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20 in D minor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Valentina Lisitsa, piano
Michael Erren, conductor
Freiburger Mozart-Orchester
2012.05.20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모차르트가 남긴 27곡의 피아노 협주곡 중에서 피아노 협주곡 24번과 더불어 단 두 곡밖에 없는 단조 작품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모차르트의 작품 중에 D단조는 <레퀴엠>과 <돈 조반니>를 들 수 있다. 누구나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되어서나 자신의 소유물을, 혹은 자신 자체를 잃어버린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돈이든 우정이든 사랑이든 혹은 눈물을 흩뿌리며 길을 걷던 기억이든 간에 그런 깊은 상실감은 아마도 잊기 힘든 기억일 것이다.
모차르트의 단조 곡들은 대개 엷은 미소를 띤 얼굴에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 피아노 협주곡 20번의 1악장은 그야말로 상실의 슬픔을 간직한 깊고 진솔한 표정을 가지고 있다. 이 곡에서 모차르트는 과감하고 대범하며 타협할 줄 모르는 자신의 일면을 노출한다. 먹구름처럼 어두운 오케스트라의 색채와 롤러코스터처럼 급격한 분위기의 변화가 일품인 작품이기도 하다. 독주자와 오케스트라는 서로 협력하지만 곡 중간 중간 라이벌끼리 벌이는 경쟁의식을 극적으로 펼쳐내기도 한다.
모차르트의 흔치 않은 단조 피아노 협주곡
이 곡이 작곡된 1785년의 유럽 문화는 격렬하고 어두운 정서로 대변되는 ‘질풍노도’(Strum und Drang) 문학 운동의 영향권 아래 있었다. 이 작품은 빈의 카지노인 멜그루베에서 열린 예약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모차르트 최초의 단조 피아노 협주곡이다. 단조의 모차르트 음악은 바람에 머리카락을 흩날리는 베토벤의 고뇌 어린 표정을 엷게나마 띠고 있다. 이 곡은 얼핏 베토벤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모차르트의 협주곡이기도 하다. 베토벤도 이 피아노 협주곡을 무척 좋아해 따로 카덴차를 작곡해서 남길 정도였으며, 베토벤 외에도 브람스, 훔멜, 부조니, 클라라 슈만과 같은 뛰어난 음악인들이 이 피아노 협주곡의 카덴차를 남겼다.
귀족과 예술가들 앞에서 자신의 곡을 연주하고 있는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0번은 모차르트의 생활이 궁핍하던 시절 예약연주회를 위해 작곡된 곡이다.
이 당시 모차르트의 생활은 매우 궁핍하기 짝이 없었다. 모차르트는 출판업자 호프마이스터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급히 필요하니 약간의 돈을 빌려주었으면 합니다. 아무쪼록 빠른 시일 안에 도착했으면 합니다. 이런 폐를 당신은 너그러이 용서하실 줄 믿습니다. 그리고 저도 당신의 힘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디 저를 위해 편의를 봐주시기 바랍니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늘 쪼들리며 먹고살기 위해 뛰었던 모차르트의 펜 끝에서 나오는 음악은 왜 그리도 광휘롭고 한 점의 티도 없을까라는 의문이 떠오르기도 한다. 작품의 초연은 1785년 2월 11일 이루어졌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부친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빈에 도착해 아들의 초연 연주회를 지켜보고 “볼프강 아마데우스의 음악 활동 중 가장 빛나는 연주회”라고 밝혔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Clara Haskil/Henry Swoboda/WSO - Mozart, Piano Concerto No.20 K.466
Clara Haskil, piano
Henry Swoboda, conductor
Winterthur Symphony Orchestra
1950.09
추천음반
1. 클라라 하스킬과 이고르 마르케비치가 협연한 연주(필립스)는 생을 굽어보는 피아노 노래 속에 고고한 기품이 서려 있다.
2. 프리드리히 굴다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한 빈 필의 연주(DG)는 먹구름에서 뭉게구름으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음영을 펼쳐내는 굴다의 피아노와 아바도의 수채화 빛 반주가 잘 어울린다.
3. 알프레트 브렌델과 네빌 마리너의 협연(필립스)은 감정의 무게를 걷어낸 무색무취의 객관성으로 일관하지만 곡의 아름다움을 담백하게 드러내는 품위 있는 연주다.
4. 미츠코 우치다와 제프리 테이트의 협연(필립스)은 영롱하고 순수하면서도 무엇인가를 간절히 호소하는 듯한 매력이 있다.
글 류태형(음악 칼럼니스트) 현 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전 대원문화재단 사무국장, 전 <객석> 편집장 역임. 옛 음반과 생생한 공연의 현장을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처럼 누비길 즐겨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