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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 이야기]친고죄로 도입된 간통죄, 처음부터 사기-협박등에 악용돼”

Bawoo 2015. 12. 7. 19:59

“친고죄로 도입된 간통죄, 처음부터 사기-협박등에 악용돼”

 

‘식민지시기 형법과 성 통제’ 홍양희 교수 연구 발표 

일제의 간통죄 도입은 기혼 여성의 성(性)을 국가가 통제하는 결과를 낳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류 서양화가 나혜석은 1934년 ‘이혼고백서’에서 “정조는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 강요할 것이 아니다”며 정조관념의 해체를 주장했다. 사진은 나혜석의 삶을 그린 1979년 영화 ‘화조’. 동아일보DB
《 “최원택과 조구담은 1908년 결혼해 살다가 1923년 3월 최원택은 (아내) 조구담을 지금의 조구담 남편인 안재익에게 금 60원에 팔아서 30원은 그때 받고 나머지 30원은 언제든지 호적 수속을 마칠 때 받는다는 계약을 하고 … 속히 주지 않는다고 호적에는 아직 내 계집이라고 작년 9월 2일 조구담을 상대로 안재익과의 간통죄로 고소를 제기하는 동시에….” 1927년 대구에서 열린 재판을 다룬 그해 2월 2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돈을 받고 아내를 다른 남자에게 팔아넘긴 한 남자가 나머지 돈을 받아내기 위해 아내를 고소한 것이다. 최원택은 결국 패소했지만 이런 파렴치한 소송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일제가 도입했던 간통죄가 있었다. 》 


○ 시작부터 사기 협박에 악용돼 

간통죄는 올 2월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이후에도 “여성과 자녀를 보호하기 위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온다.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가 4일 개최한 학술대회 ‘성(聖·性)스러운 국민: 국가, 법, 젠더·섹슈얼리티’에서 홍양희 한양대 HK연구교수는 “‘포스트 간통죄’ 시대 이 문제에 제대로 접근하려면 간통죄가 근대 형법에서 어떻게 규율되기 시작했는지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간통죄가 대한민국 형법에 제정된 것은 1953년이지만 일제강점기 처음 도입된 것은 1912년 공포된 ‘조선 형사령’이다. 
 
홍 교수의 발표문 ‘선량한 풍속을 위하여: 식민지 시기 형법과 성(sexuality) 통제’에 따르면 당시에도 간통죄를 악용한 사기와 협박 사건이 자주 벌어졌다. 1930년 황해도 해주에서는 젊은 아내를 동네 부자 아들과 간통하게 한 뒤 남편이 돈을 뜯어낸 사건이 있었다. 1929년 서울에서는 딸을 첩으로 부자에게 시집보낸 뒤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간통으로 고소한 사건 등도 벌어졌다. 

간통죄는 또 며느리와 처를 학대하거나 보복성으로 고소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홍 교수는 “이 같은 문제는 간통죄가 피해자가 고소해야 공소할 수 있는 친고죄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말했다. 

아내를 팔아넘긴 뒤 오히려 간통죄로 고소한 사건을 다룬 동아일보 1927년 2월 2일자 기사. 동아일보DB

 

○ 처음에는 유부녀만 처벌
 

간통죄가 친고죄가 된 이유는 “피해자인 남편이 자신의 ‘명예와 이해’를 위해 간통 사실을 세상에 알리지 않으려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었다. 또 간통죄 도입 당시 처벌 대상은 ‘유부(有夫)의 부(婦)’, 즉 결혼한 여성으로 한정됐다. 남편은 바람을 피워도 혼인의 평화를 해치지 않을 수 있다는 논리로 처벌받지 않았다. 기혼 여성의 성을 부권(夫權)의 관점에서 다뤘던 것이다. 

간통죄 규정 개정 주장은 도입 초기부터 나온다. 1926년 법 개정을 위한 회의 자료에는 “간통죄를 처벌해 재판 기록을 남기면 자손이 혈통을 의심하게 돼 조상과 자손의 명예를 더럽힌다”며 처벌하지 말자는 주장도 나온다.
 
홍 교수는 “이는 일본 정책 당국이 ‘일본 민족의 순혈 혈통 보존’에 강박적으로 집착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전근대사회에서 성 통제의 대상은 주로 상층 신분 여성에 한정됐지만 일제의 간통죄 도입으로 기혼의 모든 여성의 성을 국가가 통제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1950년대 퀴어 장의 변동: 여성혐오의 전이와 동성애의 범죄화’ ‘나라를 위해 죽을 권리: 병역법과 남성적 국민 만들기’ ‘탈식민 국가의 ‘국민’ 경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전후 ‘내선결혼(內鮮結婚)’ 가족의 법적 지위’ 등의 주제가 발표됐다.

[동아일보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