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거북선이 일본 수군을 무찌르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첫번째 사진). ‘에혼 다이코기’에 실려 있다. 이충무공의 대척점에 있던 가토 기요마사는 일본 고문헌에서 맹장(猛將)으로 그려진다. 위는 가토 기요마사가 함경도에서 바다 건너 후지산을 바라봤다는 전설을 그린 목판화. 열린책들 제공
러일전쟁과 이라크전쟁에서 일본과 미국은 공통점이 있다. 일본은 러시아의 침략에 앞서 예방 전쟁을 치렀다고 주장했으며, 미국도 9·11테러 직후 대량살상무기(WMD) 위험을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책은 전범국가 일본의 전쟁 논리를 임진왜란까지 거슬러 올라가 추적하는 독특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다. 저자는 매우 성실하다. 16∼19세기 한중일의 전쟁 관련 사서와 편지, 문학 등 문헌을 폭넓게 비교하고 서로 끼친 영향을 자세히 분석했다. 4년 동안 일본 국문학 연구 자료관에서 방대한 고문헌을 붙잡고 씨름한 결과라고 한다.
저자는 전쟁 정당화의 논리를 크게 공격과 방어의 차원으로 나눠 본다. 동양 개념의 정벌(征伐) 혹은 서양 개념의 성전(聖戰)은 도덕적 패악을 저지른 무리에 대한 정당한 심판으로 이해된다. 반면 러일전쟁은 잠재적 피해를 막기 위한 방어전의 논리다. 이것은 비단 일본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예컨대 저자는 광개토대왕 비문에서 고구려의 소(小)중화주의를 읽어낸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의 연구를 인용한다. 즉, 중국 왕조들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동시에 화이(華夷)사상을 언급하는 비문 내용은 결국 정벌의 논리를 담고 있다는 것이다.
임진왜란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중화의 위치에 놓고 조선과 명은 정벌의 대상으로 봤다. 일본 영토 확장의 초기 타깃이었던 류큐(오키나와)나 에조(홋카이도, 사할린) 역시 같은 논리가 적용됐다. 임진왜란을 기술한 일본 고문헌에는 전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조작한 시도들이 포착된다.
예를 들어 1801년 간행된 ‘에혼 다이코기’는 독실한 불교도였던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 백성에게 온정을 베풀어 그가 주둔했던 울산으로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또 앞서 17세기 작성된 ‘다이코기’는 진주성, 울산, 행주산성, 길주에서 벌어진 전투를 실제 연대기와 다르게 배치해 일본이 최종 승리를 거둔 것처럼 호도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에도시대의 유학자 가이바라 엣켄은 ‘조선징비록’ 서문에서 “징비록의 기사는 간결하고 말이 질박하니, 과장이 많고 화려함을 다투는 세상의 다른 책들과는 다르다. 조선 정벌을 말하는 자는 이 책을 근거로 삼는 것이 좋다”고 썼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