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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전쟁]블런 전투[battles of Bull Run]

Bawoo 2018. 7. 19. 23:23



블런 전투[battles of Bull Run]


남북전쟁기간 동안인 1861~62년 여름 북부 버지니아의 머내서스 근처 불런 강 일대에서 벌어진 2번의 전투. Battles of Manassas, Manassas Junction이라고도 함.

 

남군이 모두 승리를 거두었으며 이 승리로 남군은 군사적으로 유리한 입장을 지니게 되었다. 머내서스가 중요한 철도 교차점이었기 때문에 이곳을 차지하는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제1차 불런 전투 First Battle of Bull Run, 第一次ブルランの戦い (남군은 제1차 머내서스 전투라 불렀음)는 1861년 7월 21일에 벌어졌다.


전쟁 초기에는 양군 모두 제대로 준비를 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북부 연방정부는 정치적인 이유와 여론의 압력 때문에 어빈 맥도웰 장군에게 워싱턴의 남서부 방향에 있는 불런으로 진격하여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를 공격할 준비를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P.G.T. 보러가드 장군이 거느리는 2만 2,000명의 남군은 처음 소규모접전을 가진 뒤 사흘 먼저 불런 뒤쪽으로 물러나 방어태세를 취했고, 북군의 측면 이동에 맞서기 위해 조지프 E. 존스턴 장군의 지휘로 셰넌도어에 있던 추가병력 1만 명을 급히 이동시켰다.


7월 21일 북군이 남군을 공격함으로써 일진일퇴의 전투가 벌어졌지만, 마침내 존스턴의 마지막 여단이 도착하자 북군은 뿔뿔이 흩어져 워싱턴으로 퇴각했고 남군도 지쳐 더 이상 뒤쫓지 않았다. 북군은 3만 7,000명 중 사상자가 3,000여 명이었으며, 남군은 3만 5,000명 중 1,700~2,000명 정도의 사상자를 냈다.


제2차 불런 전투는 1년 뒤인 1862년 8월 29~30일 로버트 E. 장군이 이끄는 5만 6,000명 이상의 남군과 존 포프 소장의 지휘로 새로 편성된 7만 명의 북군 사이에서 벌어졌다. 그때 포프는 포토맥군과 결합할 때까지 워싱턴을 방어하는 책임을 맡고 있었다. 두 군대가 결합하는 것을 막기 위해 리 장군은 병력을 둘로 나누어 T.J. 잭슨 장군에게 포프군의 오른쪽을 돌아 진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잭슨은 이틀 만에 머내서스에 있는 포프의 보급소를 점령하고 3개 사단을 근처 숲에 안전하게 매복시켰다.


8월 27~29일, 리 장군이 잭슨과 연합하기 위해 주력부대를 전진시키는 동안 대규모 기동작전과 전투가 벌어졌다. 8월 30일 오후에는 남군 포병부대가 잭슨 부대를 공격하는 북군을 격퇴했으며 그뒤 리 장군은 전군(全軍)에 대규모 반격명령을 내렸다. 남군이 승리를 거두었으나 북군이 계속되는 공격을 일정한 지역에서 막아냈다는 점에서 이 승리는 완전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포프는 패배한 군대를 불런 강 건너 철수시켰으며 결국 수도를 지키기 위해 퇴각했다. 이 전투에서 북군은 1만 5,000명, 남군은 9,000명이라는 많은 사상자를 냈다.[다음백과]


[영문 자료]

 

 First Battle of Bull Run 제1차 불런 전투,..


  Second Battle of Bull Run 제2차 불런 전투..


[정보 -책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 30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