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한일 양국을 넘나드는 스케일 큰 소재를 다룬 미스터리 성 작품. 책 제목과 소개 글에서 읽은 내용의 스케일에 끌려서 읽어보기로 했는데 반 정도 읽고 그만 읽기로 했다. 국회 출입 기자인 주인공의, 세관에 근무하고 있는 이복형이 무참히 피살되는 데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다른 작가의 작품에서 볼 수 있는 글의 짜임새 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치밀성이 떨어지고 전개 과정이 좀 서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를 작가가 전업이 아닌 국회에 근무하는 공무원이라 글 쓸 시간이 부족해서인 때문으로 생각한 것은 나만의 편견일 수도 있겠다. ]
[책소개]
악의 심연을 섬뜩하게 그려낸 1급 미스터리의 탄생!
김이수의 장편소설 『가토의 검』은 폭력에 침식당한 인간이 얼마나 잔혹한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경고하는 소설이다. 더불어 우리 역사의 아픔을 되돌아보고 일본 사회의 우려스러운 행보를 경계해야 한다는 작가의 목소리도 담겨 있다.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놀라운 흡인력과 정교한 현장감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작가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을 증명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일급 미스터리의 탄생이다.
『가토의 검』은 2013년 단편소설 「위대한 유산」으로 김유정 신인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 김이수의 첫 장편소설이다. 40대 후반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문단에 나온 작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갈빗집 접시닦이, 술집 홀보이, 중국집 배달부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검정고시로 대학에 진학해 졸업 후 공무원의 길로 들어선 남다른 이력의 소유자다. 이후 일본 유학을 거쳐 현재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입법조사관으로 일하고 있는 그는 오래전부터 품었던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본격적으로 작가 수업을 받은 뒤 문단에 데뷔했다. 그리고 자신이 일하고 있는 국회를 주요 배경으로 삼아 한일 정치꾼들이 벌이는 위험한 게임과 범죄 미스터리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장편소설의 탄생을 알렸다.
목차
국회 출입기자 김영민은 어느 날 이복형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형은 한쪽 귀가 잘리고 머리에 심한 상처를 입은 채 숨진 상태였고, 경찰은 이를 단순 뺑소니 사고가 아닌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고 수사에 착수한다. 영민은 인천세관에 근무하던 형이 압류물품 창고에서 물건을 빼내다 발각돼 감사를 받는 중이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기자 특유의 동물적 감각으로 주변을 탐문해간다. 사건을 담당한 곽 형사는 피해자 가족임을 내세워 수사에 개입하려 드는 영민을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에게 수사 정보를 슬쩍 흘린다. 형의 마지막 행적을 더듬던 영민은 마침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를 알아내고 그에게 접근하는데…….
형의 죽음을 추적하는 주인공 앞에 하나하나 드러나는 의문의 실체
『가토의 검』의 중심 이야기는 주인공 김영민이 형을 죽인 범인을 추적해가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민이 일간지 기자라는 마인드에 입각해 사건을 경찰에 맡겨놓지 않고 직접 수사에 뛰어든다는 점이다. 기자가 사건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을 경찰이 달가워할 리 없으므로 영민은 초반부터 담당 형사인 곽 형사와 마찰을 일으킨다. 하지만 영민은 물러서지 않고 곽 형사와 주도권 싸움을 해가며 사건을 쫓는다. 경찰의 영역을 침범당하지 않으려는 베테랑 형사와 어떻게든 수사를 압박하면서 정보를 얻어내려는 영민의 밀고 당기는 신경전과 탐색전, 날카로운 충돌과 대립은 마지막까지 소설에 팽팽한 긴장을 불어넣으며 범인을 추리하는 영민은 형의 죽음에 얽힌 의문을 차례로 풀어나간다. 형은 왜 한밤중에 귀가 잘린 채 살해되었는가? 겁 많고 소심한 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세관 압류물품 창고에서 가지고 나온 물건은 무엇인가? 형이 죽던 날 세관 직원과 함께 갔던 술집 샤갈에 찾아온 남자는 누구인가?
영민은 곽 형사가 건네준 CCTV 사진을 통해 샤갈에 나타난 남자가 양 보좌관임을 알아낸다. 양 보좌관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장인 4선 의원 채문식의 수석보좌관으로 능구렁이처럼 노련하고 넉살 좋은 인물이라 영민과 필요한 정보를 교류하며 친분을 유지해온 사이다. 그가 왜 형을 찾았을까. 양 보좌관과 형, 압류물품 창고에서 빼낸 물건. 거기에 사건의 중요한 열쇠가 있었다. 영민은 새벽에 몰래 양 보좌관의 책상을 뒤져 의문을 풀어줄 결정적인 문서인 ‘금란가사환수위원회 활동보고서’를 입수한다.
채문식 의원이 위원장으로 있는 문화재환수위원회는 임진왜란 때 일본에 약탈당한 통도사의 금란가사(金蘭袈裟)를 돌려받기로 최근 일본 측과 합의했다. 가토 기요마사가 약탈해 일본으로 넘어간 금란가사는 가토 가문이 규슈국립박물관에 기증한 후 인정 문화재로 등록되어 정부 승인과 가토 가문의 허락을 받아야만 반환이 가능하다. 그 때문에 문화재환수위원회는 여려 차례의 반환 요청을 계속 거부당해왔는데 최근에 협상이 급진전하여 반환 합의문을 작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활동보고서에는 이러한 환수 경과가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는 한편, 또 다른 문서가 끼어 있었다. 바로 ‘가토의 검’에 대한 것이었다. 거기에는 가토의 검이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하사한 검이라는 설명과 함께 검의 사진과 도면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도반(칼 본체와 손잡이를 이어주는 타원형의 받침대)에는 도요토미 가문의 문장이 새겨져 있어 검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도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다.
이제야 영민은 금란가사 반환이 갑작스럽게 성사된 배경을 비롯해 형이 세관 창고에서 빼낸 물건이 무엇인지, 누가 그 일을 사주했는지를 단번에 파악한다. 여기서 소설은 한일 정치인들의 파괴적인 야망과 추한 뒷거래라는 또 하나의 흐름을 낳고, 이는 살인사건의 범인을 추적하는 중심 이야기와 교차하며 끊임없이 궁금증을 증폭시킨다.
임진왜란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하사한 검
검을 둘러싸고 한일 양국의 정치꾼들이 벌이는 거대한 정치 노름
이 위험한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영민은 금란가사 반환과 가토의 검에 한일 정치인들의 노림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무원까지 금란가사 반환 협상에 참여한 걸로 되어 있습니다. 가토의 검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지만 대한민국 공무원을 사주해서 압류창고에 있는 검을 빼돌리고 또 살인까지 할 정도로 중요한 겁니까? 그렇게까지 할 만큼 가토의 검이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까?” (225쪽)
영민의 이 질문에는 작가가 작품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금란가사 반환과 가토의 검을 둘러싼 뒷거래로 한일 정치인들은 자신의 야망을 실현할 무기를 얻는다. 뿐만 아니라 가토의 검이 가지는 상징성이 일본의 정치인들에게 끼칠 영향은 상상 이상으로 막대한 것이 될 수 있다. 영민은 형이 이러한 정치꾼들의 노름판에 이용되었음을 알면서도 자신도 이 게임에 뛰어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게임의 승부를 가를 꽃놀이패를 자신이 거머쥘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한편 곽 형사는 양 보좌관이 형을 죽였다며 수사를 촉구하는 영민의 주장을 묵살한다. 일본에서 야쿠자가 왔었다는 사실까지 파악했지만 그들에게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다는 이유로 용의선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과연 양 보좌관은 형을 살해하지 않은 것일까? 형의 귀를 자른 야쿠자도 혐의가 없는 걸까? 곽 형사는 영민과는 다른 방향에서 진범을 잡을 수 있을까? 가토의 검을 놓고 벌이는 위험한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인가? 이런 궁금증을 안기며 소설은 독자를 뒤흔들 결말을 향해 나아간다.
『가토의 검』은 사건이 발생하고, 이를 파헤치는 주인공이 단서를 조합해 의문을 풀어가면서 몇 번의 좌절을 거친 끝에 거대한 비밀과 맞닥뜨리는 과정을 충실히 밟아간다. 그러다 이 모든 과정을 다시 복기하게 만드는 충격적인 결말로 치닫는다. 독자의 허를 찌르는 이 섬뜩한 반전은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고 천연덕스럽게 이야기를 끌고 왔는지를 방증한다. 인간 내면에 도사린 악의 심연을 이처럼 소름끼치게 그린 작품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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