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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정홍, 이장님 정든 것 끼리, 쌀밥

Bawoo 2016. 2. 19. 07:26

서정홍 시(1)


이장님

우리 마을에서 태어나, 예순이 넘도록 단 한번도 딴마
음 먹지 않고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이장님은 다 안다. 솔
숲 아래 할미꽃 피는 무덤은 누구네 무덤인지, 언덕아래
풀만자란 저 밭은 누구네 밭인지, 잔칫날 돼지 잡을 때 쓰
는 긴 칼은 누구네 집에 있는지, 해마다 고추 농사는 누가
가장 잘 짓는지, 만식이 아재 이마 상처는 왜 생겼는지,
샘터 어르신은 왜 부인한테 찍소리 못하고 사는지, 앉았다
하면 돈 자랑만 하고 땡전 한 푼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누군
지, 글깨나 배웠다고 일은 하지 않고 주둥이만 살아서 떠
들어 대는 사람은 누군지, 누구네 자식이 실직을 했는지,
산청 할아버지 피우는 담배는 어느 아들이 사 준 것인지,
개움울물 줄어 들면 누구네 논에 물을 대고 있는 지,
누구네 똥개가 밤마다 시끄럽게 짖어대는지....


정든 것 끼리 정 붙이고

외할머니는
낡은 집 절대 고치지 않고 산다.
누렇게 때묻은 벽지 그대로
눌어붙은 장판지 그대로
변소문 삐걱거리는 그대로
다 떨어진 담요와 이불 그대로
다락방에 쥐 몇마리 들락거리는 그대로
얼마 남지 않은 나날,
정든것 끼리 정 붙이고 산다.


쌀밥


백가지 곡식 가운데 쌀이 으뜸이다.
죽은 사람 입에 넣어 준다는 쌀.
그래서 저승까지 가지고 간다는 쌀.
농부들의 정성과 철마다 피는 들꽂들의 숨결과
나비와 벌과 새들의 노래가 있어
온 생명이 다 들어 있다는 쌀.
백가지 약보다 좋고
먹으면 먹을 수록 마음이 고와지고,
이웃을 도울 줄 아는 착한 마음이
저절로 생기는 쌀.
수천년 우리 겨레의 목숨을 이어 온 쌀.
쌀이 후손들의 목숨을 이어 줄 것이다.

사람은 쌀로 지은 밥을 나누어 먹어야 한다.
온갖 원망과 미움 다 녹이는 밥.
흩어진 식구들 한데 모으는 밥
산사람 죽은 사람 이어 주는 밥.
밥을 나누어 먹어 본 사람만이
사람 귀한 줄 알고
깊은 정이 무엇인지 안다.

 

 

쌀장사와 쌀농사

민노총 사무실에서 일하는 후배한테서 전화가 왔습니
다. " 선배님, 요즘 우찌 지냅니꺼? 아이들은 자꾸 자라고
밥은 먹고 살아야겠는데 뭐든지 쉬운게 없습니더. 그래서
마누라랑 쌀 장사나 한번 해 볼까 하는데 괜찮을까요?"
" 이 사람아, 먹고 사는게 얼마나 큰일인데....젊은 사람이
쌀장사가 아니라 쌀 농사를 지어야지. 늙은 농부들이 언제까
지 살아서 농사를 자꾸 지어 줄것 같은 가."

밥 먹고사는 게 큰일인 줄 알면서, 아무도 먹고 살수 있
는 농사는 짓지 않으려고 합니다. 늙고 병든 농부들이 지어
놓은 곡식을 팔아서, 그 남은 이익금으로 먹고살려고 합니
다. 이제 몇 안남은 농부들 세상 뜨고 나면 우찌 살라꼬.

 

          " 내가 가장 착해질 때" < 나라말. 2008>

 

 

 

*    *    *

 

이장님 시를 읽으면서 저절로 웃음 금습니다.

" 아! 아! 마을 회관에서 알려 드리것습니다."

 

서글픈 농촌 현실이지만 그래도 이런 이장님이 계시면

그 마을 분들은 마음 든든할 것 같습니다.

시시콜콜 한 람 한 사람 사정 다 알고, 넉넉히 품어 주면서

희생과 헌신을 하시는 이장님이십니다.

 

우리 어릴 적 할머니들이 그러셨습니다.

얼마나 총기가 좋으신지

' 아! 오늘은 누구네 아기 태어 난 날이고, 오늘은 누구댁 색시

시집 온 날이 꼭  5년째여 ~

오늘 우물 옆에 있는 00댁 시엄씨 돌아가신 제사날이구만...

 

새 것을 좋아하는 시대에

헤여지고 낡아도 차마 버리지 못하고

함께 한 정으로 불편함을 견뎌내며 살아가는 할머니

 

생각 해 보면 사람이 평생을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이 으뜸은 으뜸입니다.

다른 어떤 것이 평생 그렇게 물리지 않을 수 있을지요.

 

서정홍 시인은 합천 황매산 자락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사는 그야말로 농부시인입니다. 

 

이전에 홍세화씨 책 어디선가

프랑스에서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일반인들이 시를 이백편 정도는 외운다는 얘기,

읽으면서 부러웠던 적이 있습니다

 

시를 외우다 보면 시를 좋아하게 되고

시를 쓰게되어...누구나 시인이 되는 세상

 

누구 사정은 누가 제일 잘 안다고

 

농부가 시를 쓰고, 회사원이 시를 쓰고

공장 기술자가 시를 쓰고

의사가 시를 쓰고, 상인이 시를 쓰고...

 

칠십 팔십 줄에 들어 한글을 처음 배우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뚤빼뚤 시를 쓰면...

 

그래도 시인들이 사는 세상이니

좀 따뜻하고, 좀 아름답지 않을까요

 

아빠가 시를 읽고, 엄마가 시를 쓰

자녀를 학대하고 죽음으로 내 모는 일이 없지 않을까요

 

시를쓰는 사장님 쯤 되면 직원들이 가족 같아서

이해타산만 앞세워 그렇게 쉽게

임금을 삭감하거나 해고 하지 못하지 않을까요

 

그 누구보다 정치인들이 시를 쓰

국회의원들이 시인이 되면 좋겠습니다.

 

마을 이장님처럼 제 국민들을 위하는

정치를 할지도 모를일이지요.

 

출처 : 사람 향기
글쓴이 : 동피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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