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항 3부두
김준태
예나 다름없이 샛푸르다
45년 만에 찾은 부산항 제3부두
1964년부터 1973년까지였지
31만 2,853명 청룡맹호백마부대 병사들은
남십자성 멀고 먼 베트남 전쟁터로 떠났지
미안한 마음도 모르고 미안한 생각도 없이
온 나라가 땅굴로 뚫린 지뢰밭뿐인 나라로
그 시절 돌아오지 못한 4960명 젊은이 몸
오늘은 파도로 밀려와 방파제를 때리는가
돌아온 병사는 아들 낳고 손자도 낳았는데
돌아오지 못한 병사는 지금도 젊은 넋인가
지금도 도마뱀이 울어대는 베트남 정글인가
45년 만에 찾은 부산항 제3부두
네 말없이 몇 잔의 소주를 부어놓고
경부고속도로를 굴러가는 수백만 대의
Made in Korea 디지털 오토카를 바라본다
Made in Korea 기쁨과 슬픔의 옆얼굴을 본다
청자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따이한 병사들의
노래를 듣는다 그들의 눈동자가 내 가슴팍을
깊숙이 비비는 아 난해한 몸부림을 느낀다
예나 다름없이 태평양 삼각파도가 거세다
내 늙어 45년 만에 찾아온 부산항 제3부두
눈물을 훔치며 베트남으로 떠나던 그때처럼
끼룩 끼루룩 갈매기 떼 울음소리도 여전하다
입술에 젖는 술잔도 얼음 속 칼날처럼 차갑다.
—《작가와 사회》2014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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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1954년 베트남이 승리하면서 종결되었다. 그렇지만 같은 해 7월 제네바 협정에 따라 소련이 지원하는 북부와 미국이 지원하는 남부로 분할되었다. 그 후 북베트남의 게릴라 활동과 남베트남 내의 친공산주의자들이 반란을 일으켜 미국의 개입을 가져온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베트남 전쟁)을 겪었다. 북베트남은 제네바 협정에 따라 보통선거로 베트남에 단일정부를 구성할 것을 주장했으나 미국은 거부하고 반공정부인 남베트남 공화국을 세우고자 했다.
이에 1959년 북베트남이 남베트남 정권을 미국의 하수인이라고 보고 공격했다. 1961년 미국이 도미노 이론을 내세워 정규군을 파견하면서 북베트남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프랑스의 식민지 건설에 대한 베트남 민중들의 항전이라면, 제2차 인도차이나 전쟁은 미국의 침략에 대한 베트남 민중들의 항전이었다. 1973년 미국이 철수하면서 휴전되었고, 1976년 북베트남의 주도로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이 탄생되었다.(송정남, 「베트남의 역사」, 부산대학교 출판부, 2000, 439~603쪽)
그 베트남 전쟁에 “1964년부터 1973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대한민국의 “31만 2,853명 청룡맹호백마부대 병사들”이 참전했다. 그 결과 “4,960명 젊은이”들이 고국에 돌아오지 못했다. 사망자, 사상자, 실종자, 고엽제로 인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참전 용사 등 엄청난 군인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파병의 대가로 받은 지원금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경제적인 이익을 가져왔지만 희생은 너무 컸다. 그러므로 “45년 만에 찾은 부산항 제3부두/ 네 말없이 몇 잔의 소주를 부어놓고” 참회하는 우리의 자세는 필요하다. 그 어떤 전쟁도 용인할 수 없는 것이다.[ 맹문재 (시인) ]
[출처: 책 67~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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