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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스케스의 회화에 나타난 고전 신화의 의미
조 민 현
(고려대학교)
국문초록
벨라스케스는 회화를 통해 근대적 인식론과 미학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를 위해 그는 무엇보다 명암법과 원근법 등의 회화 기법을 통해 경험으로 파악되는 인간의 현실을 포착하려고 하였고, 이러한 면은 그의 그림 전반을 둘러싼 해석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그의 회화 전반을 살펴볼 때, 하나의 의문점이 발생한다. 그것은 회화의 소재로서 그 이전 시대를 지배했던 종교적 소재가 아닌 인간의 일상을 선택했던 벨라스케스의 신념과는 다르게, 「실 잣는 여인들」, 「불카누스의 대장간」, 「주정뱅이들」, 「마르스」,「메르쿠리우스와 아르고스」등 그의 그림에 고전 신화가 소재로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그의 예술론에서 이와 같은 ‘고전 신화’가 차지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는 신화적 소재를 통해 우리에게 어떠한 면을 제시하려고 하였는가?
이 글은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고전 신화가 벨라스케스의 회화 속에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위해, 그의 그림에 나타난 미학과 회화 기법을 당대 스페인의 시대적 배경 속에서 살펴보았고, 그러한 면이 어떠한 방식으로 신화적 소재로 된 작품들과 연결되는지를 구체적인 예를 통해 분석하였다.
주제어
벨라스케스, 고전 신화, 인간의 현실, 근대적 인식론
I. 들어가는 말
오늘날 벨라스케스는 ‘근대 회화의 선구자’, ‘인상주의를 예고한 화가’, 또는 ‘화가 중의 화가’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세계 미술사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벨라스케스의 명성은 19세기 프라도 미술관을 방문한 마네에 의해 그 회화기법의 독창성이 새롭게 인식되며 한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천재성이 인구에 회자되기 시작했다.
마네와 더불어 독일의 예술사 학자 카를 유스티(Carl Justi)1)가 『벨라스케스와 그의 시대 Velázquez y su siglo』에서 그에 대해 전반적으로 다룬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의 그림에 대한 다양한 관점의 해석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스페인의 역사적 문맥 속에서 새롭게 나타난 그의 인식론에 주목하였고, 카를로스 푸엔테스, 미셸 푸코, 자끄 라깡 등 여러 사상가들은 「시녀들 Las meninas」등 그의 그림에 내포된 새로운 미학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다. 벨라스케스가 회화를 통해 새롭게 제시한 시대에 대한 인식과 미학의 문제가 계속해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관심의 배경에는 벨라스케스가 그 이전 시대와는 다른 회화에 대한 사유와 그에 상응하는 기법을 선보였다는 데 기인하는데, 거기에는 무엇보다 경험으로 파악되는 근대 이후의 인식론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인간의 구체적인 현실을 바탕으로 그러한 현실을 포착하기 위한 벨라스케스의 회화적 사유와 연결된다. 따라서 그의 그림 전반을 둘러싼 해석은 이러한 전망 속에서 그 출발점을 마련하여야 될 것이다.
그렇다면, 전반적으로 평가되는 그의 예술론에서 소재로서 ‘신화’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우리는 벨라스케스가 화가로서의 길을 걸어가면서 <거울을 보는 비너스 La Venus del espejo>, <실 잣는 여인들 Las hilanderas>,<메르쿠리우스와 아르고스 Mercurio y Argos>, <주정뱅이들 Los borrachos>2), <불카누스의 대장간 La fragua de Vulcano>, <마르스 Marte> 등 고전 신화를 소재로 한 몇 작품들을 그렸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경험으로 파악된 일상 자체에 대한 관심에 매몰되어 있던 벨라스케스에게 소재로서의 신화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에게 이러한 소재로 된 그림을 그리게 했으며, 그것은 그가 회화를 통해 드러내려고 했던 미학과 어떤 상관성을 가질 것인가가 하나의 문제성으로 대두될 수 있다.
우리는 이 글에서 고전 신화가 벨라스케스의 예술 세계속에 어떻게 이해될 수 있는지를 그의 예술론과 당대 스페인의 시대적 문맥 속에서 고찰할 것이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그 당시 사회에서 그의 회화기법이 갖는 의미를 살펴보고 고전 신화라는 소재가 근대 회화의 문을 연 벨라스케스 회화의 문맥 속에 어떤 의미를 차지하는지, 그의 회화 기법과 역사적 문맥과의 상관성 속에서 조명하려고 한다.
1) 카를 유스티는 1888년 출판된 『벨라스케스와 그의 시대 Veĺázquez y su siglo』를 통해 벨라스케스와 그의 회화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구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벨라스케스는 대중에게 폭넓게 알려지게 되었다.
2) 이 그림은 <바쿠스의 승리 El triunfo de Baco>라고 불리기도 한다.
계란을 부치는 노파 Vieja friendo huevos, 1618, National Gallery, Edinburgh
세비야의 물장수 El aguador de Sevilla, por Diego Velázquez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온 그리스도 Cristo en casa de Marta y María, by Diego Velázquez
II. 세상에 대한 경험으로서 그림
II.1. 일상에 대한 관심
벨라스케스는 화가로서의 길을 들어선 청년기부터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서 소재를 구했다.
일명 정물화(bodegón)라고 알려진 그의 그림들에는 접시,병, 항아리, 생선 등이나 그러한 것들이 있는 장소로서 부엌, 주점 등이 등장하며, 이와 더불어 삶을 영위하는 서민들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의 초기 그림들 속에는 이전 시대 회화의 주 소재였던 종교적 사건은 거의 등장하지 않고 순수하게 일상의 장면들만이 포착된다.
먼저 1618년에 그려진 <계란을 부치는 노파 Vieja friendo huevos>는 이 시기 그의 회화세계를 엿보게 하는 데, 당대의 다른 화가들에 앞서 “빛이 인간의 지각에 작용하는 효과를 염두에 두면서 ‘빛의 강조점’을 마련”(자닌 바티클, 16)하며 종교나 영웅적 소재가 아닌 일상의 소재를 두드러지게 할 수 있었다.
<세비야의 물장수 El Aguador de Sevilla> 역시 서민 생활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구체적인 일상을 포착하고 있다. 한편 그는 종교적인 소재를 취할 때에도 이를 일상과의 관계 속에서 파악했는데,
예를 들어 <마르타와 마리아의 집에 온 그리스도 Cristo en casa de Marta y María>에서 그리스도와 그 주변 인물을 그림의 직접적 대상이 아닌 그림 속의 그림에 넣어 다른 차원에 위치시킴으로써 종교적 소재를 벗어나 일상을 그림의 소재로 삼겠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있다. 이렇듯 청년기부터 벨라스케스의 관심은 정형화된 아름다움을 강조하던 전통적인 회화와는 다른 것이었다.
일상에 대한 벨라스케스의 관심은 마찬가지로 그러한 것을 소재로 택한 로뻬 데 베가의 새로운 연극 세계나 세르반테스의『돈키호테』, 피카레스크 소설 등 현실을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탐구하려는 당대의 예술관에 부합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점은 벨라스케스의 후기 회화 속에도 이어졌는데, 그는 비록 오랜 기간 궁정에서 생활했지만, 당대에는 전위적인 소재로 불릴만한 ‘난장이’, ‘광대’, ‘시녀’ ‘부랑자’ 등을 그림의 주요 소재로 삼았다. 한편,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시녀들> 역시 소재 면에서 볼 때 일관적 흐름을 견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일반적으로 궁정화가의 주된 모델이 될 왕과 왕비를 거울속에 배치하고 모델 주변에 위치해야 할 일상생활 속의 시녀들이나 개의 모습을 전면에 위치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벨라스케스의 이러한 면은 유럽에 도래한 새로운 시대의 인식론과 관련을 맺는다. 17세기 스페인 그리고 유럽에 등장한 예술가들은 중세 이래 이어져 온 어떤 대상의 정형화된 아름다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구체적인 사물들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사물의 이데아처럼 당위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대상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물에 주목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벨라스케스는 이전시대와는 다른 미학적 변화를 도출했던 것이다. 오르테가에 의하면,
"새로운 세대의 화가들은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는 것에 지치게 되고, 그러한 미(美)에 대해 반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마땅히 존재해야만 하는 것으로서 사물의 이데아를 그리려고 하지 않고, 현상 세계에
있는 그대로의 사물을 그린다. 그 당시 유럽에서는 산문과 실제 하는 것에 대한 강력한 욕구가 시작된다.
17세기는 진지함으로 가득한 세기며, 벨라스케스보다 3년 전에 태어난 위대한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인 데카르트의 세기다. […]
이 새로운 세대의 사람들은 실제 하는 것과 대면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 하는 것은 항상 ‘추한’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추함’을 화폭에 옮긴 경이적인 화가가 될 것이다. 이것은 회화에서의 양식의 변화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사명의 변화를 동반한다.(Papeles, 230-231)3)"
고대 이래로 실재하는 현실 자체는 변하기 쉽고 소멸되는 것이라 평가절하되었는데, 이러한 대상에 대해 시선을 돌리는 것은 예술의 사명이 달라졌음을 의미하며, 예술가와 예술의 위상에 대한 변화를 동반한다.
이것은 예술가 스스로가 신의 말씀 등 초월적인 것에 매개되지 않고 스스로의 눈으로 현실을 파악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은 오랫동안 예술 속에서 개성의 표현을 찾고 이를 높이 평가하던 끝에 비로소, 예술이 더 이상 객관적인 ‘무엇’이 아니라 주관적인 ‘어떻게’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던 것이다.”(하우저, 79)
이로부터 현실을 파악하고 지배하는 창조적 개인으로서 예술가의 위상이 높아지게 되었으며, 이러한 면을 극대화하기 위한 기법이 등장하게 된다. 우리는 ‘눈의 판단’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원근법에서 그 일면을 본다.
3) 새로운 세대의 선구자로 이탈리아의 화가 까라바지오가 있다. 그는 신비하고 초월적인 대상에서 아름다움을 찾던 이전의 회화에서 벗어나 세속의 요소를 소재로 삼음으로써 회화의 방향전환을 가져왔다. 그는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스페인의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벨라스케스 (Diego Velázquez), <시녀들, Las Meninas>. 1656~1657, 캔버스에 유채, 318 x 276 cm,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Prado Museum) 소장.
II.2. 원근법적 관점
회화 기법에서 일상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며 근대정신을 담은 가장 큰 변화는 ‘원근법’의 발견이었다. 이전 시대의 회화가 개개의 사물에 주목하며, 관점을 분산시켰다면, 명암법과 더불어 이 회화 기법은 외부 세계를 바라보는 주체를 상정하고 세계를 하나의 관점 속에 고정하여 공간을 전체적으로 인식하는 방식이었다.
회화 기법의 이러한 변화는 단지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을 둘러싼 인식론의 전환을 포함한다. 그것은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하며, 사고하는 주체의 확실성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려 했다는 점과 상관성을 갖는다.4) 따라서 인간은 세계에 대해 이전 시대의 피동적 위치에서 적극적으로 세계를 해석하고 탐구하는 위치로 변모하게 된다. 근대로의 본격적인 인식론적 전환이 일어나는 17세기에 활동한 벨라스케스는 상당기간에 걸친 이탈리아로의 여행 그리고 루벤스 등 당대 유럽 화가들과의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대가 의미하는 바를 감지했으며, 이를 자신의 화폭에 담기 시작했다.
오르테가는 ‘근대’라는 시대정신을 담은 이러한 기법의 대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벨라스께스는 전제 군주처럼 관점을 고정시키기로 한 것이다.그림 전체가 단 한 번의 보는 행위로 탄생하게 되고 사물들은 될 수 있는 한시선 안에 들어오려 할 것이.”(「예술에서의 관점에 대하여」, 263)
그런데, 원근법 등 이러한 표현기법이 특히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오는 것은 당시 스페인의 규범 문화와 벨라스케스 회화 사이의 상반된 시선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흔히 예술가가 시대를 반영한다고 생각하지만, 위대한 예술가들은 종종 한 사회에서 허용되지 않는 것, 다시 말하면 한 시대 규범문화의 반대편에 자리 잡은 가치를 대변한다. 이런 의미에서 벨라스케스에 대한 오르테가의 진단은 음미해볼만 하다.
"벨라스케스를 이해하려면 그가 살았던 시대의 규범과 상반된 관점에서 그를 바라보아야 한다. 위대한 사람들이 항상 그 시대를 대표하는 이들이라고 가정하는 것은 자칫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러한 가정이 한 시대에서 허용되지 않은 가치를 추구했던 이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빈번히 확인되는데, 위대한 사람은 자신이 살던 시대와 상반된 위치에 섰기 때문에 위대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Papeles, 189)"
이러한 맥락에서 17세기 스페인에서 그 시대의 일반적 조류와 상반되는 대표적인 인물로 우리는 벨라스케스를 상정해볼 수 있다.(Papeles, 189 참고)
세르반테스가 하나의 도그마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며 근대 소설의 문을 연 것처럼, 반종교개혁의 분위기가 지배하여 천상의 가치를 제국의 원리로 삼은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는 전술한 바와 같이 한 개인의 ‘눈의 판단’을 통해 세계를 인식하는 회화 기법을 사용했는데, 이러한 기법이 의도하는 바는 바로 자신을 둘러싼 일상을 다른 매개자 없이 스스로의 눈으로 파악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명암법과 원근법이라는 회화 기법의 사용은 벨라스케스가 소재로서 천상의 세계가 아닌 인간의 일상의 문제를 표현하려 했다는 점과 연결된다. 말하자면, 반종교개혁으로 인해 르네상스에서 비롯된 인간의 감각적 현실에 대한 논의가 크게 제한되었던 당시 스페인에서 벨라스케스는 회화의 소재를 발굴하고 기법을 개발하면서 간접적인 방식으로서 인간의 현실을 표현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소재로서의 일상 그리고 이를 파악하는 방식으로서 원근법을 사용한 벨라스케스가 이와는 다른 차원인 신화적 소재를 그림 속에 담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를 소재로 한 그의 그림들은 어떠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가?
우리는 먼저 인간의 일상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로서 새롭게 해석되는 신화에 대한 전망을 사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종교나 이성과의 비교 틀에서 파악되던 신화가 새로운 해석 속에 놓일 가능성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그 토대는 르네상스라는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에서 마련되었다. 그때부터 신화 역시 인간을 둘러싼 삶의 조건과 관련을 맺기 시작했던 것이다.
4) 벨라스케스에 의해 절정을 이룬 명암법과 원근법적 회화 기법에 대해 오르테가는 “철학에서 데카르트, 흄 그리고 칸트가 이룬 것에 비교될 만한 코페르니쿠스적 혁명이다”라고 말한다. 「예술에서의 관점에 대하여」, 263)
III. 인간의 현실로서 신화
III.1. 신화의 소생
서양 문화를 이루는 하나의 큰 줄기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구전되던 신화가 문자로 정착되면서 원래의 신성함을 잃어버리고 후대의 자의적인 해석 속에 그 운명이 놓이게 되었다.
플라톤은 신화를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이야기를 뜻하는 로고스와 상반되는 개념인 미토스로 이름하며 위험시했고, 중세 시대에는 기독교의 원리로 인해 신화는 그 모습을 보존하기 위해 알레고리라는 해석 또는 신화가 어떤 영웅적 인물들을 신격화하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에우에메로스의 해석에 의존해야 했다.
서구 문화에서 고전 신화에 대한 관심이 본격적으로 표명된 시기는 르네상스부터이다. 그 당시 신화 속 인물들이 갖는 인간적인 모습이 인간을 둘러싼 가치에 대한 재발견과 더불어 주목됐던 것이다. 까를로스 가르시아 구알(Carlos García Gual)은 당시 새롭게 조명된 고전 신화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신화적 인물들은) 환희에 찬 존재의 모습을 조형 미술의 방식으로 표현하기 위해, 인간의 감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위해, 신비로운 상상의 힘에 호소하기 위해 그 효력을 갖게 된다. 얼마 안 되는 이미지들만을 지닌 채, 세상의 가치에 대한 가차 없는 폄하, 육체의 아름다움을 간과하는 기독교 텍스트는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설명하기에는 별 효용성이 없어 보였다.
이때, 고전 신화에 호소하는 일은 단순한 형식상의 유희 이상의 효과를 낸다. […]
신화의 세계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풍부한 의미와 상징으로 가득한 언어로 예술가 앞에 다시 등장하며 그것으로 예술가는 세상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García Gual, 214-215)"
이처럼, 르네상스 이후 고전 신화는 일반적으로 인간의 현실을 조명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중세 시대에 간과되었던 인간에 대한 문제가 관심의 대상으로 부각되면서 이 문제에 대한 상상력의 지평을 넓혀주었던 고전 신화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커져갔던 것이다. 이진성에 의하면,
"그리스․로마의 문학과 예술이 이교 문화이기는 했지만, 각각의 신들이 우의적으로 관장하고 표현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안들이라 중세의 유일신 일변도 문화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지식인들은 ‘인간’ 이해의
관점에서 그것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 그들은 그것을 신앙 차원에서 ‘종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이해와 인문주의에 바탕을 두고 ‘지적’으로 수용했다.”(이진성, 444)
인문주의에 바탕을 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한 이탈리아 등 유럽 세계의 관심은 스페인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났다. 실제로 벨라스케스가 젊은 시절이었을 때 문학과 예술에서 고전 신화는 소재로서 빈번히 차용되고 있었다. 특히 가르실라소, 께베도, 공고라, 로뻬 데 베가, 깔데론 데 라 바르까 등의 작가들은 자신들의 문학을 표현하는 수단으로서 신화적 소재를 빈번히 사용하였다.
고전 신화는 전술한 바와 같이 르네상스 시대의 감성을 표현하기 위한 시적 원리로 작용하였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후 소재로서 신화가 각광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적 전통을 벗어나는 이 신화의 의미에 관한 이론적 탐색은 진지하게 모색되지 않았다.(García Gual, 215 참고) 이론적인 면에서만 보면 중세시대까지 이어온 에우에메로스의 해석이나 알레고리적 해석이 여전히 그 효력을 유지하였다.
그렇지만 인간의 현실 속에서 신화가 어떤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그 기능별로 분류해볼 수 있는데, 그것은 구체적인 지식의 차원, 은유나 알레고리로서의 기능, 암시의 기능, 미학적 재창조의 기능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머, 아이러니, 패러디를 동반하는 풍자적 기능이다.(RosaRomojaro, 12-13 참고)
신화의 기능에 대한 이러한 여러 전망 속에서 마지막으로 제시한 풍자적 기능은 인간 사회에 대한 신랄한 인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좀 더 새로운 차원으로 전이된다.
앞서 언급한 신화의 여러 기능들이 신화를 여전히 인간 사회와는 다른 거리에 위치시키면서 신화 속의 신들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유지했다면, 유머와 패러디 그리고 현실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동반하는 관점은 신화를 인간의 실제 현실에 안착시키며,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각 개인의 주관적 전망 속에 신화를 끌어들이고 있다.
문학에서의 공고라, 께베도와 더불어 벨라스케스의 회화는 신화에 대한 이러한 전망 속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균형과 조화를 이루었던 르네상스 예술이 16세기 말부터 쇠퇴를 경험할 때, 고전 신화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메우게 하는 전망 속으로 수렴되었던 것이다. 이때 고전 신화는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인간의 인식 능력의 일환으로 작용하였다.
III.2. 현실 인식으로서 신화
1630년대에 이르면, 여타 유럽 국가들에서처럼 스페인에서도 펠리페 4세를 필두로 종교화에 대해 피곤해하기 시작했다고 한다.(Papeles, 42) 당시 종교화에 지친 화가들에게 새로운 소재로서 등장한 것이 바로 고전 신화였다. 당시 화가로서 명성을 얻었던 루벤스나 푸생 등이 이 새로운 소재를 적극적으로 화폭에 옮기기 시작했다.
벨라스케스가 신화를 그림의 소재로 삼기 시작한 것은 신화적 소재를 많이 사용했던 루벤스를 마드리드에서 알게 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Maravall,138 참고)
루벤스와의 교제 그리고 이탈리아에서의 체류 경험은 벨라스케스에게 당대 고전 신화가 갖는 의미를 일깨우게 하였는데, 당시 신화와 신화속에 나오는 신과 영웅들의 인간적인 속성에 대한 관심은 르네상스 유럽의 일반적인 경향에 속하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루벤스 등을 통해 표현된 신화는 아직 또 다른 형태의 종교적 색채를 띠는 고전시대의 이상과 영웅상을 간직하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화가들이 신화적 소재를 그린다고 해도
그것은 일상의 현실과 일정 정도의 거리를 전제하고 있었다.
하지만, 벨라스케스는 이러한 통념을 거부하고 일상의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신화의 의미를 과감히 파악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벨라스케스는 신화 속의 인물들을 단지 차용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신이 파악한 당대의 현실에 비추어 이들을 적극적으로 해석해내기 시작한다.
"(신화의 비현실적인 요소와는) 반대로 신화에 관련한 가능한 주제 앞에서 벨라스케스는 지금 여기에 실제로 적용될 수 있는 역사적 상황이 신화적 사건이라는 이상적인 상황과 어떻게 상응할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바
쿠스는 보통의 술주정뱅이들처럼 떠올릴 수 있는 인물이며, 불카누스는 대장간의 노, 실을 잣는 운명의 여신들은 실 잣는 작업장, 이솝과 메니포는 거지 모습으로 세상의 부와 허영을 경멸하면서 우리 앞을 지나가는 영원히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이다.(Papeles, 44)"
따라서 인간의 상상 속에서 빚어진 이상적인 상황인 신화는 인간의 생생한 현실을 그려내기 위한 보충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벨라스케스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단지 본다는 문제를 벗어나 적극적인 해석의 문제로 전이”(Papeles, 56)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전에 신학이나 이성의 종속적 역할에 불과했던 예술이 세상을 인식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건 감성을 이용한 인식, 말하자면 감성적 인식이다. 감성적 인식의 토대를 이루는 건 상상, 기억, 감정 등이다.”(진중권, 241)
여기서 예술적 인식은 종교나 이성의 추상적 세계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 신화와 같은 구체적인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생생한 이미지를 더해주는 기능을 얻게 된다. 따라서 벨라스케스는 실제의 현실만을 캔버스의 소재로 삼겠다는 자신의 예술적 신념과 상치됨을 알지만, 이를 받아들이되 자신의 예술관을 지키기 위한 해법으로 신화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신화적 요소에 대해서 그것의 본질적 성격으로 드러나는 비현실적인 면에 주목하지 않고, 현실 속에서 신화에 상응하는 면을 찾아 신화적 요소와 연결시킨다. 여기서 신화는 그 본래의 성격과 권위가 상실
되고 가장 세속적인 인간 삶의 조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Papeles, 235)"
이렇듯 벨라스케스의 그림 속에 나타나는 신화는 시대에 대한 예술가 자신의 의식과 긴밀한 관련을 맺으며, 그 현실을 드러내기 위한 치열한 읽기로 변모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궁극적으로 벨라스케스의 회화 속에 나오는 고전 신화의 의미를 반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창조적 개인으로서 예술가의 위상 그리고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신화가 어떠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다.
La fábula de Aracné (Las Hilanderas), 1657, Museo del Prado. Diego Velázquez -「실 잣는 여인들」
IV. 벨라스케스 회화 속의 고전 신화
IV.1. 예술가의 자의식 -「실 잣는 여인들」
「실 잣는 여인들」은 소재로 볼 때, 일상의 현실에서 볼 수 있는 실 잣는 여인들을 전면의 넓은 부분에 배치하고 미네르바와 아라크네 신화를 후면의 무대에 배치하며 계단을 통해 서로 다른 이 두 공간을 연결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앞의 구체적인 현실과 서로 섞이지 못할 것 같은 비현실적인 요소인 신화는 그가 상정하는 현실의 공간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 것인가?
미네르바와 아라크네의 실 잣는 시합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그림은 전술한 두 차원 이외에 또 다른 차원인 그림 속의 그림을 상정하고 있다. 그림 속에 제시된 그림이 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의 결과물이라고 가정할 때, 우리는 작품의 해석에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창조하는 일에 대한 문제의식이다.
우리는 그림이 신화를 소재로 하지만, 또한 신화 속에서 신의권위에 대항하는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 주목해볼 수 있다. 말하자면, 벨라스케스는 미네르바에 대항하는 아라크네의 모습에 주목하며 호응의 시선을 보냈을 것이다. 따라서 이 그림은 일차적으로 미네르바 신에 대항하는 아라크네라는 여인의 모습에서 보는 것처럼, 신의 권위에 대항하는 인간, 즉 르네상스 이후 자신의 창조 행위에 대한 예술가의 점증하는 자의식이 담겨있다. 그것은 하우저의 언급처럼, “창조적 개인이라는 현대적 개념이 사람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기 시작하고 예술가들의 자존심이 커져가는 징후”(하우저,75)가 두드러지는 시기를 반영한다. 이러한 면을 알뻬르스는 벨라스케스의 그림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미네르바와 같아지려고 베를 짜고 있는 아라크네에서) 아마 벨라스케스가 의도했던 것은 신적인 일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인간의 예술을 상정해보는 것이었다. […] 이때 그의 의도는 예술가와 그 활동의 존엄함을 다룬 「시녀들 Las meninas」과 상관성을 가질 것이다.(Alpers, 14)"
벨라스케스는 대표작 <시녀들>을 통해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 자신을 그림의 주제로 삼으며 예술가의 자의식을 극명하게 드러냈는데, 이 그림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인 것이다. 이러한 면은 르네상스 예술관에서 새롭게 등장한 ‘천재 개념’과 연결되는데, 이 개념으로 예술가는 예술을 통해 현실을 지배하는 힘을 인식하기 시작하였다.(하우저, 78-79 참고)
요약하면, 벨라스케스는 여신과 대항하는 아라크네의 모습 속에서 당면한 현실을 이해하려는 인간 정신이 구현된 힘으로서 예술 그리고 예술가의 사명을 상정하였다고 볼 수 있다.
「불카누스의 대장간」 La fragua de Vulcano, 1630, Museo del Prado, In English: Apollo in the Forge of Vulcan
Deutsch: Venus vor dem Spiegel . <거울을 보는 비너스>
「주정뱅이들」 El Triunfo de Baco or Los Borrachos 1629 (English: The Triumph of Bacchus/The Drunks)
IV.2. 인간에 대한 이해 - 「불카누스의 대장간」, 「주정뱅이들」
벨라스케스는 관능적이고 세속적인 모습의 비너스를 <거울을 보는 비너스>에서 그렸는데, 아름다운 비너스와 그녀의 남편인 절름발이 신 불카누스의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서로 어울리지 않았던 두 신의 결혼생활은 위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남편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비너스의 불륜 행각에서 비롯되었다. 이 「불카누스의 대장간」에서는 비너스와 마르스의 불륜 사실을 아폴로가 4명의 조수들과 일하는 대장간의 신 불카누스에게 알리는 순간을 담고 있다.
따라서 그림에서 무엇보다 두드러진 점은 인간사의 어떤 일이 발생하는 순간의 팽팽한 긴장감이다. 불카누스의 놀란 눈과 표정 그리고 그의 조수들의 표정 속에 긴장된 순간의 표정이 감지된다.
또한 그림은 비너스가 아폴로의 구애를 거절하고 마르스를 선택한 데에 대한 아폴로의 질투를 담고 있다. 말하자면, 이 그림은 인간사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어떤 사건을 알리는 순간을 포착하고 더불어 인간사에 종종 드러나는 질투 의 감정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그림은) 강렬한 느낌을 주는 모델들을 사용하면서, 순간의 긴장과 인물들에서 드러나는 성격을 강조한다. 그것은 […] 신화를 통해 인간적인 모습을 즉각적으로 재현하는 형식으로 나타난다.(Trinidad de Antonio, 37)
어떤 순간에 대한 제시는 술의 신 바쿠스를 그린 「주정뱅이들」에서도 드러나는 주제이다. 그런데, 이 그림 속에는 신화를 통해 인간 세계를 바라보는 벨라스케스의 보다 신랄한 인식이 내포되어있다.
오르테가는 푸생(Poussin)등이 그린 바쿠스 신화에 대한 이전의 그림과 벨라스케스의 이 그림은 서로 다른 맥락에서 그려졌다고 본다. 적어도 푸생은 신의 존재를 인정했고 그들을 그렸던 반면에 벨라스케스는 인간적 모습을 한 바쿠스와 함께 추하고 무기력한 인물들인 도시의 인부들, 악자들을 불러 모아 신들을 비웃고 있다고 말한다.(“Tres cuadros del vino”, 57 참고)
특히 바쿠스는 그 인간적인 모습으로 인해 한 때는 바쿠스 신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었다고 한다.
“작은 키에 통통한 바쿠스의 외모는 인간과 너무나 흡사하고 하얀 피부색을 제외하고는 농부들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재니스 톰린스, 111-112)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벨라스케스에 의해 재해석된 바쿠스로 정리될 수 있다.
실제로 그림 속에는 포도덩굴을 머리에 두른 바쿠스와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주정뱅이들이 함께 섞여 있다.
바쿠스는 사람들에게 술잔을 건네며 그들의 눈이 몽롱하게 보이고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변할 때까지 술을 마시게 한다.
당시 바쿠스는 틀에 박힌 삶의 굴레를 벗어나게 해주는, 즉 인간의 자유를 의미하는 알레고리로서 생각되었다. 그러기에 이 그림은 바쿠스를 앞세워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과 풍자를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전 시대에서는 존중받지 못했던 바쿠스의 모습 속에서 벨라스케스는 공식적 규범 문화의 틀에서 벗어나는 피카레스크 문학의 악자들 등 기존 체제에서 자유로운 반영웅들의 모습을 사유했을 것이다. 바쿠스에 대한 이러한 암시는 19세기 니체 등이 서구의 형이상학적 전통이나 초월적 지식의 세계에 의문을 제기하며 바쿠스를 새롭게 부각시키는 전조로서 기능할 것이다.5)
이런 점에서 벨라스케스는 고전 신화를 통해 인간의 발견이라는 미적 원리를 도출했으며, 나아가 한 시대를 바라보는 전망 또한 이끌어낸다.
5) 오르테가는 “벨라스케스는 무신론자의 거인, 믿음이 없는 거인이다. 빗자루로 쓸어내듯이 그는 화필로 신들을 던져 버린다. […] 그는 우리 시대를 위해 신들이 없는 시대를 준비했다”(“Tres cuadros del vino”, 58)고 벨라스케스의 그림이 갖는 의미를 설명한다.
Velázquez - Dios Marte
Mercure et Argos Velazquez, Diego (1599-1660)
IV.3. 시대에 대한 인식 -「마르스」, 「메르쿠리우스와 아르고스」
마르스는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레스로 불렸으며, 잔인하고 광적인 전쟁의 신으로 알려져 그리스인들은 물론 신들에게도 호감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로마 사회의 군국주의적 경향과 더불어 전쟁의 신 마르스는 로마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벨라스케스는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 로마인들이 숭배하던 마르스 조각상을 여러 곳에서 보았다고 한다. 하지만 유스티가 언급하듯, “아무도 벨라스케스가 그 조각상을 그림 속에 담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는 단지 자신이 떠올린 마르스를 그렸을 뿐이다.”(Justi, 592) 말하자면, 벨라스케스는 마르스를 지치고 풀이 죽은 모습으로 그려내며, 그에 대한 당대의 새로운 해석을 구하고 있다.
벨라스케스는 이 인물을 통해 일차적으로는 르네상스적 영웅의 모습을 풍자하고 쇠퇴기에 접어든 바로크적 분위기를 담아내고 있으며,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영국, 프랑스 등과의 계속된 전투에서 패배한 스페인의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잔뜩 위축된 마르스를 통해 벨라스케스는 제국으로서의 풍모를 점차 상실한 채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는 조국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마르스」와 더불어 「메르쿠리우스와 아르고스」도 당대 스페인의 문맥에 대한 하나의 풍자로 읽힐 수 있다.
메르쿠리우스와 아르고스의 이야기는 오늘날까지도 널리 회자된다. 그리스에서는 헤르메스라 불리는 메르쿠리우스는 교역과 여행의 신이며 달변을 통해 남을 속이는 재주도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이 나타내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주피터(제우스)가 강물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에게 사랑에 빠지고 주노(헤라)가 이를 눈치 채자 주피터는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켰다.
의혹이 풀리지 않은 주노는 주피터에게 암소를 달라고 하고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에게 지키게 했다. 이렇게 갇힌 이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주피터는 메르쿠리우스에게 도움을 청하고, 메르쿠리우스는 피리 연주로 아르고스의 백 개의 눈을 모두 감긴 후 그 괴물을 죽이고 이오를 구해낸다.
당시 스페인은 가톨릭을 수호하는 나라로서 외부 세계의 변화에 철저히 문을 걸어 잠갔다. 따라서 아르고스와 메르쿠리우스의 모습은 당시 스페인과 그 밖의 세계라는 서로 상반된 힘을 상징한다. 100개의 눈이 말해주듯 아르고스가 철저한 가톨릭 신앙의 방어자를 의미한다면, 메르쿠리우스는 그 기질에서 유래하듯 변화와 동적인 움직임을 동반했던 여타 유럽 세계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보라스 구알리스는 벨라스케스가 이를 표현하기 위해 색채에도 주의를 기울였다고 한다. “육체의 즐거움을 의미하는 빨강과 노란색에 대해 회색과 검정의 색조는 이데올로기적 대조를 드러낸다. 황금세기 스페인 회화에서 색깔이 지니는 알레고리적 의미가 다시 한 번 더 명백해지는 것이다.”(Borrás Gualis, 84)
결국 벨라스케스는 이 그림을 통해 펠리페 4세의 스페인이 처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을 자신의 화폭 속에 담아내고자 하였던 것이다. 말하자면 그는 신화에 대한 동시대적 해석을 통해 한때 세계를 정복했지만, 스스로는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쇠퇴해가는 스페인에 대한 신랄한 인식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Diego Velázquez - Esopo
V. 나가는 말
벨라스케스가 그린 <이솝 Esopo>은 오른손에 책을 하나 든 채 다른 한손을 옷 속에 넣고 넝마를 걸친 걸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거기에 그의 눈은 사팔뜨기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수많은 지혜를 지닌 현자로서 알려진 이솝을 한 부랑자의 모습으로 전락시킨 그림 속에서 우리는 고전 신화를 대하는 벨라스케스의 태도를 반추할 수 있다. 특히 그가 사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유의해볼 만하다.
그것은 그가 들고 있는 책의 운명이 사팔뜨기가 갖는 시선처럼 본래 가치의 보존과 거기에서 벗어나는 운명을 피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한다. 이것은 고전 신화가 걸어온 운명에 다름 아니다.
신화의 보존과 변형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고전 신화 속의 신들은 인간이 갖고 있는 최상의 가치를 나타냈었다. 비너스는 아름다움을, 마르스는 전쟁을 대표하며, 대장장이로서 불카누스는 근면성을, 전령신인 메르쿠리우스는 여행과 교역의 근원적 가치를 나타냈었다.
하지만 시대에 따라 신화 해석에 부침이 있었는데, 한 시대에 인간이 처한 조건에 따라 신화의 의미가 달리 나타났었던 것이다. 먼저 “시대 상황이 ‘인간’ 이해의 방향으로 바뀐 르네상스기에는 고대 작품을 모방해 신화를 활용하더라도 당대의 상황에 알맞게 활용”(이진성, 446)해야만 했고, 낭만주의 시대에는 신화의 시적 기능이 부각되었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는 탈신화적 움직임이 활발하다.
벨라스케스의 경우는 신화를 종교처럼 정형화된 틀의 세계가 아니라 끝없는 흐름이 동반되는 인간 세계 속에서 바라보고 그러한 해석을 자신의 화폭에 담았던 것이다. 이것은 그가 회화를 통해 표현하려고 했던 전반적인 정신과도 부합하며 반종교개혁으로 인해 당시 역동적인 세계사의 흐름에 뒤쳐졌던 스페인이 오히려 예술적인 면에서 현실에 굳건한 기반을 둔 리얼리즘 전통을 발전시킬 수 있는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칼 유스티의 언급처럼 벨라스케스는 예술적 동력을 통해 시대의 변화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벨라스케스는 예술을 통해 그 당시 스페인이 실제 처음으로 세계사의 위대한 싸움에 참여할 수 있는 불멸의 기념비를 세웠다.”(Justi, 31)
결론적으로 벨라스케스는 한 개인이 경험하는 세계에 대한 인식을 근대정신을 표현하는 회화 기법 속에 담아 표출했으며, 고전 신화 역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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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e Significance of Classical Myths in the Velázquez’s Paintings
Cho, Min-hyun
논문접수일: 2008. 10. 22.
심사완료일: 2008. 11. 19.
게재확정일: 2008.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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