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정(孫傳庭/1593~1643) 명 말기의 장군. 이자성 반란군에게 패하여 전사함
1619년 진사 합격하고 영성(永城) 지현으로 부임함.
1621년 북경에서 이부(吏部) 험봉주사(驗封主事)로 발령을 받음.
1623년 낭중(郎中)으로 근무 중 위충현(魏忠贤)의 독재에 불만을 품고 귀향함.
1635년 가을에 다시 낭중으로 임명 받음
1636년 - 1637년 농민반란군의 토벌군에 합류하여 대승을 거둠. 당시 이자성은 반란군들 중 주요인물이 아니었음.
1639년 5월에 장헌충이 봉기하자 대반란의 불길은 다시금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이자성도 재기하여 하남을 중심으로 전전하였다. 이 해에 손전정(孫傳庭)은 양사창(楊嗣昌)의 탄핵을 받아 숭정황제의 명령으로 감옥에 갇힘.
1641년 2월 세력을 확대시킨 이자성 군은 하남의 중심 도시인 개봉(開封)을 포위하였다.
1641년 5월 옥중에 있던 전 병부상서 부종용(傅宗龍)을 석방하여 병부시랑 겸 섬서삼변도독으로 임명하였다. 9월 18일 부종용(傅宗龍)은 이자성 군대와 전투 후 패전하여 부종용(傅宗龍)이 피살됨.
1642년 2월 부종용(傅宗龍)의 후임으로 문관인 왕교년이 부임했으나 역시 전투에서 피살됨, 숭정황제는 손전정(孫傳庭)를 석방하고 병부(兵部)의 우시랑(右侍郎)을 제수하여 이자성의 군대를 막으라고 함. 9월 말에 2만의 병력으로 이자성 반란군을 격파하여 승전함.
1643년 9월 당현 전투에서 초기에는 연전연승하였으나 보급로를 막은 이자성의 전략에 패하여 4만여명의 군대를 잃고 200키로미터를 후퇴하여 동관으로 피신함. 11월 이자성의 동관 공격으로 전투 중에 피살됨. 이후 손전정(孫傳庭)의 처첩들이 우물에 투신하고 가족들이 피살되고 8세 자손 하나가 노인에게 양육되었다고 한다.
[출처: 정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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