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순지
윤순지(尹順之, 1591년 ~ 1666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본관은 해평(海平)이고, 자(字)는 낙천(樂天), 호(號)는 행명(連溟)이다.
감사 윤훤(尹暄)의 아들이다.[1] 작은할아버지 윤근수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며, 1620년 문과에 급제한 이후 조정의 관직을 두루 지냈으나 1627년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군무(軍務)를 다하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는 바람에 운둔하였다. 1629년 다시 관직에 나아갔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 인조를 호종하였다. 1643년 조선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다.[2] 1654년 지방 업무 처리에 문제가 발생하여 유배되었으나 곧 풀려나와 1657년 선조 수정 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1663년 공조 판서가 되었다.[3]
가족 관계
각주
[출처: 위키백과 - 윤순지 [Yun Su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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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년(광해군 4) 사마시를 거쳐 162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예문관검열·언관 등을 역임하였다. 인조 초에 경연관(經筵官)이 되고,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아버지가 평안도관찰사로서 적의 침입을 막지 못한 죄로 사사(賜死)되자 10년 동안 은거하였다.
1629년 홍문관부교리에 다시 등용되고, 1636년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이 적에게 포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사잇길로 성중에 들어가 왕을 호종(扈從)하였다. 환도 후 형조참의가 되고 1643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부사로 연경(燕京)에 다녀왔다.
1654년(효종 5) 경기도관찰사로 재직할 때 소송사건을 빨리 처리하지 않아 민원을 사서 유배되었다. 뒤에 풀려나, 1657년 실록수정청당상(實錄修正廳堂上)이 되어 『선조수정실록』의 편찬에 참여하였다. 도승지·육조의 참판·개성유수·한성판윤·대제학을 거쳐, 1663년 공조판서·좌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종조(從祖) 근수(根壽)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시(詩)·사(史)·서(書)·율(律)에도 뛰어났다. 겸손하고 근면하였으며 몸가짐이 단정하고 돈후하여 아버지의 전화(前禍)를 항상 잊지 않았다. 왕의 잘못이 있더라도 직언은 하지 않았으며 조정에 있어서도 객처럼 처신하였다. 저서로는 『행명집』이 있다.
[출처:다음백과-윤순지 (낙천(樂天)) [尹順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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