昨夜長安醉酒來 桃花一枝爛漫開
君何種樹繁華地 種者非也折者非
(작야장안취주래 도화일지난만개
군하종수번화지 종자비야절자비)
어젯밤 장안에서 술에 취해 여기 오니
복숭아꽃 한 떨기 아름답게 피었더군
그대 어찌 이 꽃을 번화한 곳에 심었는가
심은 자가 그른지 꺾은 자가 그른지
※ 조선조 오백 년을 통틀어 최고의 풍류남아(風流男兒)로 꼽히는 백호(白湖) 임제(林悌). 그가 28세 되던 춘삼월 어느 날, 서울에서 만취해 수원의 어느 주막에 이르렀다.
취안무추녀(醉眼無丑女)라 했다던가. 취한 눈에 미인 아닌 여자 없다더니 일별(一瞥)에 주모와 눈이 맞아버렸고, 하룻밤에 만리장성을 쌓고 말았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해야 할까. 사주경계(四周警戒)에 소홀했던지 그만 주모의 남편에게 동침 현장을 들키고 말았다.
살기등등(殺氣騰騰)해진 서방이 칼을 들고 들어와서는 다짜고짜 죽이겠다고 덤벼든다. 천하의 임백호(林白湖)지만 꼼짝없이 죽게 생기지 않았는가.
※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의 <주막거리(酒幕距離)>
목숨이 경각에 달한 그 순간, 죽을 때 죽더라도 시(詩)나 한 수 읊고 죽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엉뚱한 수작을 부리는 것 같지는 않다고 판단했는지 남편이란 사내가 그렇게 하라고 한다. 이에 즉석에서 일필(一筆)로 휘지하니 바로 위의 시라 한다.
백호는 시를 다 적은 뒤 이제 죽이라며 목을 내밀었다. 그 남편이 시를 죽 보더니 감탄해 마지 않으며 아내를 범한 죄를 용서하고 술상까지 내와 융숭히 대접했다 한다.
내용이 제법 그럴 듯하지만 얼마나 신빙성 있는 얘기인지 모르겠다.
그 시절 주모를 아내로 둔 사내라면 먹물과는 거리가 먼 신분이었을 터.
문자를 알았다는 것도 그렇고, 한시(漢詩) 한 수에 녹아나 범방(犯房)을 용서하고 술상까지 차려 대접했다는 것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궐자가 주모의 기둥서방 노릇하는 지방의 파락호(破落戶)였다면 뭐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임백호가 워낙 호방한 사나이다 보니 그를 등장시켜 적절히 엮어낸 얘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의 <주막(酒幕)>
조선 중기 호방한 기개와 재기 넘치는 풍류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백호(白湖) 임제(林悌).
그를 말하면 평안도사(平安都事)로 부임하던 길에 송도(개성)에 들러 황진이 무덤을 찾아 술을 따르고 읊었다는 유명한 시조가 먼저 떠오른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는가 누웠는가 … "
그로서는 너무도 당연한 장부의 행각이었으련만 "사대부가 일개 기녀의 묘에 참배하고 시까지 읊었다" 하여 현지에 부임하기도 전에 파직 당하고 만다.
그는 죽음을 맞아서도 임제다운 면모를 놓치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 황제라 칭하지 않은 민족이 없는데 우리 민족은 이 작은 땅에서 큰 소리 한번 치지 못하고 살아왔다. 이런 땅에서 살다 가는데 뭐 그리 애통해하고 슬퍼 할 것인가"라며 자식들에게 곡(哭)하지 말라고 했다는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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