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시(漢詩) 마당 ♣/- 우리 漢詩

湖堂口號 - 朴淳

Bawoo 2019. 5. 7. 21:02




湖堂口號

                                                                                               -朴 淳


亂流經野入江沱(난류경야입강타) 굽이굽이 흐르는 시냇물 들을 지나 강으로 들어가고

滴瀝猶殘檻外柯(적력유잔함외가) 난간 밖의 가지에는 아직 물방울이 남아 있구나

籬掛簑衣簷曬網(리괘사의첨쇄망) 울타리엔 도롱이 걸어놓고 처마에다간 그물 말리는데

望中漁屋夕陽多(망중어옥석양다) 바라보이는 어부의 집에는 저녁 노을 짙구나




〖湖堂(호당)〗 독서당(讀書堂)의 별칭. 조선 시대에 문신(文臣)들에게 휴가를 주어 글을 읽게 하던 곳으로 세종 8년(1426)에 시작되었고, 그 후 중종 10년(1515)에 동호(東湖) 북쪽 기슭, 즉 지금의 두모포(豆毛浦)에 창설하였는데, 이때부터 ‘호당’이라 일컬었음.

〖口號(구호)〗 입에서 바로 읊어서 이룸.

〖沱〗 흐르다 타,

〖瀝〗 물방울 력, 

〖曬〗 쬐어 말리다 쇄 


박순(朴淳, 1523, 중종 18~1589, 선조 22): 본관은 충주. 자는 화숙(和叔), 호는 어렸을 적에는 청하자(靑霞子)였으나 뒤에 사암(思菴)으로 고쳤다. 눌재(訥齋) 박상(朴祥)이 숙부이다. 1553년(명종 8) 정시문과에 장원급제한 뒤 전적·수찬·사인 등을 지냈다. 1555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한 뒤 한산 군수·직제학·동부승지·이조참의 등을 거쳤다. 1565년 대사간으로 있을 때 대사헌 이탁(李鐸)과 함께 척신 윤원형을 탄핵하여 제거하는 데 앞장섰다. 그 뒤 대제학·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572년(선조 5)부터 약 15년간 영의정을 지냈다. 동서당쟁이 심할 때 이이(李珥)·성혼(成渾) 등을 편들어 상소하다가 도리어 양사(兩司)의 탄핵을 받았다. 그 뒤 1586년 휴가를 받아 영평(永平) 초정백(椒井白)에 목욕하러 갔다가 그곳에서 은거했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 천지(天地)의 생성을 이전과 이후로 구분한 태허설(太虛說)을 주장했다. 또한 정치의 도(道)는 충(忠)과 효(孝)라면서, 자신으로 보면 집안이 먼저이고 나라는 뒤이지만 예(禮)로써 보면 나라가 존귀하고 집안은 낮다고 했다. 글씨는 송설체(松雪體)에 능했으며, 시는 당시풍(唐詩風)을 따랐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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