曉吟
-姜栢年
小雨絲絲濕一庭(소우사사습일정) 가랑비 보슬보슬 온 뜨락 적시는데
寒鷄獨傍短墻鳴(한계독방단장명) 추위에 떠는 닭 홀로 낮은 담장가에서 울고
幽人睡起身無事(유인수기신무사) 은자는 잠 깨어 일어나 아무 할 일 없어
徒倚南窓望翠屛(도의남창망취병) 홀로 남쪽 창에 기대어 푸른 병풍 같은 산 바라본다
傍 곁 방 ① 곁 ② 기대다 ③ 옆 ④ 바싹 달라붙다
취병 [翠屛] 꽃나무의 가지를 이리저리 휘어서 문이나 병풍 모양으로 만든 물건
徒:홀로.
조선 후기의 문신. |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숙구(叔久), 호는 설봉(雪峯)·한계(閑溪)·청월헌(聽月軒)이다. 강인(姜璘)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강운상(姜雲祥)이고, 아버지는 강주이며, 어머니는 안동김씨로 김응서(金應瑞)의 딸이다. 부인은 김광수(金光燧)의 딸 안동김씨(安東金氏)이며, 아들 강선(姜銑)과 강현(姜鋧)도 문과 출신이다.
[활동사항]
1627년(인조 5)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사간원 정언(正言)과 사헌부 장령(掌令) 등 대간직을 지냈고, 1646년에 강빈옥사(姜嬪獄事)가 일어나자 부교리로서 강빈의 억울함을 상소하였다가 사직당했다.
그 해 문과 중시(重試)에서 장원하여 동부승지에 올랐고, 이듬해 상소하여 전국에 걸쳐 향교를 부흥케 하였다.
1648년 대사간으로 다시 강빈의 신원(伸寃)을 상소했다가 청풍군수로 좌천되는 등의 풍상을 겪었다. 1653년 좌승지에 오르고 충청도관찰사와 강원도관찰사를 거쳐 1660년 예조참판으로서 동지부사(冬至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1670년 이후 도승지·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뒤 현종이 죽자 그 시책문(諡冊文)을 지었고, 예조판서·우참찬·판중추부사(判中樞府事)에 이르렀다. 관직재직 중 청백하기로 이름이 높았으며 기로소(耆老所)[조선시대에 나이가 많은 문신(文臣)을 예우(禮遇)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에 들어갔다. 향년 79세로 죽었다.
[상훈과 추모]
1690년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뒤에 청백리로 녹선(錄選)되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저술]
고금의 가언(嘉言)과 선정에 관한 것을 수집하여 『대학(大學)』의 팔조(八條)를 모방하여 『한계만록(閑溪謾錄)』을 지었다. 약간의 시문이 『설봉집(雪峯集)』에 실려 전한다.
[제향]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면 기암서원(機巖書院),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면 중리의 정퇴서원(靜退書院), 황해도 수안의 용계서원(龍溪書院)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효종실록(孝宗實錄)』
『국조문과방목(國朝文科榜目)』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청주시지(淸州市誌)』(충북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청주시, 1997)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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