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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장(合葬) - - 박완호(1965~)

Bawoo 2016. 1. 14. 18:57

 

합장(合葬)

 

                                                                    - 박완호(1965~)

 
기사 이미지

 

눈물샘 다 말라버린 아버지
혼자 오래 누워 있던 어머니
시간과 시간을 포개어
이윽고 한 몸이 되었다
열여섯 해 만이었다
빗방울이라도 떨어지면
산비탈 연둣빛 풀잎들이
가느다란 허리로 춤을 춰댔다
달빛 켜지는 한밤중이면
아버지한테서 어머니한테로
흐르는 물소리 찰랑거리고
달빛 고봉으로 찬 봉분 속
달그락달그락
밥숟가락 마주치는 소리 환하다




오래 지병을 앓은 어머니와 “눈물샘”이 다 말라버리도록 고통의 생애를 산 아버지가 “열여섯 해 만”에 다시 무덤에서 만난다. 둘은 이승에서처럼 저승에서 다시 “포개어” 한 몸이 되었다. “연둣빛 풀잎들”과 “달빛”이 이들의 재회를 함께 기뻐한다. 불운의 현세(現世)가 사라진 곳에서 “밥숟가락 마주치는 소리”가 더욱 환하고, 죽음의 봉분이 “고봉” 밥처럼 풍요로우니 이들의 현세는 얼마나 아프고 괴로웠을까. 그러나 눈물겨운 현세에서 내세로 이어지는 이 못 말리는 사랑의 시간성이 그들의 불행을 압도한다. 보라, 죽음도 불행도 치명적인 사랑을 이기지 못한다. <오민석·시인·단국대 영문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합장(合葬)

 

 

 

박완호 시인
출생:충북 진천군
학력: 경희대학교 국어 국문학
데뷔:1991년 '동서문학'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