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垕
조조의 군량 감독관인 임준(任峻)의 수하에서 창고 관리를 담당했던 관원. 조조가 원술을 토벌하려고 수춘(壽春)을 포위했을 때, 군에 양식이 거의 바닥이 났다. 조조는 왕후에게 명하여 적게 드는 됫박을 사용하여 군사들에게 양식을 공급한다. 후에 군사들의 원망이 일자, 조조는 왕후가 군량을 훔쳤다며 목을 잘라 보여 군사들의 원망을 무마한다.(17회)[삼국지 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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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垕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
조조 수하에서 군량을 담당한 관원으로 조조, 손책, 유비, 여포 등이 연합해 원술이 다스리는 수춘을 공격했는데, 조조는 30만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갔지만 군사가 워낙 많았기 때문에 하루에 소모되는 식량이 엄청난데다가 여러 군은 가뭄으로 인해 군량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는 상황이라 손책에게도 군량 10만 섬을 꿨지만 어려운 상황이었다.
왕후는 임준 수하에서 양곡 창고를 맡고 있었는데, 장막에 들어와 조조에게 형편을 보고했다가 조조로부터 군량을 작은 섬으로 나누어주면서 위급함을 넘기라는 지시를 받는다. 그는 병졸들이 원망하는 것을 걱정했고, 실제로 병사들의 불만이 높아져 승상(조조)이 사람을 속인다고 원망했다.
그러자 조조는 왕후를 불러 그의 머리를 빌려 사람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눌러야겠다고 했으며, 직후 말 그대로 왕후를 문 밖으로 끌어내 목을 잘라내고 그가 식량을 훔쳤기에 군법에 의거해 처단했다고 공표한다. 이렇게 병사들의 원망을 왕후에게 돌려 잠재운 다음 사흘 안에 성을 깨뜨리지 못하면 모조리 목을 치겠다고 하여 마침내 수춘성을 함락했다.
모티브는 무제기 맨 마지막에 있는 조만전으로, 여기에서 조조가 군량이 부족하자 관리의 건의대로 군량을 조금만 주다가 군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참수형으로 처형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러나 이 기록에서 관리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는다. 이 쪽 기록만 놓고 보면 해당 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관리였고 조조는 그 의견을 따르다가 여론이 좋지 않으니 발뺌으로 관리를 처형한 거라 관리 본인도 억울하지는 않은 입장인데, 연의에서 굳이 가공인물을 넣고 조조가 주도한 것으로 각색한 이유는 조조의 악당스러운 모습을 좀 더 강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나무 위키]
[정보-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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