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생전에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았지만 세상을 떠나자마자 곧 잊혀진 화가들이 제법 됩니다. 세상인심이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일입니다. 그런 화가들은 대개 거대한 미술 사조가 크게 출렁거리는 경계선에 서 있었던 경우가 많습니다. 새로운 변화에 우리는 흔히 그 이전 것을 쉽게 잊는 경향이 있지요.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Herbert James Draper, 1863-1920)도 그렇게 잊혀진 화가 중 한 명이었습니다.
칼립소 여신의 섬 Calypso's Isle, 1897
짙은 녹색의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흰 등이 눈부십니다. 이름이 칼립소라는 여신입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던 오디세우스는 여러 난관을 만나는데 그 중 하나는 집의 반대 방향에 있는 칼립소 여신의 섬까지 떠내려 간 것도 포함됩니다. 여신은 남자다운 오디세우스에게 반하여 7년간이나 붙잡아두고 함께 살기를 권하지만 끝내 그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습니다. 그림 속 장면이 오디세우스를 만나기 전인지 아니면 그가 떠난 뒤인지 알 수 없지만 멍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여신의 머리에서부터 등을 타고 내려오는 쓸쓸함이 햇빛에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드레이퍼는 런던에서 보석상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처음에는 학교에서 과학을 공부했었는데 스물한 살이 되던 1884년에 로열 아카데미에 입학 그림 공부를 시작합니다. 타고난 재능은 숨길 수 없는 것이었는지 나중에 병원으로 사용될 공공건물의 장식 일을 맡았는데 이 일로 메달을 받게 됩니다. 학교 졸업을 앞두고는 금메달과 함께 여행 장학금도 수상하게 됩니다.
바다 요정 The Sea Maiden 1894
물고기 꼬리를 했으면 인어라는 제목이 어울리는데 아무리 봐도 예쁜 여인입니다. 그렇다면 바다 속에 사는 요정이 되겠지요. 어쩌다가 어부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놀란 요정의 눈이 두 배는 커진 것 같습니다. 그물을 당기는 선원들의 터질 것 같은 근육과 대비되면서 요정의 자세가 애처롭습니다. 놓아주고 싶은 마음과 그물을 당기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보이는 듯합니다. 그나저나 이 요정 아가씨, 거친 야성으로 가득 찬 이 난관을 어떻게 벗어날까요? 이 작품으로 드레이퍼는 화가로서의 명성을 확실하게 얻을 수 있었습니다.
1889년부터 2년 가까이 드레이퍼는 스페인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를 여행합니다. 파리에서는 아카데미 줄리앙에 입학, 그림 공부를 하기도 하고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는 그곳에서 정착할 계획도 세웁니다. 이탈리아의 햇빛이 너무 좋았던 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이었던 영국의 레이턴에게 자문을 구합니다. 레이턴 경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영국의 여름 햇빛만한 것이 없다네. 드레이퍼는 이탈리아에서 거주하려고 했던 계획을 없던 것으로 합니다.
거품 요정 The Foam Sprite, 1895
보기만 해도 상큼합니다. 돌고래 위에 앉아 바다를 가로지르는 요정은 날아갈 것 같은 표정입니다. 날리는 머리를 두 손으로 잡은 모습은 파도의 울렁거림과 어울려 역동성을 더해주고 있습니다. 멀리 함께 따라오는 돌고래들도 보입니다. 어느 바다를 가야 거품 요정을 만날 수 있을까요? 동화 속 이야기이겠지만 저도 돌고래 등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상상을 해 봅니다. 물론 옷은 다 입어야겠지만요.
1891년, 런던으로 돌아 온 드레이퍼는 그 해 판사의 딸인 아이다와 결혼합니다. 둘 사이에는 아이 하나를 두었습니다. 처음 그의 작품 주제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가져온 것들이었습니다. 검은 머리의 아름답고 순결해 보이는 여인들이 그의 작품 속에 등장했습니다. 이런 그의 화풍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작품과 유사했습니다. 실제로 드레이퍼는 워터하우스의 집 근처에 살았고 그의 장례식에도 참석했었습니다.
포푸리 Pot Pourri, 1897, 51x68.5cm
방향제를 만드는 여인의 손에 장미 한 송이가 들렸습니다. 통 속에 장미 꽃잎을 담고 이것저것 섞어 놓으면 근사한 방향제가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테이블 위에는 마른 장미가 수북합니다. 그런데 붉은 장미와 검은색 옷의 강렬한 대비 속에 등을 돌리고 앉은 여인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포푸리 만드는 일이 따분할 수도 있겠지요. 그렇다면 실내 공기를 정화하는 일보다는 답답한 마음부터 정화하는 것이 먼저일 것 같습니다. 기억을 말끔하게 정화시키는 방향제 같은 것은 없을까요?
힘이 넘치고 감각적인 드레이퍼의 작품은 파리에서 배운 아카데믹 기법과 후기 인상파의 색상이 결합되었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또한 라파엘전파의 추종자라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제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라파엘전파의 영향이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싶습니다. 당대 그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무거운 주제에 비해 드레이퍼의 작품은 우아하고 쾌활해서 대중들이 보다 쉽게 다가설 수 있었습니다.
화실에서 In the Studio
그림을 그리기 위해 준비한 소품들 사이에 모델을 앉게 했습니다. 꽃으로 시선을 돌린 모델은 아직 성숙하지 않은 몸입니다. 처음 이 그림을 볼 때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봄이었습니다. 화사한 꽃들과 하늘색 도자기, 어린 소녀의 모습이 영락없이 봄의 상징들처럼 다가왔거든요. 봄은 이렇게 가볍고 어리고 화사합니다. 그림 속 소녀가 농염해질 때쯤이면 가을이 되는 것이겠지요.
드레이퍼가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은 꽤 고통스러웠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에는 바다를 배경으로 한 것이 많은데, 바다의 장면과 어부들이 작업하는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기 위해 몇 시간씩 뜨거운 태양과 흔들리는 배 위에서 관찰해야 했습니다. 한동안 잊혀졌던 그의 작품들도 화가 개인으로 보면 지난한 과정을 거친 것들이죠.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모든 그림들은 소중합니다.
이카루스를 애도함 Mourning for Icarus, 1898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는 아버지의 충고를 잊어버린 이카루스는 결국 새 털로 된 날개의 밀랍이 녹는 바람에 지상으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것은 그의 아버지뿐만 아니었습니다. 그를 알고 있던 요정들이 이카루스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떤 한계를 넘어서고자 할 때는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목숨을 담보로 추구하는 것은 미지의 세계로 표현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한 참여일 것입니다. 그렇게 스러져간 목숨들 때문에 우리가 여기까지 온 것이겠지요. 물론 신의 영역은 지켜져야 하지만요.
1900년 드레이퍼는 ‘이카루스를 애도함’이라는 작품으로 파리 박람회에서 금메달을 수상합니다. 1894년부터 이 무렵까지가 그의 화가로서 절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1900년이 지나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지요. 사람들은 신화를 주제로 한 작품에서 흥미를 잃기 시작했고 드레이퍼는 부유한 사람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을 병행하게 됩니다.
새벽의 문 The Gates of Dawn, 1900
새벽의 문을 여는 사람이 누군가 했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이었군요. 바닥에 장미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혹시 새벽의 여신 에오스가 아닌가 싶습니다. 여인의 뒤로는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면서 아침이 밝아 오고 있습니다. 하루를 이렇게 시작한다는 상상만으로도 즐겁습니다. 문득 여인 머리 위의 하늘에 시선이 닿았습니다. 이렇게도… 아침 하늘을 묘사하는군요.
영국 화가들의 가장 큰 명예는 로열 아카데미 회원이 되는 것일 겁니다. 1887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까지 드레이퍼는 꾸준하게 로열 아카데미에 작품을 출품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그는 정회원은커녕 예비후보도 되지 못했습니다. 화가에게 명예가 절대적인가는 개인이 판단할 문제이지만 그 정도 노력에 대한 로열 아카데미의 반응은 없었습니다.
아리아드네 Ariadne, c.1905, 100x77cm
크레타 왕 미노스는 아내가 황소와 관계를 맺고 낳은 아들 미노타우로스를 미궁에 가둡니다. 그리고 해마다 소년과 소녀들을 제물로 바치죠. 이때 테세우스가 크레타 섬에 도착, 미노타우로스를 죽이고자 합니다. 그를 보고 한눈에 반한 여인이 아리아드네입니다. 몸에 실을 묶고 미궁을 빠져 나오게 한 것도 그녀였습니다. 둘은 결혼을 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녀는 나중에 디오니소스와 결혼하게 됩니다. 다른 자료에는 임신 중인 그녀를 테세우스가 버리고 떠나자 자살했다는 것도 있습니다. 혹시 그림 속 아리아드네… 떠나버린 테세우스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떠난 남자를 기다리는 것도 바보 같은 일이지만 그것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더 바보 같은 짓입니다.
드레이퍼의 명성이 급격히 희미해진 이유 중 하나는 그가 구사했던 아카데믹 기법이 문제였습니다. 대중들이 보기에 그의 기법은 시대에 한참 뒤쳐진 것이었습니다. 예술을 하는 분들의 처지에서는 개인 차이가 있겠지만 끝없이 현실을 따라가는 것이 맞는지 아니면 자신만의 기법을 고수하는 것이 맞는지 우리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물의 요정 The Water Nymph, 1908, 61x114.3cm
제가 상상하고 있는 요정과는 많이 다릅니다. 물가에 올라와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숲을 헤치고 불쑥 나타난 낯선 사람의 모습에 놀란 모습일 수도 있는데, 요정이라고 하기에는 좀 뇌쇄적입니다. 물론 요정도 나이가 들면 그럴 수 있겠다 싶지만 요정의 세계라기보다는 인간 세계의 모습입니다. 팅커벨 같은 요정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저의 한계일 수 있겠지요. 참 매력적인 요정입니다.
쉰일곱의 나이로 드레이퍼는 집에서 동맥경화로 세상을 떠납니다. 한때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화가였지만 그의 사망기사조차 신문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잊혀진 사람이 가장 슬픈 사람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빅토리아 시대의 가장 뛰어난 누드 화가라는 평도 시간이 흘러 요즘 붙은 평가가 아닐까요?
Debussy / Arabesque, for piano No. 1
in E major, L. 66/1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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