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zart, Piano Concerto No.27 in B flat major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27번
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
Maria João Pires, piano
Trevor Pinnock, conductor
Chamber Orchestra of Europe
2013.02.06
모차르트의 음악은 대부분 경이롭지만, 이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에서 마주치게 되는 경이는 조금 더 각별한 듯하다. 얼핏 듣기엔 그저 수수하고 담담하게 스치듯 흘러가는 것 같지만, 그 안에는 실로 형언하기 불가능한 무수한 감정과 생각의 편린들이 녹아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슬며시 다가와 아주 비밀스런 속삭임으로 스며든다.
시적인 아름다움과 영적인 숭고함을 동시에 지닌 이 ‘B플랫장조 피아노 협주곡’은 모차르트가 그리 길지 않았던 생애를 마감한 해인 1791년 초에 완성되었다. 그 무렵 모차르트의 삶은 겨우 11개월 정도 밖에 남아 있지 않았고, 1788년 이후 3년 가까이 곤궁한 생계를 이어오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그의 모든 협주곡 중에서 가장 차분하고 내성적인 이 작품이 얼마 후 다가올 최후에 대한 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추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빈의 성 마르크스 묘지에 있는 모차르트의 가묘와 추모비. 모차르트가 묻힌 정확한 지점은 알려져 있지 않다.
암울한 시기와 새로운 희망
최근의 악보 연구에서 이 협주곡의 첫 부분이 쓰인 오선지가 모차르트가 1788년경에 자주 사용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렇다면 이 협주곡의 작곡 기간은 모차르트의 생애에서 가장 곤궁했던 시기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특히 1790년은 그중에서도 가장 암울했는데, 우선 그해 초에는 신작 오페라 <코지 판 투테>가 초연되어 호평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작품의 위촉자이기도 했던 요제프 2세 황제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국장의 분위기 속에서) 공연이 중단되고 말았다. 게다가 후임 황제인 레오폴트 2세는 모차르트에게 호의적이지 않아서, 궁정음악가였음에도 대관식에 초청조차 받지 못한 모차르트는 자비를 들여 프랑크푸르트까지 가서 얼굴을 비쳐야 했다. 그런 와중에 모차르트의 건강도 안 좋아서 1년 중 절반 가까이를 작곡 및 연주 활동을 전폐하다시피 하며 지내기까지 했던 것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마지막 해는 새로운 희망과 더불어 밝아 오고 있었다. 새로운 제자들이 생겼고, 한동안 뜸했던 작곡 의뢰도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예약 연주회를 재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커져 갔다. 그래서인지 이 곡의 전반적인 이미지는 별다른 구김살 없이 맑고 투명하며, 특히 마지막 악장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기대로 들뜬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다만 완서악장을 중심으로 시종 지속되는 겸허하고 정제된 표정과 어조에서 그가 고달픈 나날들을 겪으며 얻었을 깨달음과 성숙미가 감지된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협주곡은 그 다채로움과 짜임새가 절묘하여 진정한 ‘실내악적 협주곡’이라 말할 수 있다.
천의무봉의 실내악적 협주곡
모차르트는 이 곡에서 전성기의 화려함을 버리고 팀파니, 트럼펫, 클라리넷을 배제한 비교적 간소한 규모의 오케스트라를 사용했다. 그 대신 오케스트라 속의 악기들, 특히 목관 파트와 피아노 사이에 더욱 긴밀한 융화가 이루어지도록 하였다. 무엇보다 현악기들이 빚어내는 단정한 흐름 위로 자연스럽게 부각되는 피아노의 울림, 그리고 섬세함과 친밀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피아노와 목관악기의 앙상블은 가히 천의무봉의 경지라 할 만하다. 그리고 거기에 주요 선율들이 머금은 영롱함과 정겨움이 가미된 이 작품은 진정한 ‘실내악적 협주곡’이라 하겠다.
Andreas Staier/Gottfried Goltz/Freiburger BO - Mozart, Piano Concerto No.27 K.595
Andreas Staier, pianoforte
Gottfried von der Goltz, conductor
Freiburger Barockorchester
Freiburg, Paulusaal
2007.05
1악장: 알레그로
B플랫장조, 4/4박자. 현의 물결치는 듯한 반주로 출발하여 주제 선율들이 차례로 떠오른다. 다소 호흡이 긴 제1주제는 차분하고 청초하면서 친근한 인상을 주며, 싱커페이션 리듬이 가미된 제2주제는 조금 더 경쾌한 모습이다. 이 두 개의 주제가 기분 좋은 대비를 이루며 진행되는 이 첫 악장은 전반적으로 온화하고 차분한 인상을 준다. 무엇보다 그 은은한 생기가 감도는 자연스러운 흐름은 언제나 듣는 이에게 온화하고 유쾌한 감흥을 안겨준다.
하지만 동시에 소나타 형식 특유의 극적 흐름도 충분히 부각되는데, 그 안에는 모차르트 완숙기의 특징인 다채로운 조바꿈과 다성적 짜임새가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다. 이와 관련, 전기 작가인 생 푸아는 발전부의 탁월함을 지적하면서, “모차르트는 그 주제가 무지개와 같이 모든 색채를 통하여 진행되도록 만들었는데, 변화된 세계에서 자신이 간직한 내면의 시를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었다.”라고 극찬한 바 있다.
2악장: 라르게토
E플랫장조, 2/2박자. 3부 형식으로 구성된 완서악장. 얼마간 우수 어린 표정을 띠고 있는데, 차분한 흐름과 부드러운 대비라는 면에서는 제1악장의 연장선상에 있다. 다만 주부에 흐르는 선율이 우미하고 고상한 느낌인 데 비해, 중간부의 선율은 조금 더 리드미컬하다.
특히 이 악장의 주제 선율은 거의 소나티네의 그것에 가까울 정도로 단순한데, 그 모습은 일견 그의 전작들, 즉 피아노 협주곡 20번, 23번, 26번 등의 완서악장에 사용된 주제들을 연상시킨다. 여기서 모차르트는 다시 한 번 단순한 주제로부터 감동적인 음악을 이끌어내는데, 그 고도로 정제된 표현과 오묘한 여백의 미는 이전 작품들을 능가하는 경지를 가리키고 있다.
3악장: 알레그로
B플랫장조, 6/8박자. 명랑한 사냥 음악 풍의 론도인데, 에피소드가 하나뿐이어서 론도와 소나타 형식이 결합된 구조를 보여준다. 시작과 함께 피아노가 연주하는 론도 주제는 마치 가볍게 춤을 추듯 경쾌하고 사랑스러우며, 이 주제에 실린 느낌이 악장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F장조의 제2주제 역시 명랑하게 춤을 추는 듯한 느낌을 유지하는데, 다만 이번에는 피아노가 조금 더 화려한 움직임을 보인다.
이후 발전부로 넘어가기 전에 ‘아인강(Eingang, 도입구, 연결구)’이 나오는데, 이것은 앞선 두 악장을 위한 카덴차와 더불어 모차르트가 직접 남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각에서는 조바꿈 수법이 부자연스럽다는 등의 이유로 모차르트의 것이 아니라는 설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론도 주제는 이 협주곡이 완성된 직후에 만들어진 가곡 '봄을 기다림(K.596)'의 민요풍 선율과 일치하는데, 그 가사의 첫 구절은 다음과 같다. ▶에밀 길렐스(피아노), 칼 뵘(지휘), 비엔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 음반(DG).
오라, 사랑스런 5월이여, 그래서
나무들을 다시 초록빛으로 물들여다오,
그리고 시냇가의 작은 제비꽃들도
나를 위해 만발하게 해다오!
이 협주곡은 완성 후 2개월쯤이 지난 3월 4일에 궁정요리사 이그나츠 얀의 집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모차르트 자신에 의해서 초연되었는데, 이 음악회는 모차르트가 피아니스트로서 협연에 임한 마지막 무대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얼마 후 찾아온 계절은 그의 생애에서 마지막 봄이었다.
추천음반
1. 에밀 길렐스(피아노)/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카를 뵘(지휘). DG
2. 클리포드 커즌(피아노)/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벤저민 브리튼(지휘). Decca
3. 마리아 조앙 피르스(피아노)/오케스트라 모차르트/클라우디오 아바도(지휘). DG
4. 안드레아스 슈타이어(포르테피아노)/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고트프리트 폰 데어 골츠(지휘). HarmoniaMundi *시대악기 연주
글 황장원(음악 칼럼니스트) 클래식 음악 감상실 ‘무지크바움’ 실장과 한국바그너협회 사무간사를 역임하였다. 무지크바움, 부천필 아카데미, 성남아트센터, 풍월당에서 클래식음악 교양강좌를 맡고 있다. <객석>, <스테레오뮤직>, <그라모폰>, <라무지카> 등에 칼럼을 기고했고 현재 서울시향 프로그램 노트를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