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감상실 ♣/[交響曲(Symphony)]

Mily Balakirev - Tamara, symphonic poem (1867-82)

Bawoo 2017. 12. 31. 19:54

Mily Balakirev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

밀리 발라키레프(1837~1910)


Tamara, symphonic poem (1867-82)

발라키레프의 교향시 〈타마라〉는 무려 15년 만에 완성된 역작이다. 그는 1867년 교향시 〈이슬라메이〉(1869)를 발표한 뒤, 미하일 레르몬토프(Mikhail lermontov, 1814~1841)의 시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교향시를 구상하고 작곡에 착수했다. 발라키레프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서양음악(→터키의 음악)과 러시아 민요선율을 결합시키고 있으며 주제선율을 전개시키는 기법과 섬세한 리듬으로 드뷔시와 라벨에게 큰 영향을 준 작품으로 손꼽힌다.





역경의 시기를 함께 한 작품

이 작품에 착수하던 당시 발라키레프는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깊은 좌절에 빠져 있었다. 그는 현악단의 지휘를 맡고 림스키 코르사코프(Nikolay Andreyevich Rimsky-Korsakov, 1844~1908)가 설립한 개방음악학교의 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일정한 급여가 지급되는 것이 아니어서 항상 경제적인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870년에 개최한 독주회의 흥행이 참패하면서 정신적으로 깊은 고통을 겪게 되었다. 심지어 점술가에게 일거수일투족을 의존하는 등 스스로에 대한 불신에 시달렸고,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철도국의 경비원으로 일해야만 했다. 이처럼 힘겨운 생활을 지속하면서 그는 전혀 작품 활동에 집중할 수 없었다. 이 긴 공백기를 끝내고 재기를 알린 것이 바로 이 교향시 〈타마라〉이다. 15년에 달하는 긴 시간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이 작품을 마침내 완성한 발라키레프는, 다시 교장직을 맡게 된 개방음악학교에서 자신의 지휘로 성공적인 초연 무대(1883)를 선보이고, 교향시의 창시자인 리스트(Liszt, 1811~1886)에게 이 작품을 헌정하였다.

〈타마라〉의 시인, 미하일 레르몬토프


오리엔탈리즘

발라키레프의 오리엔탈리즘적 어법의 초석이 된 작품이자 그의 가장 위대한 역작으로 평가되는 〈타마라〉에서 발라키레프는 글린카가 오페라 〈루슬란과 루드밀라〉(1842)에서 보여주었던 오리엔탈리즘을 보다 일관된 양식으로 발전시켜 제시하고 있다. 발라키레프의 오리엔탈리즘 기법은 두 가지 양상으로 제시된다. 첫째 느린 움직임의 화성진행 속에 제시되는 나른하고 구불구불한 선율, 둘째 느린 화성진행 위에서 빠르게 진행하는 선율을 제시함으로써 정중동의 황홀경을 만들어내는 기법이다. 이 두 가지 기법은, 러시아인이 직접 대면해보지 못한 멀고 이국적인 동양의 신비로움을 환기시키거나, 러시아제국이 식민지배하기 시작한 여러 지역들을 상징하는 기제로 사용된다.

프로그램 표지. 레온 바스크가 〈타마라〉에 등장하는 여왕 타마라와 왕자를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발라키레프는 동양이라는 개념이 가진 이 두 가지 이미지를 함께 그려내기 위해, 레르몬토프가 쓴 《타마라》의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하였다. 타마라는 자신의 탑에 여행자들을 불러들여 환락의 밤을 보내게 한 뒤, 그들을 죽이고 그 시신을 테렉 강에 던져버린다는 전설 속의 팜므파탈이다. 발라키레프는 레르몬토프의 시에서 그려진 산맥과 코카서스 지역의 장대한 아름다움 뿐 아니라, 천사와 악마의 양면성을 지닌 타마라의 유혹적인 면모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러한 내러티브를 살려내기 위해 광대한 음악을 구상하고, 이 장대함 속에서 세심하게 계획된 구조를 구현하였다.

바스크, 〈타마라〉의 의상, 1912
〈타마라〉에 등장하는 왕자를 위한 레온 바스크의 의상 디자인, 1912
레온 바스크가 〈타마라〉에 등장하는 구츠네초바를 위해 그린 의상 디자인, 1910


현악성부와 저음 금관악기가 느리고 부드러운 잔물결 같은 서주선율을 연주하며 음악이 시작된다. 이 선율은 어딘지 불길한 느낌을 주는 강물의 흐름을 묘사하며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를 기대하게 한다. 뒤이어 목관성부가 서정적인 짧은 선율을 연주한다. 음악이 전개됨에 따라 이 선율은 더욱 확대되어 타마라가 부르는 유혹의 노래로 제시된다. 잉글리시 호른이 이 감미로운 유혹의 노래를 연주하고 뒤이어 불길한 잔물결 음형이 반복된다. 이어지는 음악은 빠르고 격렬하게 전개된다. 발라키레프는 타마라의 유혹의 선율을 격렬하게 몰아가면서 클라이맥스의 살인의 장면으로 진행한다. 유혹의 음악이 살인의 음악과 동일하다는 점이 더욱 섬뜩한 느낌을 자아낸다. 살인의 장면이 지난 뒤 이 선율은 다시 감미로운 형태로 돌아오고 잔물결 음형도 반복된다. 놀라울 정도로 달콤한 코데타가 제시되면서, 이제까지의 이야기가 모두 동화임을 암시하며 악곡을 마무리한다. 이 위대한 작품을 헌정 받은 리스트는 깊은 감동을 받고 이 작품을 네 손을 위한 피아노곡으로 편곡하여 발라키레프에게 선사했다. 또한 1912년에는 디아길레프와 포킨의 안무로 발레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레온 바스크가 작업한 〈타마라〉의 무대 디자인

32분음표의 음형이 안개 낀 테렉 강의 모습을 묘사한다.


[글-이은진 /출처클래식 백과클래식 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