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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 공작부인 마리(Marie de Bourgogne)

Bawoo 2017. 2. 20. 21:50



부귀공 마리
Maître de la Légende de Sainte Marie-Madeleine, Sainte Marie-Madeleine (15–16ème siècle).jpg
저지대 국가 통치자
재위1477년 1월 5일~1482년 3월 27일
전임자용담공 샤를
후임자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
배우자막시밀리안 대공
자녀미남왕 필리프
오스트리아의 마르게리타
왕가혼전:발루아부르고뉴 가문
혼후:합스부르크 왕가
부친용담공 샤를
모친이사벨 드 아비스
출생1457년 2월 13일(1457-02-13)
브라반트 공국 브뤼셀
사망

1482년 3월 27일 (25세)
플랑드르 Wijnendale



Mary of burgundy pocher.jpg

Portrait, accredited to Michael Pacher, c. 1490

부르고뉴 공작부인 마리(Marie de Bourgogne) 또는 부귀공 마리(Mary the Rich, 1457년 2월 13일 ~ 1482년 3월 27일

)는

Engraving of Mary of Burgundy


용담공 샤를이사벨 드 부르봉의 외동딸로서, 1477년부터 1482년까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저지대 국가들을 통치하였다. 후에 신성로마황제가 되는 막시밀리안 대공

과 결혼하나, 

Marriage of Mary of Burgundy and Maximilian of Austria

그가 황제가 되기 전에 사망한다. 그녀의 영지는 이후

합스부르크령이 되었고, 이는 합스부르크 왕가

의 성장 토대를 마련하게 된다.

Mary and Maximilian

Mary's tomb effigy[조상] in the Church of Our Lady, Bruges.

자녀

마리는 막시밀리안 대공과의 사이에서 1남 1녀(총 2명)의 자녀를 낳았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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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고뉴의 공작 샤를(Charles the Bold)의 딸이자 계승자이다. 합스부르크가(家) 황제 페르디난트 3세의 아들인 대공 막시밀리안(후에 막시밀리안 1세)과 혼인함으로써 네덜란드가 합스부르크가의 지배를 받는 결과를 가져왔다.

1476년 막시밀리안과 약혼한 뒤, 1477년초에 아버지가 낭시에서 죽자 부르고뉴의 여공작이 되었으나 프랑스의 침략에 직면했다.

그녀는 후에 샤를 8세가 된 인물과 혼인하라는 프랑스의 압력을 물리치고 1477년 8월 18일 막시밀리안의 아내가 되었다. 이 혼인과, 훗날 그녀의 아들 펠리페(후에 카스티야의 펠리페 1세)가 아라곤의 페르디난드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사이에서 태어난 딸 후아나와 맺은 결혼으로 말미암아 네덜란드는 스페인과 손을 잡게 되었다. 마리의 유명한 손자는 신성 로마 황제 카를 5세(스페인 왕 카를로스 1세)이다.[다음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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