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알리(1769~1849/히즈라력 1193~1265)
오스만 투르키예(터키)제국의 이집트 태수(太守:바리,파샤)이자 이집트 마지막 왕조의 창건자(재위 1805~1849). 마케도니아 카발라 출생. 1789년 나폴레옹이 이집트에 침입했을 때 알바니아군(軍)을 이끌고 분전하였다.
영국의 간섭을 배제하고 전쟁 후의 처리를 담당하였으며, 1805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이집트 태수에 임명되자 지방군벌을 일소하였고, 1818년 아라비아 반도의 와하비파(派)를 토벌하였다.
1821∼1829년의 그리스 독립전쟁에서는 오스만 제국에 충성함으로써 키프로스와 크레타섬을 받았다. 1831∼1839년에는 시리아와 소아시아에 침입함으로써 종주국 투르키예를 위협했으나 유럽 열강의 간섭으로 철수하였으며, 그 대가로 태수직의 세습을 인정받음으로써 사실상의 이집트의 독립을 이루었다.
농민들이 폭군이라 부를 만큼 전제군주였으나, 프랑스에서 군인과 기술자를 초빙하고 유학생을 파리에 보내어 교육 ·행정 ·군사 기술을 배워 오게 하였으며, 나일강 삼각주의 관개시설을 정비하여 목화 재배를 장려하였다. 그 밖에 농공산품의 전매, 무역의 국영을 단행하여 이집트 근대화의 시초로 평가된다.
오스만 터키군의 파샤에서 세습제 총독을 거친 근대 이집트의 왕조 창설자. 그는 보통의 병졸인 바쉬 바족(Bashi Bazouk)으로 입대하였으나 승진을 거듭하여 터키군 사령관 자리에까지 오른 알바니아계 터키인이었다. 그는 나폴레옹의 이집트 침입으로 말미암아 프랑스군을 격퇴시키려고 이곳에 오게 되었다.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도 일자무식이었던 그였지만, 오스만 터키정부로부터 이집트를 지배할 권한을 차지하게 되자 군대와 정부를 유럽식으로 근대화 시켰고, 유럽 세력과 오스만 터키사이에서 솜씨 좋게 외교적 계략들을 벌여 수많은 군사 작전을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해냈다.
1811년 전통적인 이집트 지배계층이었던 맘룩들을 대량 학살함으로써 무함마드 알리는 이집트의 통치권을 확실히 장악하게 되었다. 1818년에 그의 아들 이브라힘 파샤가 나즈드에 있는 와하비파의 본거지 디리야를 공격하여 파괴시킴으로써 아라비아 반도에서 세력이 켜져가던 와하비파를 진압해 버렸다.
무함마드 알리는 수단을 정복하고 수도 카르툼의 터전을 마련했다. 그는 그리스인의 동립전쟁에서는 오스만 터키를 위해 싸웠으나, 그 전쟁은 1818년에 나바리오에서 터키-이집트의 연합함대가 유럽열강의 연합해군에 의해 패하자 끝났다. 그러나 자신의 독자적인 통치를 확고히 하고 시리아를 손에 넣기 위해 오스만 터키를 상대로 싸움을 펼치게 되고,
심지어는 이브라함 파샤의 아나톨리아 공격을 허가해주기까지 했다. 결국 유럽열강이 오스만 터키를 지지하자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 밖에 없었으나, 자신의 이집트 통치권을 세습제로 만들어버렸다. 무함마드 알리의 왕조는 1952년 파루끄 왕이 나세르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로 전복될 때까지 지속되었다.(그 후 오늘날의 이집트가 되었다.
--------------------------------------------------------------
1789년 이집트의 지배자 무함마드 알리의 아들로 태어난 이브라힘 파샤는 20대 시절부터 전장을 누빈 명장이자 통치자였다. 당시 이집트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의 속국이었으나 알리와 파샤 등으로 이어지면서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파샤는 아버지와 함께 오스만투르크제국과의 협력과 갈등을 거치며 모레아(그리스 남부), 수단, 팔레스타인, 시리아 등 광활한 영토를 지배했다.
1818년, 파샤는 유럽식 편제로 무장한 이집트군을 이끌고 아라비아 원정에 나서 사막을 가로지르는 강행군 끝에 적을 굴복시켜 불굴의 용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모레아 총독으로 임명된 아버지가 그리스 독립전쟁에 휘말리자 오스만투르크군과 연합해 진압에 나섰다. 그는 1826년 오늘, 베르가스 전투에서 패했고 2년 후 지원에 나선 유럽 군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인 끝에 철수했다.
1831년에는 오스만투르크제국과 갈등을 일으키다 시리아 원정에 나서 연전연승, 영토를 빼앗았으며 7년 후 반격에 나선 오스만투르크군을 다시 한 번 제압했다. 그러나 유럽 국가들이 봉쇄 작전에 나서자 이집트로 물러났다. 그는 말년을 평화롭게 보내다 1848년, 60세로 숨졌다.
[출처-정보:책재죽과 낭만 139쪽/수집-검색 자료]
'♣ 역사(歷史) 마당 ♣ > **아프리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북아프리카 질곡의 역사] 英ㆍ佛 제국주의가 찢어놓은 땅…쿠데타ㆍ독재로 신음 (0) | 2017.11.26 |
---|---|
[알제리 독립영웅]압델카데르(Abdelkader El Djezairi) (0) | 2017.11.24 |
탄자니아 (0) | 2015.05.14 |
<르완다>르완다 집단 학살(Genocide in Rwanda) (0) | 2015.04.18 |
말리 (0) | 2015.03.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