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RLIOZ
Harold en Italie Op. 16
베를리오즈의 〈이탈리아의 헤럴드〉는 〈환상교향곡〉을 쓴 뒤 4년 후인 1834년에 작곡한 것으로, 비올라 독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4악장 구성의 작품이다. 협주곡과 유사한 성격을 띠지만 표제음악의 묘사적인 특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교향곡이다.
파가니니를 위한 음악
이 작품은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의 의뢰로 작곡된 음악이다. 당시 파가니니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비올라를 구하게 되어 베를리오즈에게 이 악기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협주곡을 의뢰했다. 거장에게 의뢰를 받았다는 사실에 감격한 베를리오즈는 즉시 작곡에 착수하여 먼저 완성된 1악장을 파가니니에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파가니니는 협주곡 형식에 지나치게 충실하여 오케스트라의 비중이 더욱 크다는 점에 실망했다. 그는 자신의 비올라가 작품 전체에서 쉬지 않고 연주될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베를리오즈는 곡을 대폭 수정하여, 독주 비올라가 전체 악곡을 이끌어 가는 교향곡 형식으로 작품을 완성하였다. 1838년, 이 작품의 두 번째 연주회에 참석한 파가니니는 크게 감동하여, 연주가 끝난 뒤 베를리오즈의 손에 입 맞추며 그의 음악적 재능을 칭송하였다. 또한 2만 프랑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례금을 보내어,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던 베를리오즈가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다.
비올라가 그려내는 바이런의 몽상가
〈이탈리아의 헤럴드〉는 바이런의 시 〈차일드 헤럴드의 편력〉을 바탕으로 한 표제음악으로, 시의 특정한 내용을 묘사하기보다는 여행 중에 만나는 여러 삶의 편린들을 관조하는 헤럴드의 느낌들을 일련의 관현악적 장면들로 펼쳐 보여준다. 이 장면들 속에서 감상적이고 낭만적인 몽상가 헤럴드의 역할은 독주 비올라가 담당한다. 우울하면서도 절제된 비올라의 음색은 바이런이 그려내는 꿈꾸는 여행가의 모습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 베를리오즈 특유의 음색에 대한 탁월한 감각이 빛을 발하고 있다.
작품 구성
1악장 ‘산 속의 헤럴드’(Harold aux montagnes)
산 속으로 들어간 헤럴드의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들이 다채롭게 그려지는 악장이다. 오케스트라는 우수어린 정경을 묘사하면서 음악을 시작하고 주제선율의 단편들을 제시한 후, 비올라가 주제선율을 조심스럽게 노래한다. 그러나 점차 비올라의 선율은 자신감을 얻으면서 오케스트라와 함께 행복과 환희의 정경을 그려나간다. 초연 당시에는 이 주저하는 듯한 오프닝 선율이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이는 바이런이 제시한 관조적인 주인공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한 베를리오즈의 의도적인 장치였다. 독주 비올라의 기교가 두드러지면서도 지나친 과시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몽상적인 헤럴드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하고 있다.
2악장 ‘순례자의 행렬’(Marche des pèlerins)
순례자의 행렬을 만난 헤럴드가 그들의 무리에 동참하며 느끼는 감정들을 묘사한 악장이다. 고요한 오프닝에 이어지는 서정적인 선율이 저녁기도를 드리는 순례자들의 모습을 경건하게 묘사한다. 오케스트라와 독주 비올라가 교차되면서 이 서정적인 선율이 다채롭게 변화되다가, 현악기의 피치카토가 마치 교회 종소리처럼 고요하게 이어진다. 독주 비올라의 감미로운 아르페지오가 제시된 뒤 사라지듯 악장이 마무리된다.
3악장 ‘세레나데’(Sérénade)
이 악장은 바이런의 시가 아닌 베를리오즈 자신의 추억을 바탕으로 한 악장으로, 아브루치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시적인 기억을 통해 바이런의 주인공과 같은 우울한 몽상가의 감상을 표현하고자 했다. 두 개의 민요풍의 주제가 교차되면서 이탈리아의 쾌활한 풍경과 사랑을 속삭이는 감미로운 연인의 노래가 어우러진다.
4악장 ‘산적들의 잔치’(Orgie de brigands)
정신적으로 지치고 우울해진 헤럴드가 선술집에서 산적 무리와 어울리면서 위안을 찾는다는 내용을 그린 악장이다. 사회적 부조리와 도시생활에 대한 염증을 느껴 자연 속으로 도피한 산적들의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을 접하면서, 삶에 지친 헤럴드는 사회적 억압들에서 벗어나 안식을 느낀다. 격렬한 오케스트라의 오프닝이 산적들의 떠들썩한 모습을 묘사하고 독주 비올라는 고요하고 서정적인 선율을 통해 마음의 위안을 느끼는 헤럴드의 모습을 그린다. 이전 악장들의 주제선율들이 재현된 뒤, 비올라 선율이 오케스트라의 선율에 차츰 녹아들고 오케스트라의 웅장한 팡파르로 마무리된다.
[글-이은진 /출처-클래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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