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 Brahms]

Brahms-Double Concerto for Violin, Violoncello and Orchestra in a minor Op. 102

Bawoo 2017. 11. 1. 21:43


Brahms


Double Concerto for Violin, Violoncello and Orchestra in a minor Op. 102

브람스의 마지막 관현악 작품으로 1887년 작곡되었으며 그 해 10월 18일 쾰른에서 요아힘의 바이올린과 하우스만의 첼로, 작곡가 본인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흔히 이중 협주곡(double concerto)이라고 불리나, 브람스의 악보에서는 직접 언급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사후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하고 있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화해의 협주곡

    브람스는 이 곡을 작곡하기 전 해인 1886년 교향곡 제4번을 완성하였다.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두었고 브람스는 다음 교향곡을 계획하였고 그것이 이 작품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이 협주곡으로 완성된 것은 그의 친구 요아힘과의 관계 때문이었다. 브람스가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작곡할 무렵, 그와 좋은 음악적 동료로 지내던 요아힘 사이에서 음악적으로 마찰을 겪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 사이를 본격적으로 껄끄럽게 만든 것은 다른 사건이었다. 요아힘은 자신의 아내이자 당대 유명한 가수였던 아마리에에게 다소 집착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가까이 지내던 모든 남자들과의 사이를 의심하였고 그 때문에 아마리에는 가수 생활이 불가능할 지경이 되었고, 부부사이에는 깊은 골이 생겼다. 이를 걱정한 브람스가 요아힘을 찾아가 설득하기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사정이 악화되자 브람스는 아마리에에게 걱정과 위로를 담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것이 오히려 요아힘으로 하여금 둘 사이를 오해하게 만드는 사건이 되었다. 또한 이 편지가 후에 부부의 이혼 소송에서 부인 측의 결백을 입증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여 요아힘은 브람스를 배신자로 몰아갔다. 둘은 더 이상 친구로 남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요아힘은 브람스의 음악만큼은 여전히 전과 같은 지지를 보였다. 그래서 브람스는 요아힘에게 이 협주곡의 독주악기부에 대한 의견을 구할 수 있었고, 요아힘의 견해를 수렴하면서 브람스는 화해의 의지를 드러냈던 것이다. 브람스는 바이올린과 첼로를 자신과 요아힘, 혹은 아마리에 부인과 요아힘에 빗대어 서로 조화롭게 진행시켰다. 그래서 클라라 슈만은 이 곡을 ‘화해의 협주곡’이라고 불렀다. 이 작품은 흔히 이중 협주곡([독]Doppelkozert, double concerto)이라고 불리지만, 이것은 작곡가 본인이 한 번도 언급한 적 없는 제목이며 출판에서도 제목이나 부제에 이런 제목이 사용된 적은 없다.

    브람스와 요아힘


    벗들의 조언과 함께한 작곡과 초연

    브람스는 1887년 7월 여름 요아힘에게 이 곡의 작곡에 착수하였음을 알리며 의견을 구하였다. 악보는 요아힘과 하우스만에게 보내졌다. 사실 이 곡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의 초연을 맡아 곡의 성공에 공을 세운 첼리스트 로베르트 하우스만(Robert Hausmann, 1852~1909)에 대한 선물이기도 하였다. 두 개의 독주 악기를 위한 협주곡은 새로운 시도였기 때문에 이들은 물론 클라라와 호른 연주자 짐로크, 피아니스트 헤르초겐베르크 부인 등 수많은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받아 8월 초에 일단 완성을 시켰다.


    9월 22일 바덴바덴에 있는 클라라의 집에서 브람스의 피아노(관현악부의 편곡), 요아힘의 바이올린과 하우스만의 첼로로 처음 연주가 되었으며, 24일에는 바덴바덴 오케스트라와 함께 정식 편성의 시연을 하였다. 시연에 참여한 클라라 등의 의견을 반영하여 브람스는 곡을 수정하였고, 마침내 프란츠 퓔너의 도움으로 쾰른에서 10월 15일 공개 시연을 거쳐 18일에 정식으로 초연을 하게 되었다. 바이올린과 첼로는 각각 요아힘과 하우스만이 맡았고, 지휘는 브람스가 직접 하였다. 이후 비스바덴과 프랑크푸르트, 라이프치히, 베를린, 런던 등 수많은 도시에서 연주되었고 교정을 거쳐 총보와 피아노 리덕션 버전의 악보가 출판되었다.


    독주 악기가 두 개라는 것은 매우 드문 편성이었기 때문에 클라라는 이에 대하여 다소 걱정을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당대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요아힘이 연주에 앞장서서 곡이 완성되고 얼마간은 매우 활발한 연주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브람스는 이 편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 같은데, 브람스 전기작가 칼베크에 따르면, 비록 중간에 중단되었지만 브람스는 이후에 새로운 이중 협주곡의 작곡을 시도하였다고 한다.


    고전주의 독주 협주곡의 형식을 존중하여

    이 곡은 2관 편성과 현5부가 사용되고 있으며, 고전주의 독주 협주곡의 형식에 기초하고 있다. 전통 음악의 수호에 대한 브람스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난 셈이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이 곡은 브람스 실내악곡 특유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과 자연을 연상시키는 싱그러움은 없는데, 클라라도 이 점을 우려하였다.


    1악장은 a단조의 4/4박자, 알레그로로 시작한다. 소나타 형식이며 브람스와 요아힘이 자주 연주하곤 한 지오반니 바티스타 비오티의 〈a단조 협주곡〉에서 착안한 주제가 사용되고 있다. 자유롭고 풍부한 기교가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2악장은 D장조의 3/4박자, 안단테로 시작하는 3부 형식이다. 호른의 목가적인 도입은 독주악기들의 우수에 젖은 주제로 연주된다. 코다를 거쳐 조용히 끝맺는다. 3악장은 a단조 2/4박자의 비바체 논 트로포(vivace non troppo)로 시작하며 론도 형식이다. 길지 않은 관현악부분(독주악기가 나오지 않는 부분)은 매우 압도적이고 웅장하여 진정 관현악곡의 면모를 보여준다.


    [글:최진영 /출처:클래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