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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쇼팽, 연습곡 작품10중 제3번(이별) 12번(혁명)

Bawoo 2014. 1. 20. 22:21

 

 

쇼팽, 연습곡 작품10중 제3번'이별' & 12번'혁명'

 

프레드릭 쇼팽
(frédéric Chopin 1810~1849)

 

<바르샤바 시가>
쇼팽이 태어난 해. 아버지 니콜라스는 바르샤바 중학교의 프랑스어 선생이 되어 온 가족은 바르샤바로 이사했다. 이후 쇼팽은 파리로 갈 때까지 20년간 이 도시에서 성장했다. 그가 다니던 음악학교도 여기에 있었다.

 

 

 

연습곡 마장조 작품 10의 3 '이별'

Etude in E major Op.10 No.3 

Lang Lang plays Chopin Etude Op.10 No.3 in E Major at The Berlin Philharmonic.

 


소프라노

soprano, Lesley Garrett

 

2/4 박자의 렌토. 이 곡은 일명 "이별의 곡"으로도 불리어지고 있는데 잔잔하고 애수가 깃든 아름다운 선율은 너무나 유명하다. '이별의 곡'으로 알려진 명곡으로 쇼팽 자신이 당시 한 제자에게 "이제까지 이렇게 아름다운 선율을 써본 일이 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 오지만, 선율은 정말 천상의 것이며, 그대로 선율 연습이라고 할 수 있다. 매우 로맨틱하기 때문에 감정에 탐닉하기 쉽지만, 너무 처지지 않는 렌토를 꼭 지켜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루바토 사용에 더욱 더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피아니스트가 정서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야 할 연습곡이다.

 

 

습곡 다단장조 작품 10의 12 '혁명'

 Etude in C Minor Op.10 No.12

Yuko Kawai plays Chopin's "Revolutionary" etude in C minor Op.10 No.12.

 Encore from Tokyo New City Orchestra's concert given in Tokyo

 Opera City Concert Hall Takemitsu Memorial, 15 June 2008

 

 


< 바르샤바 시가의 혁명전(1831년)>


" 혁명"의 연습곡으로 알려져 있다. 쇼팽이 고국 폴란드에서 파리로 떠나는 도중 슈투트가르트에서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게 침공 당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한 슬픔에 잠겨 작곡하였다는 곡이다. 기술상 이것은 왼손을 위한 연습곡으로 특히 힘을 절약하는 것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격동적인 왼손의 흐름에 오른손은 거친 옥타브로서 강렬한 선율이 노래된다.
기 술적으로는 왼손의 움직임을 위한 연습곡이지만 이 곡에 담긴 통절한 심정은 연습곡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음시(音詩)라고 하겠다. 그래서 단독으로 많이 연주된다. 12편의연습곡을 끝내기에 알맞은 격정에 넘치는 장대한 곡이다. 그러나 미디 파일로 듣기에는 좀 미흡하다. 장대한 맛을 별로 느낄 수 없으니 원곡을 들어야 할 것 같다.

 

짝사랑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자신이 다시는 조국 폴란드의 땅을 밟지 못할 신세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바르샤바를 떠난 쇼팽은 음악의 도시라는 빈에서도 환영 받지 못하는 존재였다. 마침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손을 잡은 때라서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는 폴란드 국민인 쇼팽은 빈에서 적국 사람의 취급을 받았다. 이에 그곳을 떠나 영국으로 가려던 그는 도중에 들른 독일의 슈트드가르트에서 러시아가 조국 폴란드를 다시 점령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때는 1831년, 그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글로 남겼다.
"가엾은 아버지, 어머니 굶주리고 계시겠지.
누이와 동생은 여린 몸을 러시아 군인에게 짓밟혔을까.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구나. 괴로워라.
오로지 절망을 피아노에 쏟을 뿐이다."

 

영 국을 향했던 쇼팽의 발걸음은 결국 아버지의 조국 프랑스로 옮겨졌고, 은컵에 담은 한줌의 폴란드 흙을 소중히 지닌 채 그는 파리로 들어섰다. 그리고 쇼팽이 평생 지니고 다녔던 그 흙은 결국 그가 파리의 한 묘지에 쓸쓸히 묻힐 때 그의 무덤 위에 뿌려졌다. 이 곡을 들으면서 아직도 그의 묘지에는 향과 꽃이 끊이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여성들의 발걸음으로 붐비고 있다는 사실이 쇼팽에게 사후에라도 행복감과 만족감을 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

  

《혁명의 에튀드》초고

쇼팽은 1830년, 고향을 떠나 빈을 거쳐 1831년에 파리로 향했는데 도중에 시투트가르트에서 바르샤바가 러시아군에 점령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신은 없는가, 아니면 신 자신이 모스크바 사람인가?' 라고 외치고 고향의 가족을 걱정했다. 이 때에 쓴 작품이 이《혁명에튀드》였다.

 

 

 

출처 : 클래식 사랑 그리고 인생
글쓴이 : 클래식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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