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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滕胤 /吳景/伍瓊

Bawoo 2018. 3. 4. 22:50

등윤[滕胤] 오나라의 대신. 자는 승사(承嗣)이며 북해(北海) 극현[劇縣: 지금의 산동성 수광(壽光) 남쪽] 사람. 손권 말기에 태상(太常)을 지냈다. 제갈각 · 손준 등과 함께 손권의 유조(遺詔)를 받들어 손량을 보좌했다. 오 건흥(建興) 2년(253), 손준과 함께 제갈각을 주살하기로 모의한다. 오 태평(太平) 원년(256), 손준이 죽자 손침이 집정하여 그를 대사마(大司馬)로 삼았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를 죽인다.(108회)[삼국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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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경(吳景,? ~ 203년)은 중국 후한 말기의 군인으로, 오군 오현(吳縣) 사람이나, 전당현으로 이주했다. 봉거도위(奉車都尉) 오휘(吳輝)[1]의 아들이자 무열황후의 아우이다.

행적

이름오경(吳景)
시대후한
생몰 ? ~ 건안 8년(203년)
본관 · 출신양주 오군 오현
관직기도위(騎都尉)〔손견〕→ 단양태수(丹陽太守)〔원술〕
→ 독군중랑장(督郡中郞將)〔원술〕
→ 광릉태수(廣陵太守)〔원술〕
→ 단양태수〔손책〕
→ 양무장군(揚武將軍) · 영(領) 단양태수〔후한〕
작위
소속손견원술손책손권

어려서 부모를 잃어 누이와 함께 살았고, 손견(孫堅)을 섬기며 공을 세워 기도위가 되었다.

원술(袁術)은 오경에게 단양태수를 겸하게 하여, 옛 단양태수 주흔(周昕)을 치게 했다. 오경은 주흔에게 격퇴당하자 주흔의 백성들에게 보복했을 가하였는데, 주흔은 백성들이 해를 입는 것을 자신의 허물로 여겨 군사를 해산시키고 본군으로 돌아가 오경은 마침내 단양군을 점거하였다. 손책은 여범(呂範) · 손하(孫河)와 함께 오경에게 의탁하여, 함께 조랑을 쳐 달아나게 했다.

유요(劉繇)가 양주자사로 임명되었으나 원술이 양주자사의 치소가 있는 회남군에 웅거하였으므로 감히 부임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오경은 손분(孫賁)과 함께 유요를 맞아들여 곡아에 두었다. 원술이 여러 군현을 쳐 함락시키자 유요는 원술에게 저항하고, 원술에게 관직을 받은 오경과 손분을 쫓아냈다. 오경은 원술에게 의탁하여 독군중랑장에 임명되었다. 원술은 오경, 손분에게 명하여 유요를 치게 했으나, 횡강에서 유요의 휘하 장수 번능(樊能)과 우미(于糜)에게 1년 동안 저지되었다. 원술이 다시 손책을 파견하자, 오경과 손분은 손책과 합류하여 번능과 우미를 무찌르고 말릉에서 착융(笮融)과 설례(薛禮)를 쳤다. 손책이 우저에서 설례와 싸우다 부상을 입자 항복한 도적들이 다시 모반하였는데, 오경은 이를 쳐 모두 사로잡았다. 유요 토벌에 참가하였고, 유요가 예장으로 달아나자 손책이 오경과 손분을 수춘으로 보내 원술에게 보고했다.

원술은 서주의 유비(劉備)를 칠 생각으로 오경을 광릉태수로 삼았다. 손책(孫策) 등의 만류를 듣지 않고 원술이 황제를 참칭하자, 손책은 원술과 관계를 끊고 오경에게 사자를 보내 이를 알렸다. 오경은 곧 하야하고 본군으로 돌아왔으며, 손책에게서 단양태수로 임명되었다. 건안(建安) 2년(198년)[2] 한나라 조정에서 파견한 의랑 왕보(王誧)는 표를 올려 오경을 양무장군(揚武將軍)으로 삼고, 예전과 같이 단양태수를 겸하게 했다.

건안 8년(203년), 숨을 거두었다.

친척 관계

  • 오부인 (누나) = 손견 (매부)
  • 오경
    • 오분(吳奮) (아들)
      • 오안(吳安) (손자)
    • 오기(吳祺) (아들)
      • 오찬(吳纂) (손자)

오분은 아버지가 죽은 후 아버지의 병사를 받아 장수가 되고, 신정후에 봉해졌다.

오안은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손패의 도당이 되어, 적오 13년(250년) 손패가 사사당할 때 전기, 양축 등과 함께 주살됐다.

오기는 조카 오안이 죽은 후 그 뒤를 잇고, 도정후에 봉해졌다.

오찬은 아버지가 죽은 후 그 뒤를 이었다. 등윤의 딸과 혼인했으므로, 태평 원년(256년) 등윤이 주살될 때 같이 죽었다.

각주

  1. 이동 《한봉거도위충주자사오휘묘비》(漢奉車都尉衝州刺史吳輝墓碑) [악사, 《태평환우기
  2. 권91에 인용]
  3. 이동 《강표전》[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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伍瓊 :동한 말의 대신


자는 덕유(德瑜)이며 여남[汝南: 지금의 하남성 상채(上蔡) 서남쪽] 사람. 헌제 때 성문교위(城門校尉)를 지냈다. 원소가 동탁의 소제(少帝) 폐위 강행에 반대하여 관직을 버리고 떠나자, 그는 주비(周毖)와 함께 동탁에게 원소를 군수(郡守)로 임명하라고 권한다. 초평(初平) 원년(190) 제후 연합군이 동탁을 토벌하자, 동탁은 장안으로 도읍을 옮기려 한다. 그는 주비와 함께 그 일을 말린다. 동탁은 이 두 사람을 원소와 같은 붕당(朋黨)이라 여기고 목을 자른다.(4회)[삼국지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