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인터넷 교보문고]
한국 언론의 오보를 기록하다
“뉴스인가, 조작인가?”
우리는 오보라는 일상 속에 살고 있다. 습관으로 형성된 고정관념, 내가 정확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착각, 권위에 대한 맹신, 귀차니즘이 오보를 만든다. 때론 권력과의 유착 속에서 미필적 고의로 오보를 내는 경우도 있다. 사실관계가 잘못된 것만이 오보는 아니다. 진실을 왜곡하는 사실관계의 나열도 오보의 한 갈래다. 대다수 언론인이 ‘기레기’로 취급받는 현실에서 기억해야 할 역사가 있다면, 그것은 ‘오보의 역사’다.
『위키백과』에 기레기는 “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로 대한민국에서 허위 사실과 과장된 부풀린 기사로 저널리즘의 수준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고 기자로서의 전문성이 상당히 떨어지는 사람”으로 나와 있다. ‘기레기 저널리즘’은 오보의 시대와 무관치 않다. 더욱이 오늘날 한국 사회는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극우의 가짜뉴스로 혐오와 갈등이 확산되고 있다. 가짜뉴스의 득세는 그동안 실패를 반복해온 저널리즘이 자초한 일이다.
오보를 기록하는 이유는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뉴스와 거짓말』은 훗날 언론계 선배들의 발자취를 따라갈 후배들과 슬기로운 시민들을 위해 쓰였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 오보를 충실히 기록해놓은 책이 없었다. 특히 이 책은 언론사 입사 준비생에게 유용하다.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생생한 사례를 지면에 담았기 때문이다. 언론사 입사 준비생을 위한 책은 보통 선배들의 영광스런 발자취, 예컨대 특종이나 탐사보도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책은 선배들의 부끄러운 발자취에 대한 기록이다. 감추고 싶었던 언론계의 나머지 반쪽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오보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오보의 극히 일부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었다. 제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에선 사실 확인에 소홀하고 기자의 의심이 부족했던 오보를 모았다.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에선 기사를 쓰는 의도가 너무 강해 사실 확인을 놓쳤거나 왜곡한 사례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제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에선 단독·속보 경쟁에 받아쓰기 보도로 인한 문제적 사례를 모았다. 제4장 ‘뉴스인가, 조작인가?’에선 오보를 넘어 조작 보도라는 비판이 가능한 사례를 꼽아보았다. 제5장 ‘오보를 기억하라’는 일종의 총론이다.
저자 : 정철운
고려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2010년부터 9년째 미디어 분야를 취재하고 있다. 2012년 MBC의 170일 파업을 취재했다. 2016년 12월, 최순실·박근혜 국정농단이 드러나기까지 과정을 언론 비평 관점에서 쓴 『박근혜 무너지다』를 펴냈다. 2017년 6월, JTBC 저널리즘의 성공을 ‘손석희’라는 언론인을 중심으로 풀어낸 『손석희 저널리즘』을 펴냈다. 2018년 6월, 프로파간다와 가짜뉴스의 기원을 찾는 이들을 위한 안내서 『요제프 괴벨스』를 펴냈다. 『미디어오늘』 기자들과 함께 쓴 『뉴스가 말하지 않는 것들』, 『저널리즘의 미래』, 『대한민국 프레임 전쟁』 등이 있다. 현재 『미디어오늘』 기자다.
목차
프롤로그 · 4
제1장 팩트 체크는 없었다
호랑이는 그곳에 없었다 · 21 | 북한도 때론 남한의 글을 ‘펌질’한다 · 24 | 한총련의 조작 문건에 속았다 · 28 | 천연기념물을 먹을 수 있는가? · 30 | 아무리 이석기가 싫어도…… · 33 | 소설 같은 순애보의 결말 · 34 | 언론이 만든 천재 소녀 · 38 | 너도나도 만우절에 당했다 · 43 | 이미 죽은 ‘도망자’를 쫓다 · 47 | 오보라는 보도가 오보 · 49 | 1면 톱에 등장한 성폭행범, 알고 보니 일반인 · 51 | 1면 톱이었는데, 틀렸다 · 54 | 청와대 ‘가짜 보고서’에 낚이다 · 56 | 35번 의사는 살아 있었다 · 59 | 장자연이 쓴 편지가 내게 왔다면 · 61 | 너무 쉽게 오보를 인정했다 · 63 | 아이스하키 인터뷰 · 66 | 공릉동 살인 사건 · 68
제2장 야마가 팩트를 앞서면 진실을 놓친다
‘선생님’과 ‘성인들’ · 77 | 문익환과 김정남, 그리고 김부선 · 82 | <PD수첩>을 무너뜨리려다 스스로 무너지다 · 85 | 쌍룡역의 진실 · 89 | 유시민을 비판하기엔 기본이 부실했다 · 94 | “5·18은 북한의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 · 96 | ‘미네르바 인터뷰’에 미네르바가 없었다 · 103 | 봉하 사저가 495억 원짜리 ‘노무현 아방궁’이 되기까지 · 106 | 모두 ‘조문객 연출’이라 믿고 싶었다 · 112 | 반성이 느껴지지 않는 세 번째 정정 보도문 · 116 | 세월호 유가족을 둘러싼 오보, 반복되면 의심 된다 · 118 | “조선은 자기 성찰의 용기를 보여라” · 124
제3장 쉽게 쓰면 쉽게 무너진다
받아쓰기 · 131 | 문재인을 범법자로 만들다 · 134 | 의처증 남편의 눈물에 기자도 속았다 · 137 | ‘밀덕’이 찾아낸 팩트 · 141 | 단독이란 유혹 · 144 | 『연합뉴스』라는 ‘나비’ · 147 | 메신저를 조심하라 · 153 | 오보에 대처하는 자세 · 158 | 시인의 삶을 앗아간 한 편의 기사 · 161 |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 · 166 | 구원파, 세기의 언론중재 ‘폭탄’ · 170
제4장 뉴스인가, 조작인가?
이재포를 감옥으로 보낸 ‘기사’ · 177 | 국정원이 소개해준 취재원 · 183 | 3년 전 태풍이 엊그제 태풍으로 · 187 | 홍익대학교 인문사회관 C동 831호의 진실 · 189 |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면 벌어지는 일 · 192 | “좋은 지면으로 보답하겠습니다” · 194 | 그들은 어떻게 MBC 뉴스를 사유화했는가? · 197 | CCTV를 2배속으로 틀자 ‘어린이집 학대 영상’이 되었다 · 201 | 호스티스 출신 서울대학교 여학생의 ‘충격 고백’ · 203 | 자유한국당 대변인이 미국 태평양사령관으로 · 205 | 경찰을 마취 환자 방치시킨 파렴치한으로 만들다 · 207 | 21세기 최악의 조작 방송, ‘찐빵... 소녀’ · 209 | “홍가혜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 225 | ‘탈원전’ 흔드는 원전 마피아들의 ‘입’ · 230 | 9.7퍼센트를 71퍼센트로 끌어올리는 ‘마법’ · 234 |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 239 |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244
제5장 오보를 기억하라
“오보의 자유가 있는 나라” · 251 | 언론의 자유와 언론의 책임 의식 · 254 | 허위 제보와 팩트 체크 · 256 | “노조 쇠파이프 없었으면 국민소득 3만 불 넘었을 것” · 258
에필로그
대법원에서 뒤집힌 판결 · 262 | 괴벨스가 되고 싶었던 변희재의 최후 · 268
책 속으로
장씨가 밝힌 성 접대 상대는 31명, 이들과 맺은 성 접대 횟수는 100번이 넘었다. 장씨는 편지에 이들의 직업을 기록했다. SBS는 “(편지에) 연예기획사, 제작사, 대기업, 금융기관, 언론사 관계자까지 열거돼 있다”고 밝혔다. SBS는 편지의 신빙성 의혹을 우려했는지 “편지들을 장씨 본인이 작성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공인 전문가에게 필적 감정을 의뢰했으며 장씨의 필체가 맞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장자연 편지’는 친필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해 3월 16일 오전 국과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고 장자연의 친필이라 주장되던 편지 원본은 장씨의 필적과 상이하다”고 밝혔다. 당시 양후열 국과수 문서영상과 과장은 브리핑을 통해 “(장자연 편지가) 광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전 모씨로부터 압수한 적색 필적과 동일 필적”이라고 밝혔다. 「장자연이 쓴 편지가 내게 왔다면」(본문 61∼62쪽)
2013년, 5·18을 앞두고 TV조선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가 개입해 게릴라전을 벌이며 광주 시민을 선동했다는 ‘북한 개입설’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채널A는 자신을 광주에 투입되었던 북한군이라 주장하는 남성을 인터뷰해 내보내기도 했다. 모두 박근혜 정부 임기 첫해, 기고만장했던 종합편성채널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역사 왜곡을 넘어 대한민국 정부가 인정한 민주화 운동을 북한군에 의한 폭동으로 규정하는 장면이었다. 5월 13일, 지금은 ‘심의 제재의 전설’이 되어버린 TV조선 에서 탈북자이자 전 북한 특수부대 장교인 임천용과 뉴라이트 계열 원광대학교 사학과 이주천 교수가 출연해 “600명 규모의 북한 1개 대대가 (광주에) 침투했다”, “전남도청을 점령한 것은 북한 게릴라다”, “5·18은 무장폭동의 성격을 띠고 있다”, “5·18 자체가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드리는 선물이었다”는 주장을 50여 분 가까이 펼쳤다. 「“5?18은 북한의 특수부대가 개입한 폭동”」(본문 96∼97쪽)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분노가 절정이었던 2014년 4월 29일, 박 대통령은 경기도 안산에 있는 세월호 참사 정부 합동 분향소를 방문했다. 이날 현장에서 박 대통령이 어깨를 감싸며 위로한 할머니가 유가족이 아니라 정부 측이 동원한 인물이라는 이야기가 온라인에 급속도로 퍼졌다. 이런 가운데 『CBS노컷뉴스』가 4월 30일 “이른바 조문 연출 의혹에 등장하는 여성 노인이 실제로 청와대 측이 섭외한 인물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파장은 컸다. 많은 사람이 ‘보고 싶었던’ 보도였다.……청와대의 사진 연출설은 사실이 아니었다. 분향소에서 박 대통령을 만난 노인은 안산 초지동 주민 오 아무개로 밝혀졌다. 오씨는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분향소 인근 주민이며 조문을 갔다 대통령을 만났다”고 밝혔다. 「모두 ‘조문객 연출’이라 믿고 싶었다」(본문 112∼114쪽)
2017년 8월 8일자 『연합뉴스』 기사는 강렬한 문장으로 시작했다. “저는 그저 가정을 지키고 싶었을 뿐입니다. 자식들한테 말도 못하고...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정말 잘못했습니다.” 기사 제목은 「법원, 15년간 외도 아내 통화 내용 몰래 녹음한 남편 선처」였다.……그렇게 기사가 나오고 3개월이 지난 11월 7일, 『연합뉴스』는 정정 보도문을 냈다. 『연합뉴스』는 “사실관계 및 이혼소송 판결문 확인 결과, 아내가 15년간 외도를 했다는 것은 60대 남성의 일방적인 주장에 의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혼인 관계가 파탄에 이르게 된 이유도 아내의 외도 때문이 아니라 결혼 기간에 이유 없이 아내의 남자관계를 의심한 60대 남성의 의처증 및 아내에 대한 폭언·폭행 때문이었고, 이에 60대 남성은 가정폭력의 피해자인 아내에게 위자료 2,5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음이 확인돼 해당 기사를 바로잡는다”고 밝혔다. 「의처증 남편의 눈물에 기자도 속았다」(본문 137∼139쪽)
2018년 7월 18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박 시인이 수년간 여성들에게 성희롱·성추행·성폭행을 가했다는 주장을 담은 2016년 10월 21일자 「“문화계 왜 이러나……이번엔 시인 상습 성추행 의혹”」 등 『한국일보』 기사 4건에 대해 정정 보도와 함께 5,000만 원 손해배상 판결을 냈다. 법원은 박 시인의 성희롱 의혹을 인정하지 않았다.……박진성 시인은 긴 법정 싸움을 시작했다. 『한국일보』 첫 기사에 등장하는 C씨는 2017년 5월 박 시인을 감금·협박·개인정보보호법 위반·강간·강제 추행 등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C씨는 수사 도중 감금·협박·개인정보보호법 위반에 대해선 고소를 취하했다. 대전지방검찰청은 그해 9월 박 시인의 강간과 강제 추행 혐의에 대해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박 시인은 E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고 검찰은 2017년 6월 E씨의 범죄 혐의를 인정해 약식기소했다. E씨는 정식재판을 청구했지만 박 시인이 그해 12월 고소 취하서를 제출하면서 공소기각 판결이 선고되었다. 「시인의 삶을 앗아간 한 편의 기사」(본문 161∼162쪽)
홍씨는 해경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었다. 명예훼손 구속만큼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가 무려 101일간 수감 생활을 겪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무죄판결을 받아냈다. 하지만 홍씨는 세월호 참사 이후 소위 ‘거짓 인터뷰’로 해경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혐의로 재판을 받으며 언론의 허위·왜곡 보도와 함께 인격 살인에 가까운 악플에 시달렸다. 그녀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아니면 말고’식의 무차별적 허위·왜곡 보도의 피해자였다. 홍씨는 여러 언론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홍가혜 씨에게 진심으로 사과합니다”」(본문 226쪽)
출판사서평
팩트 체크는 없었다
2017년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는 매년 4월 2일을 ‘팩트 체킹의 날’로 정했다. 거짓의 날이 지나면 바로 검증의 날이 오는 셈이다. 팩트 체크를 하지 않은 기사는 모두 오보를 만든다. 최저임금 부담 때문에 식당에서 해고된 50대 여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던 『한국경제』 2018년 8월 24일 「“최저임금 부담” 식당서 해고된 50대 여성 숨져」라는 기사는 온라인에서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이 여성은 수년간 일해온 식당에서 “최저임금 인상 부담이 크다”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후 다른 식당 일을 찾았지만 실패한 뒤 막다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는 문재인 정부가 최저임금을 2017년 대비 164퍼센트 올린 데 이어 2019년에는 109퍼센트 인상할 예정이라고 전하며, “식당, 편의점, 주유소 등에선 최저임금 적용을 받는 종업원들을 해고하거나 아예 폐업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의 핵심은 여성의 사망과 최저임금 인상의 연관성이었다. 그러나 최저임금과 사망 간의 합리적 연결 고리는 찾기 어려웠다. 더욱이 이 여성은 50대가 아닌 30대였고, 자녀 2명 부양이 아니라 3명 부양이었고, 사망 시점도 7월 말이 아니라 7월 중순이었으며, 기초생활수급자가 아니라고 했는데 기초생활수급자였다. 이 기사는 최저임금 인상에 비판적인 언론이 한 사람의 죽음과 최저임금 이슈를 무리하게 연결시켰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기사를 쓴 기자는 “논란이 확산되면서 유족의 2차 피해가 우려됐고 경찰 쪽에서도 피해자 나이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속적인 삭제 요청을 해왔다”며 “당초 기사 자체는 충분한 취재와 팩트 확인을 거쳐 출고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단독’에 눈이 멀면 부실한 취재로 이어진다. 빨리 쓰려다 보니 크로스 체크가 약해지고 디테일도 부족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MBN은 2017년 9월 1일 「[단독] 지상파 기자가 국정원 민간인 댓글 팀 가담」이라는 리포트에서 “국가정보원이 운영한 민간인 댓글부대 팀장 30명에 이어 또 다른 18명이 검찰에 수사 의뢰됐다. 그런데 추가 수사 의뢰된 내용 가운데 지상파 방송기자가 댓글 공작에 가담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수많은 언론이 MBN 보도를 인용하며 기사에 등장하는 지상파 기자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보도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는 단순히 개인의 일탈에 그치지 않고 해당 방송사 보도 전반의 신뢰도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었다. 기사는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 리포트는 오보였다.
진실을 놓쳐서는 안 된다
야마가 팩트를 앞서는 경우 대개 기자들은 진실을 놓친다. 『동아일보』는 2018년 7월 11일자 사회면에 실린 「문 대통령의 ‘운명’에 검사들 운명 담겨 있다」라는 기사에서 “13일 발표될 검찰 중간 간부급 인사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이 2011년 펴낸 자서전 『운명』에서 거론한 사건을 수사한 검사들이 검찰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며 “책에 나오는 한정화 수원지검 공안부장과 강정석 춘천지검 영월지청장이 최근 사의를 표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라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두 검사를 가리켜 “2013년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에 근무할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7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을 부정하는 발언을 했고 관련 회의록을 폐기했다는 의혹을 수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운명』에 등장하지 않는다. 심지어 두 사람은 대통령기록물 수사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검찰 인사를 비판하려는 의도가 앞섰지만, 정작 주요 사실관계가 모두 틀려버린 보도였다.
철도노조 파업이 한창이던 2013년 12월 26일 TV조선은 「하루 승객 15명인 역에 역무원 17명」이란 리포트를 냈다. 승객보다 역무원이 많다니 누가 봐도 불합리해 보인다. TV조선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쌍룡역에 불필요하게 많은 인원이 근무하고 있으며 그 배경이 강성 노조 때문이란 취지의 보도를 내보냈다. 당시 보도는 공기업을 수술하겠다며 박근혜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낸 뒤 보름 정도 지난 시점에 등장했다. 국토교통부 공식 트위터 계정은 이 기사를 13차례에 걸쳐 리트윗했다. 이 보도는 ‘방만 경영’, ‘양심 없는 귀족노조’와 같은 키워드의 댓글로 이어졌다.
그러나 보도는 진실과 달랐다.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쌍룡역의 2010년 운송 수입은 여객 운송 수입 1,662만 원, 화물 운송 수입 95억 8,869만 원이었다. 인건비가 역 수입의 81.3배라는 보도는 억지였다. TV조선은 쌍룡역 수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화물 운송 수입을 누락했기 때문이다. 대신 여객 운송 수입만 고려해 직원들의 인건비가 역 수입의 81.3배라고 보도했다. 무엇보다 쌍룡역의 실제 투입 인원은 3조 2교대제로 인해 하루 평균 5명이었다. 17명이 쌍룡역에 놀러 나온다는 인상을 주었던 기사 제목과 사실은 달랐다.
기자가 『연합뉴스』를 무비판적으로 인용하다가는 오보를 확산시킬 수 있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도 오보를 낸다. 수많은 나비효과 가운데 『연합뉴스』라는 나비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2018년 11월 29일 오전 7시 28분, 『연합뉴스』는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방북…김정은 답방 물밑 논의 주목」이라는 기사에서 중국 선양(瀋陽) 의 한 교민의 증언을 인용해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어제 선양을 경유해 북한 평양에 도착한 것으로 안다”며 “정 전 장관이 대한항공 KE831편으로 선양에 도착 후 고려항공 JS156편으로 평양에 들어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기사가 나간 시점에 자신의 집에 있었다.
오보를 기억하라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는 출발부터 오보였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 오전, 언론은 “경기 안산 단원고등학교 사고대책본부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2학년 학생과 교사 전원이 구조됐다고 오전 11시 5분 해경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그러나 오보였다. 오후 2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탑승객 477명 중 368명을 구조했다”고 밝혔고 언론은 이를 또다시 받아썼다. 그러나 이것도 오보였다. 물론 당시 오보는 정부 측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언론으로서는 정부 발표를 믿고 보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받아쓰기의 참극’은 오롯이 언론사의 몫이다.
오보는 특종·속보 경쟁 속에 정보 접근의 어려움과 기자단 문화 등이 섞여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오보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마감 시간·상업주의에 의한 경쟁이라는 언론 산업의 속성에서 비롯된 오보가 있다. 오인·간과·선입견·조급성·단정적 감정 등 기자의 결함과 경험 미숙, 전문 지식 결여, 취재 부족 등에서 비롯되는 언론사 내부적 오보 요인도 있다. 보도자료, 권력의 간섭, 광고주의 간섭, 통신사의 잘못된 보도, 취재원의 고의 또는 실수에 의한 오보라는 언론사 외부적 오보 요인도 있다.
오보는 허위 보도다. 부정확한 기사부터 날조된 기사, 과장 보도가 모두 포함된다. 오보가 줄어들어야 언론 신뢰도가 높아진다. 그래야 언론이 산다. 이를 위해선 오보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오보의 경위를 독자들과 공유하며 오보를 줄일 수 있도록 조직 문화를 바꿔야 한다. 하지만 언론은 정정 기사를 많이 내면 신뢰도가 떨어진다며 이를 기피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영화 <노예 12년>의 실화를 다룬 흑인 남성 납치 사건 관련 기사를 161년 만에 정정했다. 2012년 영국 BBC의 조지 앤트위슬 사장은 유명 정치인을 아동 성학대범으로 잘못 보도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1983년 독일 잡지 『슈테른』은 히틀러 일기장을 보도하며 “나치의 역사는 새로 기술해야 한다”고 보도했다가 일기장이 가짜로 판명된 이후 편집장과 기자가 형사처벌을 받았다. 1989년 일본 『아사히신문』은 자사 기자가 오키나와 거대 산호초에 ‘KY’ 낙서를 새긴 뒤 누군가 낙서를 했다며 거짓 기사를 내보내자, 해당 오보 과정을 철저히 규명했으며 『아사히신문』 사장은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오늘날 전 세계 주요 뉴스룸은 오보와 가짜뉴스에 맞서고 있다. 오보와 가짜뉴스는 사실과 진실에 대한 뉴스 수용자들의 접근을 방해하며 뉴스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저널리즘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유튜브를 이용한 뉴스 소비가 늘어나는 가운데 ‘최순실 태블릿PC 조작’부터 ‘5·18 북한군 개입설’, ‘문재인 건강 이상설’, ‘노회찬 타살설’ 같은 가짜뉴스가 유튜브 인기 영상에 오르며 비상식적인 사회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한국의 극우보수 성향 유튜브 상위 17개 채널의 총구독자만 2018년 10월 현재 200만 명을 넘겼다. 가짜뉴스는 정치적 선동과 더불어 상업적 목적이 결합되어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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