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이름 | 장훈(張勳) |
---|---|
시대 | 후한 |
생몰 | ? ~ ? |
자 | |
본관 · 출신 | |
관직 | 대장군(大將軍)〔원술〕 |
작위 | |
소속 | 원술 |
원술(袁術)을 섬겼다.
초평(初平) 4년(193년), 원술은 양주자사(揚州刺史) 진온(陳溫)을 죽이고 진우(陳瑀)를 쫓아내어 양주로 거점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장훈은 이때 교유(橋蕤)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된 것으로 보이며, 건안(建安) 2년(197년)에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였다.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곧 장훈과 교유를 보내 서주(徐州)의 여포(呂布)를 공격하였으나, 진규(陳珪)의 이간책으로 우군인 한섬(韓暹)과 양봉(楊奉)의 배신으로 퇴각하였다. 이때 교유는 여포에게 사로잡혔으나, 곧 풀려나 원술에게 돌아갔다.
같은 해 9월, 장훈은 진국(陳國) 정벌에 참여하여 진왕(陳王) 유총(劉寵)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조조(曹操)가 몸소 침공에 나섰고, 원술은 교유와 이풍(李豊) · 양강(梁綱) · 악취(樂就)를 남겨두고[1] 자신은 회남(淮南)으로 달아났다. 교유 등은 조조의 군세와 맞서 싸웠으나 패하여 죽었고, 장훈만 살아남아 원술에게 돌아갔다.
건안 4년(199년) 6월, 원술이 죽었다. 장훈은 손책(孫策)에게 의탁하기 위해 장사(長史) 양홍(楊弘)과 함께 무리를 이끌었으나, 원술의 옛 부하인 여강태수(廬江太守) 유훈(劉勳)의 공격을 받아 생포당하였다.
《삼국지연의》 속 장훈
지위는 도독(都督)이다. 여포와의 싸움에서 제1군단장으로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었으나, 여포군의 맹공을 받아 퇴각하였다.
각주
- 이동 ↑ 《후한서(後漢書)》 원술전에서는 장훈도 함께 진국에 남았다고 한다
- [출처:위키백과]
'♣ 역사(歷史) 마당 ♣ > < 중국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국지 - 후한 말의 학자, 관료.오나라 손책, 손권을 섬김]육적(陸績) (0) | 2016.09.19 |
---|---|
[삼국지 - 후한 말 정치가, 오나라 육손의 작은 할아버지]육강(陸康) (0) | 2016.09.19 |
[삼국지 -오나라 추존왕]장사환왕 손책( 長沙桓王 孫策) (0) | 2016.09.18 |
[삼국지- 후한 말 조조 휘하의 정치가]순욱(荀彧) (0) | 2016.09.17 |
[삼국지 - 조조(曹操)가 가장 아끼던 일급 참모]곽가(郭嘉)/아들 곽혁(郭奕) (0) | 2016.09.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