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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달리스크[Odalisque]를 그린 그림들

Bawoo 2016. 1. 30. 00:27

오달리스크[Odalisque]를 그린 그림들

 

 

Marià Fortuny - The Odalisque

 

 

 

Grande Odalisque painted by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1814)

 

 

 

Odalisque painted by Jules Joseph Lefebvre (1874)

 

 

 

A Reclining Odalisque, painted by Gustave Léonard de Jonghe, c. 1870

 

 

 

Odalisque with a slave by Jean Auguste Dominique Ingres, painted in 1842

 

François Boucher, L'Odalisque c. 1749, Louvre

 

 

 

[그림 자료 더 볼 수 있는 곳 -cafe.daum.net/lockedfish/2NeL/826   햇살이 머무는 정원]

 

 

[참고 자료]

 

오달리스크[Odalisque]

회화에서 나타나는 누드 또는 착의의 여인 유형.

중동 지방의 분위기를 띤 실내 배경과 의상을 갖추었으며 매우 관능적인 모습을 특징으로 한다. 오달리스크라는 말은 술탄의 하렘에 사는 첩을 나타내는 터키어가 프랑스에 와서 와전된 것이다. 이 주제는 19세기초 프랑스 회화에서 처음 널리 유행했으며 특히 J.A.D.앵그르, 외젠 들라크루아,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앙리 마티스 등이 많이 사용했다.

 

An odalisque (Turkish: Odalık) was a concubine in a Turkish harem, particularly the concubines in the household of the Ottoman sultan.

Etymology

 

The word "odalisque" is French in form and originates from the Turkish odalık, meaning "chambermaid", from oda, "chamber" or "room". It can also be transliterated odahlic, odalisk, and odaliq.

Joan DelPlato has described the term's shift in meaning from Turkish to English and French:

The English and French term odalisque (rarely odalique) derives from the Turkish 'oda', meaning "chamber"; thus an odalisque originally meant a chamber girl or attendant. In western usage, the term has come to refer specifically to the harem concubine. By the eighteenth century the term odalisque referred to the eroticized artistic genre in which a nominally eastern woman lies on her side on display for the spectator.[1]

Origin as the Turkish odalık

 

An odalık was not a concubine of the harem, but a maid, even if it was possible that she could become one. An odalık was ranked at the bottom of the social stratification of a harem, serving not the man of the household, but rather, his concubines and wives as personal chambermaids. Odalık were usually slaves given as gifts to the sultan by wealthy Turkish men. Generally, an odalık was never seen by the sultan but instead remained under the direct supervision of his mother, the Valide Sultan.

If an odalık was of extraordinary beauty or had exceptional talents in dancing or singing, she would be trained as a possible concubine. If selected, an odalık trained as a concubine would serve the sultan sexually and only after such sexual contact would she change in status, becoming thenceforth a concubine. In the Ottoman Empire, concubines encountered the sultan only once, unless she was especially skilled in dance, singing, or the sexual arts, thus gaining his attention. If a concubine's contact with the sultan resulted in the birth of a son, she would become one of his wives.

Later usage

 

W. S. Gilbert refers to the "Grace of an odalisque on a divan" in Colonel Calverley's song "If You Want A Receipt For That Popular Mystery" from the Gilbert and Sullivan opera Patience.

In popular use, the word odalisque also may refer to a mistress, concubine or paramour of a wealthy man.

During the 19th century, odalisques became common fantasy figures in the artistic movement known as Orientalism, being featured in many erotic paintings from that era.

By the later 19th century, Turkish writers such as Melek Hanum used the word odalisque to refer to slave-concubines when writing in English:

If any lady possesses a pretty-looking slave, the fact soon gets known. The gentlemen who wish to buy an odalisque or a wife, make their offers. Many Turks, indeed, prefer to take a slave as a wife, as, in such case, there is no need to dread fathers, mothers, or brothers-in-law, and other undesirable relations.[2]

In 2011 the Law Society of British Columbia brought a discipline hearing against an unnamed lawyer for referring to another lawyer's client as living with an odalisque. The Law Society found the use of the word, though an extremely poor choice, did not rise to the level of professional misconduct.

 

 

[터키 술탄과 오달리스크의 궁정이었던 하렘[Turkey Sultan & Odalisque Palace Harem]

중세시대 중동 지역 터키의 하렘은 엄중한 감시와 금기의 장소였다. 

아랍어로 하렘은 신성한 지역을 뜻하는데 부녀자가 남편외 다른 남자와 마주치지 않고

일상 생활을 할수 있도록 만든 공간이다.

처음에 하렘은 터키 술탄의 궁정 일부분으로 여성들이 거주하는 일종의 별관이었다.

하렘은 술탄의 생모가 거주하는 지역과 술탄의 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과

술탄의 아들과 딸들이 거주하는 세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나 이 술탄의 가족들을 위한 거쳐였던 하렘이 후궁과 여자 노예들이 들어와 함께

살게 되면서 부터 또 다른 구역으로 변해가게 되었다.

 

이슬람 제국의 제후였던 칼리프들은 지위를 가진 동안 그들의 삶에 있어 하렘에 두는 아름다운 노예 여성의 숫자는 부와 권력의 지표였다.

소녀들이 하렘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일종의 노예 생활을 시작하는 의식을 치루어야 했다.

 

그것은 기초적이고도 필수적인 순결 검사였으며 이슬람에 귀의한다는 동의를 맹세해야 했다.

하렘에 들어간 노예 여성들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 받아 외부 세계의 모든 인연을 끊고

하렘에 거주하며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하렘에서 이들이 바랬던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술탄의 관심이었다.

이들은 색공을 구사하여 술탄 부인의 반열에 오르기를 기대했지만

그것은 상당히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수도 있었다.

만약 여성의 질투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경우에는 언제든지 주인의 뜻에 따라 

제제가 가해질수 있었다. 

첩의 상황에서 이들이 안정된 발판을 얻을수 있는 유일했던 방법은 주인의 아들을 출산하는 것이었다.

이후 태어난 사내아이는 주인의 원 부인이 그 아들을 자기의 아들로 삼았다.

터키 이스탄불의 노예 여성 오달리스크 - 이슬람 역사 대부분의 여성들은 노예였다 

 

오달리스크(Odalisque)는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궁정 하녀 오달릭(Odalik)을 프랑스식으로 발음하여 유래된 말이다.

원래 그녀들은 후궁의 시중을 드는 하녀였으나 유럽에서 잃은 오리엔탈리즘으로 이슬람 세계에 대한 동경과 상상력으로

터키 황제의 쾌락을 위해 시중을 드는 아름다운 노예로 와전이 된 것이다.

 

남자의 정력은 평생 마르지 않는 샘물이지만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분명 화수분이건만 필요하다고 매번 용솟음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신체적 한계로 남자 매춘부가 여자 매춘부보다 적다.

그럼에도 남자들은 자신의 정력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정력이 무한대일 줄 아는 것이다.

본인밖에는 아무도 확인할 수 없는 것이지만,

이른바 정력남의 로망은 자신의 성적 욕망을 채워줄 하렘을 소유하는 것이다.

이슬람의 술탄에게 많은 처첩을 거느리는 것은 권력과 부와 정력을 상징했다.

하렘의 규모는 술탄의 능력에 따라 차이를 보이는데,

부유한 술탄은 보통 10여 명, 제국의 술탄은 무려 300~400명의 여자를 두었다.

하렘에서 사는 여자들을 통틀어 오달리스크라고 하는데, 술탄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노예들이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총애 정도에 따라 신분에 차이가 났다.

술탄의 아이를 낳은 여자는 노예이면서도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는 혜택을 거머쥐었다.

이 때문에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눈에 들기 위해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부었다.

앵그르의 오달리스크 - 1814년

 

앵그르가 그렸던 오달리스크는 아이러니하게도

근래 MBC TV의 월,화 드라마 [빛과 그림자]에서의 무대속 배경의 그림으로 등장한다. 

주인공 기태(안재욱)를 사랑하는 채영(손담비)이 운영하는

70.80년대 서울의 고급 요정 술집을 재현시킨 무대의 벽화로 볼수 있었다.

술탄의 총애를 누리려고 했던 여러 오달리스크들의 세계에서도 암투가 치열했다.

그들은 잠재적 라이벌이 낳은 아들에 대해 음식에 몰래 독을 넣는 방법으로 독살시키기도 하였다.

오달리스크들의 서열은 술탄이 죽은후에 그녀들이 낳은 아이들의 성별에 의해서 정해지게 되었다.

오달리스크가 낳은 사내아이들중 그 아이가 새로운 술탄이 될때에 비로소 권력을 누릴수 있었다.

그 이전에는 놀랍게도 먼저 태어난 형제들에게 규칙적이고도 지속적인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외부와 격리된 하렘에서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살지만,

남자라곤 달랑 한 명이다보니 사랑받지 못하는 날이 더 많다.

성적으로 가장 왕성한 나이지만 섹스하는 날보다 독수공방하는 날이 더 많은 오달리스크는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한 방편으로 음악을 듣기도 한다.

 

오랜 세월동안 색공이 검정된 오달리스크들은 여성 노예외에 환관,내시(그리스어로 번역하면 침대를 지키는 사람의 뜻)가

하렘의 질서와 상호간의 대화를 소통시키는 유일한 경비원 역할로 따라 들어 갔다.

이 환관의 종류는 두가지 부류가 있었다.

한가지는 아동기에 거세를 하여 수염이 자라지 않고 소년의 목소리를 가졌지만

여성을 개인적으로 이성적 상대로 인식하지 못하는자라 했다.

또 다른 한가지의 환관 형태는 불완전 환관(아동기와 청소년기에 고자가 아닌)이었다.

즉 넓은 어깨와 근육을 가진 남자의 특징을 가진 자라도

모든 사람들이 성욕을 가지지 않은자로 인식할수 있는 얼굴 모습과 머리카락의 모습과 

충분히 낮은 저음의 목소리를 갖추고 악기를 잘 다룰수 있는 재주를 가진자라야 했다.

환관들과 수년동안 강박 관념의 꿈을 안고 술탄의 시선을 기다리고 살았던 오달리스크들은

노예적인 형태에서 보면 신분적으로 그들과 명료한 차이는 없었다.

환관은 왕자만들기에 대한 꿈을 품고 있었던 오달리스크들의 친구였던 것이다.

오달리스크는 술탄의 사랑을 받기 위해 몸매 관리는 물론 성적 기교를 배우는 데에 큰 돈을 쓴다.

 하지만 정력이 넘치는 술탄도 매일 밤 많은 오달리스크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술탄이 아니면 섹스를 할 기회가 없었던 오달리스크는 성 충동을 달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또한 술탄은 환관에게 하렘에서 오달리스크들이 남성적인 열망에 빠지는 것을 관찰하는 임무를 주어 감시하게 했다. 

그것에 위배되는 유죄를 저지른 오달리스크는 비단 밧줄로 교살시키거나 보스포러스 해협의 바다에 빠뜨려 익사시켰다. 

[출 처: http://blog.daum.net/wbg2997/7521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