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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형의 생각하는 미술관]<35>노부부, 세월의 동반자-렘브란트, ‘조선업자 부부의 초상’

Bawoo 2016. 9. 6. 21:22




     
[렘브란트, ‘조선업자 부부의 초상’]

렘브란트 판 레인(1606∼1669)은 인생의 빛과 그림자를 모두 경험한 화가였습니다. 일찍이 초상화로 인정받았고, 밀려드는 주문 그림을 그리며 사랑하는 아내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대저택에서 살았지요. 하지만 부러울 것 없는 삶에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1642년 혁신적으로 시도한 단체 초상화로 예술적 위상이 흔들렸고, 아내의 죽음과 개인 파산으로 시련을 겪다가 빈민가에서 생을 마감했지요.  

당시 부부 초상화는 남편과 아내를 두 개의 캔버스에 따로 제작해 나란히 거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대개 그림 속 남편은 권위적 가장으로 표현되었고, 아내는 수동적 역할로 등장했지요. 화가 또한 당대의 보편적 형식을 따라 부부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동시에 ‘조선업자 부부의 초상’ 같은 새로운 부부 초상화에 도전하기도 했습니다. 부부를 평등한 반려자로 간주하기 시작한 시대의 결혼관을 그림에 반영하기라도 한 것일까요. 화가는 남편 얀 레이크선과 아내 흐리트 얀스를 하나의 화면에 담아 부부 사이의 정서적 유대감을 강조했어요. 

17세기 네덜란드는 해양 강국이었습니다. 선박 제조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해상 무역의 주도권을 선점했지요. 그림 속 부부는 조선업과 인연이 깊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선박을 설계하고 만들던 집안 출신으로 가업을 성공적으로 계승했답니다.

그림이 제작될 당시 남편은 72세였습니다. 아내와 결혼한 지도 어언 50여 년이 다 되어 갔습니다. 조선업계의 자부심 넘치는 거물답게 그림 속 고령의 남편은 여전히 새로운 선박을 설계 중이었던 모양입니다. 남편이 하던 일은 아내의 등장으로 잠시 멈추었습니다. 아내는 급한 볼일만 보고 나가려는 듯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 손으로 쪽지를 건네는 동시에 다른 손으로는 문고리를 잡고 있습니다. 세월이 헛되이 흐르지는 않았군요. 부부는 특별한 말없이 상호 소통이 가능한 진정한 삶의 동반자가 되었으니까요. [ 공주형 한신대 교수·미술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