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치명적 선택
리처드 번스타인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672쪽, 3만3000원
중국 지도자들은 ‘G2(Group of Two)’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중국은 그저 세계에서 가장 큰 개발도상국일 뿐이라고 말한다. 겸손함의 발로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G2로서 국제사회의 책임을 다하라는 미국의 공세를 회피하려는 목적이 더 크다. 용어 싸움에서 보이듯 미·중 양국은 현재 곳곳에서 부딪치고 있다. 남중국해에서 긴장 수위를 올리는가 하면 국제 질서 개편을 놓고도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인다.
책은 미·중 적대감의 원형을 1945년에서 찾고 있다. 일본 패망을 전후로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과 마오쩌둥(毛澤東)의 공산당 사이에서 협상을 중재했던 미국의 노력이 어떻게 실패로 돌아갔는가를 상세히 그리고 있다. 이어진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은 적대감의 만개 상태다.
책에는 세 가지 장점이 있다. 첫 번째는 유려한 서술이다. 저자가 미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사를 공부했고 또 베이징에서 특파원 생활을 한 까닭인지 편안한 문체와 뛰어난 이야기 전개로 인해 600쪽이 넘는 적지 않은 분량에도 피로감을 느끼기 어렵다.
두 번째는 방대한 자료와 꼼꼼한 집필을 통해 많은 에피소드를 전해준다는 점이다.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제기했다는 ‘장제스 암살 계획설’이 특히 눈에 띈다. 이 계획은 유야무야 됐지만 베트남 전 대통령 응오딘지엠이 케네디 행정부의 승인을 받은 국내 정적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개는 우리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준다.
세 번째는 통찰력이다. ‘스스로의 잘못이 알려질 수 있었던 국민당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불명예를 뒤집어 써야 했지만 멀리 떨어져 있고 선전을 활용해 잘못을 숨길 수 있었던 공산당은 무죄 추정의 덕을 보게 됐다’는 저자의 시각은 당시 무능과 부패의 대명사로 낙인 찍힌 장제스에 대한 일종의 변호다. 반면 마오쩌둥을 찬양한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은 공산당에 의해 철저하게 계획된 선전 작품이란 지적이다.
미국의 중재는 왜 실패했나. 국민당과 공산당의 속내를 꿰뚫어 보지 못한 데 있다. “저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이 있을 수 없다”는 장제스와 “두 개의 태양이 있으면 어떠냐. 그 중 하나를 인민이 선택하게 하라”며 맞섰던 마오쩌둥 간의 양보할 수 없는 패권 의식을 간과한 데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남는다. 70여 년이 지난 현재 미국은 중국의 속을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유상철 논설위원 겸 중국전문기자 you.sangchul@joongang.co.kr
정적 암살대 책임자였던 저우언라이
중국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인민의 총리’로 신격화돼 있다. 잘 생긴 외모, 품위 넘치는 교양, 자상한 마음씨 등 반신반인(半神半人)의 경지로 묘사된다. 이는 참담한 문화대혁명의 광풍이 지난 뒤 실추된 마오쩌둥의 이미지를 대신해 누군가 공산당을 대표할 인물이 필요한 데 따른 결과다.
그런 저우언라이가 무자비하게 정적을 살해하는 암살대 책임자였다는 사실은 별로 알려져 있지 않다. 책에선 저우가 중국 공산당의 비밀경찰대인 중앙특별행동과를 창설하고 산하에 홍대(紅隊)라는 암살대를 운영했음을 밝히고 있다. 1931년 저우의 요원이었던 구순장(顧順章)이 국민당 경찰에 체포돼 정보를 누설하자 저우는 이에 대한 보복으로 15명 가량의 구순장 일가족 전원을 암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이 명령은 정확하게 이행됐다.
저우는 1919년 각오사(覺悟社)를 설립해 학생운동을 할 때도 5번(五號)이란 말과 발음이 같은 ‘우하오(伍豪)’라는 별칭을 사용한 적이 있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