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술(美術) 마당 ♣/- 화가,그림 이야기

포대화상도(布袋和尙圖)

Bawoo 2017. 6. 15. 21:53


포대화상도(布袋和尙圖)                         

 조선 중기의 화가 한시각(韓時覺)이 그린 선종화.

포대화상도

조선 중기의 화가 한시각(1621-?) 이 그린 선종화. 종이에 수묵. 29cmx117.4㎝. 간송미술관 소장.

내용

조선 중기의 화가 한시각(韓時覺)이 그린 선종화. 종이바탕에 수묵(水墨). 세로 117.4㎝, 가로 29㎝. 간송미술관 소장. 포대(布袋)는 원래 정웅대사(定應大師)라고 하는 후량(後梁)의 고승을 가리킨다.

이 고승은 늘 작대기에 포대, 즉 자루를 메고 다니면서 무엇이든 동냥한 것을 그 속에 담곤 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별명을 얻게 된 것이다. 이 포대화상은 배가 나오고 대머리이며 때로는 호탕하게 웃고, 때로는 거칠면서도 선종에 명석하였던 인물로 미륵보살의 현신(現身)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는 10세기 초에 죽었는데 그가 죽은 지 얼마되지 않아서부터 벌써 그의 초상을 그리는 것이 양쯔강(揚子江)지역과 저장(浙江)지방에서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한시각의 <포대화상도>가 현존 유품 가운데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예가 된다.

이 그림에 묘사된 포대는 약간 비껴진 모습으로 짧은 수염이 나 있고 자루는 막대기에 붙잡아 매지 않고 직접 어깨에 메고 있다. 그리고 배는 튀어나와 있지 않고 허리띠로 묶어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둥글고 부드러운 얼굴에 뚱뚱하게 튀어나온 태고(太鼓)를 두드리며 너털웃음을 짓고 천하태평의 호인상을 지닌 포대상과는 차이가 있다.

윤곽선은 짙은 묵선으로 간결하게 처리하여 선종화 특유의 감필적(減筆的) 특징을 반영하고 있는데, 특히 바지자락에 가해진 풀어진 고무줄 같은 파상주름은 일본 에도시대(江戶時代) 선종화풍과 상통되기도 한다. 그의 작품으로 이와 유사한 포대도 2점이 더 알려져 있다.


각주
  
『한국회화대관』(류복렬 편, 문교원, 1968)

「17·18세기의 한·일간 회화교섭」(홍선표, 『고고미술』 143·144, 1979)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긍재(兢齋) 김득신(金得臣) 의 포대흠신(布袋欠伸)

(欠은 하품 흠이니 포대화상이 기지개를 켜다는 뜻이다.)

 

 

 

 

사진 : 지본담채 27.2x22.8cm

 

천하를 정처 없이 떠도는 행각승(行脚僧)이 봄볕 따사로운 날

늙은 소나무 그늘 아래에서 낮잠을 즐긴 다음 잠을 깨고 나서

그래도 미진한 듯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해대고 있는 모습이다.

 

가야 할 곳도 가야 할 시간도 정해진 것이 아니니 느긋할 수 밖에 없다.

곁에 있는 보따리 하나가 그의 현재 형편을 소리 없이 설명해 주고 있다.

-간송문화도록-최완수 선생 해설 중에서

         


   ========================================================================


포대화상(布袋和尙)


포대화상 布袋和尙 五代的一位高僧。法名契此,又號長汀子。明州奉化(浙江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契此(계차)이다. 뚱뚱한 몸집에 얼굴은 항상 웃으며 배는 풍선 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으로


지팡이 끝에다 커다란 자루를 걸러메고 다니는데, 그 자루 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있어서 무엇이든 중생이 원하는대로 다 내어주어서 포대스님이라고 불렀다.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먹고 땅을 방바닥으로 삼고 구름을 이불 삼고서 어느 곳에서든지 벌렁 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며 이마을 저마을 돌아다니면서 세속사람들과 같이 차별없이 어울리면서 길을 가르치고 이끌었다. 연꽃과 같은 삶이었다. 그는 자연과 더불어 자고 깨었으며 자연과 더불어 행하였고 대자연으로 돌아간 걸림없는 대자유인이었다.천백억으로 몸을 나누어도 낱낱이 참 미륵일세 항상 세인에게 나뉘어 보이건만 아무도 미륵임을 아는 이 없네 게송을 남기고 반석위에 단정히 앉은채로 입적하였다.


포대화상은 중국의 선사로서 기인이었다. 그는 항시 개 뼈다귀로 가득한 자루를 지고 다녔다. 그는 이 마을 저 마을 자루를 지고 다니면서 "개 뼈다귀 사시오. 개 뼈다귀 사시오." 외치며 다녔다. 사실 개 뼈다귀는 전혀 쓸모가 없는 쓰레기와 같은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은 그를 미친사람으로 취급하였다. 짖꿎은 아이들이 막대기로 번갈아가며 때리기도 하였으나 그는 때론 울음 짓기도하고 아이들과 실갱이 하기도하며 바보 짓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相見, 邪見을 가진 일반인들을 제도하기 위한 가르침이었다.


 다음은 그의 노래이다.


 夜夜胞佛眠 밤마다 부처를 보듬고 자다가

 朝朝還共起 아침마다 같이 일어난다.

 起坐鎭相隨 일어나건 앉건 서로 붙어다니며

 語默同居止 말을 하건 않건 같이 머물고 눕는다

 纖豪不相離 털끝만큼도 서로 떨어지지 않으니

 如身影相似 몸의 그림자 같구나

欲識佛居處  부처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자 할진대

只這語聲是  다만 말하는 이놈이니라

http://sungag.buddhism.org/2song/-sack.htm  에서 발췌



一鉢千家飯  하나의 바릿대 천 집에 밥을 빌며

孤身萬里遊  고고히 몸은 만리를 노닌다

靑目覩人小  알아보는 이 별로 없어라

問路白雲頭  떠도는 흰 구름에게 길을 묻노라.

彌勒眞彌勒  미륵 참 미륵이여

分身千百億  천백 억의 몸으로 나투어

時時示市人  때때로 세속 사람들에게 보이나

市人自不識  세속 사람들이 스스로 알지 못하더라.

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虛空無과碍  허공도 걸림이 없어라

展開편宇宙  열어 펴면 우주에 두루 하고

入時觀自在  오므려 들일 때도 자재로움을 보노라.          



아유일포대(我有一布袋) 나에게 한 포대가 있으니 우리가 세상을 살기로 하면 각자가 호주머니를 하나씩 가져야 한다. 가정에서는 가정을 이끌어 갈 주머니, 학교에서 학교를 이끌 어 갈 주머니를 가져야 한다.

항상 이 포대를 내 몸에 간직하 고 길러야 한다. 그래야 쓸 때 포대가 적으면 아니된다. 우주 만물을 싸고도 남는 주머니를 함양하여야 한다.허공무가애(虛空無 碍) 전개편우주(展開 宇宙)라. 그런데 그 한 포대가 허공에도 걸림이 없어서 전 우주에 뻗어 나간 다. 그 포대는 허공이라도 걸리지 않고 모두 집어넣을 수 있 는 포대가 되어 전 우주에 뻗어 나간다는 것이다.입시관자재(入時觀自在)라 그 한 포대를 우주에 펴 보아서 허공이 다 들어가면 자재하는 것이다.


가 출가를 한 지도 60여년이 되었는데 당시에 우리 큰댁 이 3천석 받는 부자였고, 나도 7, 8백석을 받았었다. 하지만 그러한 것이 싫어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하여 평생을 지냈다. 11세에 대종사님을 뵙고 16세에 다시 뵈온 후로 변하지 않는 마음으로 살아 왔다.석가세존께서도 왕궁의 태자로 태어나셔서 아무 것도 부족 함이 없었는데 그것을 모두 버리고 유성 출가하셨기 때문에 입시관자재하셨고, 순치황제도 18년간 황제 노릇을 하다가 출 가하시였으니 전개편우주하다 입시관자재 한 것이다.


http://won.wonbuddhism.or.kr/bupmun/daesan5/daesan5_3-1-12.html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