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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장편소설- 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나라없는 나라 - 이광재

Bawoo 2020. 1. 18. 22:30

나라 없는 나라


[책소개]

이광재의 장편소설『나라 없는 나라』는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으로, 동학농민혁명의 발발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기존의 동학농민혁명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몇 개의 역사적 실재 혹은 실재를 덧씌우고 그것을 누빔점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재구성했다.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의 장군들과 흥선대원군과 이철래, 김교진 등의 젊은 관리 그리고 을개, 갑례, 더팔이 같은 주변인 들이 겪는 시대적 상황과 사랑, 아픔을 “우리 현실에 비추어볼 때 가장 현재적 의미가 충만한 사건”으로 그려낸다.

 

<목차>

먼동
그해 정월
남풍
적과 동지
살을 에는 밤
에필로그
심사평

 

<저자 : 이광재 >
196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전북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1989년 무크지 『녹두꽃』에 단편 「아버지와 딸」로 등단. 소설집 『아버지와 딸』(1992)과 장편소설 『내 가슴의 청보리밭』(1993), 『폭풍이 지나간 자리』(1994) 등을 냈고, 전봉준 평전 『봉준이, 온다』(2012)를 냈다.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했다.

 

<출판사 서평>

한국소설의 새로운 방향!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제5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나라 없는 나라』가 출간됐다. 혼불문학상은 우리시대 대표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2011년에 제정됐고, 1회 『난설헌』, 2회『프린세스 바리』, 3회 『홍도』, 4회 『비밀 정원』이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혼불문학상은 어떤 식으로든 기존의 장르에 도전하는 혁신적인 작품으로 한국소설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꾸준히 받고 있다.
2015년 제5회 혼불문학상에는 총 156편이 응모되었다. “올해는 급격하게 퇴행하고 있는 정치적 상황 탓인지 우여곡절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담달랐다.” 이 가운데 동학농민혁명을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현재적인 사건”으로 재구성하고, “기존 소설은 물론 역사서에서도 크게 주목하지 않은 새로운 역사적 상황이나 역사적 존재들을 재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전혀 새로운 역사상을 제시”한 『나라 없는 나라』가 수상작으로 결정됐다. 심사위원으로는 평론가 류보선, 소설가 성석제, 이병천, 하성란이 참여했으며 심사위원장은 소설가 현기영이 맡았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우리에게 나라는 없다”

“이 소설은 위험하게 사는 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다.
그러니 어떻게 할까? 이 소설은 이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_‘작가의 말’에서

흥선대원군 앞에 한 사내가 슬며시 나타난다. 나라에서 철통같이 에워싼 운현궁 노안당을 제집 들듯이 들어온 사내는 “백성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며, “반도 상도 없이 두루 공평한 세상”(11쪽)에 대해 논한다. 초목마저 떨게 하던 흥선대원군 앞이었다. 사내의 이름은 김봉집이라 했다. 대원군이 재차 본명을 묻자, 사내는 “전봉준이라 쓰기도 하고, 김봉집이며 김봉균이 모두 이름이요, 자는 명숙이라 하며 동무들은 녹두”(13쪽)라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전봉준이 돌아간 후 대원군은 끙끙 앓는다. 그해 정월, 전봉준 송두호 정종혁 김도삼 송대화 황홍모 김응칠 최경선 등의 이름이 적힌 통문이 돌았다. 그들은 군사를 모아 고부군수 조병갑을 몰아낸다. “조선의 명운”이 달린, “조선의 마지막 기회”(25쪽)였던 농학농민혁명이 시작되었다.

“다시 돌아오거든 네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사는 모습을 지켜볼 것이다.
하나 만일 돌아오지 못하거든… 살아남아라.”

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문체의 전아한 아름다움이다. 예스러우면서도 현실에 약동하는 고전 문체의 창조적 재발견이다. _현기영(소설가)

『나라 없는 나라』는 동학농민혁명의 발발부터 전봉준 장군이 체포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의 장군들과 흥선대원군과 이철래, 김교진 등의 젊은 관리 그리고 을개, 갑례, 더팔이 같은 주변인 들이 겪는 시대적 상황과 사랑, 아픔을 “우리 현실에 비추어볼 때 가장 현재적 의미가 충만한 사건”으로 그려낸다.
『나라 없는 나라』로 제5회 혼불문학상을 수상한 이광재 작가는 2012년에 동학농민혁명의 지도자에 관한 평전을 쓴 적 있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많은 사람들이 개인의 안락을 꿈꾸지만 당장은 안전해 보여도 제도화된 위태로움으로부터 조만간에는 포위”될 게 뻔하기에, “단언컨대, 세상은 지금 안전”하지 않기에,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난 “갑오년에 쏜 총알이 지금도 날아다니기 때문에” 이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작가는 “기존의 동학농민혁명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몇 개의 역사적 실재 혹은 실재를 덧씌우고 그것을 누빔점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재구성”했다. 그런데 “하, 이거, 참, 흥미롭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사건에 관해서라면 이미 많은 대작들이 씌어져 더 이상 덧붙여질 것조차 없어 보였던 동학농민혁명이 기존의 소설과는 전혀 다른 역사상으로 환생하여 오늘날의 우리에게 가장 현재적인 사건으로 육박해온다.”(‘심사평’에서)

허투루 넘어갈 문장이 없다
오랜만에 공들여 읽을 소설을 만났다 _하성란(소설가)

『나라 없는 나라』의 가장 큰 강점은 동학농민혁명, 그날의 현재성과 이야기에 담긴 농도 짙은 감동이다. “공경 이하 방백과 수령은 국가가 처한 위험을 생각지 않고 자신의 몸을 살찌우고 집안을 윤택하게 하는 계책을 꾀할 뿐”(143쪽)인 나라에서 살아가는 백성들이 마침내 일어서 승리를 하고, 결국 무능한 나라 앞에서 하나둘 쓰려져가기까지의 과정에서 오늘날의 현실을 대입해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또한 주요 장군들과 더불어 소설을 완성시키는 이름 없는 농민군들의 서사는 마음을 울린다. “롤러코스터처럼 어지럽던” 시대를 살아야 했던 “농민군과 선비, 정치가, 심지어 이름 없는 백성들이 밤하늘 별처럼 찬연히 빛나는 소설”(이병천) 『나라 없는 나라』는 그들 모두의 삶이 얼마나 진지하고 절절했는지를 의미 있게 그려내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주기에 충분한 소설이다.

 

<책속으로>

-백성을 위하여 한번 죽고자 하나이다.
무거운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하면 그대가 꿈꾸는 부국강병책이 따로 있단 말인가
대원군의 음성이 절로 떨었다. 힐난하듯 사내가 되물었다.
-부국강병이라 하셨나이까
-그러하다.
-백성이 가난한 부국이 무슨 소용이며, 이역만리 약소국을 치는 전장에 제 나라 백성을 내모는 강병이 무슨 소용이겠나이까?
한번 말이 트이자 거리낌이 없었다. _11쪽

널브러진 조선 병사의 시신을 피해 관문각 뒤로 돌아가자 건물에 등을 붙인 병사들이 나타났다. 궁을 사수하기 위해 외병의 침입에 맞서 싸우는 병사들은 평안감영 소속의 기영병(箕營兵)이었다. 안경수가 총을 놓고 물러나라는 임금의 분부를 낭송하였다.
-임금께서 어찌 그런 명을 내린단 말이오?
낭송이 끝나자 병사 하나가 외쳤다. 안경수가 말을 잇지 못하자,
-함화당이 점령당했다더니 왜놈들에게 협박을 당하는 게요
또 다른 병사가 물었다. 안경수가 답하였다.
-내가 아는 것은 성상께서 직접 명하셨다는 것이오.
-직접 뵈었으면 협박을 당하는지 아닌지 왜 모른단 말이오? 명을 전하는 그쪽은 뉘시오
-전환국방판 안경수요.
-왜놈이 궁을 터는 일에 편역을 드니 개화당이로구만.
대오의 뒤편에서 비아냥대는 소리가 날아왔다.
-말이 과하다. 나는 어명을 따를 뿐이다. 어명을 거역할 셈인가 잠시 말이 끊기고 추녀에서 비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사 하나가 일어나 들고 있던 소총을 바닥에 내리쳐 두 쪽을 냈다.
-이것은 나라가 아니다! 나라는 없다!
총을 동강 낸 것으로도 모자라 그자는 입고 있던 군복을 갈기갈기 찢었다.
-궁을 나가자! 지킬 임금도 없다!
-평양으로 가서 왜놈과 싸우자! 왜국을 싸고돌면 너희도 우리의 적이다.
못 하는 말이 없었다. 병사들이 한 마디씩 뱉으며 총을 부수고 옷을 찢을 무렵 어디선가 새어나온 불빛이 그들의 눈물에 반사되었다. 병사들이 하나둘 신무문 쪽으로 움직일 즈음 이철래의 얼굴로도 눈물이 내려와 비에 섞였다. _195쪽

갑례가 상을 들어내려 하자 그가 손을 들어 말렸다. 손수 상을 구석에 놓더니 딸을 보았다.
-갑례야.
기어드는 소리로 대답하였다.
-네.
-아비가 미안하다.
갑례가 고개를 숙이는데 방에 깔린 삿자리 위로 눈물방울이 툭 떨어진다. 전봉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다시 돌아오거든 네가 시집가서 아들딸 낳고 사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볼 것이다. 하나 만일 돌아오지 못하거든…….
말이 끊어졌다. 갑례는 손으로 눈물을 닦았다.
-살아남아라.
갑례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절을 올렸다. 묵묵히 앉아 딸이 절을 올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전봉준이 벌떡 일어나 문을 차고 나섰다. _267쪽

-내일은 큰 싸움이 날 텐데…… 선생님은 안 무서우세요?
전봉준이 희미하게 웃었다.
-너는 무서우냐
-무섭습니다. 무섭고말고요.
바람에 바닥의 눈이 송진 가루처럼 쓸려 다녔다. 어디선가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소나무가 와지끈 부러지는 소리도 들렸고, 추위를 참지 못해 지르는 군사들의 신음이 꼭뒤에 닿았다.
-받아먹지 못한 환곡을 갚고, 노상 부역에다 군포는 군포대로 내는 세상으로 다시 가겠느냐? 양반의 족보를 만드는 데 베를 바치고 수령들 처첩까지 수발을 들면서 철마다 끌려가 곤장을 맞을 테냐 을개의 목소리가 퉁명해졌다.
-이제는 그렇게 못 살지요.
-나도 그렇게는 못 산다. 우리는 이미 다른 세상을 살았는데 어찌 돌아간단 말이냐?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 _301쪽
작가의 말