이젠 충분히 오랫동안 그곳에 계셨어요. 이젠 늙으셨잖아요… 돌아오세요. 더 이상 그러시지 않아도 돼요. 돌아오세요. 제가 대신 할게요. 원하시면 지금 당장 그렇게 해요. 어느 때고 좋아요. 제가 대신 배를 탈게요. 아버지 대신 배를 타겠어요.”
‘아버지께서 내 말을 들으셨다.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노를 갖고 배를 교묘하게 조정하여 나를 향해 뱃머리를 돌리셨다. 아버지가 내 제안을 받아들이신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마음 속 깊이 떨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팔을 들어 나를 향해 흔드셨기 때문이다. 그 오래고 오랜 세월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손을 흔드신 것이다. 그런데 나는 할 수가 없었다. 두려움에 머리털이 곤두선 채 나는 달렸다. 미친 듯이 도망쳤던 것이다. 어버지께서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오신 것같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죽을 듯한 공포 뒤에 느끼게 되는 무시무시한 오한을 체험하였다. 그리고 앓기 시작했다.’ - 후앙 기마랑스 로사의 ‘제3의 강둑’ 중에서
아버지가 아버지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건 늙고 병들어서다. 이제 아버지는 그동안 지고 있던 ‘아버지’라는 사명과 숙명을 내려놓고자 한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아버지라는 그 짐을 짊어질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짐질 자가 없는 한 늙고 병든 아버지일지라도, 허리가 꼬부라져 죽을지라도 아버지는 삶의 강에서 나오지 않으며 인생의 배에서 내리지 않는다. 자식들 중 누군가가 아버지의 짐을 대신 지겠노라고 선언할 때라야 비로소 아버지는 강을 떠나고 배를 버릴 수 있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벌어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같다.’ - 신해철의 ‘아버지와 나’ 중에서
아버지가 나타나야 아버지는 쉴 수 있다. 아버지가 되고싶다면 아버지의 짐을 질 각오를 해야 한다. 아버지가 되고싶지 않다면 소년처럼 도망쳐야 한다. 어른이 되어서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버지가 무서우면 아버지를 버리면 된다. 아버지가 두려우면 아버지로부터 도망치면 된다. 그러면 아버지라는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대신 도망치면 영원히 아버지가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그만큼 아버지는 무섭다. 그리고 무겁다.
김시인 <인문학공간 소피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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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무섭고도 무거운 그 이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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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자리가 무섭다면 그는 나이들어도 영원히 소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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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짐을 질 사람이 나타나야 비로소 아버지는 쉴 수 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