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달이 반도 안 지났는데 1년 동안 일어날 만한 초대형 사건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고, 이것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까 하고 숨을 죽인다.
중국 위험은 예상보다 더 크고 깊게 현실화되어 가고 말로만 듣던 통화전쟁도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극단적 행동을 제어하는 데 실패한 미국과 중국은 진퇴양난에 빠졌고, 이슬람 세계는 양대 종파 간의 갈등이 종교전쟁 직전까지 달음질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치 리더십의 난맥 속에서 국론은 갈라져 있고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점점 작아진다. 작년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경제위기설도 점점 에너지를 축적해 가고 중국 위험 폭발의 진원지에 근접해 있는 한국 경제가 최대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이런 안팎의 분위기 속에서도 국민들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화산 근처의 양떼들처럼 겉으로는 그저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20년 전 이맘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도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먹구름이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긴 장마의 시작인지 아니면 대형 태풍과 홍수의 전조인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대형 태풍인 줄도 모르고 국민들은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 9단 3명이 연출해내는 삼국지 드라마에 흠뻑 빠져 있었고, 관료사회는 청와대의 정책지침(OECD 가입, 금융정책 축소와 국제금융국 폐지, 환율 동결, 대기업 연쇄부도 방지)에 매달리고 있었다. 위기의 태풍이 코앞까지 다다랐는데 경제개혁법을 심의·통과시킬 국회 상임위원회는 3김 후보를 동행하느라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몰리며 추락했다. 모두가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하고 있었던 아픈 추억이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범세계적·전방위적이고 오래 누적된 것이다. 선진국들이 아직도 2008년 글로벌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가운데, 전 세계에 신흥국 위기가 확산되고 거대 중국의 잠재 위험이 현실화되는 등 검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비교환성 통화국으로서 경제가 완전개방·자유화된 한국의 방어능력은 취약하다.
또다시 20년 전과 같은 형태의 위기에 직면할 것인가? 이번에는 지난번의 급성 외화 유동성 위기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투자·소비 수요 부족으로 인한 저성장 속에서 경상수지의 불황적 흑자가 확대되는 축소 불균형적 만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수문 관리에 실패해 홍수에 댐이 무너졌다면, 지금은 극심한 가뭄 속에 호수가 말라 호수 바닥의 오물들이 떠오르는데 실개천 물을 퍼다 부으며 지쳐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호수의 오물은 누가, 언제 버린 것인가? 불완전하게 진행된 98~99년 4대 부문 구조조정 이후 한국은 중국 특수, 삼성 휴대전화 특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통계적 착시 등 세 가지 착시에 빠져 후속 구조조정을 게을리했다. 그리고 신성장 동력의 부재 속에서도 좀비기업·부실기업은 인기 영합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끈질기게 연명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2016년 정치·경제·사회 생태계는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확장성과 유연성을 잃고 박물관의 박제처럼 굳어져가면서 국가 전반적으로 고비용·저생산성 구조가 깊게 천착되어 있다. 견고한 담합 구조하에서 생성될 것은 생성되지 못하고 소멸돼야 할 것은 소멸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생태계는 늙고 메말라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본격적으로 정체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차제에 마른 호수를 준설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물론 당면한 대외 위기를 적극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위기대응은 대한민국의 생태계 특히 정치 생태계, 관료 생태계, 재벌·기업 생태계, 노동 생태계, 산업·기술 생태계, 교육 생태계, 가계·가정 생태계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를 차별화해 위기에서 구하게 될 것이다. 그 목표는 고비용·저생산성 해소에 두고 생성과 소멸, 진입과 퇴출을 억제하는 거대한 담합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호수의 바닥과 오물을 준설하는 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담합체계 속에 얽혀 있기 때문에 겹겹의 방어막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락한 국가 권위체계와 국가 리더십을 다시 굳건히 세워야 하고, 현재 최악의 정치정책 프로세스를 전면 개혁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문제는 사람과 리더십이다. 이제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총리가 대를 이어가며 성공시킨 독일 하르츠위원회의 국가 구조조정 정책을 우리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20년 만에 대한민국은 국가 구조조정의 적기를 다시금 맞았다. 지금의 위기가 우리에게 천금의 기회인 것이다. 일본은 90년대 버블 대붕괴 때가 국가 구조조정의 최적기였으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지금은 400m계주의 바통 터치 시기이고 이때 자주 승자가 바뀐다. 중국은 지금 개혁·개방 이후 최대의 전환기적 위기에 직면해 분투하고 있다. 중국이 다음 10년간 전환기 개혁에 성공하고 한국은 국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의 죄인이 될 것이며 계속 ‘선진도상국’에 머무를 것이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바보들의 행진을 멈추어야 한다. 이번 정치의 계절에는 모두가 여기에 논의를 집중해 결연한 마음으로 국론을 함께 모아야 한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출처: 중앙일보] [정덕구의 NEAR 와치] 이제 대한민국을 구조조정하자
중국 위험은 예상보다 더 크고 깊게 현실화되어 가고 말로만 듣던 통화전쟁도 가시화되고 있다. 북한 김정은의 극단적 행동을 제어하는 데 실패한 미국과 중국은 진퇴양난에 빠졌고, 이슬람 세계는 양대 종파 간의 갈등이 종교전쟁 직전까지 달음질치고 있다.
국내에서는 정치 리더십의 난맥 속에서 국론은 갈라져 있고 정치인들은 국민 앞에 점점 작아진다. 작년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경제위기설도 점점 에너지를 축적해 가고 중국 위험 폭발의 진원지에 근접해 있는 한국 경제가 최대 희생자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만연해 있다. 이런 안팎의 분위기 속에서도 국민들은 오랫동안 길들여진 화산 근처의 양떼들처럼 겉으로는 그저 무덤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많은 사람이 20년 전 이맘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때도 저 멀리서 다가오는 검은 먹구름이 지나가는 소나기인지 긴 장마의 시작인지 아니면 대형 태풍과 홍수의 전조인지 그 누구도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것이 대형 태풍인 줄도 모르고 국민들은 정치의 계절을 맞아 정치 9단 3명이 연출해내는 삼국지 드라마에 흠뻑 빠져 있었고, 관료사회는 청와대의 정책지침(OECD 가입, 금융정책 축소와 국제금융국 폐지, 환율 동결, 대기업 연쇄부도 방지)에 매달리고 있었다. 위기의 태풍이 코앞까지 다다랐는데 경제개혁법을 심의·통과시킬 국회 상임위원회는 3김 후보를 동행하느라 정족수를 채우지 못했다. 결국 대한민국은 벼랑 끝에 몰리며 추락했다. 모두가 바보들의 행진에 동참하고 있었던 아픈 추억이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은 범세계적·전방위적이고 오래 누적된 것이다. 선진국들이 아직도 2008년 글로벌 위기의 연장선상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허덕이는 가운데, 전 세계에 신흥국 위기가 확산되고 거대 중국의 잠재 위험이 현실화되는 등 검은 먹구름이 짙게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비교환성 통화국으로서 경제가 완전개방·자유화된 한국의 방어능력은 취약하다.
또다시 20년 전과 같은 형태의 위기에 직면할 것인가? 이번에는 지난번의 급성 외화 유동성 위기와는 아주 다른 형태의 위기가 다가오고 있다. 이제 우리는 투자·소비 수요 부족으로 인한 저성장 속에서 경상수지의 불황적 흑자가 확대되는 축소 불균형적 만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20년 전에는 수문 관리에 실패해 홍수에 댐이 무너졌다면, 지금은 극심한 가뭄 속에 호수가 말라 호수 바닥의 오물들이 떠오르는데 실개천 물을 퍼다 부으며 지쳐가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호수의 오물은 누가, 언제 버린 것인가? 불완전하게 진행된 98~99년 4대 부문 구조조정 이후 한국은 중국 특수, 삼성 휴대전화 특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통계적 착시 등 세 가지 착시에 빠져 후속 구조조정을 게을리했다. 그리고 신성장 동력의 부재 속에서도 좀비기업·부실기업은 인기 영합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끈질기게 연명해 왔다.
그 결과 한국의 2016년 정치·경제·사회 생태계는 포화상태에 이르렀으며, 확장성과 유연성을 잃고 박물관의 박제처럼 굳어져가면서 국가 전반적으로 고비용·저생산성 구조가 깊게 천착되어 있다. 견고한 담합 구조하에서 생성될 것은 생성되지 못하고 소멸돼야 할 것은 소멸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 생태계는 늙고 메말라가고 있다. 그 결과 한국은 본격적으로 정체기에 빠져들고 있다.
이제 대한민국을 구조조정해야 한다. 차제에 마른 호수를 준설하고 건강한 생태계를 복원시켜야 한다. 물론 당면한 대외 위기를 적극 방어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보다 근원적인 위기대응은 대한민국의 생태계 특히 정치 생태계, 관료 생태계, 재벌·기업 생태계, 노동 생태계, 산업·기술 생태계, 교육 생태계, 가계·가정 생태계 전반을 구조조정하는 것이다. 이것만이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를 차별화해 위기에서 구하게 될 것이다. 그 목표는 고비용·저생산성 해소에 두고 생성과 소멸, 진입과 퇴출을 억제하는 거대한 담합 구조를 정리해야 한다.
그러나 호수의 바닥과 오물을 준설하는 데에는 복잡한 이해관계들이 담합체계 속에 얽혀 있기 때문에 겹겹의 방어막이 드리워져 있을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추락한 국가 권위체계와 국가 리더십을 다시 굳건히 세워야 하고, 현재 최악의 정치정책 프로세스를 전면 개혁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문제는 사람과 리더십이다. 이제 슈뢰더 총리와 메르켈 총리가 대를 이어가며 성공시킨 독일 하르츠위원회의 국가 구조조정 정책을 우리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20년 만에 대한민국은 국가 구조조정의 적기를 다시금 맞았다. 지금의 위기가 우리에게 천금의 기회인 것이다. 일본은 90년대 버블 대붕괴 때가 국가 구조조정의 최적기였으나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지금은 400m계주의 바통 터치 시기이고 이때 자주 승자가 바뀐다. 중국은 지금 개혁·개방 이후 최대의 전환기적 위기에 직면해 분투하고 있다. 중국이 다음 10년간 전환기 개혁에 성공하고 한국은 국가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우리 모두가 민족사의 죄인이 될 것이며 계속 ‘선진도상국’에 머무를 것이다.
모두가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그리고 또 한 번의 바보들의 행진을 멈추어야 한다. 이번 정치의 계절에는 모두가 여기에 논의를 집중해 결연한 마음으로 국론을 함께 모아야 한다.
정덕구 NEAR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
[출처: 중앙일보] [정덕구의 NEAR 와치] 이제 대한민국을 구조조정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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