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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오 소설] 세상의 모든 저녁 - 임철우

Bawoo 2016. 2. 24. 19:50

 

세상의 모든 저녁

                                      - 임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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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세상의 모든 저녁>을 읽고

 정수인

  임철우의 <세상의 모든 저녁>은 유하의 시 <세상의 모든 저녁>을 바탕으로 창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유하의 <세상의 모든 저녁>이라는 시를 찾아 읽어보니, 뒤에 해설부분에 쓰인 것처럼 정말 3편의 연작시 중에 1편을 중심으로 쓰여 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특히 인상적이면서도 이 작품의 주인공 ‘허만석’과 맞아떨어지는 문장이 세 개가 있었다. “단 하나 무너짐을 위해 생의 날개는 그토록 퍼덕였던가.”,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견디는 것이기에.”, “소멸과의 기나긴 싸움을 끝낸 노을처럼 붉게 물들어 쓸쓸하게 허물어진다는 것.” 이 작품의 내용은 허만석이라는 사람이 죽음을 맞기까지 그간 살아온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의 인생은 안쓰럽다. 그리고 마지막 죽는 모습마저도 애처롭다.

 

  그는 고작해야 네 평 남짓한 쪽방에서 산다. 얼핏 감옥의 독방 같은 느낌마저 주는 곳이다. 그 곳이 그의 유일한 안식처다. 그에게 진정한 안식을 제공하고 있지는 못하는 것 같지만 말이다. 그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생계지원금을 받고 생활한다. 그에게는 이렇다 할 가족이 없다. 며느리와 손자는 브라질로 손자 몫의 유산을 가지고 브라질로 떠났고, 그는 매일 그 감옥 같은 방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그나마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배를 채우고, 텔레비전을 보면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다 107호 엘에이 아주머니가 이사를 가고 버려진 옹기를 보며 과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는 옹기장이였고, 한 때 초심이라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애까지 낳았지만, 아이가 죽고 초심을 떠나 그의 천성에 따라 역마의 삶을 살다가, 옹기산업조차 쇠퇴하면서 건어물 장사를 하다가 40대 초반에 어찌어찌하다 아이 하나 딸린 여자를 만나 살다가, 그 아내마저 죽고 혼자 살아가고 있던 것이다. 초심과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데, 초심과의 사이에서 난 자식인 옥주가 죽자, 그는 그의 슬픔에 가득 차 초심을 떠나버린다. 어미인 초심이야말로 더 깊고 큰 어둠속에 갇혀버렸다는 사실을 미처 헤아리지 못하고 떠나버리는데, 초심을 진정으로 사랑했었음을 뒤늦게 깨닫지만 이미 되돌아가기엔 늦어버린 시기였다.

 

  그가 만약 그때 초심과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그의 인생은 달라졌을지 모른다. 초심이 결국 재취를 해서 마흔 살을 다 채우지 못하고 죽었다고 하지만,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그 둘의 생의 끝이 다른 국면을 맞았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도 그의 인생에 회한을 느끼고, 초심이를 버린 것에 대해서 후회와 어리석음의 죄의식 때문에 옹기 어딘가에 새를 그려 넣었을 것이다. 생을 다 살기 전에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방향을 미리 알고 답을 알면 정말 좋을 텐데, 우리 모두가 그렇지는 않더라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지나고 나면 깨닫고 후회하는 법이다. 시간이란 되돌릴 수 없는데 말이다. 나 또한 그런 경험이 많지만, 후회하고 내 스스로를 꾸짖으며 살기에는 또 앞으로 남은 인생이 너무 아깝다고 느껴져서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며 옛날 일에 매달리지 않는 편이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제 때에 제 할 일을 알고 실천하는 삶이라고 생각한다.

 

  초심에게 상처를 준 것은 분명 그의 잘못이지만, 그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음도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누이를 잃고 아버지를 잃어 세상에 혼자가 되었다.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결국 잃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그는 소설에서 나오는 말마따나 뭔가를 얻으면 또 다른 무언가를 잃게 된다는 걸 체득했기에, 그가 가진 두려움과 강박관념이 커져서 초심에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초심을 보고 떠나온 다음부터 그의 인생은 내리막길이었다고 한다. 떠나온 자도 남겨진 자도 고통 받는 삶이었다는 점이 안타깝다.

 

  그가 죽고 혼이 되어 떠나기 전에 한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래, 어쩌면 나는 그 좁고 어두운 구멍만을 평생 들여다보며 살아온 것인지도 몰라.” 그가 말하는 구멍의 정확한 의미는 모르겠지만, 평생 그 어두운 우물 속 구멍만을 보고 살았다는데서 후회로만 점철된 삶도 결코 올바른 삶은 아니라는 것은 알았다.

  인간은 어찌됐건 죽는다. 그리고 죽을 때에는 모두 혼자다. 한 날 한 시에 죽을 수는 없는 것이다. 허만석은 죽고 나서 혼이 되어 자신의 육신을 보면서, 죽어도 왜 하필 저런 자세로 죽었나 생각한다. 그리고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풍경이란 것이 고작 냄비 바닥이라는 것을 알고는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슬퍼한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죽고 싶었을 뿐인데, 그렇게 죽는 것일까 하고. 그가 죽기 전 아래층 황씨가 변기에 걸터앉은 자세 그대로,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든 채 빳빳하게 굳어있는 모습을 보고 안쓰러워하던 그인데, 그 자신 또한 냄비에 얼굴을 처박고 죽은 모습이었으니 얼마나 초라하고 슬픈 마음이 들까.

 

  이 소설은 인간 누구나가 맞이하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사용했다. 실제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는 우리기에, 실제로 주변에 사는 노인이 홀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하더라도 잘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문제를 뉴스로도 많이 접했지만, 소설로 읽고, 더군다나 그 독거노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의 내면과 심정을 알게 되어서 마음이 짠했던 작품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아파트에 살았어도 친한 이웃이 있었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교류한 적이 많았는데, 요즘은 아예 개인주의적으로만 사는 것 같아서 아쉬운 점이 있다. 물론 이 소설을 읽고 삶의 태도에 변화를 일으키고 공존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렇게 잠시 동안은 반성을 하지만 또 다시 잊고 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소설을 읽고 단 한사람만이라도 삶의 태도가 변화하고 이웃과 공존하는 삶을 산다면 이 소설은 그 자체로 굉장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웃과의 공존뿐만 아니라 인간과 그 어떠한 생명체 누구나가 겪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