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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 원술을 섬긴 후한 말의 무장]장훈(張勳)

Bawoo 2016. 9. 19. 22:07


장훈(張勳, ? ~ ?)은 중국 후한 말의 무장이다.

생애

이름장훈(張勳)
시대후한
생몰 ? ~ ?
본관 · 출신
관직대장군(大將軍)〔원술〕
작위
소속원술

원술(袁術)을 섬겼다.

초평(初平) 4년(193년), 원술은 양주자사(揚州刺史) 진온(陳溫)을 죽이고 진우(陳瑀)를 쫓아내어 양주로 거점을 옮기기 시작하였다. 장훈은 이때 교유(橋蕤)와 함께 대장군에 임명된 것으로 보이며, 건안(建安) 2년(197년)에 원술은 황제를 참칭하였다.


황제를 참칭한 원술은 곧 장훈과 교유를 보내 서주(徐州)의 여포(呂布)를 공격하였으나, 진규(陳珪)의 이간책으로 우군인 한섬(韓暹)과 양봉(楊奉)의 배신으로 퇴각하였다. 이때 교유는 여포에게 사로잡혔으나, 곧 풀려나 원술에게 돌아갔다.


같은 해 9월, 장훈은 진국(陳國) 정벌에 참여하여 진왕(陳王) 유총(劉寵)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조조(曹操)가 몸소 침공에 나섰고, 원술은 교유와 이풍(李豊) · 양강(梁綱) · 악취(樂就)를 남겨두고[1] 자신은 회남(淮南)으로 달아났다. 교유 등은 조조의 군세와 맞서 싸웠으나 패하여 죽었고, 장훈만 살아남아 원술에게 돌아갔다.

건안 4년(199년) 6월, 원술이 죽었다. 장훈은 손책(孫策)에게 의탁하기 위해 장사(長史) 양홍(楊弘)과 함께 무리를 이끌었으나, 원술의 옛 부하인 여강태수(廬江太守) 유훈(劉勳)의 공격을 받아 생포당하였다.

《삼국지연의》 속 장훈

지위는 도독(都督)이다. 여포와의 싸움에서 제1군단장으로 20만 명의 대군을 이끌었으나, 여포군의 맹공을 받아 퇴각하였다.

각주

  1. 이동 《후한서(後漢書)》 원술전에서는 장훈도 함께 진국에 남았다고 한다
  2. [출처: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