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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부모들의 자식 사랑법

Bawoo 2015. 12. 9. 11:38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은 더 좋은 세상이
내 자식만 잘사는 세상은 아니지 않을까

“우리는 너와 어린이들 모두에게 더 좋은 세상을 물려줘야 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 부부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의 한 대목이다. 그들은 입으로만 ‘무거운 책임’을 논한 게 아니라 구체적 행동에 들어갔다. 52조원을 기부해 자선을 위한 사기업을 설립한 것이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등 미국의 거부들이 기부한 금액을 압도하는 금액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기부의 방식’이다.

 비영리자선재단이 아닌 투자도 하고 정치적 기부와 로비활동도 할 수 있는 기업투자형식을 취한 거다. 면세 혜택을 포기하면서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은 돈으로 움직일 수 있으니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정치적 압력 수단까지 확보한 것이다. 그들은 세금도 내고, 자선도 하고, 투자도 하고, 정치기부도 할 거다. 그들이 초심을 잃지 않는다면 이태껏 우리가 경험한 적 없는, 부모의 선의와 의지가 세상을 바꾸는 방식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이에 백악관도 페이스북에 “미래 세대가 출신에 따라 차별받지 않고 성공을 향해 균등한 기회를 갖도록 이끌어갈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논평을 냈고, 이미 기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빌 게이츠도 “맥스(저커버그의 딸)와 함께 태어난 아이들은 더 나은 세계에서 자라게 될 것”이라며 환호의 메시지를 남겼다. 미국에선 저커버그의 기부가 새로운 형식의 ‘자선 자본주의’ 경쟁을 자극할 것이라는 논평이 나온다. 빌 게이츠가 “기업은 이윤추구와 함께 빈곤층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써야 한다”며 ‘창조적 자본주의’를 외친 이래 미국 자본가들의 자선 자본주의는 내 자식뿐 아니라 남의 자식도 평등하게 잘사는 세상을 항해 새로운 형태로 나날이 진화하는 중이다. 미국의 금수저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는 방식은 이렇다.

 같은 시대 한국에서도 자식을 위해 세상을 바꾸려 했던 한 금수저 아빠로 인해 시끄럽다. 그의 직업은 국민들로부터 세상을 바꿀 힘을 위임받은 국회의원. 아들이 로스쿨 시험에서 낙제해 올 변호사시험을 치를 수 없게 되자 로스쿨 원장을 찾아가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이 불거진 신기남 의원이다. 그는 “부모 된 마음으로 상담을 한 것”이라고 변명한다. 한데 상담과정에서 이런 말을 했단다. “법무부에 얘기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을 현재의 50%에서 80%까지 올려주겠다.”

 ‘아빠는 네가 대를 이어 금수저를 물려줄 수 있도록 할 무거운 책임을 느낀다.’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느낀 무거운 책임감은 자식의 이익을 위해 국가정책도 바꿀 수 있다는 이기심으로 발현됐다. 그는 억울할지도 모른다. 로스쿨 자녀의 취업 청탁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국회의원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어디 그뿐인가. 한데 이런 부모들의 ‘맹활약’ 덕분에 우리 사회가 얻은 건 혼란과 도를 넘는 금수저·흙수저 갈등이다. 최근 로스쿨의 혼란도 이런 갈등에서 뻗어나온 가지로 보인다.

 꽤 탄탄한 중견기업의 한 간부는 최근 로스쿨 학생들이 법무부의 사법시험 4년 유예안에 반발해 ‘자퇴투쟁’을 벌인다는 말에 이렇게 냉소했다. “모두 자퇴하고 4년 안에 사시 봐서 다 통과되면 로스쿨 제도도 인정하겠다.” 우리 사회 중산층마저도 ‘로스쿨은 금수저들의 지위세습 관문’이라는 삐딱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열심히 일해 자식들 공부까진 시킬 수 있어도 번듯한 자리를 잡아주기는 힘든 중산층 부모들도 아이들 못지않게 좌절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우리 사회가 합의해 만든 로스쿨 제도까지 의심받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대한민국에선 자식의 미래가 ‘부모들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

 ‘더 나은 세상’. 모든 부모는 그런 세상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다. 금수저 부모들의 생각과 행동과 힘이 어느 방향을 향해 달리는지에 따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살 만하게 되느냐 갈등의 지옥이 되느냐를 좌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양선희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양선희의 시시각각] 금수저 부모들의 자식 사랑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