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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3세의 부인]황후 - 외제니 드 몽티조 (프랑스어: Eugénie de Montijo)

Bawoo 2017. 11. 24.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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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제니 드 몽티조
Empress Eugenie 1880.jpg
Empress Eugénie Signature.jpg
프랑스 황후
재위1853년 1월 30일~1870년 9월 4일
전임자나폴리와 시칠리아의 마리 아멜리
별칭
María Eugenia Ignacia Augustina de Palafox Portocarrero de Guzmán y Kirkpatrick
신상정보
출생일1826년 5월 5일(1826-05-05)
출생지스페인의 기 스페인 그라나다
사망일1920년 7월 11일 (94세)
사망지스페인의 기 스페인 마드리드
가문보나파르트 왕가
부친Cipriano de Palafox y Portocarrero
모친María Manuela Enriqueta Kirkpatrick de Closbourn y de Grevigné
배우자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
자녀프랭스 앰페리알 나폴레옹
프란츠 빈터할터가 그린 외제니 황후

외제니 드 몽티조 (프랑스어: Eugénie de Montijo, 스페인어: Eugenia de Montijo 에우헤니아 데 몽티호[*])는 스페인계 귀족으로서, 후에 나폴레옹 3세와 결혼하여 프랑스의 황후가 되었다. 본명은 마리아 에우헤니아 이그나티아 아우구스티나 데 팔라폭스 포르토카레로 데 구즈만 이 키르크파트릭(María Eugenia Ignacia Augustina de Palafox-Portocarrero de Guzmán y Kirkpatrick)이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버지가 가지고 있었던 아르달레스 여후작의 지위와 테바 여백작의 지위를 상속받았다. 나폴레옹 3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유일한 아들 나폴레옹빅토리아와의 친분을 이용해 베아트리스 공주와 혼인시키려 했지만, 아들이 그녀보다 먼저 사망하면서 이는 취소되었고, 명목상의 제위는 결국 나폴레옹 1세의 동생인 제롬 보나파르트의 후손들에게 넘어갔다.[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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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인 나폴레옹 3세의 외교정책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스페인에서 벌어진 나폴레옹 1세의 반도전쟁 때 프랑스 편에서 싸웠던 스페인 귀족의 딸로서 1848년 12월 루이 나폴레옹이 제2공화정의 대통령이 되었을 때 파리로 왔다. 루이 나폴레옹이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된 뒤 1853년 1월 그와 결혼했다. 1856년 3월 16일에 황태자 나폴레옹 외젠 루이 보나파르트를 낳았다.

외제니는 자기 혈통의 장래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치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3번(1859, 1865, 1870) 나폴레옹이 자리를 비웠을 때 섭정을 맡았는데 그때 정치적인 역할을 잘 해냈다. 헌신적인 로마 가톨릭교도로서 강력한 교황권에 찬성하면서 교황권 지상주의를 지지했고, 교황의 세속권 박탈을 야기한 남편의 이탈리아 정책에 반대했다. 1861년 프랑스가 후원하여 멕시코 왕국을 수립하기로 한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의 계기가 되었던 스페인 왕위계승 문제를 놓고 외제니는 자기 혈통 때문에 이 문제에 특히 민감해 프로이센 측 후보자에 반대하는 프랑스의 입장을 지지했다. 1870년 9월 1일의 스당 전투 뒤, 영국에 망명해 있던 가족과 합류했고 1873년 남편인 나폴레옹 3세가 죽은 뒤에도 보나파르트파의 정치활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1879년 아들이 죽자 망명지에서 지도적 명사로 지냈다[다음백과]


[정보 출처-책제국과 낭만 21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