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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냉혹, 숙종의 두 얼굴 - 숙종 : 장희빈과 최숙빈을 정치판의 패로 쓰다

Bawoo 2016. 4. 16. 23:02

조선의 19대 왕 숙종은 상반된 두 얼굴을 지닌 임금이다. 그것은 오늘날 즐겨보는 사극에 고스란히 투영돼 있다.

최근 드라마에서 숙종 역을 맡은 배우들을 살펴보자. '동이'(2010년)에서는 지진희가 숙종을 연기했고, '장옥정, 사랑에 살다'(2013년)에선 유아인이 뒤를 이었다. 시청자들이 보기에 달콤한 캐릭터다. 그런데 얼마 전 막을 올린 '대박'은 180도 다른 선택을 했다.

이번에는 최민수가 분한 냉혹한 임금이다. 달콤하거나 냉혹하거나, 이 극과 극의 이미지는 숙종이라는 역사인물을 흥미롭게 만든다. 실제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사실 숙종이 사극에 단골 출연하게 된 것은 다 그이가 만들어낸 신데렐라들 덕분이다. 장희빈과 최숙빈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장희빈은 궁녀 출신으로 후궁을 거쳐 왕비에 오른 인물이다. 이는 조선왕조 500년을 통틀어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숙종은 두 살 연상인 그녀를 조선의 국모로 삼기 위해 조강지처(인현왕후)마저 내쫓았다. 최숙빈의 벼락출세도 장희빈에 뒤지지 않는다. 그녀는 원래 궁녀보다도 못한 무수리 신분이었다. 궁중에서 물긷고 빨래하다가 일약 후궁이 된 것이다. 비록 왕비 노릇은 못 해봤지만 숙종의 총애를 듬뿍 받았다.

두 여인에게 숙종은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돼주었다. 백마 탄 왕자요, 달콤한 판타지다. 하지만 그 실체는 냉혹한 승부사의 독사과였다. 숙종은 46년이나 재위하면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했다. 특히 그는 '환국(換局 : 집권세력의 갑작스러운 교체)'이라는 정치적 도박을 애용했다.

당시 조선에서는 서인당과 남인당이 서로 다투며 조정을 이끌었다. 숙종은 한쪽의 힘이 커질 때마다 트집을 잡아 쓸어버리는 강수를 뒀다. 이를 위해 신데렐라들을 정치판의 패로 쓰고 헌신짝처럼 버렸다.

1680년 숙종은 왕실 장막을 멋대로 유용한 남인당의 행태에 분노한 나머지 서인당으로 정권을 교체했다. 허적, 윤휴 등 남인 거물들이 목숨을 잃었고 조정은 서인 일색이 되었다(경신환국).

그러나 서인당이 강경한 공론으로 압박하자 임금은 남인당의 집안에서 궁에 들인 장희빈을 가까이한다. 1689년 장희빈이 낳은 왕자 균(훗날의 경종)을 서둘러 세자에 책봉한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숙종은 반발하는 서인들을 대거 숙청하고 그 영수 송시열과 김수항은 유배 보내 죽였다(기사환국). 인현왕후를 내쫓고 장희빈을 왕비로 세운 것도 이 무렵이다.

하지만 기사회생한 남인천하도 오래가지 못했다. 1694년 서인당의 소론 계열에서 인현왕후 복위운동을 펼치는 가운데 남인당이 이를 가혹하게 탄압하자 숙종은 또 메스를 꺼내든다. 조정은 다시 서인들의 손에 넘어갔고 인현왕후도 궁으로 돌아왔다(갑술환국).

빈으로 강등된 장희빈은 1701년 인현왕후의 죽음과 함께 국모를 저주했다는 죄로 숙종에게 사약을 받는다. 장희빈의 복위와 남인당의 재집권을 우려한 서인당의 음모였다. 이 일에 앞장선 여인이 최숙빈이었다. 그녀는 아들 연잉군(훗날의 영조)의 미래를 위해 서인들과 손잡고 베갯머리 송사를 감행했다.

숙종은 왕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나타나면 서인당이고 남인당이고 가차 없이 칼을 휘둘렀다. 여인에게 갖는 본연의 감정에도 정치적 의미를 부여했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는 묵은 의리와 정을 털어버렸다. 숙종은 172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냉혹한 군주의 길을 걸었다. 왕권을 안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최숙빈을 사가로 내보냈고, 장희빈 소생인 세자를 제거하려 했다.

달콤한 냉혹! 숙종에게 이보다 잘 어울리는 수식어가 있을까. 그것은 또한 시대를 막론하고 현실정치가 가진 속성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유권자는 정치인이 제시하는 판타지가 달콤하면 뽑아준다. 그러나 정치인은 냉혹한 권력의 논리에 따라 민의를 배반하기 일쑤다. 그래도 신데렐라들은 굴하지 않는다. 속고 또 속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꿈꾼다. 그 작고 고단한 소망들이 쌓여 세상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된다. 그렇게 드라마는 계속된다. [머니투데이 권경률 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