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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익]결빙의 아버지/우울한 샹송

Bawoo 2016. 1. 15. 23:57

 
결빙의 아버지 ― 이수익 (1942∼ )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벌 떨면서 
아버지 가랑이 사이로 발을 밀어 넣고 
그 가슴팍에 벌레처럼 파고들어 얼굴을 묻은 채 
겨우 잠이 들곤 했지요. 

요즈음도 추운 밤이면 
곁에서 잠든 아이들 이불깃을 덮어 주며 
늘 그런 추억으로 마음이 아프고, 
나를 품어 주던 그 가슴이 이제는 한 줌 뼛가루로 삭아
붉은 흙에 자취 없이 뒤섞여 있음을 생각하면 
옛날처럼 나는 다시 아버지 곁에 눕고 싶습니다. 

그런데 어머님, 
오늘은 영하의 한강교를 지나면서 문득 
나를 품에 안고 추위를 막아 주던 
예닐곱 살 적 그 겨울밤의 아버지가 
이승의 물로 화신(化身)해 있음을 보았습니다.  
품안에 부드럽고 여린 물살을 무사히 흘러 
바다로 가라고 
꽝 꽝 얼어붙은 잔등으로 혹한을 막으며 
하얗게 얼음으로 엎드려 있던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오늘처럼 추운 겨울날, 한 중년 신사가 한강을 지나고 있었다. 이때 자동차를 타고 있는지, 전철을 타고 있는지는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심히 한강을 바라보다가, 커다란 얼음 조각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얼음 조각들이 마치 아래의 자잘한 물살들을 품어주는 커다란 등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커다란 등. 그것은 이 중년 신사에게 몹시 익숙한, 그러나 한동안 잊고 있었던 아버지를 불러왔다. 어린 시절의 그는 외풍이 심한 집에 살았지만 추운 겨울에도 아버지의 체온으로 따뜻할 수 있었다. 이러한 추억이 떠오르면서, 한강이 순식간에 아버지로 변신하는 부분은 참 놀라운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 덕택에 중년의 신사는 오늘의 한강교 위에서 다시금 어린아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마법 같은 회상의 순간은 중년 신사의 건조한 일상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예전의 아버지가 아들의 언 발을 녹여 줬던 것처럼 말이다. 부자들만 유산이 있을까. 한강의 아버지는 가난했지만 아들은 좋은 기억, 훌륭한 유산을 받았다.

[동아일보 -나민애 문학평론가]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 되어 젖어있는 비애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의상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 내어 소리내어
나도 웃고 웃고 싶은 것일까

Narration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애정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 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찾을 수 있을까

그 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하면

그대 나는 어떤 미소를 띄우며
돌아올 사랑을 사랑을 맞이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