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
70년대 유신독재 시절을 나하고 똑같이 보낸 세대지만 현실에 순응한 삶을 산 것이 아닌 유신독재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던 삶을 살았던 인물들의 이야기. 주인공이나 다름 없는 동규란 인물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면서 그의 의붓딸이 -은하라는 이름-양아버지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30여 년 전 유신독재 시절인 70년대로 돌아가 이야기가 전개되는 형식. 현재는 10년 전인 2007년이다.
이 작품을 쓴 작가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60년대 중반에 '회전목마'란 작품으로 크게 주목받았던 분이다. 내 기억으론 서울공대생이었는데 장편소설에 공모해서 당선된 거였다. 문과대생도 아닌 공대생 더구나 그 들어가기 어렵다는 서울대 중 공과대생. 이후 행적이 궁금하여 검색을 한 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정부 고위직에 있었다. 그런데 이분이 또 작품을 써 낸 것이다. 프로필을 보니 그전에도 작품을 냈었다. 내가 모르고 있었을 뿐.
작품 내용은 배경이 내 20대 시절인 1970년대가 주를 이루고 있어서 지난 내 젊은 시절을 추억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젠 거의 50년이 다 되어가는 옛날옛적. '나는 이런 삶을 살았는데 이들은 이러한 삶을 살았구나라고 비교하면서. 나는 개인적인 삶을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지만 아픈 기억이 더 많았던 20대 시절인데 이들은 그 시절에 개인이 아닌 국가를 위한다는 이름으로 반독재 노동, 학생운동을 이렇게 했었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작법상으로는 작중 인물이 너무 입체감이 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동규라는 인물이 너무 쉽게 사랑을 뺏기고-영주라는 이름-, 나중에 딸을 데리고 나타난 그녀를 아내로 맞아 평생을 사랑하며 살아가다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아파하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는 순애보적인 사랑을 하는 설정인데 이 내용들이 좀 더 강하게 부각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작품 전체의 흐름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고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당시의 시대상인 것 같아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했다.
같은 시대를 살았지만 -아마 동규는 내 대학 동기들하고 동갑일 것으로 보이고 종범은 나하고 동갑일 것 같다. 71학번인 내가 50년생일 때 재수 안 한 다른 동기들은 52, 53년생이었으니까.
작중 인물들과 같은 시대를 현실에 순응해 살아가면서 매스컴 상으로만 반독재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물론,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은커녕 전두환 독재 시절도 경험 못 한 요즘 젊은이들이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사는 건 박정희 군사독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지만, 그 시대를 직접 겪어낸 사람들은 체제에 순응해서 살았건 반대하는 삶을 살았건 그 당시에는 참 암울했었다는 것을. 그런데도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건 대대로 내려온 가난의 고리를 끊어준 게 빅정희 전 대통령이어서라는 것을. 그런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그 딸인 박근혜도 대통령이 되는데에는 이들 세대들이 일조했다는 아이러니한 일이 이 땅에서 일어났다는 것을. 정말이지 한 나라의 지도자로서 빵점인 것도 모르고 착시현상을 일으켰음을 통탄해 마지 않았을 때는 이미 늦어 있었다는 것을.
[2017. 12. 24일 - 2021. 5. 6 수정]
[책 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이건영 장편소설『엄마의 목각 인형』. 석연치 않은 아버지 동규의 죽음 앞에서 은하는 그의 서재를 살피고, 우연히 그 곳에서 자신의 친아버지 마종범에 관한 자료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버지의 죽음에 아버지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목차
0. 어떤 사고 ㆍ7
1. 그날과 그날 ㆍ10
2. 그때 우리 젊은 날 ㆍ33
3. 그 섬의 검은 파도를 기억하는가 ㆍ96
4. 심판 받는 사람들 ㆍ121
5. 이제 찍으러 갑니다 ㆍ139
6. 자유, 그러나 낯선 둥지 ㆍ166
7. 바람과 흙이 섞인 날들 ㆍ213
8. 따뜻한 저녁식사를 위한 노래 ㆍ247
9. 아주 오래된 파일 ㆍ272
10. 딸의 아버지에 대하여 ㆍ306
11. 어느 젊은 날의 기록 ㆍ327
12. 긴 긴 시간의 끝 ㆍ355
13. 서장빈: 1975년 초여름의 기억 ㆍ373
00. 마무리 ㆍ388
책 속으로
은하와 함께 떠난 과거로의 여행은 힘든 여정이었다.
한때, 어둡고 억눌렸던 시간. 그래서 뜨거웠던 민주화 운동의 현장. 거기서 길을
헤매는 강동규를 만나고 마종범을 보았다.
나는 여기저기 흩어진 파편을 모으며 이야기를 맞추었다.
젊고, 그래서 서로 만나고 사랑하고 부딪치고 어루만지며 지낸 이야기의 한 판이 모아졌다.
낡은 파일에서는 곰팡내가 났다. 지치고 고단한 세월의 내음이다.
우리 사회는, 세월의 수레가 이렇게 굴러 왔고, 지금 낮과 밤은 여전하다.
그런데 지난 일들은 지워지지만 일부는 상처가 되고 가시가 되어 아프게 남아
있다면, 다시 살펴보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33년도 더 지난 옛일을 이렇게 헤집는 것은 우리의 자화상인 탓이다.
저자 서문(일부)
동규에게 종범은 새로운 세계였다. 아버지나 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었다. 자신에 대한 반발심이 종범이 이끄는 길로 나아가고 있음은 어쩔 수 없었다. 간혹 왜곡된 역사, 가령 친일파 감싸기나 북한 동포에 대한 배타적 인식에 대해 종범이 열변을 토할 때면 동규는 가슴이 저리고 혈기가 끓어오름을 느끼기도 하였다. p.66
“나는 세상을 바꾸고 싶다. 정말 세상을 화악. 그럴 수만 있다카면 말이다. 하느님이 바꿔주지 못하면 우리 젊은이들이 나서면 될 기다.”
젊기 때문일까, 그의 말은 나지막했지만 순수한 열정에 들떠서 고함이나 절규처럼 들렸다. p.103
그러나 그날 영주는 종범의 눈빛에 담겨 있는 열정과 투지를 보았다. 그것이 무엇인지 영주는 몰랐다. 노동 운동이나 정치사상에 대해 그녀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누군가와 남모르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은 그녀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무언가, 열심히 추구하는 눈빛과 간간 어둡게 그늘지는 비밀스런 포즈는 그녀 가슴 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다. 둘만의 비밀처럼. p.109
때때로 그녀는 그에게 빨려들면 안 된다고,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위험하며 파멸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의 앞에만 서면 그녀는 감전이 되었고, 세상이 무너져도 모든 것을 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사랑, 자유, 혁명이라는 형이상학적인 단어에 그녀 자신도 점차 감염되어 서서히 열병에 빠져버렸던 것이다. p.114
지난 세월, 눈을 뜨면 허공에 영주가 있었고, 눈을 감으면 눈 저편 망막 위에 영주가 있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야. 너를 미워했던 만큼 너를 잊어주고 있었어. 잊어준다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복수지. 그동안 엔지를 사랑했어. 엔지는 따뜻한 여자였지. 그 덕에 너를 잊었지. 잊을 만했는데 네가 나타났구나. 정말이지 네 앞에는 머리에 새치가 가득하여 염색할 나이쯤 되어서 나타나려 했어. 그때쯤이면 나도 나름대로 좀 더 떳떳한 모습이 되어 있을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너를 만났구나. p.196
너무 서둘러 프러포즈한 것이 아닌가 후회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 지금까지 너무 자기중심적으로, 소극적으로만 살아왔다는 자각도 들었다. 적극적으로 영주를 잡아야 한다는, 이번에도 영주를 놓칠지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억눌렀다.
물론 세속적으로 그녀는 아기 엄마다. 이혼녀나 미망인이나 다름없다. 솔직히 그녀를 동정하는 것은 아닌가? 그럴 수 있다. 그녀에게 무언가 해 주고 싶다. 이런 감정이 왜 없겠는가. 그동안 그녀를 미워했던 만큼 그녀를 사랑했던 것이다. p.209
그러니까 우리가 과거사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는 거야. 우린 같이 길거리에서 곤봉으로 터지면서 민주화운동 했지. 고생 많았지. 그런데 이제 세상이 바뀌니까 별 놈이 다 와서 숟가락 놓는 거야. 가릴 것은 가려야지. 그때 우릴 고문하고 지랄하던 놈들이 지금 국회의원하고 있단 말야. p.279
동규가 아는 한 마종범은 간첩이 아니었다. 그는 낭만적 사회주의자 언저리에서 알짱거렸을 뿐이다. 사회주의 관련서적, 북한에서 흘러나온 몇 가지 자료에 미혹되었을 뿐이었다. 특히 그는 노동 운동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수사 기록은 마종범을 북한에 있는 부친 마정길의 지령을 받는 간첩처럼 만들어 놓았다. 동규의 증언이 일조하였을 것이다. 그 때문에 종범의 죄는 더 무거워졌을 것이다.
이 같은 비밀을 잘근잘근 씹어서 삼켰다. 꾹 참고 삼켰다. 그런데 그것이 평생 목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p.298
만약 그런 증언을 하지 않았다면 마종범은 어땠을까? 만약 입을 닫고 그들과 함께 징역을 살았다면 서장빈처럼 전과자로서 억눌린 삶을 보냈을까? 그리고 영주는? 만약 그랬다면 영주는 종범과 행복했을까? 만약, 만약, 만약에. 그는 어떤 형태로든 종범의 죽음에 간여되어 있지 않은가? 이것이 간접살인이라면 결국 영주와 은하도 피해자 아닌가? p.299
출판사서평
우리 모두 함께 했던 어두운 세월의 기억,
그 상처를 헤집으며 찾아 나선 진실여행
이것은 따스한 사랑과 용서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밝혀지는 숨겨진 진실
석연치 않은 아버지 동규의 죽음 앞에서 은하는 그의 서재를 살피고, 우연히 그 곳에서 자신의 친아버지 마종범에 관한 자료를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의 친아버지의 죽음에 아버지의 죽음이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민주화 운동에서 비롯된 젊은이들의 상처와 치유를 다룬 소설
1973년, 당시 강동규는 대학교 문화서클 ‘은하수연대’에서 영주를 만나 사랑의 감정을 느낀다.
둘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조금씩 키워가지만 마종범이 은하수연대에 들어오며 모든 것이 뒤바뀐다. 그는 당시 금기시되던 이념을 전파하며 서클의 분위기를 주도해나가고, 영주의 사랑을 차지한다. 그러나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며 이들은 경찰에 구속되고, 경찰이 서클의 리더 격인 마종범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안 동규는 살아남기 위해 종범에게 죄를 떠넘긴다. 그 사이 영주는 종범의 아이를 임신하지만 차마 종범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대신 목각 인형을 전해준다. 그리고 얼마 후 그가 감옥에서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목각 인형이 전하는 엄마의 메시지
은하는 아버지 동규의 서재에서 친아버지 종범과 관련된 서류를 발견하고 종범의 죽음이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그녀는 진실을 밝히기 위해 그의 죽음과 관련 있는 서장빈이라는 인물을 찾아가고, 뜻밖에 아버지의 유품으로 엄마가 옥중의 아버지에게 준 목각 인형을 전해 받는다. 그리고 조작된 사건의 전말과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책소개 추가
- 지난 얘기지만, 하고 그녀는 한참동안 쉬었다가 침을 삼키고 나서, 은하 친아빠 종범씨 말야, 마지막 판에는 조직에서 빠져 나오려고 했어. 아버지의 길이 자기 갈 길이 아니라고 하면서.…… 자기가 공판 때 증언한 내용도 일부는 사실과 다르다고 했어. 마지막 면회 갔을 때 그러더라.
속삭이듯 천천히 말하는 아내의 말이 날카로운 불화살처럼 동규의 가슴에 파고들었다. 그는 온몸이 경직되어 부르르 떨었다. 부끄러움이었다. 아내가 다 알고 있었구나. 그때의 증언 내용도. 평생 가슴에 묻어두고 있었구나. 그는 할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 은하를 거둬 줘서 고마워.
- ……
- 나도. p.301
그는 뻐근한 죄의식을 느꼈다. 죽은 아내에게도, 딸 은하에게도 죄의식을 느꼈다. 아마도 종범은 자살한 것이 아니라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것이다. 누구를 탓하랴.
그는 죄의식을 보상하기 위해 평생에 걸쳐 아내를 사랑했고 은하를 사랑해 왔다. 진실을 안다면 그들이 과연 그를 용서할 것인가. p.303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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