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26 'Coronation'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번 ‘대관식’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Friedrich Gulda, piano & conductor
Münchner Philharmoniker
München, 1986
‘대관식 협주곡’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져 있는 이 ‘D장조 협주곡’은 오랫동안 모차르트의 가장 인기 있는 피아노 협주곡의 하나로 각광받았다. 특히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는 ‘20번 d단조’와 더불어 연주회에서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작품이었다. 비록 오늘날에는 과거만큼 주목받고 있지는 못하지만, 이 화사하고 경쾌한 협주곡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무엇보다 직전 시기의, 즉 1785년과 1786년에 작곡된 걸작들(20~25번)과 비교하면 한결 쉽고 친근한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모차르트 협주곡에 입문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제격이다.
이 곡에 ‘대관식’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1790년 가을, 모차르트가 황제 레오폴트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방문했던 프랑크푸르트에서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양단악장의 팡파르적인 총주와 피아노 독주의 활기찬 패시지를 비롯하여 작품 곳곳에서 축전적인 경향이 엿보이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 작곡과 초연의 시기는 그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다.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6번은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에서 연주되었다.
다시 청중의 곁으로
모차르트가 이 협주곡을 쓴 것은 1788년 2월경으로, 그 자신이 쓴 작품목록에 의하면 2월 24일에 완성되었다. 당시 모차르트는 생활고를 겪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터키 전쟁의 여파로 빈의 문화적 수요가 위축된 것이 주된 요인이었다. 무엇보다 거액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예약 연주회를 개최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는데, 설상가상으로 그 무렵 모차르트의 음악은 빈 청중의 기호에서 꽤나 멀어져 있었다.
모차르트는 빈에 정주한 이후 지속적으로 음악적 발전과 심화를 추구했는데,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로 대표되는 전성기를 지나는 동안 어느새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의 난이도가 일반 청중의 이해를 훌쩍 뛰어넘어 버렸다. 고되고 어지러운 시대일수록 대중은 간편하고 자극적인 것에 끌리는 법인데, 모차르트의 음악은 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난해해졌으니 당연히 외면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차르트도 그런 현실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래서 이 곡에서는 한결 단순하고 유희적인 어법을 구사함으로써 다시금 청중 곁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듯하다. 그리고 1788년의 사순절을 겨냥하여 예약 연주회를 추진했는데, 그 연주회는 충분한 청중이 모이지 않아 무산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다만 최근에는 그해 여름에 트라트너 카지노에서 연주회가 열렸다는 주장이 새롭게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작품의 초연은 이듬해인 1789년 4월 14일에야 성사되었는데, 그해 봄 모차르트가 프라하를 거쳐 베를린까지 여행하던 길에 들렀던 드레스덴의 궁정 음악회에서 직접 연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의도된 유희성과 새로운 가능성
이 ‘D장조 협주곡’은 빈 시대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들에 비해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다른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피아노와 관현악의 복잡하고 긴밀한 짜임새가 결여되어 있고, 관악기와 팀파니의 처리 방식도 소극적이며, 표현적인 면에서도 다소 내적인 충실함보다는 외적인 화려함에 치우쳐 있는 탓이다. 다시 말해서 이것은 모차르트가 청중의 취향과 일종의 타협을 시도하면서 의도적으로 조금은 ‘힘을 빼고’ 쓴 작품으로서, 음악적 완성도에 있어서는 이전 작품들에 비해 오히려 퇴보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러한 면 때문에 이 곡은 다른 협주곡들에 비해 간결하고 친근한 인상을 주게 되었으며, 특히 19세기에는 베토벤의 ‘황제 협주곡’과 (다분히 별명 덕분이긴 하지만) 나란히 거론되며 큰 인기를 누렸다. 또 이 작품을 그저 폄하할 일만도 아닌 것이, 느린악장의 칸타빌레 부분에서는 모차르트가 생애 마지막 해인 1791년에 구사하게 되는 명징한 언어가 이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한편 이 작품은 그의 다른 피아노 협주곡 대부분, 특히 전작인 ‘25번 C장조’(K.503)와 마찬가지로 모차르트 자신이 직접 연주하기 위해서 작곡되었다. 그러나 여타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두 협주곡은 그의 제자나 후원자, 출판인에게조차 제대로 갖추어진 악보로 제공된 적이 없었다. 그 결과 이 두 작품의 카덴차는 온전히 작성되지 않았는데, 두 곡 공히 오른손 파트는 멜로디의 대략적인 윤곽만 잡혀 있고, 이‘26번 D장조’의 경우에는 왼손 파트가 완전히 공란으로 남겨졌다. 따라서 오늘날에는 연주자들이 직접 보충했거나 기존의 것들 중에서 선택한 카덴차가 연주된다.
Mitsuko Uchida/Jeffrey Tate/ECO - Mozart, Piano Concerto No.26 in D major
Mitsuko Uchida, piano
Jeffrey Tate, conductor
English Chamber Orchestra
London, 1987
1악장: 알레그로
D장조, 4/4박자. 저현부에서 으뜸음(D)으로 구성된 페달음(보속음)이 울리는 가운데 스타카토 리듬에 실려 경쾌하면서도 우아하게 떠오르는 제1주제, 이어서 관악기가 가세하여 울리면 힘차게 부각되는 축전적인 분위기, 그리고 한결 유려하면서도 경쾌한 멋을 잃지 않는 제2주제! 이 악장의 문을 여는 관현악 제시부는 듣는 이에게 가슴 가득 사랑스러운 설렘을 안겨준다.
계속해서 피아노가 등장하면 음악은 한층 더 활기를 띠며 더욱 화려하고 다채롭게 변모해 간다. 그중 단조 영역이 부각되는 동시에 다소 정체된 흐름이 연출되어 제시부와 선명한 대조를 이루는 발전부는 모차르트가 이 곡에서조차 최소한의 진지함은 포기하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2악장: 라르게토
A장조, 2/2박자. 모차르트 특유의 귀엽고 사랑스러운 선율이 리드미컬하게 흐르는 완서악장(느린악장)이다. 그 선율의 천진난만한 이미지와 전편에 감도는 투명하고 영롱한 분위기는 그의 피아노 협주곡 20번 d단조의 완서악장을 강하게 환기시키는데, 역시나 스케치에는 ‘로만체’라는 부제가 적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d단조 협주곡’과는 달리 어둡고 격렬하게 소용돌이치는 단조의 중간부 대신 장조의 밝고 평온한 분위기로 일관한다.
3악장: 알레그레토
D장조, 2/4박자. 역시 모차르트 특유의 장난기 어린 주제로 출발하는 론도 악장인데, 두 번째 에피소드 없이 소나타 형식의 논리와 결합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쾌활한 표정의 리드미컬한 선율이 매끄럽게 흘러가지만, 중간 중간에 흥분한 듯한 패시지와 갑작스레 터져 나오는 총주가 배치되어 흐름에 탄력과 활기를 곧추세운다.
추천음반
1.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피아노, 지휘)/로잔 체임버 오케스트라. MDG
2. 머레이 페라이어(피아노, 지휘)/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 Sony
3.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피아노, 지휘)/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Decca
4. 안네로제 슈미트(피아노)/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쿠르트 마주어(지휘). Berlin Classics
5. 파울 바두라 스코다(피아노, 지휘)/프라하 체임버 오케스트라. Nca *영상물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